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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Process
(Nell)
2006

by 윤지훈

2006.10.01

넬은 끊임없이 고독과 슬픔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인디시절에는 90년대 영국 록 음악의 짙은 감수성을 흡수하여 이 땅에 거의 원형 그대로 펼쳐 보였으며, 'Stay'라는 히트 싱글을 통해 메인스트림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흐느낌에 가까운 보컬을 선보였다. 이에 동조하는 팬들은 흡사 아이돌 스타의 그것처럼 환호성을 질렀고, 그 건너편엔 끈질긴 슬픔에의 강요를 거부하고 냉소하는 이들이 있었다. 'Stay'의 성공 방식을 충실히 재연한 < Walk Through Me >(2004)의 대표곡 'Thank you'에 이르렀을 때, 그 간극은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는 듯 했다.

넬은 분명 평균치를 웃도는 능력을 갖춘 팀이다. 멤버 개개인의 연주는 화려하진 않지만 집중도를 흩트리지 않으며, 프론트 맨 김종완은 표현력을 가진 보컬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TV와 라디오, 인터넷을 아우르는 대중적 흡입력을 보유한 록 밴드라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쉽게 공격받은 이유는 음악 내외적으로 맹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수많은 라디오헤드의 충실한 추종자들 중 하나라는 것. 다른 하나는 서태지 산하의 레이블 '괴수인디진'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앨범이 발표된 이 시점에서 라디오헤드 아류라는 비판은 효용성이 다했다.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장르 화(化)되었으며, 밴드의 지향을 문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이미 콜드플레이(Coldplay)를 위시한 서구의 많은 밴드들이 증명한 것으로, 라디오헤디즘(Radioheadism)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분화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점에서 '괴수인디진'을 뛰쳐나온 < Healing Process >는 시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덜미를 잡힐 수 있는 약점은 제거된 상태. 이제는 온전히 음악으로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두 장의 씨디로 구성된 17곡의 알찬 구성은 이를 대변한다.

'치유 과정'이라는 타이틀부터 남다르다. 부당한 상처를 입은 자신들에 대한 위무의 표현일까, 음악은 보다 유해졌다. 이미 전파를 타고 순항 중인 '마음을 잃다'가 대표적인 예. 여린 감수성은 여전하지만 'Stay'와 'Thank you'를 잇는 흥행 공식은 적용되지 않았다. 가장 큰 특징은 심상원이 주도한 현 편곡. 훅이 넘실대는 후렴구를 지나 오케스트레이션이 곡의 말미를 부드럽게 감싸며 여운을 남긴다. 곡의 전반에 걸쳐 스트링이 사용된 발라드 '그리움', '한계' 또한 기존 가요에 비한대도 손색없을 앨범의 부드러워진 단면을 엿보인다.

이는 레이블을 옮긴 후 2년 간 힘을 축적하며 숨을 고른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주류 입성 후 매년 앨범을 발표하며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여유를 품안에 둔 셈이다. 히트 공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숙성된 멜로디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 자연스럽게 앨범은 '현실의 현실', 'Good night', 'Beautiful day' 등 어느 곡을 으뜸으로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른 완성도를 획득했다.

또한, 이전엔 없던 독특한 시도도 눈에 띈다. 앨범의 타이틀을 함축하고 있는 '치유'는 뉴웨이브, 일렉트로니카 색채가 가미된 트랙. 성긴 비트 위로 오르간 음색의 키보드 라인이 반복되고 김종완의 가성이 덧입혀지는 순간, 무대는 과거로 이동한다. 플로어가 아닌 감상용 댄스를 지향하는 한국식 록 댄스이다.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 트립합의 기운까지도 감지되며, 많은 고민을 겪었음이 느껴진다. 키보드 음색이 보다 주도적으로 나선 '안녕히 계세요', 클로징 트랙 'Movie' 역시 정체하는 듯이 보였던 밴드의 앞으로의 행보를 조심스레 점칠 수 있게 하는 단초이다.

지금까지 일궈낸 넬의 성공은 청춘의 나약함을 건드려주었기 때문이다. '루저(Looser)'의 깃발 아래 패배자 감성으로 모인 이들이 주로 넬의 음악을 향유해 왔다. 소수의 무리를 애무하는 음악은 깊게 파고들 수는 있지만 넓게 퍼지기에는 힘들기 마련. 넓은 대중적 영향력을 요구하는 팀의 영속성에는 치명적인 저해요건이다.

넬은 여전히 자신들의 슬픔을 토로하고 있다. 허나, 이제는 더 이상 데뷔 시절의 치기어린 칭얼거림이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변모했다. 본인들의 넉넉해진 마음가짐만큼이나 17곡의 방대한 분량에 거친 기타 노이즈부터 발라드 풍 현 편곡까지 한 그릇 안에 녹여낼 정도로 곡의 포용력은 넓어졌다. 청중과의 정서적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 순간, 넬은 드디어 마니아와 방관자, 그 연결다리를 마련했다.

-수록곡-
CD1
1. 현실의 현실
2. 섬
3. Good Night
4. Counting Pulses
5. 그리움
6. Beautiful Day
7. 치유
8. 마음을 잃다
9. 안녕히 계세요
10. 어떻게 생각해

CD2
1. 얼음 산책
2. Meaningless
3. 오후와의 대화
4. A.S
5. 한계
6. 51분전
7. Movie

Produced by Nell
윤지훈(lightblue12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