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뜨겁게 - 2024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여름의 인천. 휴가를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방향을 틀어 송도에서 3일간 펼쳐지는 음악 축제를 위해 올해도 통산 15만 명이 밀집해 드럼과 심장을 맞바꿨다. 한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언급했듯 많은 ‘아웅다웅’도 오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같은 손짓과 몸짓으로 화합하며 양껏 뜨거운 축제와 음악의 장을 즐겼다. 또 다시 화려한 계절을 예고한 이듬해 20주년 축제를 기대하며, 그리고 그을린 피부도 후회스럽지 않은 얼마전 사흘의 경험을 추억하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뜨거웠던 현장을 기대한다. (정기엽)
킴 고든(Kim Gordon)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상징과도 같은 소닉 유스는 메인스트림 반대 축에서 고집과 소신으로 외곬 행보를 지켜나갔다. 오죽하면 1980년대 절정의 뉴웨이브에 대한 반작용으로 노웨이브(No Wave) 칭호가 붙을 정도였다. 소닉 유스의 원핵 킴 고든의 펜타포트 합류가 끌어낸 기대감은 이내 소닉 유스 없는 솔로 신보 < The Collective >(2024) 위주 셋리스트에 우려로 변모하기도 했다. 짧은 검정 트레이닝 팬츠를 입은 채 무대에 선 킴은 각종 의문부호 불식하듯 ‘BYE BYE”를 시작과 끝으로 70분 무아경에 빠져들었고, 트랩과 인더스트리얼, 노이즈가 어우러진 전위적 록 행렬은 소닉 유스만큼 당당하고 쿨했다. 베이스 기타리스트 카밀라 찰스워스(Camilla Charlesworth)와 키보디스트 겸 프로그래머 사라 레지스터(Sarah Register)드러머 마디 복트(Madi Vogt) 등 젊은 연주자들은 롤 모델과의 협연에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고 실력 발휘했다. 일흔하나 예술가의 소리와 몸짓은 해체와 전복, 저항 등 포스트모더니즘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염동교)
라이드(Ride)
음반 단위로 1990년대 영국 록을 들었던 이들이라면 푸른색 파도의 신비로운 앨범 이미지를 기억할테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걸작 < Isn’t Everything > 2년 후에 나온 라이드의 < Nowhere >는 더블린 출신 슈게이즈 권위자와는 달리 스미스와 스톤 로지스의 기타 팝의 반영으로 슈게이즈 명반 지위를 획득했다. 그래서인지 이 날 3시간 전 등장한 파란노을과는 같은 슈게이즈의 우산 아래 상이한 선율 중심의 1980~90년대 잉글랜드 기타 팝/록을 펼쳐 보였다. 카메라는 밴드의 두 주축인 보컬 마크 가드너와 기타 플레이어 앤디 벨을 번갈아 포착했고 ‘Vapor Trail’과 ‘Seagul’ 등 < Nowhere > 속 명작이 푸른 물결의 전설을 재현했다. 반면 ‘Peace sign’과 ‘Last frontier’같은 2024년 신보 < Interplay >는 신시사이저의 첨가로 전자음악의 방향성을 탐사했고 심지어 노이!와 파우스트스러운 독일 크라우트록의 잔향까지 드리웠다. 1990년대 디스코그래피의 팬들이라면 생경한 사운드스케이프는 37년차 밴드가 과거에 영광에만 묶여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희소식이었다. (염동교)
잭 화이트(Jack White)
2024년 8월 3일, 우리는 기타의 신을 영접했다. 잭 화이트는 자신의 아우라 하나만으로 모두를 광란의 장에 던져 놓았다. 그의 팬이든, 처음 접한 사람이든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관객이 그의 기타 퍼포먼스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몸을 부딪치고 탄성을 내질렀다. 'Lazaretto'를 비롯한 주요 곡은 물론, 'Black math', 'Fell in love with a girl' 등 화이트 스트라입스 시절의 명곡도 빠트리지 않고 연주하면서 공연을 이어가는 동안, 그의 곡이 생소한 사람들도 즐겁게 놀 만한 포인트까지 주도적으로 잡아줘 더 큰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특히 공연 이틀 전, 기습 발매한 정규앨범 < No Name >의 수록곡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은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리프를 가진 'Seven nation army'가 울려 퍼졌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단 한 곡만으로 하나의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기타와 평생을 함께한 그의 삶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각자의 가슴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 (김태훈)
매미(MEMI)
펜타포트 기간 내내 울려 퍼진 여름철 매미들의 울음소리만큼 열정적이었던 또 다른 매미가 있었다. 밴드 24아워즈, 서울문으로 이름을 알렸던 싱어송라이터 매미는 글로벌 스테이지의 일요일 마지막 주자로서 광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해 모든 관중의 뇌리에 그의 이름을 각인했다. 오랫동안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했던 만큼, 화려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인트로부터 'I don't give a', 'Bassist'를 연속으로 들려주며 쫀득한 그루브가 살아 숨 쉬는 로큰롤의 향연을 선사했다. 감성적인 코드의 'Sorry for my reply', 인상적인 세션의 합을 선보인 마지막 곡 'Guitar pick'까지, 30분간 압축적으로 진행된 무대였지만 이미 모든 관중은 그의 매력에 홀려 있었다. 조만간 그들을 더 큰 무대에서 볼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미는 이날 가장 밝게 빛난 록스타였다. (김태훈)
녹황색사회(Ryokuoushoku Shakai)
오묘한 색의 행복한 기운이 언어, 비언어적으로 넘쳐나던 공연이었다. 서로 다른 말이 낯설게 느껴질 관객들을 위해 한글 가사를 자막으로 띄웠고, ‘감사합니다’ 정도가 아니라 멘트 전체를 우리나라 말로 구사하며 기쁘고 벅찬 마음을 전했다. 일본의 혼성 4인조 밴드 녹황색사회가 표현하는 음악은 부정으로 얼룩지는 세상을 좀 더 밝은 색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노력을 담는다. 선율에 넘쳐 흐르는 낙관과 희망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한 여름을 여는 ‘サマータイムシンデレラ(Summer Time Cinderella)’부터 모두가 필요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중독적인 멜로디로 설파하는 ‘キャラクター(Character)’ 등 총 10곡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녹색, 황색 컨페티를 흩날리며 부른 대표곡 ‘Mela!’의 무대는 명장면처럼 빛났다. 이들이 공연 내내 전달한 행복 섞인 시선은 세상을 더욱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좋은 영화 한 편이 일상을 내다보는 시야를 바꾸듯이. (정기엽)
이상은
일요일 해 질 녘, 선선한 바람과 함께 등장한 이상은은 자신의 무대를 찾아온 관중에게 순수한 행복을 선물했다. '그대 떠난 후'로 시작을 알린 그는 수줍은 인사와 함께 '비밀의 화원'을 들려주며 모두를 미소 짓게 했다. 그 또한 곡이 끝난 후, '여러분들 참 행복해 보여요'라는 멘트와 함께 즐거운 감정을 나누었다. 'Relax', '사랑할꺼야', '넌 아름다워' 등의 향연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무르익자 저마다 깃발 근처에서 몸을 흔들거나 원을 그리고 손뼉을 치는 등 각자의 행복을 표현하며 무대를 즐겼다. 마지막 곡 '언젠가는'의 순간은 가사를 한 소절씩 곱씹으며 각각의 삶을 되새길 수 있었던 감동의 클라이맥스였다. 폭발적인 연주나 화려한 기교는 없었을지언정, 이상은이라는 가수가 지금까지 달려온 삶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담백하고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김태훈)
세풀투라(Sepultura)
킴 고든만큼이나 깜짝 놀란 라인업 뉴스가 바로 결성 40주년의 메탈 전설 세풀투라였다. 앙그라와 더불어 브라질 메탈의 자존심 같은 이들의 참여 소식에 일부 메탈 마니아들은 “일요일엔 세풀투라 보러 간다” 선언으로 화답했다. 밴드의 원류와도 같은 맥스, 이고르 카발레라 형제가 빠진 공간을 기교와 파워가 두루 발달한 리드 기타리스트 안드레아스 키써가 우직하게 지켜냈고, 1997년부터 프론트퍼슨에 선 데릭 그린은 거구에 준하는 카리스마와 그에 비례한 땀을 대량 분출했다. 스래시/데스 계열에서 그루브 메탈로의 변모를 꾀한 1993년 음반 < Chaos A.D. > 수록곡 ‘Refuse/resist’와 ‘Terrirotry’같은 전성기 작품들로 붉은빛 힐스테이트 스테이지를 이열치열 달궜고 그루브 메탈과 누 메탈의 교두보에 있는 명곡 ‘Roots by roots’에서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은 극에 달했다. 점차 메인스트림화하는 락페스티벌에서 ‘큰형님들 메탈’에 굶주리던 청중에게 감격을 안겨준 이 무대는 본능과 원초성에 기댄 메탈이 본질적으로 소멸할 수 없는 장르임을 증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포르투갈어로 ‘무덤’이란 무시무시한 뜻을 가진 이 브라질리언 4인조는 바로 다음 날 고별 투어 ‘Celebrating Life Through Death’의 일환으로 신촌 원더로크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펼쳤다. 페스티벌과는 또 다른 매력의 밀도감을 선사한 2시간이었다. (염동교)
잔나비
헤드라이너라는 왕좌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했다. ‘비틀 파워!’, ‘고백 극장’으로 뮤지컬 같이 구축한 무대 위 보컬인 최정훈의 표현력은 청중이 단번에 몰입하기에 충분한 도입이었다. 또한 기타리스트 김도형의 연주로 주도한 ‘전설’, ‘나쁜 꿈’ 등의 흐름 또한 특유의 웅장함으로 압도하는 순간을 만들었다. 기존의 밴드 편성에 색소폰을 추가해 ‘Surprise!’, ‘Jungle’ 등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은 다양한 곡들은 잔나비가 이 무대에 투자한 노력을 가늠하게 했다. 잔나비가 10년 전 슈퍼루키로 펜타포트 무대에 오른 때를 반추하며 노래하고 연주한 80분, 현세대 가장 파급력 있는 밴드가 제일 마지막 순서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축제의 막을 내렸다. 그 덕분에 우리의 뜨거운 여름밤이 가도 남은 건 볼품 없지 않았다. (정기엽)
다채로운 음악과 함께한 순간이 올해도 다양하게 기억에 각인됐다. 메탈 밴드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는 가죽 코트와 페이스페인팅 등의 용모에서 엿볼 수 있는 강한 공연을 끝낸 직후 ‘괜찮으시면 같이 사진 찍겠냐’며 공손한 태도를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펑크(Punk) 밴드 턴스타일이 관객들을 끌어올려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무대에 발을 디딘 순간은 역사라고 칭할 만큼 이례적인 광경이었다. 솔직해지자면 그때 아무런 안전사고도 벌어지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돌발상황에 훌륭하게 대처한 운영진의 빠른 판단 덕택일 것이다.
이 사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음악 하나에만 열중해 무대를 즐길 수 있게 해준 여러 노력들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쇄도했을 스탭들과 의료진의 노력, 쿨존과 소방차 살수 등 기록적인 더위를 미리 대비한 운영 등 축제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을 지 현장에서 피부로 와닿았다. 화려한 무대 뒤편의 노고를 치하하며, 국내 최대의 페스티벌이 지지대와 울타리를 더 단단하게 구축하는 덕분에 음악으로 점점 더 단단히 구축한 덕분에 음악으로 수놓는 여름은 지속될 것이다. (정기엽)
사진: 펜타포트 공식, 김태훈, 염동교, 정기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