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특집 1999년 가요 30곡 VOL. 2
2019년의 Z세대는 '온라인 탑골공원'과 '온라인 노인정'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예능 프로그램 < 무한도전 >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기획이 불러온 유행과는 다르다. 디지털 시대의 신세대들은 '레트로 도서관' 유튜브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세기말을 즐거운 놀이의 도구로 활용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아련한 추억으로,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활용하는 '레트로 퓨처'다.
1999년 가요 특집을 기획하는 것은 묘했다. IMF의 구제 금융을 받고 있던 그 시절 한국은 지금의 유튜브 댓글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호시절'이 아니었다. 재계 2위 대우그룹이 해체됐고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났으며 화성 씨랜드 참사 등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국토 전역에 보급된 인터넷이 새로운 새천년에 주어진 일말의 희망이었다.
그 기록과 기억 덕인지 지금부터 소개할 노래들은 20년이 지난 2019년 현재에도 전혀 과거의 유산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의 가요계를 만들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소비되는 1999년의 유행가, 15곡씩 나누어 총 30곡을 소개한다.
샵(S#arp) 'Tell me, tell me'
20세기의 추억으로 남을 뻔한 샵을 21세기로 끌어올린 두 번째 앨범 < The S#arp+2 >의 타이틀곡으로 선배 그룹 룰라의 이상민이 프로듀싱한 1998년 데뷔작 < The S#arp >의 'Yes' 같은 개성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1집 'Lying'의 댄서블하고 편한 이미지에 힌트를 얻어 이 곡을 쓴 작곡가 박근태와 다시 손잡고 1999년 12월 'Tell me, tell me'로 첫 정상에 올랐다. 이후 같은 앨범의 '가까이'를 비롯해 'Sweety',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등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히트곡으로 전성기를 달렸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세기말 인류 멸망의 전조를 극복한 샵은 팀 내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2002년을 끝으로 세기 초의 기록으로 남았다. (임동엽)
베이비복스(Baby V.O.X) 'Get up'
김형석은 그윽하면서도 귀에 빠르게 익을 멜로디를 지었다. 반주는 단출하면서도 적당히 경쾌했다. 서윤경의 가사로 노래는 고혹적인 자태를 냈다. 김조한은 이 성분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도입부에 이어 그가 곳곳에 입힌 애드리브는 노래에 흥과 속도감,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근사한 마감재가 됐다. 이것들이 이룬 시너지로 베이비복스는 이전과 다른 이미지를 갖추는 데에 성공한다. 귀엽고 발랄했던 소녀들이 1년 만에 섹시한 숙녀가 됐다. (한동윤)
이정현 '와'
'와' 무대의 모든 요소가 세기말의 도상이 됐다. 외눈 부채, 새끼손가락 마이크, 무협지에 나올법한의상과 사이버펑크 스타일링, '설마했던 니가 나를 떠나버렸어'와 거대한 비녀까지. 영화 < 꽃잎 >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신인배우 이정현은 '와' 이후 '바꿔', '줄래', '반'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IT 강국의 테크노 여전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충격과 파격이 절실했던 IMF 구제금융 시기의 일탈이자 상징적 인물이었다. 누군가 1999년의 가요계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이정현을 보게 하라. (김도헌)
김현정 '되돌아온 이별'
그때는 이래도 됐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적나라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뽕삘'이 선명한 선율을 고음으로 내질러도 괜찮았다. 오늘날 누구도 듣지 않는 메탈 기타 리프를 전면에 내질러도 됐다. 적어도 그때의 우리는, 이른바 '힙하고 독특한 것'을 찾아다니며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려 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감정이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김현정 음악엔 그 모든 솔직함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20년 전 카세트 노점 리어카의 스피커를 울려대던 이 곡이 아직도 사람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이유다. (조해람)
신화 'T.O.P (Twinkling Of Paradise)'
어릴 적, CD로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전주에서 클래식이 나와 고장이 난 줄 알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곡이더라.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소화하고 D.R.C(Dangerous, Risky, Chaos), D.O.P(Delight Of Passion) 등 풀이가 필요한 가사를 사용하는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수준 높은 무대를 제공한 덕분에 1990년대 말 아이돌 홍수 속에서 대중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그룹의 존폐를 두고 나온 2집 < T.O.P >가 그들을 '신화'로 만들었다. (임선희)
원타임(1TYM) '1TYM'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2019년만큼 힙합이 여러 경로로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다. 그럼에도 주류 신 곳곳에서는 힙합을 하거나, 힙합을 표방하거나, 힙합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식의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다. '1TYM'으로 등장한 원타임도 그 대종이었다. 국내 메인스트림에서의 힙합을 통시적으로 얘기한다면 우리는 이 곡을 당대의 사례 중 하나로 언급해야 한다. 이어 우리는 향배의 변곡점 중 하나로도 이 곡을 한 번 더 얘기해야 한다. '1TYM'을 통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원타임은 이어 힙합을 하는 그룹으로 오래 활동해낸 데다, 그룹의 중심이었던 테디는 한 레이블의 음악적 주축으로서 경력의 상당 기간을 보냈다. 또한 곡이 수록된 앨범이자 그룹의 데뷔작 < One Time For Your Mind >의 성공에 힘입어 YG는 블랙 뮤직 레이블로서 연이어 성과를 기록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향후 K-POP 산업의 주축이 되는 연예 기획사로서의 가능성을 점칠 수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1990년대 말, 당시의 음악 트렌드를 대표하면서도 미래의 산업 양태를 여러모로 잠재한 곡이었다. (이수호)
거리의 시인들 '빙(氷)'
한 편의 콩트다. 등굣길에 골목길의 깡패한테 돈을 뜯기는 학생의 시선, 학생을 갈취하는 깡패의 시선, 학교 주변을 순시하며 불량배들을 몰아내려는 원로 선생님의 시선을 섞어 시대상을 보여 준다. 교복 바지를 힙합 스타일로 크게 입는 패션의 유행, 학생 인권 신장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많은 학교에 확산된 체벌 금지 조치, 이를 악용하는 학생들 때문에 조심스러운 교사의 모습이 줄지어 나온다. 연기를 하는 듯한 세 멤버의 래핑 덕에 노래는 한층 사실적으로,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폴리티컬 힙합과 코미디 랩의 조화! 1999년에는 이런 힙합이 있었다. (한동윤)
스페이스 에이 '섹시한 남자'
원년 멤버가 해체되고 새로운 멤버로 다시 꾸려진 스페이스 에이의 앨범 < Maturation >의 타이틀곡이다. 당시 테크노가 유행하면서 리듬은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신시사이저를 사용해 중독성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 선 팀 중 하나가 스페이스 에이. 제목만 들으면 지금도 익숙한 후렴구가 떠오른다. 화려한 복장의 그들이 춤추고 노래할 때면 덩달아 춤추는 재미도 쏠쏠했다. 게다가 촌스러운 복고풍 사운드가 이렇게나 신날 일인가? 20년이 지난 지금, 테크노의 세계로 우리를 소환한다. (조지현)
크라잉넛 '서커스 매직 유랑단'
갓 스물을 넘긴 나의 각오는 단 하나였다. '학교는 안 가도 공연은 간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당시 내 사회학 교재는 홍대 클럽 문화였고 거기에는 제도권 하 규칙대로만 커온 내가 향유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녹아있었다. 그중 매달 빼놓지 않고 참여했던 게 바로 크라잉넛의 공연이었다. 그러면서 확신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들의 음악에는 '향수'가 '낭만'이 있다는 거였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크게 따라 부르기 좋을, 잘 불러도 못 불러도, 땀 흘리며 함께 할 수 있는 외침과 아코디언이 전해주는 멜랑꼴리함이 특유의 서정성을 뽐낸다. 벌써 발매 20년이 되었다니. 노래와 함께 흘러가는 삶이 세삼 꽤 근사하게 느껴진다. (박수진)
윤도현 '너를 보내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자주 부르곤 했다. 멜로디가 따라 부르기 쉬워서인 것도 있지만,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마냥 좋았었다. 연인의 사별이라는 비참한 주제는 절로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걸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한 가사로 풀어내어 더욱더 아련하게 다가온다. 세차게 힘을 가하는 강한 록 음향과는 대조적으로 여리고 부드럽게 자리한 비유 표현들도 슬픈 감성을 짙게 하는 포인트. 1994년 1집 수록곡이었던 이 노래를 1999년에 리메이크해 발매한 건 신의 한 수였다. 가장 사랑받는 윤도현의 노래 중 하나다. (이홍현)
박기영 '시작'
< 응답하라 1994 >에서 고아라가 이 곡을 부른 덕에 다시 박기영의 음악을 꺼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곡에 얽힌 일을 생각할 때면 마음이 복잡하다. 데뷔 초였던 박기영은 자신이 만든 곡을 내세우지 못하고 작곡가가 쓴 곡을 불러야 했다. 그래서 일본 밴드인 브릴리언트 그린의 'There will be love there'을 표절했다는 의혹은 고스란히 그가 받게 되었다. 이후 발매된 5집의 '나비'는 어린 나에게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매력을 알려준 소중한 곡이다. 박기영은 자신을 표절 논란에 휘둘리는 상태로 방치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작곡을 발표했고 또 좋은 곡을 만들어내며 성장했다. (정효범)
박정현 'P.S. I love you'
2011년도 방영한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자신의 곡 '꿈에'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능수능란하게 열창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워낙 충격적인 탓에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장면이다. 그런 그의 1집 < Piece >에 수록된 'P.S. I love you'는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또 다른 의미의 놀라움이다. 미묘하게 앳된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미 완성형으로 다듬어져 있는 특유의 소울틱한 보컬과 신비로운 감각. 정말 신인의 목소리가 맞는지 싶다. 그가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를 알 것 같다. (장준환)
유리상자 '신부에게'
'신부에게'를 발표하기 전부터 유리상자는 결혼식 축가 게스트로 유명했지만 이때는 주로 해바라기나 한동준의 노래를 불렀다. 1999년에 공개한 3집을 완성하기 직전에 박승화는 자신들의 노래로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세준과 음반사 대표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부랴부랴 노래를 만들어서 3집에 수록한 곡이 '신부에게'. 박승화가 멜로디를 만들고 이세준이 가사를 쓴 '신부에게'는 이렇게 소심한 욕심으로 탄생해 이제는 거룩한 결혼축가가 됐다. 서둘러 제작하느라 악기 구성이나 사운드 믹싱에 아쉬움이 있지만 20년이 흐른 현재 그 단점은 오히려 레트로 감성을 자극해 유통기한 없는 영생을 얻었다. 지난 5월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 불후의 명곡 >에 유리상자가 출연한 건 당연했다. (소승근)
이승철 '오직 너뿐인 나를'
지극히 대중지향적인 이승철은 이 무렵 록 밴드 출신과 흔히 연결되는 지르기(shouting)과 쥐어짜기(screeching)와 작별하고 부드럽게 부르기(crooning)에 집중한다. 2000년대 이후 그에게 전성기의 지속가능성을 선사한 '감성창법'이 1999년 라이브 베스트와 함께 엮은 6집에 수록된 이 곡으로 본격화했다. 힘을 빼고 충분히 참으면서 적절하게 흉성과 두성을 배합해 창조한 소프트 앤 멜로는 '보컬 극강'만의 필살기였다.
스스로도 얼마 전 한 TV프로에 나와 욕심을 버린 무심(無心)으로 터뜨린 대박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미국의 친구가 곡을 들려줬는데 너무 좋아 술 먹다 말고 집에 가서 밤새 가사를 써서 3일 만에 완성했다.” 나중 재미 작곡가로부터 표절소송을 당하는 곤란을 겪지만 음반 안에 표기한 '작곡가의 행방을 수소문해서 찾으려는 노력' 즉 의도적 저작권침해가 아닌 관계로 합의점을 찾았다. 좋은 곡에 집착하는 '욕심'과 내려놓고 노래하는 '무욕', 그 모순의 드라마틱했던 산물. (임진모)
김동률 & 이소은 '기적'
서동욱과의 전람회와 이적과의 카니발을 거쳐 솔로로 거듭난 김동률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노래. 당시 가수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이소은의 앳된 목소리와 김동률 특유의 저음이 조화를 이루는 아리따운 곡이다. 사랑과 믿음에 대한 동화 같은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결혼식 축가로서 애용되었으며 당시를 조명한 드라마 < 응답하라 1998 >에 삽입될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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