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올해의 팝 앨범

by IZM

2018.12.01



2018년 팝의 지각 변동은 기존 대중음악 팬들의 상식을 역행했다. 힙합, 여성, 소수 담론, 아시아, 성소수자의 작품이 올 한 해 차트와 평단을 호령했다. 여느 때보다 다채롭고 신선한 흐름으로 다가온 2018년의 팝 음악,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앨범 10장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카디 비(Cardi B) < Invasion of Privacy >
스트리퍼에서 엔터테이너로, 바이럴 마케터에서 아이콘으로 거듭난 카디 비는 음반 한 장으로 그의 성공이 단발성이 아님을 증명했다. 음반 차트 정상과 전체 수록곡 차트 진입 등 상업적 성과들을 제외하고도, 음반이 거둔 성취는 대단하다. 중독성 강한 억양과 개성 있는 톤, 다이내믹한 개인적 서사, 거리낌 없는 언행 등 카디 비란 독특한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실로 매력적이고, 음반엔 이것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영리함이 있다. 수백만 개의 '좋아요'를 얻어내던 그의 영업방식이 음반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Bodak yellow'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트랩 비트 위에서 강력한 래핑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Get up 10'과 'Money bag' 등, 이전의 그가 선보였던 성향의 음악은 물론, 미고스의 환각성과 챈스 더 래퍼의 긍정적인 바이브 등 훌륭한 재료들을 자신의 스타일과 엮어낸 신선한 트랙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라틴 팝 열풍에 발맞춘 'I like it'은 올해의 트랙에 손색이 없다. 트랩이 팝의 새 판도가 된 현재, < Invasion of Privacy >는 진정한 2018년의 팝 음반이다. (이택용)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 < Golden Hour >
“전 미인대회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높이 세운 머리보다 나 자신이 더 위에 있거든요”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는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에 가장 진취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꺾고 그래미 베스트 컨트리 상을 받은 전작들에서 그는 마약, 젠더퀴어, 여성 아티스트가 겪는 부조리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개인적인 이야기로 담담히 풀어놓는 것은 물론, 자신이 몸담고 있던 컨트리 진영을 향한 일갈도 서슴지 않았다. 가장 보수적인 사운드에 가장 진보적인 가사를 담는 이 역설 화법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Golden Hour >가 전작들보다 컨트리의 색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앨범이 완전한 팝으로의 전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풀 내음 나는 피리와 벤조 소리에 디스코 리듬, 보코더, 전자음을 섞고 울림을 만드는 리버브 효과를 주어 팝도, 컨트리도 아닌 풍성한 제3의 음악이 탄생했다. 물론 두 음악의 듣기 좋은 부분만 솎아내 취하면서 말이다. 가사 측면으로 보아도, 그가 결혼하게 되면서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특유의 '비꼼'은 여전하다. 즉,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역설 화법은 < Golden Hour >에서도 유효하다는 뜻이다. (정연경)



The 1975 - <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 >

"현대성은 우리를 저버렸어(Modernity has failed us)." 앨범이 그려내는 세계는 한없이 짙은 잿빛이다. 프론트맨 매튜 힐리(Matthew Healy)는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을 현대사회의 단절성이라는 시대적 문제의식에 그대로 접합한다. 심오한 주제지만 1975만의 세련된 팝적 감수성 덕에 앨범은 '엘리트 음악'으로 빠져버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앨범은 어떤 방식으로 즐기든 의미 있는 경험을 보증한다. 낮엔 'TOOTIMETOOTIMETOOTIME'의 신나는 록 비트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추고, 저녁엔 'I always wanna die(Sometimes)'의 멜랑콜리에 젖기도 하고, 새벽엔 가사집에 밑줄을 그어가며 심오한 사회적 메시지를 고민할 수 있는, 입체적이고 아름다운 앨범이다.

한껏 물오른 음악적 감각이 앨범의 격을 더한층 높여 준다. 후끈한 얼터너티브 록('Give yourself a try')부터 어쿠스틱 팝('Be my mistake'), 재즈적 감수성('Mine')까지 다채로운 장르가 융합되어 각각의 매력을 뽐낸다. 처절한 'Love it if we made it'과 도회적인 'Sincerity is scary'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트랙이며, 스마트폰 인공지능 비서 시리(Siri)가 읽어주는 소설 'The man who married a robot / Love theme' 같은 참신한 시도도 군데군데 자리해 있다. 오늘날 록 밴드의 역할을 나름의 발걸음으로 찾아나가는 1975, 그 여정이 올해 누구보다 근사한 결실을 맺었다. (조해람)



자넬 모네(Janelle Monáe) < Dirty Computer >
이전 두 장의 앨범에서 공상과학 페르소나 신디 메이웨더로 분한 자넬 모네는 3집에 와서 우리에게 닥친 '현실'로 더 내려왔다. 이번에 표방한 '더러운 컴퓨터 제인 57821'은 모순과 결함 덩어리인, 그러나 껴안을 수밖에 없는 바로 우리 인간사회를 시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자넬 모네와 같은 개혁적 흑인 여성은 인권과 성에 동시 접근해야 한다. 모네는 퀴어까지 품었다. 무차별 공세가 아닌 문제점 투성인 현상(現狀)을 감싸 안아 메시지의 포괄성뿐 아니라 소셜테이너의 차가움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음악은 음악이기에 들리게 해주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도 고평을 얻었다. 'Make me feel'부터 고 프린스의 환생이며 'Django Jane'가 그렇듯 펑크(Funk)와 일렉트로닉 요소가 변화무쌍하게 교배해 알앤비, 소울, 힙합의 힙을 꾸려낸다. 같이 내놓은 46분짜리 내러티브 프로젝트 필름 역시 대중적 접점 마련의 일환일 것이다. '소셜' 앨범이지만 감칠 나는 '뮤지컬' 앨범이라는 점, 바로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 이 동반과 짝이 올해의 앨범이란 자격을 선사해주었다. (임진모)



어겐스트 올 로직(Against All Logic) < 2012 - 2017 >
'가진 거라곤 이 오래된 하우스뿐(This old house is all i have)'. 역설적인 제목이다. 어겐스트 올 로직(Against All Logic)의 이름 아래 있는 아티스트는 앰비언트, 테크노 펑크, 아방가르드와 브레이크 비트를 천재적으로 혼합해온 디제이 니콜라스 자(Nicholas Jaar)다. 역설과 예측 불가능한 매력으로 빛나던 그는 새로운 자아의 이름처럼 '모든 논리에 맞선'다. 그 도구는 고전 펑크(Funk)와 소울로부터 추출해낸, 정격적인 댄스 음악이다.

< 2012- 2017 >은 정치적이고 실험적이었던 아티스트가 '각 잡고 만든' 고밀도의 댄스 플로어 플레이리스트다. 때로는 직선적으로, 때로는 몽환적으로 다가가는 2012년부터 2017년의 기록물들은 놀랍도록 정교하며 각 트랙마다 선명한 무형의 상을 하나씩 각인시킨다. 뿌연 드라이아이스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벽의 클럽 아우라, 그 사이를 뚫고 달려오는 신스 루프와 사운드 샘플의 쾌감은 11 트랙 내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명제를 증명한 천재 프로듀서의 몸풀기 앨범. (김도헌)



미츠키(Mitski) < Be The Cowboy >
< Be The Cowboy >는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몸부림이다. 콘셉트는 영화에서 얻었으나 캐릭터를 분석해 앨범에 녹여낸 미츠키의 해석은 그의 또 다른 사회적 '페르소나'를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화 속 인물 '에리카'의 페르소나가 미츠키 미야와키라는 실제 인물의 경험과 만나, 앨범의 메시지는 성(性)적 고찰, 더 나아가 젠더론으로 확장한다. 가면을 쓰고 실재하는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그려내는 모습은 가히 냉소적인 프로테스탄트 그 자체다.

음악적 미학 또한 < Be The Cowboy >의 얼터너티브 속성에서 기인한다. 메인스트림 팝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멜로디, 제이 팝에 더한 서구 대중음악의 흔적은 새로운 결과물로서 말 그대로의 대안 모델이다. 다소 비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고찰의 과정은 실험적인 노래의 구성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최근 아시아계 여성 아티스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는 < Be The Cowboy >는 시의성과 음악성을 모두 충족한다. 그러니 당연히 [올해의 앨범]이 아니겠는가. (정연경)



노네임(Noname) < Room25 >
재지한 비트와 속삭이듯 힘을 빼고 내뱉는 래핑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빌보드를 가득 수놓은 강력하고 강렬한 삼연음 플로우가 부재하고, 대신 그 자리를 조금 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한 편의 에세이 같은 가사들로 채웠다. 믹스테이프 만으로 그래미 신인상을 최초로 수상한 챈스 더 래퍼로 인해 잘 알려진 시카고 힙합 계열의 뮤지션 노네임이다.

30분 남짓의 짧은 음반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흑인이자 시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사회적 마찰을 아름답고 단호하게 써냈으며 이러한 요소를 재지한, 또 한 편으로 약간은 가스펠적인 사운드와 섞어 요새 유행하는 힙합과는 다른 해방감을 선사한다. 비록 아직은 국내 스트리밍이 불가하고 열렬한 호응 또한 부족하지만, 그의 행보는 당당하다. 내용이 담고 있는 무게감, 음악이 지닌 완성도, 세상을 향한 앨범의 방향성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올해의 음반. (박수진)



로빈(Robyn) < Honey >
1997년에 'Do you know (What it takes)'와 'Show me love'로 인기를 얻은 스웨덴 출신의 댄스 팝 싱어 송라이터 로빈이 21년 후에 또 다른 명품 앨범으로 한 해를 빛낼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전히 카랑카랑한 음색과 경박하지 않은 그루브 그리고 틀에 박히지 않은 가사는 로빈의 등급을 상향 조정한다. 예전보다 신시사이저의 비중이 높지만 멜로디에 중점을 두고 록과 알앤비를 바탕으로 깔고 있기에 현재의 EDM과는 차별점을 두고 있는 < Honey >는 '역시!'라는 감탄사를 유발하는 연륜 있는 댄스 팝 앨범이다. (소승근)



앤더슨 팩(Anderson. Paak) < Oxnard >
블랙 팬서 OST로 출발한 앤더슨 팩의 2018년은 애플 스마트 스피커 홈팟(Homepod)의 감각적인 싱글 'Till it's over'로부터 켄드릭 라마와의 매끈한 협업 'Tint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정규 앨범 < Liberation >을 거쳐 < Oxnard >로 방점을 찍는다. 독창적 리듬과 규격화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가득한 이 아티스트와 그의 밴드 프리 내셔널스(Free Nationals)는 새 시대의 펑크(Funk)와 힙합을 조율해내는 감각을 날 것 그대로 발산해 보인다.

예측을 거부하는 비트 전개와 정제되지 않은 본능적 외침, 불협을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재주가 즐겁다. 미니멀 힙합으로부터 낭만적인 알앤비로의 성공적인 전환 '6 summers'와 복고적인 소울 트랙 'Anywhere', 'Mansa musa'의 멈춤 없는 그루브 모두 앤더슨 팩의 드럼 스틱 위에서 춤을 춘다. < Oxnard >는 2018년 베스트 믹스에 역동성을 추가한다. (김도헌)



칼리 우치스(Kali Uchis) < Isolation >
다채로움이 으뜸 강점이다. 네오 솔, 얼터너티브 R&B가 큰 줄기를 이루는 가운데 일렉트로팝('Dead to me'), 레게톤('Nuestro planeta'), 인디 팝('In my dreams'), 일렉트로 스윙('Feel like a fool') 등 여러 장르를 두루 마련해 감상을 즐겁게 한다. 주메뉴에서 벗어난 노래들은 이따금 완만한 요철을 밟는 기분을 들게 해 준다. 앨범에 재미있는 굴곡이 나타난다.

이것저것 다른 스타일을 모으면 산만할 가능성이 크지만 < Isolation >은 그 보편적 저주를 맞닥뜨리지 않았다. 업비트의 반주도 현란하거나 우악스럽지 않고 대체로 차분한 톤을 띠는 덕이다. 곡을 확실히 잘 골랐다. 여기에 칼리 우치스(Kali Uchis)의 부드러운 음성이 한 번 더 통일성을 높인다. 매혹적인 목소리가 노래들을 깔끔하게 싸는 포장재가 됐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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