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지침서! 나일 로저스의 손을 거친 대표작 15선

나일 로저스(Nile Rodgers)

by IZM

2024.09.15



대중음악사의 수많은 팔방미인 중에서도 나일 로저스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명품 디스코의 대명사 쉭의 음악감독이었던 그는 1978년 작 < C'est Chic >과 이듬해 나온 < Risque >를 통해 싱글보다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앨범 단위의 디스코 명작을 이룩했다. 연주자로서도 명성이 드높은 그는 소위 “쨉쨉이”라고 불리는 처킹 기타(Chucking Guitar)의 일인자로 수많은 명곡 속 인장을 아로새겼으며 그 연주의 마력은 최정상급 퍼포먼스와 공연으로 이어졌다. 멀리 갈 것 없이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에서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뛰어난 감식안의 히트 메이커였다. 마돈나에게 톱스타 지위를 가져다준 1984년 작 < Like A Virgin >과 톰슨 트윈스의 < Here’s To Future Days >같은 주류 팝부터 쉭의 연장선인 걸밴드 시스터 슬레지의 < We Are Family > (1979)의 디스코/펑크(Funk), 제프 벡의 이색적인 기타 록 < Flash >(1985)처럼 프로듀싱 스펙트럼이 넓고도 깊었다. ‘Let's dance’로 데이비드 보위에게 1983년 빌보드 연말 결산 18위를 안겨준 것도 그다.


르세라핌, 제이홉과의 협업으로 케이팝까지 영역을 넓힌 나일 로저스는 비욘세의 화제작 < Cowboy Carter >의 ‘Levii's jean’ 크레디트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2023년 10월 엔피알 타이니 데스크에서 펼친 소편성 쇼에서도 전혀 녹슬지 않은 감각과 기량을 선보였다. 최고의 기타 플레이어이자 프로듀서, 대중음악계 “리빙레전드”인 그의 내한 콘서트를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다. (염동교)




쉭(Chic) ‘Dance, dance, dance (Yowsah, Yowsah, Yowsah)’ (1977)

많은 이들이 쉭을 떠올릴 때 단 두 곡 ‘Good times’, ‘Le freak’을 말할 공산이 크다. 워낙 유명한 곡들에 샘플링 되기도 했고,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귀에 익숙할 정도로 자주 들리는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깊게 관심의 폭을 넓힌다면 바로 이 싱글 ‘Dance, dance, dance(Yowsah. Yowsah. Yowsah)’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곡은 펑크, 디스코 거장 쉭의 시작, 그 데뷔 음반 < Chic >의 첫 싱글이다. 처음이 가지는 신성한 의미 말고도 이 작품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 안에는 이후 이들이 펼쳐낼 히트곡 퍼레이드의 모든 초석이 다 담겨 있다. 나일 로저스 특유의 넘실대는 일렉트릭 기타 리프부터 모세혈관까지 반응하게 하는 버나드 에드워즈의 베이스 라인이 모여 펑크의 진수를 뽑아냈다. 거기에 박수 소리, 현악기, 피아노, 신시사이저 등을 고루 가미해 독특한 질감을 뽑아낸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1970년대 베트남전의 상흔을 잊고, 춤추며 전 세대가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그룹 쉭! 그 스타트라인에 이 노래가 있다. (박수진)




쉭(Chic) ‘Le freak’ (1978)

어떤 예술가는 입장을 거부당하면 명작으로 화답한다. 드레스 코드 오류로 식당에서 쫓겨난 필 콜린스가 대표작을 통해 통쾌히 복수했던 것처럼 쉭 역시 디스코 성지 스튜디오 54의 철저한 출입 제한 정책에서 'Le freak'의 단초를 얻는다. 가장 뇌쇄적이고 활발했던 클럽 파티에 초대받은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는 이들을 일반인으로 오해한 경호원에게 가로막혔고, 결국 굳게 닫힌 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굵고 짧았던 디스코 시대에 작열된 총탄 중 가장 상징적인 곡은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당대의 땀과 정취가, 팀의 재치마저 녹아있는 창작이다. '우리를 허락하세요, 우리가 제대로 보여줄게'라며 당시 일화를 슬그머니 유쾌한 가사로 옮겼고 인간 몸짓의 본능을 그대로 옮긴 듯한 기타 스트로크 위 ‘정신 나간(Freak out)’ 후렴구를 원 없이 읊는다. 능란한 여유가 가득한 이 트랙은 그야말로 댄스 스테이지 찬가다. 무의미의 나열 속에서 리듬을 느끼고 흥을 발굴하며 무아의 지경에 입도하는 것. 우연한 계기로 나타난 이 펑크(Funk) 디스코 증명식은 춤의 정석을 지키면서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든 이번 가을 서울을 달굴 만큼 아직 뜨겁다. (손민현)




쉭(Chic) ‘I want your love’ (1979)

원래는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서를 맡았던 4인조 걸밴드 시스터 슬레지(Sister Sledge)에게 갈 노래였다. ‘He’s the greatest dancer’와 운명이 바뀌어 쉭의 명의로 발매된 ‘I want your love’는 ‘Le freak’의 대성공을 이어 1979년 빌보드 7위에 올라 세 번째 탑 텐 싱글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4위까지 올라 쉭의 차트 최대 히트곡으로 남아있다. 패션 브랜드인 톰 포드의 캠페인용으로 레이디 가가와 함께 만든 화려한 새 버전, 7인치 규격에 맞춰 3분 대로 편집한 라디오 에딧도 좋지만 진수는 6분이 넘어가는 앨범 버전을 들어야 느낄 수 있다. ‘당신의 사랑을 원해/당신의 사랑이 필요해’ 보통 이런 가사는 애달프고 간절한 법이지만 쉭은 다르다. 나일 로저스의 리듬 기타를 비롯해 관악기와 현악기, 신성한 종소리처럼 들리는 튜불라벨과 리드 보컬 디바 그레이의 목소리 모두 느긋하다. 이 정도의 무심한 애원만으로도 충분히 유혹해 같이 춤을 추게 만들 수 있다는 것처럼. 나일 로저스는 꿈에서 들은 음정을 그대로 악보에 옮긴 노래라 밝혔다. 이 사실을 알고 들으면 ‘I want your love’는 정말 몸이 느리게 움직이는 꿈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한성현)




쉭(Chic) ‘Good times’ (1979)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명곡은 명샘플을 남긴다. 디스코 폭파의 밤 불과 한 달 전 쉭이 내놓은 ‘Good times’는 빌보드 싱글차트 1위로 디스코 전성기의 황혼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나일 로저스 특유의 펑키(Funky)한 기타 리프와 버나드 에드워즈 표 쫀득한 베이스 라인은 곡 전체에서 반복되어 최면을 걸듯 사람들을 댄스 플로어로 불러냈다. 얼마 되지 않아 레이건 시대가 도래하며 미국 사회가 보수주의로 접어들기 전 마지막으로 보여준 자유와 긍정의 에너지였던 셈이다. 그 자체로도 쉭을 대표하고 대중음악사 속 한 시기를 상징하는 곡이지만 ‘Good times’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갔다.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와 힙합 태동기 슈가힐 갱의 ‘Rapper’s delight’라는 히트 싱글 속에서 샘플로 살아숨쉬기 때문이다. 이뿐만인가. 1981년 블론디의 ‘Rapture’부터 2020년 차트를 지배한 도자 캣의 ‘Say so’ 속 기타까지 후대 음악가들이 여전히 나일 로저스에게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영향력을 끼치는 영속성의 신화다. (박승민)




시스터 슬레지(Sister Sledge) ‘He’s the greatest dancer’ (1979)

필라델피아에서 결성된 4인조 보컬 그룹 시스터 슬레지는 1970년대 중반까지 빌보드 싱글 차트 91위가 최대 히트인 밋밋한 성적에 머물러 있었다. 불안한 그룹의 미래에 변화를 꾀한 음반사 애틀랜틱 레코드는 더 세련되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노래를 원했고 나일 로저스라는 적임자를 만났다. 1979년 나일 로저스와 쉭의 베이시스트 버나드 에드워즈가 함께 프로듀싱한 그룹의 3집 < We Are Family >의 수록곡인 ‘He’s the greatest dancer’는 빌보드 싱글 차트 9위에 올라 라디오를 장악하기 시작했고 그룹에게 두 번 다시 없을 상업적 성과를 안겼다.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분명했다. 50초가 넘는 전주가 지루하지 않은 두 장인의 펑키(Funky)한 기타 리프와 쫀득한 베이스 그루브,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하는 환상적인 현악 세션에 걸려들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랴. 비록 역시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싱한 차기작 < Love Somebody Today >와 8집 < When the Boys Meet the Girls >는 성적이 미미했지만 그는 여전히 팀에게 화려한 삶을 안겨다 준 고마운 존재로 남아 있다. 디스코 전설이 선사한 디스코 시대 최고의 명곡 중 하나. (이홍현)




시스터 슬레지(Sister Sledge) ‘We are family’ (1979)

쉭의 성공적인 시작을 지켜본 애틀랜틱 레코드의 젊은 사장 제리 그린버그는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의 프로듀싱 재능을 알아챘고, 이를 레이블의 다른 아티스트에게 펼치길 희망했다. 다만 둘은 롤링 스톤스처럼 ‘스타’의 조력자 역할을 당장 자처하기엔 인제야 빛을 발한 신성(新星)이었고, 본인들의 역량을 최대로 선보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단계를 밟아 가길 요청했다. 낙점한 것은 1971년 데뷔 이래 갈피를 잃고 방황했던 시스터 슬레지(Sister Sledge)였다. 누군가 중얼거린 “우리는 가족이야”란 문장에서 출발한 ‘We are family’는 그렇게 탄생했다. 뮤트를 활용한 특유의 처킹 기타 주법과 슬랩 베이스 위로 흥겹게 얹어진 피아노, 색소폰은 자유분방하나 철저한 계산으로 유기적으로 연결. 디스코 시대를 넘어 현세대까지 생동한 리듬을 구현했다. 시스터 슬레지의 유려하고 풍부한 화성을 더해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란 상업적인 결과를 이뤄냈고 인종, 계급 등 사회 연대 및 통합과 같은 무거운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파하며 2017년 미국 의회도서관의 국립 녹음 등록부에 등재, 문화적 가치도 함께 인정받았다. 나일 로저스가 타인을 위해 만들어 준 첫 번째 노래였던 이 곡으로부터 그의 숨결은 이후 음악사의 여러 순간마다 스며들었다. 명백한 개화 시점이었다. (손기호)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 ‘Upside down’ (1980)

디스코의 열기가 차츰 잦아들 무렵 다이애나 로스가 선택한 돌파구는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였다. 이들의 협업엔 ‘Le freak’만큼의 짜릿함은 없지만 즉각적인 흥분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세련된 당김음이 추동하는 중독적인 그루브가 가히 트랜스 상태를 유도하며 영리하게 계산된 화성 진행은 신선한 정서적 충격을 연출한다. 가수가 노래하는 멜로디와 곡의 리듬이 서로 교차하며 빈 공간을 채워가는 앙상블도 흐뭇하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 중에 가수와 작곡가들의 견해차를 좁히기 힘들었다는 당사자의 증언을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로 좋은 결과물이다. ‘Upside down’은 다이애나 로스의 새로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이 되었으며 가장 높은 곳에서 4주간 자리를 지켰다. 전형적인 디스코나 펑크(Funk)의 문법을 넘어 새로운 감성을 제시한 이 곡은 이후 등장할 댄스팝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다이애나 로스와 마이클 잭슨을 잇는 교두보의 자리에 밴드 쉭이 있었다. (김호현)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 ‘I’m coming out’ (1980)

대중음악 어느 장르이든 밴드 기본 편성부터 듣기 편한 음의 범위 같은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아직 20대이던 혈기왕성한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는 이 곡을 통해 틀을 깨는 데 성공하고 독보성을 얻었다. 기타, 보컬의 멜로디로 꾸려진 도입부에 드럼이 독특한 박자로 등장한다. 또한 특기할 점 하나, 이 곡에서 베이스는 50초가 넘도록 부재 상태다. 화려한 악기 연주가 이어지다가 베이스가 등장하면서 메인 멜로디를 향해 힘차게 내달린다. 이런 개성 있는 전개를 1980년에도 이미 20년을 넘게 활동한 선구자에게 제공한 20대의 패기로 불후의 명곡이 탄생했다. 퀴어 문화에서 다이애나 로스의 영향력을 보고 받은 영감으로 쓴 이 곡은 당시에도 LGBT 커뮤니티의 애국가 역할을 했고 특유의 흥겨움으로 현재까지도 자주 연주되는 중이다. 수십 년째 신선한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 이 정체성 하나를 얻기도 힘든데 나일 로저스는 더 나아간다. 모든 협업에서 상대방을 아는 데 시간을 들이고, 배려하며 동화하는 과정을 지금까지도 갖는 선한 베테랑. 좋은 음악에 의미 깊은 존중까지 담는 이 인물에게 도전의식, 태도 등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운다. (정기엽)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Let’s Dance > (1983)

베를린 3부작으로 창의적인 1970년대를 보낸 데이비드 보위는 1980년대에 이르러 진정한 상업적 성공을 갈망했다. 그동안 아티스트로서 음악적 실험은 마음껏 즐겼으나, 누구나 인정할 만한 거대한 히트작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그가 찾아간 새로운 프로듀서는 나일 로저스였다. 데이비드 보위는 빨간 정장을 입고 캐딜락에 탑승한 리틀 리처드의 사진을 보여주며 방향성을 제시했고, 이에 나일 로저스는 그가 가져온 모든 곡을 펑크(Funk)화했다. 춤과는 딱히 맞지 않았던 포크풍의 데모는 타이틀곡 'Let's dance'가 되었고, 이기 팝과 공동으로 작곡한 'China girl'은 경쾌한 뉴웨이브로 거듭났다. 나일 로저스 본인은 물론, 쉭에서 활약한 세션들을 대거 기용한 역동적인 리듬의 댄스 앨범이자 데이비드 보위의 열다섯 번째 작품 < Let's Dance >는 3주간 UK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1년이 넘도록 차트에 머무르며 가시적인 상업적 성과를 냈다. 훗날 그는 '나보다는 나일 로저스의 작품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로, 나일 로저스는 여러 의미로 그의 음악을 헤집어 놓았다. (김태훈)




마돈나(Madonna) < Like A Virgin > (1984)

첫 앨범 이후 예술적 상승의 기운을 믿은 마돈나는 차기작을 앞두고 단호하고 오만했다. 슬로건은 무조건 셀프 프로듀싱! 20년 후 힐러리 더프의 선언인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는 단지 외형이었지만 마돈나가 바란 건 질적 성장과 변형이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그의 욕망은 ‘대중적 영광’을 입히고자 한 레코드사의 권유에 맥없이 꺾였다. 내민 카드가 그 무렵 자신의 폭발적 애정을 견인한 데이비드 보위의 특대작 < Let's Dance >, 바로 그 앨범의 프로듀서라는데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나일 로저스는 ‘앨범에 채워 넣는 곡 불허, 전 곡 히트 달성’이라는 거창한 마돈나의 비전을 실현해줄 자신이 넘쳤다. 우선 쉭의 동료 버나즈 에드워즈의 베이스 라인과 토니 톰슨의 드럼워크를 끌어대 자신의 신시사이저와 기타를 합쳐 세션의 질을 확보했다. ‘Like a virgin’, ‘Material girl’, ‘Angel’, ‘Dress you up’의 줄줄이 히트로 마돈나에게 새벽에 처음 동이 튼 순간 같은 벅찬 환희를 제공했다. (그래도 마돈나는 자기가 프로듀스한 ‘Into the groove’를 끝내 앨범에 끼워넣었다.) 그의 성공이 단발로 그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돈나만은 나일 로저스가 항상 갈고리처럼 은인으로 엮이는 게 온당했다. 연결고리는 댄스터전 디스코. 이 앨범으로 ‘마돈나’, ‘나일 로저스’, ‘디스코’ 셋 모두 장수의 길을 텄다. 이 삼각관계에 복류하는 삶의 이치. ‘음악 앞에서 자의식으로 포장된 자기욕심을 소멸시켜야 예술적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 (임진모)




제프 벡(Jeff Beck) < Flash > (1985)

두 권위자, 기타리스트계의 기라성이 만났다. 살아있는 펑키(Funky) 리듬 나일 로저스와 기타 연주자들의 전설과도 같은 제프 벡이 피크를 맞댔다. 1960년대 말 < Truth >로 시작한 솔로 커리어와 함께 본인 이름을 내건 제프 벡 그룹의 < Beck-Ola >까지 기타 6줄로 시대를 호령하던 그를 뒤로한 채 대중 음악계는 1980년대 댄스 분수령을 맞이했다. 이에 맞게 기획된 < Flash >는 팝 사운드를 강조했고, 이보다 2년 전에 나온 데이비드 보위의 < Let’s Dance >로 그 힘을 증명한 나일 로저스를 프로듀서로 섭외했다. 목소리 대신 기타로 노래하던 제프 벡은 이례적으로 2곡에서 직접 가창하는 노력까지 선보였고 후에 앨범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연주곡 ‘Escape‘를 통해 그는 최우수 록 연주 부문으로 그래미에서 첫 상을 거머쥐었다. 화려한 댄스 플로어 위에서도 강렬한 록의 선율이 아름답게 빛나는 < Flash >는 나일 로저스의 터치와 함께 1950년대 로큰롤에 맞춰 춤을 추던 과거 록의 영광을 재현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임동엽)




시나 이스턴(Sheena Easton) < Do You > (1985)

데이비드 보위의 < Let’s Dance >와 마돈나의 < Like A Virgin >의 성공을 묵도한 시나 이스턴의 음반사는 새 앨범 < Do You >의 전담 프로듀서로 나일 로저스를 낙점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빌보드 앨범차트 40위, 싱글 ‘Do it for love’와 마사 & 더 반델라스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Jimmy Mack’이 29위와 65위를 차지할 뿐 당시에도 그리고 그 후로도 이 음반은 시나 이스턴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오랫동안 지워져있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에 오른 ‘Strut’와 ‘Sugar walls’를 배출한 뉴웨이브/펑크(Funk) 스타일의 전작 < A Private Heaven >에 고무된 시나 이스턴과 제작사는 펑크(Funk)/디스코의 장인 나일 로저스에게 프로듀서의 임무를 맡겼지만 멜로디의 소구력이 약한 노래들로는 그도 어쩔 수 없었다. 해맑고 청초한 이미지의 시나 이스턴이 펑키(Funky)하고 섹시한 가수로의 변신을 인정하기 싫은 대중은 4분에서 5분대로 짧지 않은 수록곡들의 길이에도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게 잊혀진 < Do You >는 2010년대에 다시 도래한 전자음악과 소울/펑크(Funk)의 부활 덕분에 근래 영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본의 아니게 미래를 예측한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 앨범은 현재 서서히 환생하고 있다. (소승근)




듀란 듀란(Duran Duran) < Notorious > (1986)

수려한 비주얼과 신선한 음악으로 뉴웨이브 시대를 열어젖힌 듀란 듀란은 세 장의 음반을 남기곤 파워 스테이션과 아카디아로 분화했다.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이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위해 잠시 이합집산을 이루기도 했지만 새 앨범을 앞두고 로저 테일러와 앤디 테일러가 밴드를 떠나면서 전면적인 개편을 단행한다. 이 시기 남은 세 멤버들이 떠올린 이가 바로 나일 로저스였다. 2년 전 함께한 싱글 ‘The reflex’로 첫 1위의 기쁨을 맛본 그들이 이번에는 분기점이 될 신보 전체를 총괄해달라는 부탁을 건넨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 Notorious >는 쉭 풍의 펑크(Funk) 향기로 가득하다. 여기에 여전히 감미로운 사이먼 르본의 보컬과 날개를 단 듯한 존 테일러의 베이스, 훗날 정식 멤버가 될 워렌 쿠쿨렐로의 기타까지. 비록 7년만에 복귀한 보스톤의 ‘Amanda’에 밀려 정상을 차지하진 못했으나 끝내 2위라는 호성적을 거둔다. 이후 잇따른 작품이 흥행과 멀어지며 초기 모습이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 Notorious >는 듀란 듀란의 과도기 속 새로운 색을 입혀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린 나일 로저스의 역작으로 남아있다. (신동규)




비 피프티 투스(B-52’s) < Cosmic Thing > (1989)

‘King for a day’가 실린 톰슨 트윈스의 1985년 작 < Here’s To Future Days >와 당대의 꽃미남 밴드 듀란듀란의 1986년도 음반 < Notorious >로 뉴웨이브 계열과 인연 쌓은 나일 로저스는 1980년대 말엽 국내엔 덜 알려졌으나 당대 가장 지적이며 참신한 뉴웨이브 밴드였던 비 피프티 투스(The B-52’s)와 손잡기에 이른다. 비 피프티 투스의 재기(才器)에 로저스의 대중적 감각이 맞물린 1989년 정규 5집 < Cosmic Thing >은 영국 프로듀서 토니 맨스필드가 제작한 전작 < Bouncing Off The Satellites >의 빌보드 앨범 차트 85위에서 4위로 수직 상승했다. 다른 음반에 비해 나일 로저스의 색채가 덜하나 밴드의 아트팝적 특이점 부각과 그에 걸맞은 리듬을 조력한 “중용의 미”가 돋보인다. 나일이 단독 프로듀싱한 작품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자 현재 재즈 명가 블루 노트의 회장인 돈 워스와의 공동 프로듀싱으로 두 대가가 빌보드 싱글 차트 3위로 비 피프티 투스 최고의 상업적 성과를 낸 ‘Roam’과 ‘Love shack’을 각각 맡았으며 자연스레 두 사람의 특색을 비교하는 재미도 따라온다. 1992년 6집 < Good Stuff >에서 다시 한번 뭉친 나일과 돈은 밴드에 빌보드 앨범 차트 16위를 안겨줬고, 비 피프티 투스는 음악적 영향력을 1990년대까지 지속하게 되었다. (염동교)




다프트 펑크(Daft Punk) ‘Get lucky’ (2013)

둘의 인연은 'Get lucky'가 처음이 아니다. 때는 1997년, 다프트 펑크의 정규 1집 < Homework > 리스닝 파티 현장으로 돌아간다. 펑크(Funk)와 디스코의 그루브를 자기만의 클럽 튠으로 재창조하던 이 듀오에게 흥미를 느낀 나일 로저스가 직접 찾아가 인사를 건넸고, 두 신인은 자신을 찾아온 거장에게 본인들이 받은 쉭의 영향력과 지난해 세상을 떠난 버나드 에드워즈에 대한 경의를 공손히 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같은 리듬감을 공유하고 선망한다는 이 미묘한 동질감은 오랜 기다림 끝에 신구의 화합으로 이어졌다. 각 필드, 각 시대의 주역이 한데 모여 만든 석양빛 무도회. 나일 특유의 삐걱거리는 처킹(chucking) 기타 주법이 고스란히 담긴 리프 위로 다프트 펑크가 나머지 악기 전반을 조율하고 퍼렐 윌리엄스는 감미로운 음색을 유유히 드러낸다. 남녀노소 모두가 이 '옛것'에 환호했다. 차트 성적에서 유례없는 글로벌 히트를 거둔 것은 물론 그래미까지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전 세대의 지지 선언을 거뒀다. 팬 중에서는 이 곡을 나일 로저스 커리어의 분기점으로 꼽는 이들도 많다. 돌이켜보면 처음으로 그래미 제너럴 필드를 품에 안겨준 데다, 정신적 나이까지 되돌리며 이후 젊은 아티스트와의 꾸준한 교류를 이어 나가게 한 회춘작이기 때문. 우리가 잘 아는 르세라핌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이 곡이 없었다면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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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작: 신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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