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온스테이지! IZM 필자가 뽑은 개인적 무대들

by IZM

2023.12.01

2010년 11월, '숨은 음악, 세상과 만나다'라는 야심찬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출범한 온스테이지가 지난 11월 16일 서비스 종료를 알리며 13년간 이어져 온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메이저와 인디 신을 가쁘게 오가며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고 많은 음악인의 노력과 결실이 묻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장기 콘텐츠였던 만큼, 많은 이들이 이 소식에 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헤어짐은 또 다른 시작 아니겠는가. 온스테이지의 말로가 곧 인디의 말로는 아닐 것임을 잘 알기에,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남겨진 아카이빙에 대한 감사와 그 '발굴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응원의 한마디다. 이번 특집에서는 IZM 필자들이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무대를 꼽아 간소하게 회포를 나누며 또 하나의 '스테이지'를 새겨 본다. 그들에게 받은 따스한 불씨를 소중히 간직하고 다시 누군가에게 전파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빈지노 'Aqua man' (2012.10.18)
지금은 거리가 먼 취미가 되어버렸지만 대학교 새내기 때만해도 동기들과 종종 노래방에 갔다.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첼로 연주하던 친구가 'Aqua man'을 불러제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빈지노하면 즐겨 듣던 'How do I look?'와 소소한 충격을 안겼던 'Break'와 더불어 'Aqua man'이 떠오르곤 한다. 당시 빈지노는 데뷔 앨범 < 24 : 26 >로 신의 화두가 되었고, 'Boogie on & on'과 'Nike shoes'의 쿨함의 거리감을 'Aqua man'의 공감대가 좁혔다. 랩 스킬과 회화적인 문체가 혼합된 스토리텔러로서의 개성은 온스테이지 무대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갓 정규 앨범을 내놓은 신예임이 무색한 자신감과 라임어택과 함께 수파두파 듀오로 활동했던 디제이 웨건의 스크래치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무대에서 연주한 상반된 분위기의 'Profile'은 11년 후 발매될 < Nowitzki >의 젊은 거장을 예견하듯 완성도 높다. (염동교)


박규희 'Recuerdos de la alhambra' (2015.03.26)
습관처럼 1년에 두세번은 박규희의 공연을 찾게 된 것도 어느덧 3년째. 항상 음악을 곁에 두고 그것도 모자라 그걸로 글까지 쓰는 나임에도, 그전까지는 사실 클래식과의 연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보게 된 이 영상은 마음 한구석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워낙 유명한 곡이다 보니 멜로디는 익숙한데, 이렇게까지 고혹적이고 투명감 있게 들릴 일인가. 깊은 울림이 담긴 신세계를 경험한 뒤, 존재감조차 희박했던 클래식 기타는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멋진 친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온스테이지가 발굴하고자 했던 '숨은 음악'은 비단 대중음악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재즈와 국악, 뉴에이지와 탱고, 그리고 클래식까지. 알려져야 마땅하지만 적당한 루트를 찾지 못하던 아티스트를 다양성에 목말라하던 대중과 이어주었다. 2015년 촬영 당시에 이미 국제 콩쿠르를 다수 석권하며 입지전적인 경력을 쌓았던 박규희. 본격적으로 영역 바깥의 사람들과 조우하기 시작한 시점에 촬영된 이 영상은, 클래식 기타 저변 확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한다. 나를 포함해 새롭게 클래식 기타를 알게 된 많은 이들은, 평생 모르고 살았을 지도 모를 이 황홀한 풍경을 곁에 둘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온스테이지. (황선업)


언니네 이발관 '아름다운 것' (2015.04.08)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워서 서글프다. 찬란하게 빛나는 사랑으로 가득하던 순간은 지나버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보통의 존재가 되어 이별하는 그 순간이란 얼마나 담담하면서도 참담한가. 온스테이지에서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 영상을 공개했던 2015년의 나는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고등학생이었다. 짜임새 좋은 비트와 편안한 멜로디에 마음이 차분해지던 순간, 가사를 곱씹어 보았다. 상대방의 이별을 고하는 순간의 모습과 감정이 과잉되지 않고 담백해서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이석원의 떨리는 목소리는 내색하지 않지만, 슬픔을 삼키며 힘든 순간을 어떻게든 견디고자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능룡의 멋진 기타 리프를 포함한 모든 소리의 융합은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은 내 마음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흘러가는 주변 세상처럼 말이다. 그날, 나는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참 많이도 울었더랬다. 그로부터 시간이 더 지나며 언니네 이발관도 이별을 고하더니, 이제는 온스테이지가 곁을 떠난다. 가지 말라고 청승맞게 매달릴 일은 없다. 헤어짐을 선택한 그들에게 그동안 즐거웠다고, 고마웠다고, 덕분에 행복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남길 뿐이다. '아름다운 것'의 추억도 동봉하며, 잘 가라. 온스테이지! (김태훈)


전자양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2016.02.04)
숨은 음악의 발굴이라는 취지답게, 전자양이라는 이름의 파도를 평생 타고 갈 물살로 자리잡게 한 영상.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아직도 내게 온스테이지는 이 무대가 가진 분위기로 기억된다. 본격적인 시작에 각자 자신의 악기를 가볍게 테스트하고 부스럭거리는 스태프의 소리마저 지극히 '라이브'스럽다. 비주류의 주류, 키치 중의 명품. 유튜브라는 망망대해를 떠돌다 온스테이지를 발견한 나는 어쩌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소외된 이들을 품어줄 낙원'을 찾은 기분이었다.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중성적 보컬과 기상천외한 전개는 물론, 기괴하다 못해 그로테스크한 판타지적 노랫말까지 수명이 닳도록 맹목적으로 사랑을 바친 것 같다. 심지어 당시 음원 사이트로는 접할 수 없다는 희귀성은(?) 이들이 빚어낸 파스텔 톤 피조물에 더더욱 목매게 만들었으니. 이 감각을 귀에서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을지로의 명소 '신도시'를 얼마나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들으라는 명령조의 밀물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금 접속한다. 조금 생색을 내자면, 아마 조회수의 1%는 내 지분이지 않을까. (장준환)


수민 'Sparkling' (2017.11.16)
시기적절한 타이밍으로, 섬세한 마케팅으로 스타가 되는 가수는 매년 등장한다. 알앤비 아티스트 수민이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러한 가수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보일 만큼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온스테이지에 선 그는 어떤 세대나 집단의 정서를 대변하지도 않았고, 여느 독립 뮤지션들이 그렇듯 내향적인 감정의 중력을 만들어 내지도 않았다. 그저 미학의 수준을 높여 그것만으로 고고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음악인들의 인정을 받아 냈다. 1990년대 네오 소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편곡과 무서울 정도로 유려한 보컬, 과거를 밟고 서 있지만 최첨단을 지향하는 사운드. 음악을 전공한 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뚝심과 실력이었다. 그의 무대는 온스테이지의 모토가 말하듯 숨은 음악이 세상과 만났을 때 생기는 기분 좋은 스파클링이다. (김호현)


민수 '민수는 혼란스럽다' (2019.05.02)
마음은 복잡하지만 음악마저 진지할 필요는 없다. 제목도 독특한 '민수는 혼란스럽다'를 즐겼던 시절에는 온스테이지를 하루에도 몇차례 방문했다. 개인 기기로 어디서든 편히 라이브를 감상할 수 있는 나만의 공연장에서 큰 안경을 쓰고 어색한 몸짓으로 혼란스러운 들썩거림을 선보인 민수와, 인디 대스타로 떠오른 피아노의 박문치를 포함해 세션들을 따라 내적 춤사위를 즐겼다. 민수의 머릿속을 직접 들여다본듯한 생활밀착형 가사, 요정같이 속삭이는 보컬이 산뜻한 봄가을에 사랑의 '불확정성 원리'를 탐구하기 좋은 교재였기 때문일까. 이제 감정의 출렁임이 혼란스러울 시기와는 작별했지만, 과거 설렜던 순간과 감정이 무심코 일상을 방문하면 또다시 민수의 무대를 다시 찾는다. (손민현)


정미조 '석별' (2021.03.18)
어떤 소리는 연륜에서 우러난다. 음정과 박자, 발성 같은 것과는 다른 영역이다. 오랜 세월을 보내고 견디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서야 그런 소리가 나온다. 끝이 어딘지 가늠도 되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담담히 꺼내놓는 그 소리가 듣는 사람을 무너뜨린다. 아름답고 애틋하게 이별을 고하는 정미조의 '석별'은 그래서 더 슬프고 시린 노래다.

곡을 쓴 전진희의 피아노와 현악 4중주가 함께한 정미조의 온스테이지를 보고 있으면 번번이 눈물이 차오른다. 음원으로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의 파도가 속절없이 밀려온다. “그댈 보는 내 맘 부족함이 없으니/ 오늘 우리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네” 마지막 소절 뒤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아득히 흩날리면 그대로 시간이 멈추는 듯하다.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어른의 노래다. (정민재)


백현진 '횟집' (2022.03.17)
백현진은 달리듯, 걷듯, 가끔은 건들거리고 종종 휘청거리며 무대에 등장한다. 랩처럼 넋두리처럼 내뱉는 백현진의 노랫말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오라(Aura)가 가득하다. “횟집에서 싸움이 났는데”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사시미가 허공에 칼질을 하고 “이 다음 장면은 너무 끔찍하고 너무 자극적이라”며 극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절정은 무키무키만만수 이민휘의 열연. (궁금하면 꼭 찾아보시길!) 짙푸른 무대는 어느새 온통 핏빛으로, 라이브는 거대한 활극으로 변한다. 

음악을 목격하는 일은 짜릿한 일이다. 공연에서는 뮤지션의 감정과 악기의 공명, 그리고 그것이 뻗어나가는 방향을 지켜볼 수 있다. 백현진의 온스테이지는 연주자들과 코러스의 조합이 심상치가 않다. 백현진의 솔로 앨범 < 가볍고 수많은 >을 작업한 김오키(색소폰), 이태훈(기타), 진수영(신스/키보드)은 물론이고, 김다빈(드럼), 브라이언 신(트럼펫)이 한자리에 섰다. 코러스로는 실리카겔의 김한주, 이민휘가 함께 한다. (참고로 이어지는 무대 '모과'에선 새소년의 황소윤도 등장한다.) 특히 '횟집'은 현재 음원으로 발매가 안되어 온스테이지 영상을 통해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이 무대에 멋진 음악인들의 찰나와 에너지가 그대로 포착되어 있다. 그곳에 당신의 찰나 또한 포개어보기를. (김반야)


페퍼톤스 - '행운을 빌어요' (2023.11.16)
이별은 언제나 아쉬운 법이지만 온스테이지의 대장정이 마무리된다는 소식을 듣고, 누가 어떤 곡으로 그 대단원을 장식할지가 개인적으로 조금은 기대됐었다. 그리고 얼마 뒤, 별안간 전해진 알림으로 그 주인공이 페퍼톤스와 '행운을 빌어요'임을 알게 된 순간, 감탄이 헛기침처럼 튀어나왔다. 이 무대에 내 감정이 벅차오를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찰나의 시간 동안 꽤나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하는 새 엄지손가락은 저항 없이 화면을 툭 건드렸고, 너무도 익숙한, 그 낭만적인 기타 리프가 '쨘' 하고 나타나자 내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현실이 됐다. 온스테이지다운, 모두를 끌어안는 감동적인 마무리. 눈물은 흘리지 않을게, 굿바이 온스테이지. (이승원)



사진 : 김태훈
정리 :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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