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올해의 팝 싱글

by IZM

2022.12.01



유난히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한 해다. 예상치 못 한 고지 점령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그리고 통쾌한 정상 탈환까지. 주연과 각본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반전의 반전을 이룩하던 1년간의 드라마는 어느덧 막을 내렸다. 그 크레딧을 천천히 살펴보며, 차트 내외곽에서 활약을 펼친 그 영광의 10곡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As it was'
새 출발 이후 곧바로 그룹 시절과의 단절을 완수한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As it was'로 완연한 대세에 올라섰다. 자국인 영국에서는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정상에서는 무려 15주 동안 군림하며 통산 4위의 기록을 세운 것. 심지어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기간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앨범 제목 < Harry's House >처럼 1위 자리를 마치 그의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비결은 '무자극'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부터 요즘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재료와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섞어,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깔끔한 수프 같은 곡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 놓인 기름기를 쫙 뺀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정겨운 맛을 내줬다. 정점을 찍은 인기와 물오른 실력이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만난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러니 연기로의 외도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한성현)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Bad habit'
강단 있는 알앤비 록스타가 승리를 쟁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SNS, 챌린지, 차트 줄 세우기, 밈, 방송 등 노래의 성공적인 대중화를 위해 각종 플랫폼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만을 좇는 '나쁜 습관'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일갈을 가한다.

소울 그룹 인터넷의 멤버로 시작해 켄드릭 라마 등 이름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 받아 2022년 정상에 올랐다. 오롯이 음악만을 생각한 뚝심의 결과. 트렌드의 부정을 역설(力說)했지만, 역설(逆說)적이게도 스티브 레이시는 스스로 유행의 최전선에 섰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도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 (임동엽)



원리퍼블릭(OneRepublic) 'I ain't worried'
초기 히트 공식을 반복한 작법에 따라붙은 자기복제 꼬리표, 그에 따른 평가 절하에도 걱정 따위는 없었다. 폭넓은 장르 도입 너머 보편적 송라이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원리퍼블릭의 정성이 다시금 결실을 거둔다. 놀라울 만큼 쉽고 선명하다. 부단한 담금질의 산물인 생생한 멜로디를 연료 삼아 'I ain't worried'는 37년 만에 개봉한 속편 < 탑 건 : 매버릭 >에 탑승해 스크린을 넘어 박스 오피스와 음악 차트 상공을 쾌속 비행했다.

원리퍼블릭의 '탑 건` 라이언 테더의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록 선율과 경쾌한 휘파람 사운드를 끌어온 샘플링 기법, 공간감을 연출한 편곡까지 엘리트 조종사의 날 선 감각이 올해 절정에 달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사운드트랙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흥 클래식 넘버. 찬사와 홀대를 양득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결정적 한 방을 터뜨렸다. (김성욱)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켄드릭 라마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다. 밥 딜런과 보노의 궤를 잇는 흑인 사회운동가는 < Good Kid, M.A.A.D City >(2012)와 < To Pimp A Butterfly >(2015), < Damn >(2017)의 명반 퍼레이드로 평단의 찬사를 독식했고 랩 뮤직의 시초격인 소울 뮤지션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퍼블릭 에너미가 주도했던 폴리티컬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파급력을 다시금 공고하게 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의 프로모션 싱글 'The heart part 5'는 자전적 특성을 담은 'The heart' 시리즈의 5번째 순서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식이 강했던 선배 가수 마빈 게이의 1976년 작 'I want you'를 샘플링해 재즈와 펑크(Funk)적 색채가 다분하며 반복적인 리듬 아래 선언문과도 같은 언어를 채웠다. 분노와 일갈을 억누른 랩은 냉소적 시선을 견지해 더욱 날카롭고 성찰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공동체를 위해 힘썼던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과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OJ Simpson),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윌 스미스 등 6인의 표상으로 흑인의 삶을 아울렀고 갱 문화를 비롯한 흑인 사회의 그릇된 방향성에 사랑만이 해결법(I want you)임을 제시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Vegas'
도자 캣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여러 히트곡을 배출한 2021년 < Planet Her >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아티스트는 영화 < 엘비스 >의 부름을 받아 입지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라간 'Vegas'는 전쟁터 같은 힙합 세계에서 도자 캣이 이제 슈퍼 루키를 넘어 독보적인 주연에 등극했음을 알린다.

전기 영화다 보니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의 사용은 키워드만 보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Hound dog'의 원곡자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 역을 맡은 숀카 두쿠레(Shonka Dukureh)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영민한 비트와 후렴이 일말의 괴리감을 메꾼다. 시대와 인종의 장벽을 넘은 무대 위, 매서운 전달력과 흥겨운 싱잉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래퍼의 실력도 역시 굳건하다. 복고 추세로도 모자라 옛 명곡의 적극적인 차용이 주류로 올라선 오늘날의 흐름 가운데 특히 빛나는 곡이다. (한성현)



덴젤 커리(Denzel Curry) 'Walkin'
덴젤 커리가 2023 그래미 어워드 힙합 부문 후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음반을 포함해 올 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들을 명단에서 제외한 데에 불만을 토로한 것. 어리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Ta13oo >(2018), < Zuu >(2019) 등의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로 제이 콜, 켄드릭 라마 이후의 컨셔스 래퍼 선두 주자 타이틀을 노리는 그가 이번엔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로 제대로 역량을 터뜨렸다.

그 중 'Walkin'은 단연 베스트 트랙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가사에 담아 역설적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고발한다. 정통 붐뱁에서 하이햇과 함께 트랩으로 변주하는 사운드, 그에 맞춰 플로우를 바꾸는 랩은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 일말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The heart part 5'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자극을 주며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도약을 만들어냈다. 덴젤의 'Walkin'이 올해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 (백종권)



푸샤 티(Pusha T) 'Diet coke'
드레이크는 앨범을 (훨씬) 더 많이 팔았다. 릴 베이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다. 2022년 현재 힙합 신에서 푸샤 티보다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래퍼는 많다. 그러나 'Diet coke'에서 그의 랩을 듣는다면, 선정을 납득할 것이다.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승리다. 노래는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태도와 모든 음악적 특징을 압축한다. 맹수처럼 사나운 랩, 랩에 집중할 여유를 넉넉히 주는 반복되는 비트, 마약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텍스트까지. 프로듀서 에이티에잇 키스(88-keys)가 18년 전 만들어 카니예 웨스트와 새로 손본 비트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자아내고 여기서 래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축소, 경량화, 단발성이 득세한 힙합 신에서 이런 묵직하고 정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이게 기록이나 수치적 성적을 떠나, 푸샤 티가 항상 승리하는 이유다. (이홍현)



리조(Lizzo) 'About damn time'
여성을 대표한 뮤지션은 많다.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줄곧 여성의 섹스(욕구)를 거침없이 발화 하고 레이디 가가는 '태어난 대로 살자'며 'Born this way'를 열창, 여성을 넘어 소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등의 음악가는 자신의 '바디'를 음악적 어필 포인트로, 서슴없이 자기 과시를 행하는 중이다.

리조 역시 여성을 대표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주목,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이끈다. 그를 이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앨범 < Cuz I Love You >가 그랬듯 이 곡도 몸의 두께와 상관없이 '음악은 키우고 조명은 낮추며' 신나게 즐기자고 말한다. 1980년대 펑크/디스코 사운드를 골자로 트레이드 마크인 플루트 선율을 담은 점 또한 과거와 맥을 맞춘다. 이 연속성이 반복됨에도 올해 팝은 또다시 리조로 집약이다. 왜? 곡이 가진 독보적이고 힘 있는 메시지 덕분. 시대가 변하지 않는 한 그의 바디 찬가는 계속해서 시대를 대표할 것이다. (박수진)



수단 아카이브(Sudan Archives) 'Selfish soul'
기록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행위다. 이 뜻깊은 작업을 활동명에 새겨 넣은 뮤지션 수단 아카이브는 방대한 음악 자료 수집을 통해 깨우친 가치를 단 2분 22초 안에 압축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로 맥이 뛰기 시작한 트랙은 소울 가득한 목소리, 가스펠 풍의 백 보컬, 그리고 박수 소리에 맞춰 그 박동을 빠르게 이어가고 이내 북동 아프리카의 바이올린과 조우하며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말미에는 짧은 랩까지 가미해 투철한 실험 정신과 장르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두루 발휘한다.

흑인 음악을 집대성한 만큼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투영한다.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을 소재로 풀어낸 노랫말은 그 형태와 색깔, 질감으로 다양성 존중을 피력하고, 흑인 여성들과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수단 아카이브는 몸소 삭발과 핑크색 가발 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흥미로운 '내용',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조', 여기에 사회를 관통하는 '맥락'까지. 기록의 3요소를 완벽히 충족한 현대식 민족음악 아래 새로운 무도회의 여왕이 탄생했다. (정다열)



엔칸토(Encanto) 'We don't talk about Bruno'
대중, 시장, 평단의 예상 밖 일치된 환대였다. 차차차 리듬을 내건 살사 음악은 친숙해서 신선하지 않고 가볍게 흘러 평가대상에서 밀려날 듯했다. 실제로 영화 OST를 쓴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딴 곡을 제시했을 만큼 이 곡은 주변의 비핵심 트랙으로 간주되었다. 가수들도 영화 캐릭터의 보이스를 맡은 생소한 인물들이어서 대표곡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고 왠지 여럿이 합창하는 곡에 승부를 걸지 않는 디즈니의 규범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대중들은 이 야유적 어투의 쾌활한 아우성에 적극적 갈채를 건네면서 명곡은 범람했어도 디즈니에게 부재했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란 나름의 영예를 안겼다. 무려 5주간 1위였다. (영국은 7주간) 진부할 수 있는 떼창은 오랜만에 접하는 완벽한 앙상블로 해석되어 코로나 시대에 갈구된 가족가치를 일깨우며 선전했다. 유머의 기민성, 가족 모두를 비추는 공평과 다양성, 굿 바이브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미스터리 터치가 어우러진 한편의 완벽 크로스오버! 2022년을 사랑스럽게 했다. (임진모)

이미지 편집: 정수민,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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