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특집 1999년 가요 30곡 VOL. 1

by IZM

2019.09.01



2019년의 Z세대는 '온라인 탑골공원'과 '온라인 노인정'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예능 프로그램 < 무한도전 >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기획이 불러온 유행과는 다르다. 디지털 시대의 신세대들은 '레트로 도서관' 유튜브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세기말을 즐거운 놀이의 도구로 활용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아련한 추억으로,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활용하는 '레트로 퓨처'다.


1999년 가요 특집을 기획하는 것은 묘했다. IMF의 구제 금융을 받고 있던 그 시절 한국은 지금의 유튜브 댓글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호시절'이 아니었다. 재계 2위 대우그룹이 해체됐고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났으며 화성 씨랜드 참사 등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국토 전역에 보급된 인터넷이 새로운 새천년에 주어진 일말의 희망이었다.


그 기록과 기억 덕인지 지금부터 소개할 노래들은 20년이 지난 2019년 현재에도 전혀 과거의 유산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의 가요계를 만들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소비되는 1999년의 유행가, 15곡씩 나누어 총 30곡을 소개한다.




조성모 'To heaven'

20년 전의 발라드는 투박하고 직선적이었다. 지금이야 비교적 웅장했던 스트링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플루트 같은 관악기까지 합세해 유연한 느낌을 도출해내지만, 당시에는 8비트의 정직한 드럼과 간주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기타 솔로가 정석이었다. 'To heaven'은 당시를 대표하는 발라드의 표본이다. 이는 그때의 직설적인 감성을, 자글자글한 텔레비전 화질의 향수를 떠오르게 한다. 섬세한 미성의 보컬, 차가운 음색의 피아노 연주는 언뜻 건조하게 들리지만 꾸밈없기에 순수하게 와닿는다. 각종 상을 휩쓸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며 '얼굴 없는 가수'에서 당대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만들어준 영예의 곡. (조지현)




핑클(FIN.K.L) '영원한 사랑'

새끼 손가락을 들고 '약속해줘'하는 장면은 남녀노소 모두가 안다. 제목은 헷갈려도 누구나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영원한 사랑'은 1집 성공에 이어 핑클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았다. 전주의 피아노와 웅장한 세션 사운드가 지금은 촌스러울지 몰라도 옥주현의 깔끔한 고음으로 완성도를 높였고 전국민이 따라 춤출 수 있는 안무로 대중성을 잡았다. 1999년 서울 가요대상과 가요대전에서 걸그룹 최초로 대상을 받은 것은 가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임선희)




Y2K '헤어진 후에'

한일 합작 록 밴드, Y2K의 1집에 수록된 '헤어진 후에'는 그때이기에 유행했고 그때이기에 가능했던, 가요가 담을 수 있는 화려하고 담백한 록 사운드다. 다채로운 기타 소리 위에 흘러나오는 직관적인 가사와 선명한 멜로디 라인.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 플라워의 'Endless'와 함께 노래방을 제패한 이 곡은 1980년대의 부활부터 2000년대의 버즈까지 이어지는 록 발라드 시대의 중앙에 위치하고, 그렇기에 정확하게 그 포인트를 담고 있다. (장준환)




드렁큰 타이거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 업타운과 지누션이 있었음에도 한국인들은 힙합을 잘 몰랐다. 너도 나도힙합 패션을 따라하면서도 기성 가요를 힙합으로 착각했고 랩을 노래의 부수적 요소 정도로 여겼다. 훗날 타이거 JK는 '매일 밤 01'에서 당시 힙합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이렇게 기억한다. '힙합 좀 안다구 젝키춤에 텀블링 현란한 안무'.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교포 듀오 드렁큰 타이거의 등장은 그런 가요계에 떨어진 불호령이었다. '음악같지 않은 음악을 이젠 모두다 집어치워 버려야 해'라는 호기로운 선언은 김진표가 도운 빽빽한 랩과 경탄의 속사포 영어 랩으로 당위를 얻었다. PC 통신과 언더그라운드로 알음알음 형성되던 한국 힙합 마니아들은 현란한 '진짜 힙합'에 열광하며 '부쳐핸섬(Put your hands up)'을 목놓아 외쳤다. 술 취한 호랑이 둘의 과감한 질문이 한국 힙합을 개안시킨 것이다. (김도헌)




클론 '돌아와'

새천년을 앞둔 1999년에는 테크노와 미래지향적 콘셉트가 합쳐진 음악이 쏟아졌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체육대회를 준비하다 접하게 된 댄스 음악의 매력(?)은 잠들어있는 내적 흥을 발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여성 보컬 김태영,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되는 강력한 리듬은 이 곡의 매력이다. 강원래와 구준엽이 만든 클론 세상은 199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꿍따리 샤바라', '초련'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댄스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에 활력을 주는 존재다. (정효범)




코요태 '순정'

이 곡은 나의 첫 사회 경험과 맞닿아 있다. 욕은커녕 소심한 성격에 처음 학교 문턱을 넘던 날 세상은 그저 규율과 엄격함, 그리고 어색함뿐이었다.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답답한 생활환경 속에서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이 노래였다. 왜 초등학교 운동회의 단체 군무용으로 이 곡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나는 빨간 티셔츠에 소고를 들고 열렬히 뽕짝, 클럽 사운드를 즐겼더랬다. 비련미 가득한 가사에 일순간 중독되어 버리고 마는 마성의 멜로디 '워어어 워어어'에는 '그땐 그랬지'류의 아련함이 묻어있다. 김종민, 빽가가 합류하기 이전의 코요태 원년 멤버가 함께 불렀다. (박수진)




에스이에스(S.E.S.)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는 에스이에스 2집(1998)의 후속 활동 곡이었다. 곡의 운명은 여러 번 바뀌었다. 노래는 1집(1997)의 수록곡에서 2집의 타이틀곡으로, 다시 2집의 후속곡으로 조정됐다. 당초 데뷔 앨범을 제작하며 2집을 위해 아껴둔 노래였지만, 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유로 팝 'Dreams come true'에 선두 자리를 밀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본 노래는 1집의 '('Cause) I'm your girl', 'Oh, my love'에 이어 친근한 콘셉트와 멜로디로 사랑받았다. 지금까지도 에스이에스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소녀 이미지는 이 곡으로 완성됐다. (정민재)




지오디(god) '어머님께'

텔레토비 보던 나를 아이돌로 이끈 곡이다. 이 자장면 송에 추억 없는 사람도 있을까. 어떤 이유로 god에 처음 빠지게 됐는지 까먹었을 만큼 시간이 지났어도 (다음 해에 나온 육아일기 예능이 불을 지폈던 것 같다.) 곡 하나로 좋아했던 god의 잔상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와썹맨으로 더 유명해진 박준형과 그의 홀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박진영이 쓴 노래이나, 투팍과의 표절 논란으로 투팍에게 저작권이 넘어갔다. 요즘 어머님들은 자장면보다 탕수육을 더 좋아하실 만큼 형편이 나아졌지만 가난했고 어렵던 시절 가출 청소년들은 '어머님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엄마를 졸라 여보갈비(윤계상 부모님이 운영하던 갈빗집)에 가자고 했는데. (정유나)




임재범 & 박정현 '사랑보다 깊은 상처'

"크게 라디오를 켜라"던 헤비메탈의 기수는 새천년을 앞두고 알앤비 가수와 '완벽한' 호흡을 뽐냈다. 임재범의 허스키 보이스가 뿜어내는 농밀한 어덜트 발라드 감성은 수많은 메탈 팬들에게 배신감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정말, '20세기의 음악' 헤비메탈의 항복선언일까. 글쎄. 오히려 이 노래는 우리가 진정한 '한국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갖게 됐다는 확정판결이 아니었을까. 커버데일이 메탈만 잘 불러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듯, 임재범도 한 그릇에 머물지 않았기에 임재범이지 않을까. 물론 최고급 록 보컬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박정현의 가창도 일품이다. (조해람)




신해철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1998년 < Crom's Techno Works >에서부터 보여준 신해철의 테크노 실험은 1999년으로 이어졌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크리스 샹그리드와 팀 모노크롬을 꾸렸고, 그 후 나온 앨범이 그의 4집 < Monocrom >이다. 그중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는 신해철이 청춘에게 날리는 육중한 일갈이다. 호통치듯 세차게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반복하는 노랫말은 꿈과 갈 길을 잃은 현재 젊은이들의 사정과도 맞닿은 듯, 여전히 그들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 끊긴 이 시대에 다시 한번 꺼내 들어볼 만한 노래. 2003년에는 헤비메탈 밴드 크래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홍현)




에이치오티(H.O.T.) '아이야!(I YAH!)'

일찍이 故 신해철은 '남이 써준 가사로 세태를 비판하는 건 정말 멋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고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에 대한 언급을 지속해 갔다.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된 채 인위적 판타지만을 제공하는 작금의 케이팝 신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때가 더 도전적이고 과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1999년 6월에 일어났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를 모티브로 한 이 노래는, 기성세대의 욕심을 비판함과 동시에 삶을 꽃피워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19명의 어린 영혼을 추모하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트렌드였던 뉴메틀적인 요소와 더불어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과 베토벤의 월광을 삽입하며 웅장함과 비장함을 더하는 등 음악적인 시도 또한 게을리 하지 않은 작품이기도 했다. 사고로부터 불과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들려왔던 이 노래. 아이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었던 그룹의 걸작이다. (황선업)




자우림 '미안해 널 미워해'

2집 < 戀人 >에 수록되며 1998년 말에 발매됐으나 수록곡 '미안해 널 미워해'는 발매 이후 장기간을 인기곡으로서 보냈다. 그보다 이른 시점에 밴드는 이미 'Hey Hey Hey'로 성과를 거두며 이름을 많이 알린 상태였다. 다만 오로지 기존의 성취만이 후속의 성공을 이끌어낸 것은 아니었을 테다. 여기에는 당대의 기타 록 사운드가 있고, 그 너머에는 멜랑콜리한 선율이 내재했으며, 가장 깊은 곳에는 이별의 아릿한 서정이 담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곡 특유의 아릿한 정서와 거친 기타 록 사운드를 특유의 비음 섞인 중저음 목소리로 온전하게 소화해내는 김윤아의 가창이 존재했다. 사람들을 매혹할 요소들은 죄다 갖고 있었기에 곡의 성공에 문제를 제기할 여타 사유는 없었다. 이것으로 자신들의 성공 사유를 일찌감치 확증한 자우림과 김윤아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 (이수호)




토이 '여전히 아름다운지'

고음을 위해 노래가 만들어지던 1990년대 '대고음시대'에 노래를 위해 고음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다.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걸', '그럴 때마다' 등 몇몇 곡을 통해 유희열의 하드웨어로서 역할을 한 김연우가 또 한 번 참여하여 호소력을 더했다. 토이의 디스코그래피에 결정적인 한 방으로 기록된 이 곡은 < A Night in Seoul >을 1990년대의 명반 중 하나로, 유희열을 대한민국의 대표 싱어송라이터로 발돋움하게 했다. (이택용)




박완규 '천년의 사랑'

밴드 부활의 멤버였던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은 한국 '록 발라드'의 역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금이야 록이 시장에서 모습을 감추고 발라드는 스트링 어레인지가 대부분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이 둘의 조합은 성공 공식이었다. 특히나 강렬한 하드록 사운드와 고음을 내지르는 보컬에 맞춰 비상하는 기타 솔로, 애절한 가사, 여기에 웅장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현악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더해진 '천년의 사랑'은 한국인의 정서를 겨냥한 '록 발라드'의 정석이자 노래방 인기곡으로 남아있다. (정연경)




엄정화 '몰라'

2000년대 들어 섹시의 헤게모니는 핑클의 이효리에게 넘어가지만 김완선 이후 부재하던 '섹시 퀸'은 세기말 인기가 급부상한 엄정화와 함께 주인을 찾는다. KBS 라디오 '가요광장'의 진행을 통해 음악 공력을 쌓던 그는 커플로 수식된 송라이터 주영훈을 만나 가공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하지만 1999년에 발표한 5집에 수록된 '몰라'의 작곡자는 주영훈이 아닌 '히트제조기' 김창환이었다.


그만의 클럽 형 일렉트로닉 댄스비트에다 한번만 들어도 바로 포박당하는 멜로디를 내걸었으니 성공은 예약된 상황. 엄정화 역시 리듬을 끊어 타는 방식, 약간은 비주얼과 맞춘 사이버틱 이미지의, 이전과는 다른 보컬로 접근하는 공을 들였다. 이 곡은 그를 커리어 꼭짓점으로 끌어올려 많은 상품광고모델을 독점했을 만큼 당대 '원탑'으로 군림했다. 영화든 TV든 정말 그때는 엄정화만이 눈에 보였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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