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탄생 50주년 기념] 힙합을 빛낸 래퍼들 / 1부

by IZM

2023.10.01


1973년 뉴욕시의 브롱크스 남부에서 반세기 대중음악사를 책임질 사운드가 태어났다. 파티에서 사람들이 춤을 더 오래 출수 있도록 고민한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가 음악이 멈추지 않도록 두 개의 턴테이블을 이용해 드럼 브레이크를 믹스한 것. 무릇 위대한 발명이 그렇듯 쿨 허크의 혁신적인 시도는 당초의 의도보다 더 큰 파급을 이루며 거리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비보이(B-boy)와 비걸(B-girl)들은 새롭게 탄생한 리듬에 맞춰 춤을 췄고, MC들은 마이크를 잡아 흥을 돋웠다.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힙합의 탄생이었다.

파티의 호스트 역할을 했던 MC들은 나름의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더 사람들을 열광시키는가. 미사여구에 불과했던 그들의 단어는 자연스럽게 각운과 운율을 가지면서 랩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래퍼의 등장이었다. 이들은 새 문화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는 흥을 돋우는 데 충실했고 어떤 이는 자신의 이야기로 위로와 공감을 샀으며 다른 이는 정치와 세태를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또한 몇몇은 신선함을 갈구하며 다른 장르와의 융합으로 힙합을 확장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2023년, 힙합 50주년을 기념해 IZM에서 대중음악사에 위대한 금자탑을 쌓아 올린, 그리고 오늘날 새 시대를 견인하는 위대한 래퍼들을 소개한다. 힙합에 입문하려는 이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고 자신이 애호가라면 다시금 지난 시간을 훑을 수 있는 타임라인이 될 것이다.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를 다루기 위해 솔로와 팀 단위를 고루 골랐음을 먼저 밝힌다. 명단은 시대순으로 나열하며, 총 3부에 걸쳐 업로드 할 예정이다. 첫 번째 편은 힙합의 토대를 닦고 기반을 마련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백종권)



슈가힐 갱(The Sugarhill Gang)
시작, 효시, 최초. 빌보드 싱글 차트에 랩이 첫 고개를 내민 최초는 중요하나 “시작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아주 먼 과거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1979년 겨울, 차트에서 괴이한 'Rapper's delight'가 순위를 높이고 있을 때(36위) 다수는 래퍼의 뜻을 몰라 사전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노래 시작부터 힙합이란 용어를 들먹인다. 흑인의 거리 음악인데 딜라이트? 그렇게 명명한 역설부터 'Good times'의 쉭(Chic)이 뛰던 디스코 시대임을 알려준다(실제로 리듬 트랙은 여기서 차용했다). 가벼운 미학적 범죄가 무거운 역사를 생산했다. 미래의 예측 가능성 제로는 예술 부문의 특권이다. 세 명의 MC들도, 노래에 반응한 대중들도 그게 새로운 장르의 창대한 스타트임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새 시대가 열렸다. (임진모)

추천곡: 'Rapper's delight', '8th wonder'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
랩은 파티 음악에서 어떻게 힙합이 되어 사회의 병폐를 찌르기 시작했을까. 그 질문의 답변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에게 있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는 디제이로서 여러 디제잉 스킬을 만들고 발전시켜 턴테이블리즘의 개념을 정착시켰다. 그는 퓨리어스 파이브라고 묶어서 부르게 되는 멜리 멜, 스콜피오, 키프 카우보이, 키드 크레올, 라힘, 총 다섯 아티스트와 함께 팀을 결성했다. 키프 카우보이는 군 입대를 앞둔 친구의 앞에서 병사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다 '힙합'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이를 전파시켰다. 멜리 멜은 1982년, 'The message'를 주도적으로 제작했다. 즐거운 파티 음악이 아닌, 흑인 빈민가의 삶을 낱낱이 고발하고 비탄하는 이른바 '컨셔스 랩'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들의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The message' 만큼은 힙합이 파티장 문을 박차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다는 메세지 그 자체로써 널리 퍼져나갔다. (김태훈)

추천곡: 'The message'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
작금의 랩 뮤직 팬들에게 생경할 수 있는 커티스 블로우는 힙합과 펑크(Funk)를 멋들어지게 교배한 래퍼 겸 비보이, 디제이다. 슈가힐 갱의 'Rapper's delight'와 마찬가지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초기 힙합 싱글 'Christmas rappin''의 주인공인 그는 1980년 싱글 'The breaks'로 장르 선구자의 지위를 굳혔다. 높은 에너지 레벨로 구현한 농구에 대한 헌사 'Basketball'과 당대 미국 사회상을 담은 1985년 작 'America'도 커티스 블로우의 경력을 수놓은 대표작들이다. 'The breaks'가 수록된 1980년 데뷔 앨범 < Kurtis Blow >은 힙합이 자리 잡기 이전 랩 뮤직과 펑크, 디스코 마니아를 두루 만족시켰다. 지금 들으면 투박할 수 있는 랩을 리드미컬한 기타 연주와 둔탁하나 감칠맛 나는 비트 등 다양한 편곡 장치로 방어했고, 바크만 터너 오버드라이브의 랜디 바크만이 쓴 'Takin' care of business' 속 록 질감도 다채롭다. 이후 발매작들은 < Kurtis Blow >만한 성과는 못 거뒀으나 초기 랩 뮤직 공신이자 펑크와 힙합 사이 교두보로서의 위상은 굳건하다. (염동교)

추천곡: 'The breaks', 'Throughout your years', 'America'



런 디엠씨(Run-DMC)
언더그라운드 전형인 랩 힙합이 빌보드 톱 10으로 솟아난다는 사실을 음악 인구는 믿지 않았지만 런 디엠씨는 그걸 현실화했다. 록 밴드 에어로스미스와 함께 한 'Walk this way'는 게다가 골드라는 판매 대박이었다. 한국에서도 최초 유입 랩 주체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지만 미디어에 처음 소개된 랩은 1987년 KBS TV < 쇼 비디오자키 >의 '시커먼스'란 코너의 시작을 알린 'You be illin''으로, 런 디엠씨의 곡이었다. 상기한 두 곡 모두 명반으로 살아있는 당대 앨범 < Raising Hell >에 수록되어 있다. 랩과 록이란 흑백 청춘 음악이 동지적 관계를 깔고 감행한 크로스오버도 대중적 차원의 효시였다. 서태지도 글로벌 사정권에 들었다. 힙합의 올드-스쿨이지만 당시론 뉴-스쿨의 선구! 끈질기게 켜져 있는 무결함 발광 다이오드처럼 그들의 음악 전류는 영구히 흐른다. (임진모)

추천곡: 'King of rock', 'It's tricky', 'Walk this way'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1981년 뉴욕에서 결성된 펑크록 밴드 비스티 보이즈는 1980년대 중반에 쇠사슬과 찢어진 티를 버리고 중절모와 금목걸이를 장착한 랩 그룹으로 변신했다. 이 변화는 펑크록과 랩의 사상적 뿌리가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을 증명한다. 기존체제에 대한 불만,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등 젊은이들의 저항을 담보한 펑크록과 힙합의 교집합을 접목한 세 명의 유대계 미국인들은 데프 잼 레이블과 계약하고 1986년에 데뷔앨범 < Licensed To Ill >을 발표했다. 음반은 랩 앨범으론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른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와 쓰래시 메탈 그룹 슬레이어의 기타리스트 케리 킹이 참여한 'No sleep till Brooklyn'은 런 디엠씨가 처음 시도한 힙합과 록의 동행을 확대, 확장했다. 비스티 보이즈는 이미 1980년대에 흑인이 아니어도 힙합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소승근)

추천곡: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 'No sleep till Brooklyn', 'Brass monkey', 'Sabotage'



엘엘 쿨 제이(LL Cool J)
'Ladies Love Cool James(여자들은 멋진 제임스를 사랑한다)'는 문장에서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을 조합한 예명 엘엘 쿨 제이로 활동한 제임스 토드 스미스는 지난 40년 동안 힙합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귀여운 얼굴과 근육질 몸으로 여성들의 주목을 끌었고 관능적이면서 반항적인 가사는 남성들로부터 지지를 얻었으며 텔레비전 시트콤과 영화에도 출연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자선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대중의 신망까지 얻었으니 미국인에겐 국민 래퍼인 셈이다. 초기에는 같은 뉴욕 출신인 런 디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파티 랩과 외설 랩의 절충점을 잘 포착해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힙합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제임스 토드 스미스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소승근)

추천곡: 'I can't live my radio', 'I need love', 'Jingling baby', 'Around the way girl', 'Mama said knock you out'



솔트 앤 페파(Salt-N-Pepa)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3인조 랩 그룹 솔트 앤 페파는 동시대 걸그룹들과 달리 멤버 전원이 래퍼다. 여성을 비하하고 얕보는 남성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리며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힙합의 밑그림을 설계한 이들은 당시 동종 업계 라이벌인 제이제이 패드(J.J. Fad)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빠르게 입지를 다졌다.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직설적인 가사와 파격적인 안무를 통해 1990년대까지 롱런한 솔트 앤 페파는 'Push it', 'Let's talk about sex'처럼 도발적이고 낯 뜨거운 제목을 타이틀로 내걸었을 뿐만 아니라 공연에서는 여성 디제이와 남성 백댄서를 등장시켜 행동하는 페미니스트임을 증명했다. 솔트 앤 페파가 뿌린 여성 힙합의 씨앗은 이후 등장한 퀸 라티파, 릴 킴, TLC, 스파이스 걸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을 포함해 현재의 니키 미나즈, 매간 더 스탈리온, 리틀 심즈 같은 여성 래퍼들에게도 그 소구력을 미친다. (소승근)

추천곡: 'Push it', 'Let's talk about sex', 'Shoop', 'Whatta man'



아이스 티(Ice-T)
최초로 갱스터 랩을 구사한 래퍼는 스쿨리 디(Schoolly D)이다. 지금은 만연하게 사용하는 엔워드(N-word)를 'P.S.K. what does it mean?'이라는 곡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추정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역시 힙합 역사에 마땅히 이름을 올려야 하지만 스쿨리 디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갱스터 랩을 주류로 끌어올린 이의 대표 격은 아이스 티다. 그의 데뷔 앨범 < Rhyme Pays >는 당시 양극화의 극심화로 인해 범죄가 들끓었던 빈민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해당 앨범의 수록곡 '6 'N the mornin'은 성적인 어감으로 현재까지 힙합 문화의 관용구처럼 쓰이기도 하며 후대에는 디제이 폴(DJ Paul)과 쥬시 제이(Juicy J)로 구성된 쓰리 식스 마피아(Three 6 Mafia)가 '3-6 in the mornin'에 이를 샘플링해 그의 영향력을 다시 입증했다. 아이스 티는 나중에 영화배우로서 자리 잡으며 그의 과거 갱스터 일원으로서의 행적과 지나치게 비하적인 가사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지만 힙합 문화에 있어서 위대한 MC임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 그는 헤비메탈 밴드 바디 카운트(Body Count)의 프론트맨으로 활동하며 2020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의 메탈 퍼포먼스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백종권)

추천곡: '6 'N the mornin', 'Colors', 'O.G. original gangster'



닥터 드레(Dr. Dre)
작년 캘리포니아에서 열렸던 슈퍼볼 하프 타임 쇼를 기억하는가.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전 세계가 주목했던 이 순간을 지휘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닥터 드레였다. (그의 업적을 담기에는 무대가 작았다.) 그는 솔로 데뷔 앨범인 < The Chronic >으로 조지 클린턴의 피 펑크(P-funk)에 갱스터 랩을 이식하며 지 펑크(G-funk) 유행을 선도했다. 그렇게 1990년대에 웨스트 코스트와 지 펑크, 그리고 닥터 드레의 세상이 도래했다. 특히, 그의 감각은 프로듀싱에서 빛났다. 스눕 독과 워렌 지, 그리고 에미넴까지 굵직한 래퍼들이 '드레 선생'의 지원을 받았다. 이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헤드폰까지 출시하며 셀프 브랜딩에 나섰다. 힙합에서나 추억으로 명맥을 유지할 줄 알았던 지 펑크가 다시 등장한 곳은 2022년 K팝. 블랙핑크의 'Pink venom'에 침투하며 불멸을 증명했다. (임동엽)

추천곡: 'Nuthin' but a "g" thang (With Snoop Dogg)', 'Still D.R.E (Feat. Snoop Dogg)', 'The next episode (Feat. Snoop Dogg)', 'Fuck wit Dre day (and everybody's celebratin')', 'Let me ride (Feat. Jewell)'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
뉴욕 출신의 래퍼 버스타 라임스는 힙합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시기를 한복판으로 관통했다. 퍼블릭 에너미의 투어에서 오프닝을 장식했던 리더스 오브 더 뉴 스쿨(Leaders of the New School)의 멤버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후 솔로로 독립하여 변화무쌍한 플로우와 성실한 다작으로 힙합 커뮤니티에 그의 입지를 굳혔다. 상업적 성과를 거두는 데에도 크게 관심을 두었으며 쟈넷 잭슨, 머라이어 캐리 등 팝스타들과 함께한 곡들은 물론이고, 랩만으로도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일렉트라 레코드에서 발매한 첫 솔로 앨범 < The Comming >과 닥터 드레의 레이블 애프터매스에서 발매한 < The Big Bang >등 힙합으로 꽉 채운 앨범들의 판매량이 돋보인다. 하나 버스타 라임스를 상징하는 건 결국 화려한 랩 스킬이다. 후배들에게 그의 이름은 '랩 잘하는 래퍼'의 기준이다. (김호현)

추천곡: 'Woo hah!! got you all in check', 'Touch it', 'I know what you want'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런 디엠씨와 비스티 보이즈가 컨셔스 랩 시대의 개화라면 퍼블릭 에너미는 만개다. 척 디와 플레이버 플라브 듀오로 시작된 퍼블릭 에너미는 터미네이터 엑스, 프로페서 그리프를 추가로 영입하고 1987년, < Yo! Bum Rush The Show >로 데뷔한다. 그들은 댄스 그룹 S1W을 대동하고 여러 퍼포먼스와 함께 미국 사회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열정적인 공연 스타일로 차츰 이름을 알렸다. 그들의 원대한 음악적 야심은 샘플링과 디제잉 스킬의 극한, 강렬한 록과 사회비판적 메세지의 조화를 고루 담은 2집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 To Hold Us Back >, 3집 < Fear Of A Black Planet >이라는 걸작으로 발현되었다. 특히 인종 간 충돌을 다룬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의 OST로 삽입된 'Fight the power'는 두 작품 특유의 과격함이 서로 시너지를 이뤄 각 분야의 마스터피스로 남았다. (김태훈)

추천곡: 'Don't believe the hype', 'Bring the noise', '911 is a joke', 'Welcome to the terrordome', 'Fight the power'



에릭 비 앤 라킴(Eric B. & Rakim)
'갓 엠씨(God MC)' 라킴(Rakim)과 그의 길을 창조한 프로듀서 에릭 비(Eric B.)가 의기투합한 듀오 에릭 비 앤 라킴은 힙합 음악의 굵은 초석을 마련한 팀이다. 거성은 등장부터 묵직했다. 대표곡 'I ain't no joke'를 필두로 한 1집 < Paid In Full >을 명반의 반열에 올려두었고, 이듬해 < Follow The Leader >로 그 기세를 이어 'Microphone fiend' 등 명곡을 난사했다. 규칙적으로 정제된 에릭 비의 비트 위 수려하고 부드러운 라킴의 래핑도 환상적이었지만, 랩 방법론이 특히 혁신적이었다. 그들은 각운으로 제한되어 있던 라임의 한계를 깨부숴 랩의 정석을 제시했고, 그 공로로 숱한 후예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신으로 추대되었다. 이 콤비에 서양철학사의 명제를 그대로 대입해도 문제는 없다. 모든 랩은 에릭 비와 라킴의 주석에 불과하다. (손민현)

추천곡: 'Paid in full', 'Ain't no joke', 'Know the ledge', 'Follow the leader', 'Microphone fiend'



엔더블유에이(N.W.A)
거친 욕설, 사회에 대한 일갈, 위대하지만 위험한 그룹. 동쪽에 퍼블릭 에너미가 있었다면 서쪽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공공의 적'을 자처한 이들이 나타났다. 비스티 보이즈 같은 팀들이 펑크(punk)의 외형을 힙합과 엮었다면 엔더블유에이는 분노와 반항이라는 내면의 형식을 담았다고나 할까. 기존의 파티 랩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대중이 생각하는 힙합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갱스터 힙합이라는 표현이 어찌 보면 이들의 스타일을 순화한 말일지도 모른다. 'Fuck tha police'라는 제목만 봐도 그룹의 성깔이 드러난다. 멤버의 면면만 살펴봐도 닥터 드레, 이지-이, 아이스 큐브 등 무시 못 할 구성. 1980년대 말 등장해 짧았던 수명에도 불구하고 갱스터 랩의 선구자로서 지 펑크(G-funk)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엔더블유에이는 팀명 그대로 흑인의 태도를 음악으로 증명했다. (임동엽)

추천곡: 'Fuck tha police', 'Straight outta compton', 'Real niggaz don't die', '8 ball'



롭 베이스 앤 디제이 이지 록(Rob Base & DJ EZ Rock)
냉정히 말해 유명과는 거리가 먼 이 뉴욕의 듀오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전적으로 'It takes two'라는 단 하나의 트랙 덕분이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해당 단일 트랙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한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장르가 탄생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힙합의 가장 성공적인 해로 꼽히는 1988년을 말 그대로 '강타'한 'It takes two'는 단순히 플래티넘 인증의 대중적 성공뿐 아니라 힙합을 포함한 후대 음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자넷 잭슨의 'Alright'부터 뉴진스의 'ETA'와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까지, 역사상 가장 많이 사용된 샘플 중 하나인 린 콜린스(Lyn Collins)의 'Think (About it)' 샘플 사용을 대중화시킨 것은 그 대표적인 위업이다. 트랙의 업적을 그대로 아티스트에게 치하하고 나면, 롭 베이스와 디제이 이지 록을 위대한 듀오라고 칭하는 데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이승원)

추천곡: 'It takes two'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내가 힙합을 듣고 있었어 / 아버지는 늘 비밥이 생각난다고 하셨지'('Excursions'). 재즈 힙합의 조상이자 1990년대 힙합 신에 가장 예술적인 그룹으로 평가받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이 가사처럼 힙합과 재즈의 접점을 찾아 둘을 연결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큰 공을 인정받는다. 재즈를 샘플링한 비트에 힙합의 감성을 첨가, 더없이 세련되고 현대적인 사운드를 창시한 것이다. 기존의 시끄럽고 폭력적인 힙합과 다르게 베이스를 강조해 낮게, 더 낮게 내려간 그들의 소리는 무게감이 있었고 지적이기까지 했다. 큐팁의 독특한 발음과 파이프 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래핑은 차분함 속에서도 강한 중독성을 발현했다. 여기에 인종, 정치, 사회 문제를 통찰력 있게 다룬 가사는 데뷔 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을 향한 환호가 식지 않게 한다. 여전히 '힙합은 시끄럽고 경박한 음악이야'라는 편견이 있는 자들에게 < The Low End Theory >를 권한다. 앨범의 중후하고 고고한 비트를 맛보는 순간, 그 편견이 보기 좋게 박살날 것이다. (이홍현)

추천곡: 'Can I kick it?', 'Jazz (We've got)', 'Scenario', 'Award tour'



드 라 소울(De La Soul)
하드코어 래퍼와 갱스터들이 사회를 향해 이빨을 맹렬하게 갈고 있던 거친 땅에 이리저리 흩뿌려진 폭력의 씨앗 사이에서 데이지꽃이 피어났다. 포스누오스, 트루고이, 메이서는 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나 드 라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1989년, 그들은 내면의 소리라는 뜻의 D.A.I.S.Y(Da inner sound, yall)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낭만적인 감성과 사회적 메시지의 조화를 이룬 < 3 Feet High And Rising >을 발매해 분노의 힙합에 부드러움과 유머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비록 그들의 여전히 각박한 사회에서 그들의 스타일이 곧장 주류가 될 수는 없었고, 그들 또한 다음 앨범 < De La Soul Is Dead >로 D.A.I.S.Y 시대의 종언을 고하며 냉소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거친 풀밭에 그들이 심었던 꽃 한 송이는 지금의 다채로운 화원을 만든 시발점으로 회자되고 있다.(김태훈)

추천곡: 'The magic number', 'Eye know', 'Millie pulled a pistol on santa', 'Ring ring ring (ha ha hey)', 'Pain'



갱 스타(Gang Starr)
화려한 조명은 보통 래퍼에게 집중되기 마련이지만 위대한 힙합 프로듀서가 몸담았던 갱 스타(Gang Starr)는 다르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팀에 합류한 DJ 프리미어(DJ Premier)는 구루(Guru)가 외롭게 지키던 팀을 정상으로 견인했다. 초기 음반 < Step In The Arena >와 < Daily Operation >에서 담담한 연주 같은 구루의 래핑은 예술적인 샘플링을 가미한 프리미어의 곡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미동부를 폭격했다. 이후 < Hard To Earn >이나 < Moment Of Truth > 역시 농익은 매력이 흘러넘치며 이들은 마침내 올드 스쿨의 황제 자리에 오른다. 제임스 브라운의 영향을 공언한 만큼 탄탄한 음악적 창조물, 소울과 펑크(Funk), 재즈 등 과거 음악의 현대적인 변용이 세대를 초월한 세련미를 풍긴 덕이다. 전성기 이후 구루는 재즈 힙합의 대부로, 프리미어는 힙합 프로듀서의 거장으로서 각자 다른 길을 향했지만, 그들이 인도하는 골든 에라(Golden Era)로의 여행은 지금도 유효하다. (손민현)

추천곡: 'Take it personal', 'Mass appeal', 'Ex girl to the next girl', 'Full clip', 'Battle'



엠에프 둠(MF DOOM)
1988년, 3인조 그룹 케이엠디(KMD)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디딘 다니엘 두밀레(Daniel Dumile)에게 찾아온 것은 극심한 절망의 연속이었다. 데뷔 앨범의 준수한 성과에도 좀체 후속작을 내주지 않던 기획사와의 마찰,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이자 팀의 멤버인 DJ 섭록(Subroc)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사망 소식까지. 배신감과 충격에 폐인이 되어 길거리 생활을 전전한 지 어언 3년, 그는 자신을 망가뜨린 업계에 복수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마블 코믹스의 빌런 '닥터 둠'의 가면을 쓴 채 힙합 신에 돌아온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평생 주류와 자본을 거부하고 철저히 인디펜던트를 고수했던 뒷골목의 영웅. 엠에프 둠의 등장 서사다. 가사집을 빼곡히 채운 정교한 라임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워드플레이로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훗날 여러 유명 아티스트와 독창적인 협업물을 내놓으며 점차 입지를 넓혀 나갔다. 그럼에도 결코 유명세에 연연하는 법이 없었다. 사생활 공개를 꺼리고 대중 앞에서 가면을 절대 벗지 않았으며, 페르소나를 거듭 옮겨가며 예측 불가능하게 행적을 옮겨 다녔기 때문. 그리고 2020년, 이 수수께끼의 래퍼는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가족을 통해 부고 소식을 알리며 마지막까지 신비주의의 품 안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디스코그래피를 넘어 그의 삶 자체가 시대 초월의 작품으로 남은 이유다. (장준환)

추천곡: 'Doomsday', 'Fazers', 'All caps', 'Rapp snitch knishes'



퀸 라티파(Queen Latifah)
비뚤어진 20세기에 맞선 투쟁가이자 < 시카고(Chicago) > 등 뚜렷한 필모그래피를 지닌 배우, 그리고 재즈 보컬리스트까지. 여왕의 업적에 하나의 수식어만 고르는 건 불가능하지만 퀸 라티파(Queen Latifah)의 근본은 뛰어난 실력과 영향력을 지닌 래퍼다. 야만주의 힙합이 대변하는 음침한 거리와 흑인 여성에 대한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맞선 선봉장으로서 그는 '여왕을 맞이하라'며 당당한 첫 발자국을 뗐다. 거룩한 선언과 달리 데뷔 음반 < All Hail the Queen >나 'Ladies first'는 딱딱하거나 선언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비트 위 19세의 어린 여왕이 랩으로 제시한 시대정신은 활기차고 신선했다. 후속작 < Nature Of A Sista' >까지 이어진 음악적 지향은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의 예언서이자,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주문이었다. 뒤이어 모타운 레코드로 자리를 옮긴 그는 < Black Reign >으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깊은 메시지와 뛰어난 랩 실력으로 꾸려진 대표곡 'U.N.I.T.Y.'와 그 메시지는 분명 지금도 깊게 새겨들어야 한다. 여왕이 엄숙히 외친다, '너, 누구한테 Bxxch라고 부르는 거야?' (손민현)

추천곡: 'Ladies first', 'Latifah's had it up 2 here', 'U.N.I.T.Y.', 'Just another day'



노티 바이 내이처(Naughty By Nature)
1986년 뉴저지에서 결성된 노티 바이 내이처는 1990년대 전성기를 일군 3인조 하드코어 랩 그룹이다. 1989년에 발표한 데뷔앨범은 반대편에 위치한 웨스트코스트 진영의 N.W.A. 스타일이었지만 여성 래퍼 퀸 라티파의 도움으로 이적한 토미 보이 레이블 시절부터 이미지를 거칠고 난폭하게 가져갔고 그에 따라 가사도 과격해졌다. 이것이 노티 바이 내이처의 서사. 퀸 라티파가 힙합 찬가인 'Hip hop hooray'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상징하는 역사적 좌표다. 잭슨 5의 'ABC'를 샘플링한 외설적인 싱글 'O.P.P.'로 인지도를 확장한 노티 바이 내이처는 1992년에 발표한 싱글 'Hip hop hooray'로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탑 텐에 랭크되어 성공 궤도에 올랐고 이후 그래미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랩 부문을 수상해 음악성도 인정받았다. (소승근)

추천곡: 'O.P.P.', 'Hip hop hooray', '19 naughty III', 'Feel me flow'

이미지 편집: 김태훈
정리: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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