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이 선정한 최고 가수 11~20위
이즘이 선정한 우리 시대의 최고 가수 20인을 공개한다. 이 조사에는 이즘의 전현직 필자, 외부 기고가 등 총 39명이 참여했다. 1960년대 이후, 국내 대중음악계에 영향을 미친 가수로 범위를 한정하여 총 42명의 가수를 선별했다. 그중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 가수 10명을 선정한 뒤, 이를 합산하여 1위부터 2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이번 회차에서는 20위부터 11위까지, 공동 순위 포함 총 13명의 가수를 공개한다.
공동 20위. 김범수, 박효신, 심수봉, 최백호 (7표)
21세기 국내 최고의 보컬을 뽑을 때, 김범수의 이름을 첫손에 뽑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보컬의 교과서'라는 표현이 쓰일 만큼 빈틈없는 기본기로 무장한 그의 보컬은 주 활동 무대인 발라드뿐 아니라 록, 알앤비 등 어떤 장르에서도 소구력을 잃지 않는 소화력을 보여주며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스며들었다. '보고 싶다', '끝사랑' 등 본인 곡뿐만 아니라 서바이벌 프로그램 < 나는 가수다 > 출연과 다양한 OST 활동까지, “김범수의 목소리로 드라마를!”라는 박수진의 평만큼 대단한 범위의 표현력이다. 대중음악에서 보컬의 중요성을 재차 역설하게 만든 상징적인 보컬리스트.
지금 우리 시대에, 이토록 예술적 성취와 보컬리스트로서 입지를 모두 획득한 가수가 또 있을까. 현대 팝 발라드의 예술적 절정에 도달한 < I Am A Dreamer > 등 탁월한 작업물은 물론, “가창력의 한계를 초월한 노래의 신”이라는 성원호의 평처럼 압도적인 보컬 역량까지 고루 놀랍다. 박효신이라는 인물은 그 독보적인 위업, 수려한 목소리로 남성 보컬의 상징이자 영원한 워너비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소몰이 창법'으로 대표되는 초기 알앤비와 아름다운 읊조림으로 변모한 후기 팝 발라드 두 장르를 오가며 거둔 기록이라는 점은 가히 경탄스럽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현재 진행형의 전설. 박효신이 가는 길이 곧 새로운 길이다.
트로트와 발라드의 시대, 대중음악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가 된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심수봉의 보컬은 여러모로 양가적이다. 힘을 뺀 듯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무르지 않고(조해람 평), 좀처럼 흉내 내기 힘든 독보적 음색에도 전통적인 애수가 느껴지며, 대단히 한국적인 동시에 이국적인 엘레지를 흘린다(윤영훈 평).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 등 대중음악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기억될 유수의 히트곡과 함께 대중에게도 깊게 스며든 그의 애절하고 세련된 목소리는 마치 구전동화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 녹슬지 않는 영원성으로 우리 곁을 맴돌 것이다.
시대가 흘러도 그 가치가 변치 않는 이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등장, 2022년 정규 앨범 < 찰나 (刹那) >로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최백호의 목소리는 아직도 그 위력을 건재히 드러내고 있다. 얼굴과 음성 모두에 드러나는 투박하고 쓸쓸한 감수성(윤영훈 평), 특유의 짙은 남성성을 견지한 힘 있는 창법은 대표곡 '낭만을 대하여'의 설득력과 함께 젊은 세대의 감성에까지 도달했고, 성인 가요의 상징적 존재로 등극했다.
19위. 양희은 (8표)
김민기의 민중가요 전도사로 1970년대 저항 문화의 상징이 되었으며, 스스로 포크송의 대모로 거듭난 전설(김진성 평) 양희은의 '고운' 목소리에는 '묵직한' 힘이 있다. 흐르는 시간과 떠내려가는 감정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전달하는 위력이다. “민중, 자신 국민을 보듬을 유일한 아티스트”라는 성원호의 평처럼 그의 맑고 아름다우며 동화 같은 음색은 시대의 상징적인 목소리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전달력, 질감으로도 여전히 대중의 마음을 강하게 동요시킨다. 조회수 5천만 회를 달성한 TV 프로그램 < 판타스틱 듀오 >에서 이수현과 함께한 '엄마가 딸에게' 무대의 감동이 그 대표적 사례다.
공동 17위. 배호, 신승훈 (9표)
“최고의 가수는 마땅히 시대를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정효범 평).” 그런 의미에서 '시대의 설움을 중후한 목소리로 위로한 신사(정효범 평)' 배호는 단연 최고의 가수가 아닐 수 없다. 묵직하고 중후한 저음과 애처로운 고음, 드라마틱한 연출력이 함께하는 그의 보컬은 1960년대 우리의 시대적 고난, 설움을 달랬고 듣는 이들은 그 강한 울림에 기대어 쉬곤 했다.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등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 속 짙게 익은 슬픔의 정서로 대중의 영혼을 울린, 안개 속에 가버렸기에 더욱 아쉬운 국내 성인 가요 속 가장 빛나는 편린이다.
칭호만으로 그 위대함이 전달된다.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흔들림 없는 가창력, 세련된 미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발라드의 황금기를 오랫동안 이끈 그의 보컬을 1990년대 대중음악의 목소리라고 표현함에도 어색함이 없다. 더불어 '미소 속의 비친 그대', '그 후로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사랑' 등 그 수많은 명곡을 직접 빚어내기까지. 김진성의 평대로, 1990년대 가장 많은 1위 곡을 작곡한 타이틀은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16위. 송창식 (10표)
상투적인 표현이나, 송창식은 진정 그의 목소리를 '가지고 노는' 가수다. 1970년대 국내 포크를 주름잡은 압도적인 성량, 여유로운 창법, 테크닉과 호방한 무대 매너는 그 시대 대중을 완벽히 매료했다. 박효재는 그의 업적에 “한국적 보컬의 시작”이라는 평과 함께 “우리 언어에 음악성을 입혔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한 발치 넓힌 그의 위대한 음악 세계, 그 '전달자'로서의 능력에 감탄이 나온다.
15위. 이선희 (11표)
청아함이란 표현이 이보다 어울리는 가수가 있었는가. 'J에게', '나 항상 그대를' 등 수많은 히트곡과 함께 걸출한 가창력으로 '국민 가수' 타이틀까지 얻어낸 이선희는 보컬리스트로서 수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된 인물이다. 단순 성량과 음색뿐만 아니라 데뷔 후 수십 년 후에도 이를 변함없이 유지하는 빈틈 없는 자기 관리 역시 대표적이다. 조해람은 그에 대해 “목소리의 밀도에서는 따라올 가수가 없는 것 같다”며 “불순물 없는 청아함과 시원한 고음까지 완벽”한 가수하고 평했다.
공동 13위. 나얼, 전인권 (12표)
종종 오랜 탐구는 사람을 어떤 경지에 올려놓고는 한다. 국적을 의심케 만드는 알앤비 보컬의 최강자(손민현 평), 국내 알앤비의 심장 나얼은 압도적인 재능과 심도 깊은 탐구를 통해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오랜 기간에도 청명함을 잃지 않는 음색과 경이로운 기교로 광활한 음역대를 오가는 가창력은 어떤 명가수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으며, 조금의 손색도 찾아볼 수 없다. 브라운 아이즈, 브라운 아이드 소울, 솔로 활동을 오가며 흑인음악의 입지를 발전시킨 위인. 이런 인물이 국내 알앤비와 소울 음악을 견인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다행일 따름이다.
한국의 비틀스, 전설적인 밴드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은 그 위대한 음악만큼이나 목소리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거친 전진성과 저항성, 당대의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독특한 외침은 '시대의 비명'으로써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선사했고, 우리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탁성의 애절함과 고고함을 담은 유일무이한 목소리, 찢어짐을 가감 없이 터트리는 가수(조해람 평) 전인권은 수십 년이 지나도 독보적인 위치에 뚜렷이 서 있을 것이다.
12위. 김현식 (13표)
우리가 김현식의 음악에 감동하는 이유는 그 목소리에 짧지만 굴곡진 삶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데뷔 초의 미성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거친 절규까지, 가객의 아름다운 곡조는 언제나 흐르는 비처럼 너무도 아프게 듣는 이를 흠뻑 적셨다. 비틀거리는 아픔을 간직한 청춘의 모습을 닮은(정유나 평), 대중음악의 과도기를 소나기처럼 지나간 전설. 정민재는 “어떤 노래든 '김현식화'했던 독보적 목소리”라 평했고, 박효재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의 본능적 소리꾼”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11위. 패티김 (14표)
대한민국의 전통적 상징성을 위시한 이미자의 반대편에는 서구적 세련미를 강조한 패티김이 있었다. 미국식 팝을 기반으로 한 화려한 무대 매너와 가창력으로 그는 가요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당대 음악계를 강하게 매료했다. 일찍이 팝을 시도한 만큼 대중과 멀어질 수도 있었지만 '서울의 찬가',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 유수의 히트곡과 함께 팝 보컬의 선구자 패티김은 그 시절 대중의 곁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뛰어난 자기 관리를 통해 지금도 그 가창력과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위대한 보컬리스트, 그가 있기에 지금 우리나라의 팝이 우뚝 서 있다.
글/사진: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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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순) (총 39명)
김도헌, 김두완, 김반야, 김성욱, 김진성, 김태훈, 김호현, 박수진, 박효재, 배순탁, 백종권, 성원호, 소승근 대표, 손기호, 손민현, 신현태, 신혜림, 여인협, 염동교, 윤영훈, 이기찬, 이대화, 이승원, 이홍현, 임동엽, 임선희, 임진모, 장준환 편집장, 정다열, 정민재, 정성하, 정연경, 정유나, 정효범, 조아름, 조지현, 한성현, 황선업, 홍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