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인베이전 '잊혀진 영국의 침략자들' - 2부
대중음악 역사에서 음악 유행을 표현한 말에 나라의 명칭이 들어간 경우는 두 개뿐이다. 19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현재의 K-팝이다. 그만큼 한류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방증이다.
1964년 2월 7일, 비틀스가 뉴욕의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의 미국 상륙 이후 많은 영국 뮤지션들이 미국으로 진출해서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것을 두고 미국 언론은 브리티시 인베이전, '영국의 침공'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엔 남자 가수도 있고 여자 가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밴드였다. 그런데 영국 가수들은 왜 미국 침략에 참전했을까? 그것은 미국이 현대 대중음악의 시발점이고 거대한 음악 시장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발발한지 60년이 되는 해다. 미국과 함께 전 세계 대중음악 계를 양분하고 있는 영국의 위상은 이때 세워졌다. 그래서 이번 특집에서는 1960년대의 문화현상으로 인정받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끈 영국 아티스트 20팀을 선정했다. 단 언급할 내용이 고갈된 비틀스, 롤링 스톤스, 더 후는 제외했다. 저 위대한 삼인방 말고도 좋은 음악을 들려준, 훌륭하지만 이제는 잊혀진 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멋진 음악 유산을 물려준 1960년대의 모든 영국 뮤지션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소승근)
킹크스(The Kinks)
굉음과 함께 역사가 흔들렸다. 프로듀서 셸 탈미가 주도한 ‘맥시멈 로큰롤’의 표어는 곧 찢어질 듯한 기타 사운드의 ‘You really got me’로 촉발했고, 네 명의 악동은 빌보드 차트 7위를 달성하며 순식간에 흐름의 중심에 올라섰다. 영국 침공을 이끈 주역 중 하나이자 동시에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밴드’로도 유명한 킹크스의 우렁찬 등장이었다. 물론 이러한 독특한 타이틀을 취득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All day and all of the night’와 ‘Tired of waiting for you’ 등으로 차트 상단을 등반하며 기세를 이어가던 와중 팀의 리더 레이 데이비스에게 마음의 변화가 찾아온 것. 상업적 성공이 보장된 셸 탈미의 둥지를 벗어나 자립된 소리를 내고자 했던 그는 전곡이 자작곡으로 이뤄진 < Face To Face >를 포함해 앨범 단위의 정교한 완성도와 가사적 역량 단련에 몰두하며 창작의 봉우리를 착실하게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과도기를 대표하는 ‘Sunny afternoon’, 런던의 한적하고도 쓸쓸한 정경을 그린 ‘Waterloo sunset’, 컨트리라는 손수건에 향수(鄕愁)를 적셔낸 ‘Picture book’, 서정적인 영국적 색채로 한껏 접어든 ‘Lola’ 등 희대의 명곡들이 이 시기에 포진된다. 이들이 포착한 초기의 고출력 음향은 메탈의 토대를 마련했고, 신랄한 사회 비판과 직관적 선율은 모든 브릿팝 후발주자의 교과서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지향점이 달라 중간에 팀을 떠난 셸 탈미 역시 끝내 본인의 의지를 살려 또 따른 레전드 밴드이자 파괴적인 퍼포먼스로 유명한 ‘더 후’를 만들게 되었으니. 킹크스로부터 뻗어나간 가지만 파헤치기만 해도 음악사의 큰 궤적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장준환)
추천곡 : ‘You really got me’, ‘Tired of waiting for you’, ‘Waterloo sunset’, ‘Picture book’, ‘Lola'
맨프레드 맨(Manfred Mann)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맨프레드 맨은 영국 클랙턴 온 씨(Clacton-On-Sea)에서 드러머 마이크 허그(Mike Hugg)를 만나 서로의 이름을 딴 블루스 밴드인 맨 허그 블루스 브라더스(Mann-Hugg Blues Brothers)를 결성한다. 이는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수놓은 걸출한 밴드 맨프레드 맨의 시작이었다. EMI 산하의 레이블과 계약한 이들은 얼마 뒤 1964년 틴 팬 앨리 작곡 콤비 제프 배리와 엘리 그리니치의 곡 ‘Do wah diddy diddy’를 리메이크, 영미 차트를 모두 석권하며 큰 스타덤에 오른 밴드는 이어 ‘Sha la la’, ‘Pretty flamingo’ 등을 차트 상위권에 올리며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밥 딜런의 ‘Mighty Quinn’을 히트시키기도 한 이들은 1969년 해체를 선언하지만 이후 프로그레시브 정신에 입각한 맨프레드 맨 챕터 쓰리(Manfred Mann Chapter 3)를 거쳐 맨프레드 맨스 어스 밴드(Manfred Mann’s Earth Band)를 구성, 1977년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원곡 ‘Blinded by the light’을 커버해 다시 한번 빌보드 정상에 올리며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위력을 재차 역설하기도 했다. (이승원)
추천곡 : ‘Do wah diddy diddy’, ‘Mighty Quinn’, ‘Sha la la’, 'Blinded by the light'
피터 앤 고든(Peter And Gordon)
영국 팝 듀오 피터 앤 고든은 2024년 현재엔 그 이름이 많이 희미해졌지만 폴 매카트니와 교제했던 제인 애셔(Jane Asher)의 친오빠 피터 애셔(Peter Asher)와 고든 월러(Gordon Waller) 두 사람이 주조한 감미로운 하모니는 미국 시장을 부드러이 두드렸다. 빌보드 200 21위에 오른 데뷔작 < Peter And Gordon >을 제외하곤 앨범 단위의 성과는 약소했으나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의 틈바구니에서 1964년 빌보드 정상을 거머쥔 ‘A world without love’와 로큰롤의 위대한 작가 델 샤논(Del Shannon)이 작곡한 ‘I go to pieces’가 핫100 9위에 오르는 등 싱글 쪽에서 강세를 보였다. 1966년 작 < Somewhere… >에선 비틀스의 ‘If I fell’을 취입해 당대 최고 밴드와의 연관성을 이어갔다. 같은 해에 핫100 6위에 오른 ‘Lady Godiva’가 그룹의 화양연화였다. 달콤한 음성과 어쿠스틱 기타에 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을 두른 라디오 친화적인 곡들을 들려줬던 피터 앤 고든은 사이먼 앤 가펑클에 대한 영국의 작은 응답이었다. (염동교)
추천곡 : ‘I go to pieces’, ‘A world without love’, ‘Woman’
서처스(The Searchers)
1960년대 리버풀의 머지강을 따라 흘렀던 경쾌한 사운드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커다란 한 축이었다. ‘머지 사운드’라고 불리는 이러한 지역적 흐름은 블루스의 영향이 짙은 미국 록과 대비되는 가벼운 분위기의 편곡으로 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머지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인 서처스는 미국 음악계에 충격을 준 영국 아티스트들의 행진에 무게감을 더했다. 비틀스가 그랬듯 리버풀의 클럽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재키 디섀넌의 ‘Needles and pins’를 리메이크 하여 1964년 영국 싱글 차트 1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13위를 달성했다. 스타덤에 오른 이들은 이후 알앤비 그룹 클로버스의 곡 ‘Love potion no. 9’를 커버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올리며 업계의 빅 네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곡은 한글 번안, 영화 OST 등 여러 경로로 소개되며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보컬과 드럼을 맡았던 크리스 커티스의 탈퇴 이후로 짧은 전성기를 마무리했지만, 이들의 족적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에서 리버풀의 중요성 만큼 선명하다. (김호현)
추천곡 : ‘Love potion no. 9’, ‘Needles and pins’, ‘Don't throw your love away’
스몰 페이시스(Small Faces)
런던 출신 밴드 스몰 페이시스는 더 후, 킹크스와 더불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패션과 음악 트렌드에 영향 미친 “모드(Mod)”의 대표 밴드였다. 거친 개러지 록에 알앤비 요소를 더한 1966년 데뷔작 < Small Faces >와 일 년 후 나온 동명의 < Small Faces >로 개성을 확립했고, 1967년엔 독특한 소리 효과를 두른 대표곡 ‘Itchycoo park’를 싱글 발매했다. 변화와 발전을 미덕으로 삼았던 스몰 페이시스는 독특한 앨범 이미지의 컨셉트 앨범 < Odgen’s Nut Gone Flake >(1967)의 서사와 소리 실험으로 불꽃 튀겼던 1960년대 브리티시 록 사가(British Rock Saga)에 인장을 새겼다. 밴드의 중핵 스티브 매리엇은 1976년도 라이브 명반 < Frampton Comes Alive! >의 피터 프램튼과 블루스 록 밴드 험블 파이를 결성했고 키보드의 이언 맥라건과 드러머 케니 존스, 또 다른 중추였던 로니 레인은 로니 우드, 로드 스튜어트와의 도원결의로 ‘Stay with me’의 하드 록 집단 페이시스가 탄생했다. 미래에 이어진 굵직한 계보도는 스몰 페이시스의 영향력을 입증했다. (염동교)
추천곡 :‘Odgens' nut gone flake', ‘Itchycoo park’, ‘Lazy sunday’, ‘Tin soldier’
스윙잉 블루 진스(The Swinging Blue Jeans)
비틀스가 나고 자란 리버풀의 캐번 클럽에서 성장한 밴드는 비단 비틀스 뿐만이 아니었다. 캐번 클럽을 중심으로 한 스키플 - 로큰롤 신인 머지 사운드는 1960년대 수많은 영국 밴드들의 온상이 됐다. 초기 스키플 밴드 블루진스(Bluegenes)로 활동, 로큰롤 밴드로 전향한 스윙잉 블루 진스 또한 이러한 머지 사운드의 중심에 선 밴드였다. 레이 에니스(Ray Ennis), 레스 브레이드(Les Braid) 등 5인조 밴드로 새로이 시작한 이들은 첫 싱글인 ‘It’s too late’을 영국 차트 30위에 올리며 이름을 알렸고, 폴 모스(Paul Moss)의 이탈 이후 4인조로 개편, 이어 ‘The hippy hippy shake’라는 히트곡을 남기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 성공에 힘입어 ‘Good golly Miss Molly’, ‘You’re no good’ 등의 트랙들을 영국 차트 상위에 올려놓기도 한 이들이지만 길지 않았던 머지 사운드의 대세와 함께 점차 저물어 역사 속으로 남았다. (이승원)
추천곡 : ‘The hippy hippy shake’, ‘You’re no good’, ‘Good golly Miss Molly’
뎀(Them)
패티 스미스, 도어스의 짐 모리슨, 그린 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이 애타게 부르짖던 이름 ’Gloria’의 시작은 밴 모리슨이 이끄는 뎀이었다. 벨파스트에서 결성한 5인조 밴드 뎀은 1965년 1집 < The Angry Young Them >, 1966년 2집 < Them Again >을 발표, 리더 밴 모리슨은 색소폰과 하모니카,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한 특유의 즉흥성으로 강렬한 개성을 확보해 인지도를 쌓았다. 이들의 성공은 브리티쉬 인베이전 열풍을 타고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아일랜드의 포크와 미국식 블루스의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Here comes the nights’, ’Baby please don’t go’의 히트를 발판으로 열광적인 미국 투어를 개최한 그들의 인기는 멤버 간 분쟁으로 1년 만에 막을 내린다. 뎀은 분쟁 이후 하향세를 피하지 못해 1972년 해체를 맞았지만, 밴 모리슨은 건재했다. 1967년, 밴드에서 탈퇴한 밴 모리슨은 영화 < 적과의 동침 >에도 삽입된 ’Brown eyed girl’를 시작으로 성공을 다시 이어갔다.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록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운 예술적 탐미를 이어간 그는 아일랜드 출신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아티스트, 밴 모리슨 경으로 거듭났다. (김태훈)
추천곡 : ‘Gloria’, ‘Here comes the nights’, ‘Baby please don’t go’
트록스(The Troggs)
4인조 구성이나 언뜻 얌전해보이는 커버 등 비틀스를 연상케 하는 외적 요소와 달리 트록스는 거친 매력으로 일종의 음악 역수출을 이뤄냈다. 킹크스의 매니저에게 발탁된 소년들이 차트에도 오르지 못했던 미국 밴드의 ‘Wild thing’을 리메이크하여 미국 정상을 순식간에 탈환한 것이다. 반항기 가득한 팀은 기존 블루스 풍의 원곡을 ‘트록스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단순하고 강한 힘으로 내려 꽂는 기타 스트로크와 반항을 머금은 후렴구로 꾸몄다. 같은 스타일의 ‘I can’t control myself’에도 팀의 야생미가 생생하다. 그야말로 태초의 펑크 탄생, 이는 곧 섹스 피스톨즈 등 이후 펑크 세대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트록스의 진가는 극적 반전에 도사린다. 영화 < 러브 액츄얼리 >의 달콤씁쓸한 분위기를 담당하는 주제가 ‘Christams is all around’, 그 원곡인 ’Love is all around’ 역시 이들의 일부이긴 마찬가지. 거칠게 휘몰아치거나 혹은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이 영국인들은 정말 입맛대로 미국을 가지고 놀았다.(손민현)
추천곡 : ‘Wild thing’, ‘I can’t control myself’, ‘Love is all around’, ‘With a girl like you’
야드버즈(The Yardbirds)
영국 일렉트릭 기타 연주의 명수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 등 전설의 빅3가 거쳐 간 그룹이란 사실 하나로 역사의 환대를 받는 그룹. 심지어 제프 벡과 지미 페이지는 1966년 함께 했다. 블루스나 사이키델릭 록이란 같은 땅을 딛었지만 셋은 엄연히 다른 연주 질서의 세계를 살았다. 물론 공은 하나로 축약된다. 그 경이로운 연주력과 더 거셌던 후대로의 호흡을 떨치면서 전무후무한 로큰롤 지평을 열어놓았다는 사실! 클랩튼의 크림(Cream), 벡의 제프 벡 그룹, 페이지의 레드 제플린이란 눈부신 가지치기가 입증한다. 역사적 의미만이 아니라 영미를 관통하는 상업적 결실도 수확했다. 야드버즈 이름만 대도 팬들이 줄줄이 읊을 ‘For your love’, ‘Heart full of soul’, ‘Shapes of things’, ‘Over under sidesway down’ 등 슈퍼히트작들이 있다. 빅3 중 이후 행보에 있어서 가장 덜 이름난 제프 벡이 맨 앞 곡 빼고 이 그룹 성공작을 거의 전담한 것도 특기사항. 고교 1년 때 한 살 위 동네 형이 한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야드버즈를 몰라? 얘가 헛짓거리만 하고 있네!” 한국의 10대도 포섭한 광활한 전지구적 침공, 진정한 브리티시 인베이전. (임진모)
추천곡 : ‘For your love’, ‘Heart full of soul’, ‘Shapes of things’
좀비스(The Zombies)
우리나라에서 좀비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벤 E. 킹의 ‘Stand by me’ 베이스라인을 닮은) ‘Time of the season’의 감각적인 전주와 첫 소절은 익숙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1964년 데뷔 싱글인 ‘She’s not there’를 영국 12위에 올리고 빌보드에서는 훨씬 높은 2위까지 도달한 밴드는 발 빠르게 미국에 진출하여 ‘Tell her no’ 또한 6위까지 올렸지만 이후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한 채 낙담하게 된다. 결국 반등에 실패한 팀은 1967년 해산을 맞이했지만, 이듬해가 되어서야 발매된 < Odessey And Oracle >의 트랙 ‘Time of the season’이 빌보드 3위라는 큰 흥행을 거두며 뒤늦은 영예를 안았다. 비록 밴드가 그대로 컴백하는 일은 없었으나 앨범 < Odessey And Oracle >은 바로크/챔버 팝 성향에 사이키델릭 팝의 요소를 배합한 것으로 추앙을 받으며 늦깎이 명반 칭호를 쟁취했고, ‘Time of the season’ 또한 미국 시트콤 < 프렌즈 >나 영화 < 크루엘라 > 등 이곳저곳에 오래 모습을 비추며 좀비처럼 불사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성현)
추천곡 : ‘She’s not there’, ’Tell her no’, ‘Time of the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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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편집: 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