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필자가 사랑하는 뮤직비디오 (국내편)

by IZM

2023.08.09



온종일 뮤직비디오만 송출하는 채널 MTV의 개막과 그 서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대중가수와 음악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했다. 뮤지션은 노래와 연주에 더해 비주얼과 영상에도 총력을 다했고, 결국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물론 최근에는 개인 미디어와 숏폼 콘텐츠의 강세로 잠시 기세가 꺾인 모습이나 팬들이여, 섣부른 상심은 접어두자. 21세기에도 사장되지 않고 생동하는 라디오처럼 뮤직비디오 역시 청각과 시각을 융합한 총체적 감상의 활로로 오래도록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1981년 8월 1일 MTV 개국을 기념하고자 이즘에서는 각 필자의 애정이 깃든 뮤직비디오를 선정했다. 각자의 음악적 주관에 기댔던 이전과 미묘하게 다른 이번 리스트에는 하나의 영상을 두고 각자 경험한 사랑의 이유를 늘어놓는가 하면, 선율에 녹아든 그림같은 아름다움을 설파하기도 하고, 영상에 담긴 의미와 매력을 집어내기도 한다. 지금부터 몇분간은 좋아하는 비디오를 깊게 감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IZM 필자가 사랑하는 뮤직비디오', 이번에는 국내편이다. (손민현)




스월비(Swervy) - 'Art gang money' (2019)

시작은 패션 브랜드 스콜록트(Skoloct)에 대한 애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단순한 브랜드 홍보를 넘어 스월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Art gang money'의 뮤직비디오는 반항이나 저항을 넘어 광기 섞인 아나키즘마저 느껴진다. 수많은 이미지를 배합한 콜라주가 빠르게 스치는 동안, 그 중간에서 랩을 뱉는 그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자신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무기인 음악과 패션의 만남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자 해방이다. 그는 불안과 혼란의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을 추구하며 자유를 얻는다. 'Art gang money'는 그런 그의 음악 세계를 살짝 맛보여 주는 강렬한 예고편이었다. (김태훈)




레드벨벳(Red Velvet) - '피카부 (Peek-a-boo)' (2017)

아이돌 팝의 범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섬뜩한 연출이다. 영미권에서 유행한 공포 영화들처럼 어두운 서사를 레드벨벳의 메인 콘셉트 중 하나인 벨벳 테마의 감각적인 이미지와 세련되게 결합하여 그룹의 다채로운 매력을 진하게 드러낸다. 급변하는 강한 자극에 중독된 화자가 풀어내는 가사는 현대적인 사랑의 새로운 한 양태를 떠올리게 하고, 이를 스릴 넘치는 게임으로 비유하여 묘한 두려움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렇게 불안 속으로 들어가 레드벨벳 특유의 알쏭달쏭한 퍼즐을 풀다 보면 어느새 조용히 다가와 '까꿍' 하며 놀라게 하는 목소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김호현)




이정현 - '미쳐' (2001)

이정현은 고릿적부터 시네마토그래피를 십분 활용한 가수였다. 영상 예술의 무제한적 가능성으로 독자적인 콘셉트를 탁월하게 시각화하곤 했다. 새천년의 혼돈과 과도함을 집약시킨 '와'와 '너'를 시작으로 동양풍의 '달아달아'와 야생적인 '아리아리', 종국엔 박찬욱 감독의 지원을 받으며 호러 단편 'V'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공들인 미술과 스케일이 돋보이는 대작들도 좋지만 비교적 보편적인 축에 속하는 '미쳐'를 특히 좋아한다. '보는 음악'이라는 뮤직비디오의 사명과 맞게 천의 얼굴을 가진 이정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기 때문. 연인에게 버림받은 처연한 여인, 생기를 품은 미녀, 그리고 집념에 사로잡혀 광기 어린 흑마법사까지, 제각기 다른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동성애 암시와 극단적인 결말로 드라마적 흥미를 잡은 것은 물론 보깅과 유사한 동작으로 그녀의 활동 중 제일 격렬한 난이도를 선보였던 군무도 눈에 띈다. 가수와 배우의 재능을 모두 갖춘 이정현의 정체성은 역시 뮤직비디오라는 매체에서 가장 발광하며 피어난다. (박태임)




엑스엑스엑스(XXX) - '승무원' (2016)

파격적인 주제와 날이 선 가사, 전위적인 전자음으로 국내 익스페리멘탈 힙합의 저변을 확대한 XXX는 등장과 동시에 힙합 신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첫 번째 EP < Kyomi >에 수록한 '승무원'은 김심야와 프랭크 두 아티스트의 음악적 세계관을 요약한다. 벌스 사이를 채우는 공격적인 비트와 김심야의 목소리를 사운드 요소로 적극 활용한 제작, 곡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염세적인 가사가 그것이다. 프랑스 애니메이터 매티스 도비에(Mattis Dovier)가 제작해 기괴하고 충격적인 흑과 백의 8비트 뮤직비디오는 노랫말의 부족한 설명을 보충한다. 공식적으로 XXX가 이에 대해 해설한 바는 없지만 매티스가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비디오 따르면 이는 '오늘날의 부적절한 소비행태를 비유한다'고 전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움의 표상인 승무원을 통해 화려한 것 이면의 어두움을 흑과 백의 대비로 표현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백종권)




가비엔제이(Gavy NJ) - 'Happiness' (2005)

그 시절은 다 그랬다. 아무리 K발라드가 '전형적'이라 볼멘소리를 해도 성장기를 함께한 이 곡처럼 그 시절 그 감성은 어쩔 수 없이 내 안의 '쏘울'이 되어 흐른다. 짙은, 사랑, 상처, 우정, 아픔 등을 한 데 잘 비벼 K쏘울화한 노래는 곡도 곡이지만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서사가 완성된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두 죽마고우의 이야기. 사랑을 상상으로만 맛봤던 10대 시절, 이 영상을 보고 나는 수천 번도 넘게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여자는 태어나 세 번 운다”는 명문 속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이 작품으로 채웠다. (박수진)




브레이브 걸스 - '술버릇 (운전만해 그후)' (2021)

밤이지만 색감은 선명하고 화려하며 아름답다. 영화 < 블레이드 러너 >의 사이버 펑크 세트가 떠오르는 배경 속에서 민영, 유정, 은지, 유나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힘들어 하는 표정연기를 시전하고 단단하며 확신에 찬 보컬은 음악을 채운다. 1980년대의 팝 사운드에 네덜란드의 댄스가수 씨씨 캐치의 'Soul survivor'의 리듬을 절중한 '술버릇'은 다른 걸그룹들의 노래들과 차별점을 두면서 브레이브걸스의 음악적인 역량을 확장했다. 아울러 중간에 연주자로 잠깐 등장하는 소속사 후배 그룹 다크비의 모습도 반갑다. (소승근)




디피알 이안(DPR IAN) - 'Nerves' (2021)

고백하자면 비련의 주인공을 동경한다. 공감의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진정 사랑하던 무언가를 잃고 그제야 드러나는 결여된 모습이 한 사람의 순수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 속에서만 해당한다.) 이에 음악부터 비주얼과 뮤직비디오 연출. 심지어 외모마저 갖춘 예술가 디피알 이안이 직접 연기하는 혼란은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아 저항 없이 마음에 안착한다. 휘몰아치는 이별을 마치 깨진 거울처럼 감각적으로 조각내 모자이크마냥 하나하나 이어 붙인 불안을 타고 가다 보면 결국 모든 걸 받아들여 웃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불에 그을리면 글자가 나타나는 실물 앨범을 포함, 지독히 계획적인 설계에 시작점이자 자신도 모르게 아티스트의 매력에 엉켜버릴 거미줄과 같은 작품. (손기호)




나이트오프(Night Off) - '잠' (2018)

누군가의 사랑은 아리고 처연하다. 한국 모던 록 밴드의 두 거장 못(Mot)의 이이언과 언니네 이발관의 이능룡이 손을 맞댄 프로젝트 밴드, 나이트 오프의 '잠'은 자기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위기의 순간에 아련한 안부인사를 건넨다. 언제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면의 동굴에서 고민하던 청춘은 누구나 이 독립영화스러운 영상과 마음을 후벼파는 문장들에 동질감과 위안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만 존재하는 폐건물에 다소 서투른 매력으로 요점을 짚어내는 목소리와 잔잔한 선율이 겹쳐지면 곧 양 주인공의 감정선이 미묘하게 교차되는 침묵의 절정에 이른다. 한 줌의 대사도 존재하지 않는 이 조용한 위로가 음악만큼 짧지도 않고, 영화만큼 길지도 않아 참 적당하다. 잠시 낮잠에 든 것처럼 마음에 머물다 간 이 이야기를 사랑한다. (손민현)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 - 'Abracadabra' (2009)

'Abracadabra'는 알앤비 계통의 보컬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를 걸크러시 아이돌 스타로 180도 변신시킨 일렉트로닉 팝이다. 낯선 기계음과 오토튠 탓에 음악만으로는 애매한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지만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판도가 달라졌다. BDSM, 관음증, 동성애 등 사회적 금기를 쓸어 담은 서사와 더불어 '시건방춤'을 포함한 도발적인 안무는 논란을 초월해 전국을 강타했다. 이 노래, 나아가 그룹의 성공은 이 뮤직비디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창백한 색조의 스튜디오 안무 영상은 최소한의 고전적인 연출을 쓴 만큼 지금까지도 그때의 충격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K-팝에서 이런 아찔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귀하다. (신하영)




혁오 - 'Love ya!' (2018)

'사랑엔 국경과 종교, 나이도 없다.'라는 말을 종종 쓰지만 아직도 많은 선입견이 앞을 가로막는다. 때론 그 장벽에 낙담하고 좌절하나 끝까지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켜나간다. 친구와 연인, 가족 등 다채로운 사랑의 이미지를 한 폭에 담은 'Love ya!'는 이 가림막들은 부드러이 벗겨내어 외피만 다를 뿐 결국 사랑의 본질은 같음을 설파한다. 화면에 활자를 등장시키고 장면을 급전환하는 감각적인 연출은 영국 패션 사진작가 마크 레본의 작품. 미대 출신 오혁이 반영돼서일까, 'Love ya!' 이외에도 박광수 작가와 협업한 'Tomboy'나 북유럽 감성을 담은 '공드리' 처럼 혁오의 뮤직비디오는 개성적이다. (염동교)




선우정아 - '봄처녀' (2015)

진정 한국적인 관능이다. 외설의 경계를 넘을 듯 말 듯 살살 간질이는, 고전문학 속 히로인들이 가지던 그 순수한 섹슈얼리티의 재현이 여기에 있다. 심지어 다분히 현대적이기까지. 여러 봄처녀들과 함께 주조된 파스텔 색감의 감각적 영상미는 10년에 가까운 세월에도 '세련'이라는 칭호를 굳건히 지켜낸다. 과거와 현재의 향취가 농밀하게 공존하는, 그 어떤 뮤직비디오보다 서울스러운 '서울의 봄'. 언제쯤 촌스러워질지 아직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승원)




엠시 스나이퍼(MC Sniper) - 'Better than yesterday' (2007)

단순하고 투박해서 좋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별거 없다. 동네 피시방 가는 골목길에서 만나면 바로 눈 깔아야 할 것 같은 노는 형들이 담배 한 대씩 폼나게 빨면서 한껏 거들먹거리는 게 다다. < 서든어택 > 그래픽을 연상케 하는 촌스러운 자막으로 소개된 래퍼들이 거칠거칠한 옷을 입고 내리쬐는 태양 아래 시청자를 때리기라도 할 듯 공격적인 제스처로 열렬히 세상에 대한 화와 패기를 토해낸다. 마음속 피 끓는 열정을 자극한다. 10살 때 처음 이 노래를 사촌 형에게 소개받았을 때는 마냥 빠르고 신나는 노래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여기 래퍼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고 들으니 감흥이 새롭다. 같이 세상 욕 실컷 하고 함께 힘낼 수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라 좋다. (이홍현)




유브이(UV) - '이태원 프리덤 (With JYP)' (2011)

뮤직과 비디오가 아닌, 뮤직비디오를 충실히 활용하고 있는 팀이다. 음악의 이야기를 구현하고, 장르의 특색을 살리며, 참여 뮤지션의 이미지를 적절히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개그맨 출신다운 멤버 유세윤의 재치 한 스푼을 더하면 유브이 표 뮤비가 완성된다. 어느 하나를 대표작이라고 뽑기 뭐할 만큼 모든 작품의 개성이 살아있다. 그중 '이태원 프리덤'은 런던 보이스의 'Harlem desire'를 오마주했다. 음악도 당연히 그 시절의 유로댄스를 빌려와 198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악마 같은 중독성을 발휘하는 JYP의 '원' 자 압운이 압권이다. 이러한 음악적 묘미가 뮤직비디오와 만나 궁극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지 않을까. 듀스를 레퍼런스 삼은 '집행유애'도 마찬가지다. (임동엽)




에픽하이(Epik High) - 'Born hater (Feat. 빈지노, 버벌진트, B.I, MINO, BOBBY)' (2014)

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가져온 신드롬을 감히 한 문단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일찍이 모바일 시대를 고려해 도입한 세로 프레임의 촬영 기법부터 시작된 남다른 선구안은, 그로부터 추후 등장할 'Face id'의 프리퀄이자 숏폼 콘텐츠의 전초전이라 부르고 싶다. 7대 죄악을 콘셉트 삼은 독특한 연출만으로도 아찔하게 놀랍다. 하나 이에 그치지 않고 전개에 맞춰 정교하게 전환되는 레이아웃과 자신의 차례마다 특색을 온전히 드러내는 래퍼들의 퍼포먼스가 합쳐지자 가히 유례없을 결과물로 둔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회수와 차트 성적이 그 여파를 방증한다. 베테랑과 라이징이 눈앞에 생생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청자가 진입할 수 있도록 유혹하는, 뮤직비디오의 순기능이 가장 극대화된 역사적 순간. (장준환)




방탄소년단 - 'We are bulletproof : the eternal' (2020)

끝없이 걷고 또 뛰었다. 정규 4집 < Map Of The Soul : 7 >(2020)에 수록된 곡은 갖은 역경을 딛고 최정상에 올라선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7년 스토리의 정수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꾸민 영상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시절의 낯익은 연습실로부터 출발하며, 데뷔곡 'No more dream'에서 직전 '작은 것들을 위한 시'까지 그간 공개한 뮤직비디오 속 장면 하나하나를 모아 몰입도 절정의 파노라마를 펼쳐낸다. 태초의 정체성 표명 'We are bulletproof pt.2'(2013) 후렴구를 다시 들여온 '내게 돌을 던져/우린 겁이 없어 anymore' 역시 굳건했던 일곱 소망이 수억의 보라색 물결로 피어오른 모습과 오버랩되며 재차 울컥임을 일으킨다. 팝스타 BTS가 아닌 K팝 아이돌 방탄소년단을 좋아했고, 사랑했고, 동경했던 모든 순간이 여기 숨 쉬고 있다. (정다열)




트리플에스(tripleS) - 'Cherry talk' (2023)

2020년대 판 < 접속 >이다. 차이가 있다면 소재가 PC통신에서 스마트폰 채팅으로, 주제가 남녀의 사랑에서 소녀들의 우정으로 변했다는 점. 트리플에스의 'Cherry talk'은 이제 완전히 일상화된 온라인 연결을 매개로 한 신세대의 소통을 다룬다. 사진과 이모티콘을 통해 친구가 되고 물리적 거리를 넘어 심리적 밀착을 이루는 묘사는 지나친 기술 긍정주의가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Z세대 멤버들의 연령대를 생각하면 뮤직비디오의 시각은 오히려 리얼리즘에 가깝다. 오프라인 접촉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결말부의 “거북이 보러 올래?” 또한 영리하다. 본질적인 생각만 같다면 수단이 뭐가 중요하랴. 그렇게 우리의 스마트폰 중독은 문화가 되었고, 아이브로 대변되는 낭만주의와 뉴진스의 브레히트적 세계관 사이 트리플에스의 사실주의가 K팝에 도래했다. (한성현)


이미지 편집: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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