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시장의 새로운 물결 - 아프로비츠

by 염동교

2024.09.07


‘Water’ 2023년을 강타한 가수 타일라가 2024 8 25일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ONE UNIVERSE FESTIVSAL 24)을 통해 내한 콘서트를 펼쳤다.  큐트섹시한 캐릭터와 자신의 몸에 물을 흘리는 가감 없는 퍼포먼스로 대세 뮤지션 도장을 찍은 타일라는 2024년의 화제작 < Tyla >에 수록된 ‘Truth or dare’ ‘Art’ 같은 곡들로 축제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상징물인 거대한 호랑이와 전통 의상을 착장한 댄서들까지 볼거리가 쏟아졌다. 해당 무대의 화력과 청중의 응답은 아프리카 음악이 결코 예전처럼 이질적인 오브제가 아님을 명시했다.

 

국내 음악 팬들이 접하는 대중음악은 언어와 문화권 기준 미국과 영국, 넓게 잡아 캐나다와 호주처럼 영미권이 절대다수다. 같은 서구(西區)에 속하는 유럽이 때때로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비영어의 한계를 드러냈다. 히스패닉 인구 증폭에 기인한 1990~2000년대 라틴팝 부흥 정도를 제외하곤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제3세계 음악 사조는 대부분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났으며 이들을 한데 묶은월드뮤직이란 용어도 고유색을 경시하고 타자화한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그런 면에서 작금의 2020년대엔 세계 방방곡곡의 음악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비교적 다채롭게 드러내고 있다. 대디 양키와 제이 발빈, 배드 버니로 이어지는 레게톤 열풍이 식을 줄 모르며 케이팝의 상업적 성과도 또렷하다. 태평양 사이에 둔 두 대륙이 용틀임하는 가운데 대서양 너머 아프로비츠(Afrobeats)가 심상찮다. 2000년대 초부터 가나와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군불을 피우던 아프리카의 대중음악 조류는 이제 K팝에 스며들 만큼 그 영지를 넓히고 있다.


우선 아프로비트(Afrobeat)와 구분이 필요하다. 196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기원한 아프로비트는 아프로펑크(Afrofunk)로도 불리며, 요루바(Yoruba)와 이그보(Igbo), 하이라이프(Highlife) 등 서아프리카의 음악 스타일에 미국의 소울과 펑크(Funk)를 혼합한 변형적 성격을 띤다. 서아프리카의 배경지는 같으나 두 스타일의 시대적 간격은 삼십여 년 이상으로 1960년대 나이지리아 아프로비트 선배들이 까마득한 아프로비츠 후배에게 넓은 범위에서의 영감과 영향이 되었겠으나 직접적인 연결점을 찾긴 어렵다.



아프로비트의 권위자는 나이지리아 뮤지션 펠라 쿠티로 크림 출신 영국의 위대한 드러머 진저 베이커, 비브라폰의 권위자인 로이 에이어스 같은 협연했으며 비욘세와 카니예 웨스트가 샘플링할 만큼 영미권 음악계에 파급력이 컸다. 1966년 설립된 미국의 사회주의 무장단체 흑표당과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 및 정치에 대한 통찰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했다. 아프리카 민족의 해방을 촉구하는 쿠티의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은 밥 말리의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mism)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있다.


다시 까마득한 후배 아프로비츠로 돌아와 대표 아티스트들을 살펴보자. 레게에 전자음악을 결합한 댄스홀(Dancehall)로 리듬과 흥()을 부각한 나이지리아 출신 버나 보이는 ‘Last last’ ‘City boys’의 상업적 성과와 더불어 < Twice As Tall > 2021년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최우수 글로벌 음반(Best Global Music Album)” 수상을 두루 챙겼다. 십여 년간 신을 이끌어온 버나 보이에게 전문가들은 주춧돌의 칭호를 안겨줬다.

 

가나계 미국 가수 아마레는 2023년 평단의 극찬을 끌어낸 < Fountain Baby >를 통해 개성파 아프로비츠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아프로비츠와 댄스홀, 힙합을 엮은 알테(alte)를 특기사항로 밀고 있는 그는 소포모어 앨범 < Fountain Baby >에서 일렉트로니카에 이어 록까지 탐색하며 장르의 확장 가능성을 암시했다.




타일라가 나오기 차세대 스타 등극이 유력했던 여성 뮤지션으로 꼽혔던 템스와 아이라 스타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아프리카 요소의 혼합으로 영미권 대중의 반응을 끌어냈다. 바바툰드 올라툰지와 토니 알렌 등 아프리카 대중음악 거장의 산실과도 같았던 나이지리아 출신 아이라 스타는 영국 싱글 차트 24위와 2024년 제66회 그래미에서 최우수 아프리카 음악 퍼포먼스(Best African Music Performnace) 노미네이션으로 타일라와 더불어 가장 촉망 받는 아프리칸 팝의 별로 주목 받고 있다. 아프리칸 뮤직의 요소를 서구 리듬 앤 블루스에 여유롭게 녹여낸 신작 < Born In The Wild >로 만장일치 호평 받은 템스는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아프로비츠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역사나 부흥의 주역 타일라를 빼놓을 수 없다. 아프리칸 재즈 거성 미리암 마케바의 1968년 곡 ‘Pata pata’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약 45년 만에 빌보드 10위권에 진입한 ‘Water’는 틱톡 챌린지 등 숏폼 콘텐츠에서의 활약도가 절정이었다. 막대한 수치적 성공과 더불어 제66회 그래미가 신설한 최우수 아프리카 음악(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에서 동료 아이라 스타를 제치고 수상, 2020년대 아프리칸 팝뮤직의 기수임을 입증했다.



타일라의 음악은 아마피아노(Amapiano)와 연결된다. 1990년대 남아공에서 인기를 끈 하우스 계열의 콰이토(Kwaito) 2010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피아노는 하우스 특성상 전자 음향 비중이 높고 재즈와 소울의 요소까지 껴앉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세련미 덕에 젊은 힙스터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으며 내부에서 바이크(Bique)와 봉고피아노(Bongopiano) 등 파생물로 분화(分化) 중이다. 재즈 트럼페터 휴 마세켈라와 프로그레시 록 밴드 예스에서 활동했던 트래버 레빈 같은 걸출한 음악가를 배출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또 한 번의 비상을 예열하고 있다.


유행은 케이팝에도 번졌다. 정도는 천차만별이나 최근 르세라핌의 ‘Smart’ NCT 127 ‘Fact check (불가사의; 不可思議)’, 온앤오프의 ‘Dam dam di ram’, 투모로우바이투게더 ‘The killa (I belong to you)’ 등 많은 넘버들이 아프로비츠 스타일을 차용했다. 실력파 케이팝 그룹의 표본으로 라이징하고 있는 키스오브라이프의 신곡 ‘Sticky’도 일정 부분 아프로비츠 리듬에 기초했다. 불과 5~60년 전만해도 문화 예술 변방이자 경제 빈국이었던 코리아와 아프리카의 만남이 이색적이다.



아프로비츠를 전면화한 케이팝 그룹도 있다. 이름부터 "부족"을 의미하는 데뷔 4년차 걸그룹 트라이비는 해당 스타일의 지속적 시도로 본격적 의미에서의케이팝 아프로비츠를 펼치고 있다. 2021년 데뷔 싱글둠둠타(doom doom ta)’부터 일찌감치 아프로비츠와 하우스의 융합을 모색한 다국적 6인조는 꼭 3년 만의 ‘Diamond’ ‘Run’에서 더욱 성숙한 음악성을 선보였다. 2024 2월 작고한 트라이비의 정신적 지주 프로듀서 신사동 호랭이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트라이비를 기획할 당시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 음악 스트리밍 시장이 상승했고 아프로비츠가 각광받았다. 보통 걸크러시와 청춘 두 갈래로 나뉘는 걸그룹 시장에서 아프로비츠의 독자성을 고민했다라며 예지력을 드러냈다.

 

이 밖에도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1970년대 초반 발생한 소카 뮤직을 흡수한 아프로 소카(Afro Soca) 21세기 힙합의 주요 문법인 트랩에 사하라 사막 이남의 전통 음악을 결합한 아프로 트랩(Afro Trap),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킨샤샤의 기적으로 유명한 콩고 민주공화국의 댄스 뮤직 은돔볼로(Ndombolo) 등이 다양성을 견지하고 있다.



아직 전 세계적 인기 장르라고 보긴 어렵지만 영미권 이외의 트렌드를 진단하는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의 활약과 빌보드의 아프로비츠 차트(U.S. Afrobeats Songs) 도입, 그래미 부문의 신설(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로 점차 그 위세를 높이고 있다. 버나보이와 타일라 등 굵직한 스타뮤지션 출현과 하위 장르의 지속적 생성, 개별 아티스트의 독자성은 아프로비츠의 파도를 점차 크게 불리고 있며, 실험성과 예술성을 가미한 하위 장르의 생성과 영미권 음악과의 자유로운 상호작용도 순기능적이다. 자세한 논의 없이 제3세계 음악의 일부로 치부되었던 아프리카의 대중음악은 21세기의 아프로비츠를 통해 확고한 독자성을 건설하고 있다.

염동교(ydk88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