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인베이전 '잊혀진 영국의 침략자들' - 1부

by IZM

2024.02.01



대중음악 역사에서 음악 유행을 표현한 말에 나라의 명칭이 들어간 경우는 두 개뿐이다. 19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현재의 K-팝이다. 그만큼 한류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방증이다.

1964년 2월 7일, 비틀스가 뉴욕의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의 미국 상륙 이후 많은 영국 뮤지션들이 미국으로 진출해서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것을 두고 미국 언론은 브리티시 인베이전, ‘영국의 침공’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엔 남자 가수도 있고 여자 가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밴드였다. 그런데 영국 가수들은 왜 미국 침략에 참전했을까? 그것은 미국이 현대 대중음악의 시발점이고 거대한 음악 시장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발발한지 60년이 되는 해다. 미국과 함께 전 세계 대중음악 계를 양분하고 있는 영국의 위상은 이때 세워졌다. 그래서 이번 특집에서는 1960년대의 문화현상으로 인정받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끈 영국 아티스트 20팀을 선정했다. 단 언급할 내용이 고갈된 비틀스, 롤링 스톤스, 더 후는 제외했다. 저 위대한 삼인방 말고도 좋은 음악을 들려준, 훌륭하지만 이제는 잊혀진 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멋진 음악 유산을 물려준 1960년대의 모든 영국 뮤지션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소승근)



애니멀스(The Animals)
우리나라에서 애니멀스만큼 인지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밴드도 없다. 기성세대 대부분은 그들을 알지만 젊은이들에겐 듣도 보도 못한 그룹이니까. 애니멀스라는 이름을 몰라도 뉴올리언즈 민요를 블루스로 편곡한 ‘House of the rising sun’ 혹은 ‘해 뜨는 집’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어른이 아직도 많다. 1964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오른 이 곡의 임팩트는 그만큼 강렬했고 생명력은 길다. 흑인의 블루스를 재현한 여러 영국 밴드들 중에서도 애니멀스는 그 농도와 채도가 다르다. 인생의 패배자를 대변하듯 비극적이고 처절한 에릭 버든의 샤우팅 보컬과 알란 프라이스의 구슬픈 오르간은 이들의 신분 세탁을 완수했다. 그룹 해산 후에 에릭 버든은 1970년대 초에 덴마크 출신의 하모니카 연주자 리 오스카 등과 함께 워(War)라는 소울 펑크(Funk) 밴드를 이끌었고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는 영국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지미 헨드릭스를 미국에 데뷔시켜 록의 지형도를 바꿨다. 애니멀스는 가장 미국적인 영국의 블루스 밴드였다. (소승근)

추천곡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It’s my life', 'We gotta get out of this place', 'Bring it on home to me'



데이브 클락 파이브(The Dave Clark Five)
직관적인 밴드 이름에 감사를 표한다. 데이브 클락 파이브는 말 그대로 드러머이자 리더인 데이브 클락을 포함해 총 다섯 명으로 꾸려진 로큰롤 밴드다. 만약 이름을 들어봤다면, 혜성처럼 등장해 세계를 휩쓴 비틀스의 데뷔곡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영국 차트 1위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국지적 히트곡 ‘Glad all over’의 몫일 것이다. 빌보드 차트 정상을 밟은 ‘Over and over’와 낭만적인 건반이 장식하는 ‘Because’ 등 빌보드 탑 10에 오른 곡만 해도 7곡이며 미국의 에드 설리번 쇼에 가장 많이 출연했을 정도로 브리티시 인베이전 초기 양상에 동력을 제공한 팀이기도 하다. 물론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이 하나둘 등장하고 영국 로큰롤의 생명력이 다할 무렵에도 끝까지 같은 작법을 고수했기에 1970년도에 이르러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게 됐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앨범과 싱글을 포함해 1억 장 판매고를 기록할 만큼 비틀스에 견줄 위력을 가진 무서운 대항마였으니. 그 당시 대부분의 리버풀 출신 밴드를 대표하던 ‘머지 비트’ 세력에 맞설 수 있던 일명 ‘토트넘 사운드’라는 수식어는 온전히 데이브 클락 파이브의 것이었다. (장준환)

추천곡 : ‘Glad all over’, ‘Because’, ‘Over and over’, ‘Everybody knows’, ‘Reelin’ and Rockin’’



페츌라 클락(Petula Clark)
2021년 영화 <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를 본 사람이라면 주연 배우 안야 테일러-조이가 불렀던 ‘Downtown’을 기억할 것이다. 1964년 발매되어 영국에서는 2위에 오르고 미국에서는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그 노래의 원작자 페츌라 클락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영부인(The First Lady of British Invasion)’으로 불리는 가수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BBC 라디오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인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 차트에 입성하며 유럽 각지에서 유명세를 쌓았고, 이내 ‘Downtown’의 인기에 힘입어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1965년 또 다른 1위 싱글 ‘My love’를 포함해 총 여섯 곡을 10위 내에 올린 페츌라 클락은 경쾌한 업템포 음악과 더불어 시드니 베쳇의 명곡 ‘Petite fleur’에 목소리를 입히는 등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스크린에서도 활약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독일어, 심지어는 스페인어로까지 음반을 남긴 그는 미국을 넘어 세계를 침공한 스타였다. (한성현)

추천곡 : ‘Downtown’, ‘I know a place’, ‘My love’, ‘This is my song’, ‘Petite fleur’



실라 블랙(Cilla Black)
영국 리버풀의 문화유산 캐번 클럽 하면 당연 비틀스를 떠올리지만 영국인들은 거기서 휴대품보관 알바였다가 비틀스에게 발탁되어 영국을 집어삼킨 톱 여가수 실라 블랙도 즉각 기억한다. 비틀스와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에 따른 팹 포(Fab Four)의 소우주 구축이자 확성(擴聲)은 명백했고 실제로 데뷔곡 ‘Love of the loved’ 그리고 나중에 ‘It's for you’도 비틀 폴과 존이 써주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그 누구도 비틀스의 은혜, 공, 자장과 같은 어휘를 경계한다. 전구처럼 반짝이는 빛의 보컬이 자애로움과 낭만으로 채색되어 그에게 ‘독립’과 자립을 선사해서였다. 상기한 두 곡 말고 영국 1위를 차지한 ‘Anyone who had a heart’과 ‘You’re my world’ 등 1964-65년의 히트 퍼레이드는 차트 포식 그 자체였다. 다만 마리안느 페이스풀처럼 그 호흡이 온전히 미국에 뻗치지 못하는 애석함을 남겼다. 밴드 중심인 탓에 여성 솔로를 비껴간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약간의 폐해’. 그래도 영국의 ITV는 그의 활동 50주년을 맞아 ‘더 원 앤 온리’라는 타이틀의 특집 다큐를 방송했고 왕실로부터는 대영제국 1등급 훈장(OBE)이 하사되었다. (임진모)

추천곡 : ‘Love of the loved’, ‘Anyone who had a heart’, ‘You’re my world’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The Spencer Davis Group)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펜서 데이비스가 추진해 만들어진 팀이다. 윈우드 형제의 재즈 밴드 공연을 보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음악은 당시 영국에서도 큰 흐름을 만들고 있던 블루스 기반의 사운드를 구사한다. 이러한 스타일이 만들어진 데에는 미성년의 막내이자, 보컬과 건반을 맡았던 스티브 윈우드의 역할이 컸다. 그는 당시에도 레이 찰스와 창법이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다. 1965년 데뷔작 < Their First LP >의 반응은 미미했지만 이내 록 사운드를 강화한 2집에서 ‘Keep on running’이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메이크곡에 의존했던 이들의 미국 침공은 멤버들이 작곡에 전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뤄졌다. ‘Gimme some lovin’’과 ‘I’m a man’이 연이어 빌보드 싱글 차트 탑 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호재와 악재는 함께 온다고 했던가. 윈우드 형제가 새로운 뜻을 찾아 밴드를 나가면서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의 활공도 여기서 멈췄다. 형 머프 윈우드는 프로듀서, 동생 스티브 윈우드는 트래픽, 블라인드 페이스 등을 거치며 솔로 뮤지션으로 굵은 역사를 써 내려갔다. (임동엽)

추천곡 : ‘Keep on running’, ‘Somebody help me’, ‘Gimme some lovin’’, ‘I’m a man’



도노반(Donovan)
종종 밥 딜런에 대한 영국의 대답이란 수식을 붙이나 음악적으로 더 과감하고 풍성했다. 만 19세에 발매한 1집 < What’s Bin Did And What’s Bin Hid >의 영국 앨범 차트 3위로 일찌감치 총기를 보인 도노반은 알 쿠퍼(Al Kooper), 라나 델 레이까지 많은 아티스트가 리메이크한 ‘Season of the witch’와 ‘Sunshine superman’의 1966년 작 < Sunshine Superman >부터 본격적으로 사이키델릭 질감을 도입한다. 바로크 팝과 재즈가 혼재된 < Mellow Yellow >(1967)와 포근한 소품 ‘Jennifer Juniper’와 사려 깊은 ‘The river song’이 수록된 1968년 작 < The Hurdy Gurdy Man >은 작가주의, 실험주의 포크의 발로였다. 이전의 총기를 놓친 1970년대 중반부터 데이비드 길모어가 참여한 2022년 음반 < Gaelia >까지 창작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도노반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왕성한 창조성과 탐험심이 돋보인 포크 작가였다. (염동교)

추천곡 : ‘Jennifer Juniper’, ‘Mellow yellow’, ‘Atlantis’, 'I like you', 'Sunshine superman'



웨인 폰타나 앤 더 마인드벤더스(Wayne Fontana and the Mindbenders)
웨인 폰타나 앤 더 마인드벤더스는 1960년대 초중반 짧고 굵은 활약상을 남긴 맨체스터 출신 머지비트 그룹이다. 짧게 비트 혹은 브리티시 비트라고도 불리는 머지비트는 리듬 앤 블루스와 스킬, 전통적인 팝을 섞은 혼성물로 제리 앤 더 페이스메이커즈와 데니슨스(The Dennisons) 같은 팀들로 대표된다. 마인드벤더스의 명작은 아무래도 1965년 취입한 ‘A groovy kind of love’며 단박에 귀를 사로잡는 달콤한 곡조는 미국 보컬 듀오 다이안 앤 아니타(Diane & Annita)부터 필 콜린스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사랑받았다. 1964년 영국 싱글차트 5위에 오른 ‘Um, um, um, um, um, um’의 성공으로 ‘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의 당대 정상급 여가수 브렌다 리와 공연을 돌기도 한 마인드벤더스는 보컬 하모니와 로큰롤이 유려하게 결합된 ‘The game of love’로 빌보드 정상에 오른다. ‘A groovy kind of love’가 2위였으니 그야말로 미국 시장을 침공한 셈. 상기한 작품들이 밴드의 자작곡은 아니었으나 특출난 해석 능력은 마인드벤더스의 프라임타임을 생성했다. 1966년부턴 음악적 중추 웨인 폰타나와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걸었다. (염동교)

추천곡: ‘A groovy kind of love’, ‘The game of love’, ‘Um, um, um, um, um, um’



제리 앤 더 페이스메이커스(Gerry And The Pacemakers)
리버풀에서 출범해 출세를 거둔 밴드는 많지만 축구 클럽 리버풀 FC의 응원가는 단 한 곡, 바로 이들의 곡이다. 1945년 발매된 프랭크 시나트라의 원곡을 세련되게 각색한 이들의 ‘You’ll never walk alone’은 특유의 위로를 주는 가사와 포근한 멜로디로 지금까지 많은 리버풀 주민들의 '국민 힐링 송'으로 남아 있다. 비틀스의 성공 이후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스 다음 타자로 계약을 체결해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손길로 낳은 이들의 음악은 데뷔 앨범이 나오기도 전 싱글 ‘How do you do it?’, ‘I like it’, ‘You’ll never walk alone’을 연속으로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그들이 주연한 영화 < Ferry Cross The Mersey >의 동명의 주제가 ‘Ferry cross the mersey’를 포함 7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 안에 올리며 미국을 침공, 그중 4위까지 오른 ‘Don't let the sun catch you crying’으로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서도 긴 생명력을 유지 중이다. 많은 이들이 비틀스, 비틀스만을 외치지만 이들 역시 ‘영국 감성의 로큰롤’ 리버풀의 ‘머지 사운드’가 발전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었다. 팀 이름처럼 두 나라를 진동시킨 강렬한 ‘심장 박동기’였다. (이홍현)

추천곡 : ‘You’ll never walk alone’, ‘Ferry cross the mersey’, ‘Don't let the sun catch you crying’



허먼스 허밋츠(Herman's Hermits)
시류에 올라탔으나 주류가 되지 못한 밴드. 애니멀즈를 발굴한 미키 모스트의 프로듀싱과 피터 눈의 꾀꼬리 같은 보컬이 특징이다. 미국 활동을 염두에 뒀다는 듯 최고의 작사·작곡 콤비인 캐롤 킹 & 게리 고핀의 ‘I’m into something good’을 리메이크하며 1964년 영국 차트 1위로 데뷔했다. 성공 가능성을 본 이들은 곧바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연이어 발매한 싱글들이 대박을 터뜨렸고, 빌보드 핫 100에서는 무려 24주 연속 10위권에 머무르는 기록을 세웠다. 1965년만 따지면 비틀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며 음반, 영화, 굿즈 가릴 것 없이 공세를 퍼부었다. 이런 가파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더 이상 정상을 탈환하지 못했다. 아이돌 스타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나고자 변신을 꾀하던 다른 팀들과 달리 허먼스 허밋츠는 커버 곡에 의존했고, 세션 연주 대행 논란까지 겹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팝 스타는 자기 색깔을 가진 뮤지션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관습이 여전히도 유효한 이유다. 결국 1971년 프런트 맨인 피터 눈이 나가면서 밴드는 이름을 ‘더 허밋츠’로 바꾸고 최근까지도 공연 소식을 알리면서 말 그대로 ‘은둔자들’이 됐다. (임동엽)

추천곡 : ‘I’m into something good’, ‘There’s a kind of hush’, ‘I’m Hernry the VIII, I am’, ‘(What a) Wonderful world’, ‘Dandy’



홀리스(The Hollies)
미국의 로큰롤 스타 버디 홀리의 이름을 팀명으로 정한 홀리스는 1962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됐다. 이들은 당시 활동했던 대영제국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유려한 멜로디를 들려준 팀 중 하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표곡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와 ‘The air that I breathe’는 켈리 고든과 알버트 하몬드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다. 그래도 홀리스가 히트시켰으니 이들의 편곡 역량과 선구안을 무시할 순 없다. 리듬감이 탁월한 ‘Bus stop’과 록밴드 티-렉스 풍의 로큰롤 넘버 ‘Long cool woman in a black dress’만으로도 홀리스의 선율 감각은 증명된다. 우리나라에서는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만 남아있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 꽤 긴 기간 동안 전성기를 누렸고 팀의 기타리스트 그래함 내시는 1969년에 슈퍼 그룹 크로스비 스틸스 & 내시로 이적해 위대한 여정을 계속했다. 최근에는 라디오헤드의 ‘Creep’이 홀리스 버전의 ‘The air that I breathe’를 표절한 것으로 판결나 다시 한 번 유명세를 탔다. (소승근)

추천곡 : ‘Bus stop’,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The air that I breathe’, ‘Long cool woman in a black dress’, ‘Carrie 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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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편집: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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