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하나 된 세상,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4(ONE UNIVERSE FESTIVAL 2024) 2일 차 리뷰
여름철 음악 마니아들을 반기는 것이 오로지 ‘록’ 페스티벌이던 시절은 끝났다. 코로나19의 종식을 기점 삼아 다양한 장르로 하드코어 팬 외에도 여러 관객을 끌어모으는 페스티벌이 대폭 늘어난 추세다. 그중 2023년 처음 개최된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ONE UNIVERSE FESTIVAL)은 힙합 중심으로 테마를 잡으며 헤드라이너 키드 커디와 릴 우지 버트를 비롯해 런 DMC와 에스파 등 호화 라인업으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두 번째 개최인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4는 8월 24일 전자음악 위주의 라인업과 힙합/알앤비 중심의 25일로 특색 있게 페스티벌을 꾸몄다. 끝을 모르고 지속될 것 같았던 찜통더위가 ‘처서 매직’ 덕분인지 살짝 기세가 꺾인 8월 여름, 서울대공원에서의 일요일 공연 후기를 전한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관객들이 음악으로 하나가 된 하루였다.
초반에는 비교적 ‘아이돌’로 묶을 수 있는 팀이 무대에 올랐다. 문을 연 것은 걸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 이브(Yves). 프로듀서 밀릭이 이끄는 파익스퍼밀 레이블에 들어가 솔로 데뷔 EP < Loop >를 발매한 그는 수록곡 외에도 테일러 스위프트, 에이브릴 라빈 “선배님”의 커버를 곁들이며 시간을 알차게 채웠다. 마지막 곡으로 부른 ‘Loop’는 UK 개러지와 드럼 앤 베이스 장르에서 현재 가장 각광받는 핑크팬서리스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4’의 이름처럼 여러 영역 간 결합을 나타내는 순간 중 하나였다.
두 번째 타자로는 힙합 걸그룹으로 주목받는 5인조 영파씨가 들어섰다. 마침 4일 전 세 번째 EP < Ate That >을 공개하여 화제를 모았던 상황. 힙합 문화를 전격 수용한 팀답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돌 의상 대신 스포티한 배기 팬츠가 돋보이는 패션부터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라이브에서 보여준 에너지는 관객들의 관심을 호감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데뷔 EP의 타이틀곡 ‘Macaroni cheese’, 올드스쿨 붐뱁 트랙 ‘Xxl’과 지펑크(G-funk) 느낌의 신곡 ‘Ate that’ 외에도 다채로운 수록곡을 셋리스트에 포함한 이들은 격한 안무까지 모두 소화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AR을 두껍게 깔아 빈틈을 숨기는 대신 조금 흔들릴지라도 라이브를 강조하며 보여준 열정이 더 멋진 소녀들이었다. 특히 리더 정선혜의 퍼포먼스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먹구름에 습하고 끈적거리는 날씨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관객들과 적극 소통한 영파씨는 힙합 세계에 불시착한 아이돌이 아니라 당당한 일원이 되고자 하는 포부를 당당히 드러냈다.
다음 순서로는 2000년생 3인조 래퍼 호미들이 나섰다. 올해로 5년 차, 짧지 않은 경력을 쌓은 (굳이 구분 지을 필요는 없지만) 본격 래퍼들이 주도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지코의 곡에 참여하여 대중적으로도 큰 히트를 거둔 < 스트릿 맨 파이터 > 경연곡 ‘새삥’을 셋리스트에 포함한 모습에서 확실히 일반 무대와 페스티벌 현장의 분위기 차이를 파악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라인업 중에서 헤드라이너 타일라와 더불어 가장 기대했던 팀을 고르자면 단연 바밍타이거다. 다양한 아티스트가 모여 크루 형식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지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과 영국 글라스톤베리처럼 국내외 쟁쟁한 무대에 서면서 자칭 ‘얼터너티브 K팝’ 그룹으로 열심히 활동 중이다. 이날은 오메가사피엔, 소금, 비제이 원진, 머드 더 스튜던트, 홍찬희 5인조 구성으로 나타나 기이하면서도 유쾌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등장 전 로고가 그려진 국기를 띄우면서 국가를 세우겠다는 듯한 백드롭 연출이 보여준 패기는 공연에서도 그대로였다. ‘하쿠나 마타타’ 주문을 외는 랩이 독특한 ‘Kolo kolo’와 ‘Armadillo’도 좋았지만 역시 작년 첫 정규 앨범 < January Never Dies >의 수록곡이 제일 즐거웠다. 팔을 가로로 펼친 ‘Buri buri’의 안무와 술자리를 묘사한 ‘Kamehameha’, 소금의 개성 가득한 음색이 돋보이는 ‘Moving forward’의 연속에 모두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방탄소년단의 RM이 피처링하여 화제를 모은 ‘Sexy nukim’을 부를 때에는 귀여운 안무를 보여주다가도 ‘Sudden attack’과 오메가사피엔의 ‘Pop the tag’에서는 폭발적으로 돌변하는 등 끊임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마지막 ‘Trust yourself’의 화끈한 마무리까지, 바밍타이거는 정말 잘 놀고 갔다.
햇볕이 제일 뜨거웠던 4시 20분에 나타난 에이위치(Awich)는 첫 해외 가수였다. 현재 일본 내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래퍼로 꼽히는 그는 딩고 ‘킬링벌스’ 콘텐츠 출연과 박재범의 ‘Xtra McNasty’ 피처링으로 국내에도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올해 5월 참가했던 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이 우천으로 취소되자 깜짝 클럽 공연을 열며 훌륭한 팬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번의 아쉬움을 만회하듯 멋진 여성 댄서들을 대동한 에이위치는 무대에서 종종 쏘아대는 불꽃보다 더 화끈했다. 대표곡 ‘Queendom’을 한국어 가사로 부르면서 그는 사별한 남편과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딸에 대한 사랑을 한국 관객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특히 일본인이라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발음에 모두의 감정이 요동쳤다. 이후 깜짝 게스트로 나온 래퍼 카모와 합동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낫다며 ‘Bad bad’을 부르던 그는 뛰어난 하드웨어와 심적 울림을 겸비했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관객이 늘어났다고 체감했던 피에이치원(pH-1)의 순서. 활발한 작업물 발표와 < 쇼미더머니 > 시리즈 출연으로 인해 익숙한 뮤지션답게 능숙하게 관객들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컨트롤 타워 뒤에 위치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열기를 공유했다. 숏폼 챌린지에서 애용된 히트 싱글 ‘Billie Eilish.’로 이름을 알린 아르마니 화이트(Armani White)는 세션 멤버들의 매끄러운 호응 유도와 함께 각종 댄스 묘기로 귀 못지않게 눈을 즐겁게 했다. 이른바 ‘끼쟁이’ 캐릭터라고 할까. 그러는 한편 공연 말미 세상을 떠난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에는 뜻밖의 감성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25일 공연에는 현장에 동행했던 염동교 필자의 말처럼 ‘올스타 팀’도 있었다. 바로 자이언티, 기리보이, 원슈타인, 소코도모와 프로듀서 슬롬, 피셔맨이 모인 레이블 스탠다드프렌즈(STANDARD FRIENDS)다. 창설 이후 완전체는 처음이었던 이들은 미공개 단체곡과 각자의 주요 노래를 부르며 해가 꺼진 후에도 현장을 달궜다. 중간에는 알앤비 가수 수민이 게스트로 출연하여 슬롬과의 합작 < Miniseries >와 후속작 < Miniseries 2 > 트랙들을 선보이며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그리고 엔딩곡으로 모두가 후렴을 따라 부른 ‘회전목마’는 일요일 공연의 가장 귀여운 순간으로 꼽아도 될 법하다. 뒤이은 스윙스의 공연도 굉장히 화끈했던 나머지 잠깐 만났던 지인은 너무 뛰어놀아 버린 나머지 마지막 공연은 앉아서 봐야겠다는 말을 DM으로 보냈다.
약 한 시간의 텀 사이 무대에 나타난 거대한 호랑이 모형은 이날의 헤드라이너 타일라(Tyla)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발표한 싱글 ‘Water’가 각종 콘텐츠에서 챌린지로 엄청난 유명세를 타며 빌보드 싱글 차트 7위와 그래미 시상식이 2024년 신설한 ‘베스트 아프리칸 뮤직 퍼포먼스’ 부문 수상 등 엄청난 기록을 세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로컬 댄스 장르인 아마피아노(Amapiano)를 팝적으로 해석하여 전파하고 있는 아티스트답게 유색인종 관객들이 펜스를 붙잡으며 그를 기다렸다.
예정보다 2분 빨리 기습적으로 노래를 시작한 타일라는 셀프 타이틀 데뷔 정규 앨범 수록곡 ‘Safer’를 부르며 순식간에 공연장을 거대한 야외 댄스 플로어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가만히 서서 보는 것이 불가능한, 몸을 필히 리듬에 맡기고 흐느적거려야 했다. 타일라 또한 작은 체구에도 매혹적인 안무와 함께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직까지는 발표한 음악이 정규 앨범 한 장뿐이니 레퍼토리에 어느 정도 한계는 있었지만 ‘Art’, ‘Truth or dare’, ‘Jump’ 등 고혹적인 넘버에 곁들인 안무는 확실히 그의 음악이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의 ‘보는 것’, 그리고 ‘같이 추는 것’임을 강조했다. 공연 중간 댄서들의 단독 댄스 브레이크도 그 일환이었을 테다. 마침내 엔딩곡으로 모두가 고대했던 ‘Water’를 부르는 타일라는 챌린지의 원작자다운 포스를 발휘했다. 공연이 끝나고 남아공 출신 지인들과 모여 국기를 흔들던 그는 문화 대사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노래 하나로 모두의 마음이 하나 될 수 있을까? 적어도 타일라를 보는 순간에는 긍정의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라인업으로 주목을 산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4였지만 전반적인 현장 관리도 만족스러웠다. 비가 내릴 조짐이 보이자마자 빠르게 우비를 나눠주던 현장 스태프, 인파가 몰릴 때마다 걸음에 유의하라고 외치던 곳곳의 직원 등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돋보였다. 사람들이 확연히 늘어난 타이밍에 푸드존과 스테이지 사이 통로를 추가 개방하는 교통 정리도 센스 있는 결정이었다. 대부분의 뮤지션이 5분씩 일찍 끝낸 타임 테이블, 8시경에 생각보다 빨리 재고 소진을 알린 대다수 푸드트럭과 화장실 근처에 마련한 흡연구역 등 일부 아쉬움이야 있었지만 대부분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힙합이 중심이 된 덕분이었을까, 이날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4에서는 다른 페스티벌과 비교했을 때 화려한 패션과 외국인 관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성격을 드러내는 사람들이었지만 무대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다들 같았을 것이다. 비단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4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겠지만 분열로 신음하는 시대, 역시 서로를 묶어주는 것은 음악뿐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