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이 선정한 최고 가수 1~10위
이즘이 선정한 우리 시대의 최고 가수 20인을 공개한다. 이 조사에는 이즘의 전현직 필자, 외부 기고가 등 총 39명이 참여했다. 1960년대 이후, 국내 대중음악계에 영향을 미친 가수로 범위를 한정하여 총 42명의 가수를 선별했다. 그중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 가수 10명을 선정한 뒤, 이를 합산하여 1위부터 2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이번 회차에서는 10위부터 1위까지, 총 10명의 가수를 공개한다.
10위. 임재범(16표)
임재범은 1986년, 국내 록/메탈 역사에 획을 그은 밴드 시나위의 데뷔앨범 < Heavy Metal Sinawe >로 처음 등장했다. 풍부한 성량, 굵고 거친 음색을 가진 임재범은 헤비메탈 보컬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임재범은 메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목소리도 곡에 맞게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그는 솔로 1집의 히트곡이자 리드미컬한 팝 '이 밤이 지나면'에서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스타일을 선보였고, 많은 이들의 노래방 애창곡인 '고해'에서는 애절한 절규와도 같은 창법을 들려주었다. 장준환 편집장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허스키 보이스. 삶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특출난 깊이감과 표현력. 시간이라는 물감을 붓칠할 때마다 본인만의 팔레트를 더욱 완벽하게 갖춰나가는 시대의 야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공동 8위. 박정현, 이승철(17표)
넓은 음역대와 풍부한 성량, 예쁜 음색과 기교 등 청자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을 만한 여러 강점으로 무장한 박정현은 시작부터 비범했다. 1998년, 첫 앨범을 발매한 그는 'P.S. I love you'와 '나의 하루'의 히트로 이름을 알렸고, 4집 수록곡이자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대곡 '꿈에'로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드러내 대중음악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2011년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 나는 가수다 >에 출연해 어떤 곡이든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여 전성기를 열었다. 임진모는 “점, 선, 색깔, 여백. R&B 유화를 그리는 노래 화가”라고 평했다.
이승철은 1986년, 부활의 보컬로 데뷔해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이름을 알렸다. 부활 탈퇴 후에는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필두로 솔로 가수로서도 승승장구했다. 2002년, 부활과 일시적으로 재결합해 발표한 'Never ending story'는 지금까지도 부활과 이승철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으로 남았다. 김도헌은 “자연스러운 천재적 재능으로 장르를 아우른 가왕자”, 윤영훈 교수는 “기교가 아닌 보컬 그 자체의 최고수”라고 평했다. 아무리 높은 음역에서도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오기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서정적인 표현이 뛰어나다는 점이 이승철의 보컬 특징이다. 2010년대를 풍미한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스타K >에서는 심사위원으로 꾸준히 출연해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공동 6위. 김건모, 이소라(18표)
김건모는 1990년대의 가요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숱하게 회자된다. 김호현은 “마지막 국민가수”, 장준환 편집장은 “어떤 곡이든 자신의 것으로 가볍게 소화해 버리는 시원한 음역, 익살맞은 퍼포먼스, 남녀노소 편하게 듣기 좋은 음감”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건모는 1992년에 데뷔앨범을 발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와 '첫 인상'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레게 리듬의 '핑계'로 총 15회의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쥔 뒤, 한국 대중음악계 명반으로 남은 3집을 발표하며 국민가수의 길을 걸었다. 김건모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것 또한 주저하지 않았고, 특유의 음색으로 그것들을 문제없이 소화했다. 빠른 호흡의 댄스 '잘못된 만남', 애절한 발라드 '미안해요', 끈적한 블루스 '서울의 달' 등 다양함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김건모에게 국민가수라는 칭호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재즈그룹 낯선 사람들의 보컬이었던 이소라는 영화 < 그대 안의 블루 >에 삽입된 동명의 OST로 이름을 알렸다. 1995년, 데뷔앨범을 발매해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소라는 '난 행복해', '제발', '청혼' 등의 명곡을 남겼다. 비음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공명하면서도 커다란 울림을 내는 창법으로 장르를 넘나들면서 감정을 전달한다. 정민재는 “포크와 발라드, 재즈와 록을 유려하게 소화한 특유의 감수성. 풍부한 발성과 개성파 음색. 뛰어난 전달력과 문학적 노랫말로 고품격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고 평했다. '바람이 분다'와 같은 곡은 이소라의 서정적인 작사와 특유의 보컬이 절묘한 합을 이루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배순탁은 “슬픔과 우울의 정서야말로 이소라 보컬의 핵심 키워드다. 동시에 용감한 가수이기도 하다. 비극의 한복판에 우뚝 선 채, 감정적으로 발가벗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목소리로 압도적인 설득력을 길어 올렸다”고 평했다.
5위. 아이유(19표)
2008년, 16살의 나이에 발라드곡 '미아'로 데뷔한 아이유는 '잔소리'와 '좋은 날'의 히트를 기점으로 승승장구하며 세대를 막론하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현역 만능 엔터테이너 자리에 올랐다. 이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좋은 날' 시기의 그는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돌이었으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런 수식어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멋진 싱어송라이터로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시작부터 기본이 탄탄했던 그의 보컬은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 준 풍부한 표현력으로 더욱 다채로워졌다. 옛 명곡을 리메이크한 앨범 < 꽃갈피 >는 기성세대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임동엽은 “진정한 케이팝의 대표주자”, 김진성은 “21세기의 케이팝은 물론, 문화콘텐츠의 아이콘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4위. 나훈아(20표)
1966년에 데뷔한 나훈아는 1970년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해 트로트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중후한 저음을 기본 바탕으로 두고 꺾기를 통해 고음을 깔끔하게 오가는 창법으로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 그는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겸비해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을 선보였다. 그의 음악은 주로 슬픔과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그리운 고향을 표현한 '고향역',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존재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잡초',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노래하는 '고장난 벽시계' 등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으며 어머니를 주제로 한 '홍시', '어매', '모정의 세월' 등은 수많은 아들딸을 눈물짓게 했다. '무시로'는 이별을 겪은 뒤 극복하는 과정의 슬픔을 섬세하게 그렸다. 시대의 공감대를 포착하는 그의 시선은 2020년대에도 유효했다.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삭막해진 세상을 비탄하는 '테스형!'은 젊은 층에도 큰 관심을 받으며 그 해의 유행어 중 하나로 자리하기도 했다. 정성하는 “트로트고고의 역사. 로커의 트로트”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3위. 김광석(21표)
'가객' 김광석은 1984년, 대학 선배이자 싱어송라이터 김민기의 음반 작업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을 거쳐 솔로 포크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다. 김광석은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삶을 관통하는 노랫말로 대중의 가슴을 울렸다. 소승근 대표는 “김광석의 보컬에는 우리의 삶이 담겨 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광석 창법의 가장 큰 특징은 떨리는 목소리에 있다. 정석적으로 다듬어진 보컬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투박함이 서정성과 호소력을 만들었다. 신혜림은 “세상을 떠난 지 27년이 지났어도 대체할 수 없는 목소리”, 정유나는 “김광석의 노래 한 곡으로 인생의 중요하고 특별한 순간을 공감한다. 세대와 시간을 벗어난 감정 역대를 축조했다”고 평했다.
2위. 이미자(23표)
김호현은 “한국 트로트의 가장 강력한 패러다임”, 김도헌은 “한국 현대사를 담아낸 순수한 목소리”라고 평했다. 1959년, '열아홉 순정'을 시작으로 가수 인생을 걷기 시작한 이미자는 트로트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왔다.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열아홉 순정' 등 전부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인기몰이했던 이미자의 명곡들은 가사 내용이 음울해 경제발전에 저해되고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의 생각은 달랐다. 순수하면서도 한이 담긴 그의 아름다운 미성은 싸우면서 개발하던 당시 사회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을 달래주었다. 대중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는 목소리로 노래해 온 그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 김진성은 “이미자의 진솔한 가창은 시대를 초월해 심금을 울린다”고 평했다.
1위. 조용필(35표)
올해로 데뷔 55주년을 맞이한 조용필은 스무 번째 앨범 발매를 앞두고 지난 5월, < 2023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 콘서트를 성황리에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박효재는 “소리의 탐구자, 그의 여정이 곧 한국음악 역사의 단면”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고, 손기호는 “오래도록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매 순간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얻어낸 가왕”이라고 평했다. 데뷔 초만 해도 미성의 목소리를 지녔던 그는 판소리에 매료된 이후로 탁성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속적인 개선과 발전을 거듭하며 독보적인 보컬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그의 음악적 탐구는 창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데뷔앨범부터 발라드, 록, 민요 등 다양한 장르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담아내는 비범함을 보였으며, 2013년에 발매한 19집의 'Bounce'는 당시 트렌드를 포착해 새로운 세대에게도 어필하는 데에 성공했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긴 세월이 합쳐져 만들어진 '가왕' 조용필에게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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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순) (총 39명)
김도헌, 김두완, 김반야, 김성욱, 김진성, 김태훈, 김호현, 박수진, 박효재, 배순탁, 백종권, 성원호, 소승근 대표, 손기호, 손민현, 신현태, 신혜림, 여인협, 염동교, 윤영훈, 이기찬, 이대화, 이승원, 이홍현, 임동엽, 임선희, 임진모, 장준환 편집장, 정다열, 정민재, 정성하, 정연경, 정유나, 정효범, 조아름, 조지현, 한성현, 황선업, 홍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