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우리에게 감동을 준 K팝 트랙

by IZM

2024.10.01


원래 이 리스트의 제목은 ‘K팝 발라드 트랙’이었다. ‘2010년 이후, 당신이 기억해야 할 K팝 댄스 트랙’ 콘텐츠가 2022년 올라간 후 이즘은 댄스와 대비되는 발라드곡 또한 모아 보자고 계획했고 이와 동시에 ‘발라드’라는 분류에 대해서도 고민이 찾아왔다. 과연 어느 BPM까지가 발라드고 댄스일까? 필연적으로 영상과 안무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K팝의 특성상 발라드라는 테두리는 너무 협소한 것이 아닐까? 댄스와 발라드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과연 옳은 것일까?


결국 이즘이 택한 단어는 ‘감동’이다. 수려한 리듬, 따뜻한 선율, 아름다운 가사와 각별한 서사… 제각기 다양한 이유로 이즘 필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스무 곡을 ‘2010년 이후, 우리에게 감동을 준 K팝 트랙’이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모호할 수 있는 제목이지만 오히려 이 덕분에 다양한 음악을 담을 수 있었다.


세상에 절대적인 리스트란 존재할 수 없고, 당연히 이번 콘텐츠에 대해서도 많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또는 기대한다). ‘이게 왜 없지?’ 또는 ‘이런 노래도 있었구나.’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신규 웹사이트 런칭 과정에서 ‘FEATURE’에서 ‘PICKS’ 카테고리를 별도 분리하면서까지 강조하고자 했던 이즘만의 방향성과 색을 이번 리스트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치열한 논의와 격렬한 투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추려진 2년 만의 K팝 리스트 후속작, ‘2010년 이후, 우리에게 감동을 준 K팝 트랙’ 스무 곡을 공개한다. 순서는 발매 순이다. (한성현)



비스트 ‘비가 오는 날엔’ (2011)

1년 후 ‘별 헤는 밤’, ‘아름다운 밤이야’와 같은 밤과 어둠에 대한 애착을 미리 살짝 붙이면서 추억과 후회의 덫을 놓는 어둠의 예지력을 전하지만 그것을 영원한 대중음악의 질료인 비와 중첩시키면서 대중가요 예의 상투와 유순함에서 벗어났다. 가히 ‘비의 야상곡’. 2세대 ‘짐승돌’ 답지 않은 차분함과 가창력을 구현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대표하는 곡 ‘Fiction’, ‘Shock’보다 오랜 수명을 얻었다. 무시무시한 세월은 트렌드와 홍보력이라는 순간의 분장을 지우고 끝내 ‘송 퀄리티’라는 음악 존재의 중심을 부각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지고의 모멘트는 말할 것도 없이 빗소리를 탄 기타의 낭만적 떨림과 코러스 ‘비가 오는 날엔 나를 찾아와 / 밤을 새워 괴롭히다가 / 비가 그쳐가면 너도 따라서 / 서서히 그쳐가겠지’ 대목이다. 타임리스를 끌어낸 최규성의 선율이 별미. 용준형의 읊조리는 랩 또한 전달력을 확보한다. 하지만 작업 전체를 관할했을 고 ‘신사동호랭이’가 연금술 발휘에 거들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감각이 아닌 감동을 원했다. 비가 내리기만 하면 10년 넘게 지금도 지속 소환되는 ‘21세기 비의 명곡’. 확실히 미련과 후회 그리고 음주가 뒤엉킨 내적 긴장은 파퓰러 송에서 언제나 위력적이다. (임진모)  



투애니원 ‘Lonely’ (2011)

‘Fire’와 ‘I don't care’의 히트와 ‘센 언니’의 이미지로 걸그룹 팬 층의 현기증을 초래한 그들의 2011년 미니 2집은 양립할 수 없는 배반의 메시지로 성숙을 꾀한다. ‘내가 제일 잘 나가’와 ‘Lonely’는 연속성이라기보다 부조화에 가깝다. ‘누가 봐도 내가 좀 죽여주잖아’‘사랑하긴 내가 부족한가봐 이런 못난 날 용서해’는 층위가 충돌하는 감성의 투사일 것이다. 이건 그러나 갈팡질팡 아닌 불안과 허기라는 스타가 갖는 체질을 숨기지 않은 채 드러내면서, 문명인들의 소중한 권리인 ‘자기 혼자 있는 권리’를 간수하며 팬들과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리즈 시절 내면의 소용돌이, 맹목적 충동, 격렬한 광기에 시달리기에 지구촌 팝스타들은 가까이 저스틴 비버가 그렇듯 특정 시점에 숙명적으로 ‘Lonely’와 친밀하다. 투애니원도 이 곡으로 폭발적 흥행가도를 달리다가 숨을 골라 동중정(動中靜) 행으로 휴먼터치를 택한다. 지금 기준에서도 경탄할 네 멤버의 선명하고도 고른 보컬은 감성적 황홀경. 지금도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으나 자주 언급되지 않는 불가해한 보석. 그게 증명 불가한 외로움의 파괴력이다. (임진모)



써니힐 ‘Goodbye to romance’ (2012)
감동하면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사랑 노래가 즐비한 대중음악계에서 써니힐의 ‘Goodbye to romance’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무엇일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과함이 없다. 학창 시절 로맨스를 추억하는 노랫말과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담담하고 담백하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역시 감정 과잉을 최소화한 노스탤지어다. 작위적이지 않은 이런 매력들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직접 말하는 듯 자전적인 가사 또한 차분한 분위기와 맞물리며 한 편의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Midnight circus’, ‘베짱이 찬가’처럼 개성 있는 팀의 대표곡 중에서도 대중적인 스타일의 ‘Goodbye to romance’가 가장 높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부터가 수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룹의 기둥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는 곡 덕에 써니힐은 데뷔 10년을 훌쩍 넘겨 지금까지도 여전히 언덕에 해를 띄우고 있다. (임동엽)


원더걸스 ‘Rewind’ (2015)
2007년의 메가 히트곡 ‘Tell me’의 광풍에 이어 ‘So hot’과 ‘Nobody’까지 전성기는 이어졌다. 1980년대 디스코의 하위 분파 하이 에너지(Hi-NRG)를 스테이시 큐의 ‘Two of heart’에 기반해 시도했던 ‘Tell me’와 슈프림스 같은 모타운 걸그룹을 복원한 ‘So hot’, ‘Nobody’처럼 변신을 거듭했다. 악기를 든 멤버들의 밴드 컨셉으로 또 한 번 대중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정규 3집 < Reboot >은 원더걸스의 쇄신 테마를 재차 각인했으며 미국 알앤비 역사를 꿰고 있는 박진영의 통찰력과 이를 능란하게 수행하는 4인방의 능력치를 입증했다. 우수 어린 신시사이저 물결에 뉴 잭 스윙 특유의 타격감 넘치는 리듬 트랙을 결합한 ‘Rewind’는 팔로알토가 참여한 ‘Candle’과 1980년대 EDM의 한 조류였던 프리스타일(Freestyle)의 복각인 타이틀 넘버 ‘I feel you’와 더불어 < Reboot >의 클린업 트리오로 기능했다. '네가 거꾸로 흘러, 흐를수록 아름다워'란 멋진 노랫말을 담은 ‘Rewind’는 과거 복원이 경향성 주도로 연결된 성공적 사례였다. (염동교)


태연 ‘I’ (2015)
태연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을 꼽는다면 무엇일까. 먼 훗날 시간이 흐르더라도 우리의 중력은 결국 'I'를 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돌이켜 보면 그는 이미 그전부터 유닛 태티서의 깜찍한 주축이자 발라드 OST 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이었다. 그때 9년간 단단하게 쌓아온 경력 한 곳에 균열이 생겼다. 그 사이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모습으로 새롭게 피어나겠다는 의지가 새어 나왔고, 마침내 껍질을 부숴 진정 자신의 색을 지닌 보컬리스트로 거듭나게 된 전말과도 같았다. 그만큼 모든 요소가 홀로서기를 찬란하게 비춘다. 시작과 함께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후렴부터 록 성분을 도입해 고양감을 극대화한 사운드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자유로움'의 청각화다. 버벌진트의 몫을 제외하고 자전적 이야기를 되뇌는 태연의 노랫말만 고스란히 남겨본다면 온전히 본인에 주체를 두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때로 우리는 누군가 꺼내주기를 막연히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일어나 극복해야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나 자신, ‘I’가 아니겠는가. 이 곡을 상정할 단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건 아마 위로보다는 용기에 가까울 것이다. (장준환)


오마이걸 ‘Closer’ (2015)
첫 조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일반적인 음악 방송도, 유튜브 뮤직비디오도, 스트리밍 플랫폼도 아닌 KBS < 열린음악회 >였다. TV에서 흘러나온 청아하고 스산한 음악에 홀린 듯이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8인조 걸그룹 오마이걸이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Closer’는 내게 성큼 다가왔다. 당시 K팝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비장한 선율과 차가운 음색으로 비애를 표하는 멤버들의 보컬, 그리고 이에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사운드 구성이 모두 모여 ‘Closer’는 재생하는 즉시 북유럽 신화 속 슬픈 요정의 이야기로 우리를 데려간다. 계속 한 걸음 가까이 가려 하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와 외침은 원래 찬송가로 만들어졌다는 배경처럼 누군가에게는 신적 존재를 향한 경배로 다가올 수도 있고, 떠나간 사랑의 슬픔 혹은 우리가 상실한 모든 과거의 찬란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마음에 담아둔 것이 무엇이든 끝내 그 대상에 이르지 못하는 ‘Closer’는 좌절감과 무력감 대신 고통의 숭고함을 선사하는 곡이다. 희극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비극은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영원히 남는다. (한성현)


지코 ‘사랑이었다 (Feat. 루나 of f(x))’ (2016)
안 그래도 독한 이별의 아픔이건만 이 노래는 정말이지 지독한 이별을 노래한다. 김세정의 ‘꽃길’로 발라드 작곡에도 뛰어난 역량을 보여줬던 지코의 첫 발라드 곡 ‘사랑이었다’는 슬프다 못해 처절한 감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또 벅차게 만든 곡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한’ 연애의 끝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곡에 눈물을 훔치지 않았을까. 상대의 알 수 없는 마음에 졸인 마음과 ‘할 게 못 되는구나’ 하는 체념, ‘나보다 더 소중한 게 있었다’라는 그리움까지. ‘을의 연애’가 느낄 법한 모든 감정들을 담은 가슴 아픈 독백은 담담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예쁜 선율을 만나 더없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케이팝 신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에프엑스 루나의 담백한 목소리는 뛰어난 가사 전달력으로 노랫말을 우리의 심장에 올곧게 새겨 놓는다. 고조되는 스트링 세션이 한 편의 뮤지컬 영화 같은 감정선을 그리는 브릿지에서 ‘널 쫓느라 두고 간 원래의 나를 찾아’라는 다짐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상처받은 영혼 속에서도 이내 한 줄기 희망을 피워 내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이 노래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곡에 감동한 많은 이들이 써 내린 각자의 이별 스토리가 쓰여 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공통된 이별의 감정, '사랑이었다'는 바로 그 모든 가슴 아픈 작별을 어루만지는 보편의 애잔함과 위로를 담고 있다. (이홍현)


레이디스코드 ‘Galaxy’ (2016)
다시는 일어나서 안될 사고 이후 발매된 추모곡 ‘아파도 웃을래’를 듣고 레이디스 코드가 이후 나아갈 길은 사실상 없겠구나 싶었다. 환상과 기쁨의 세계인 K팝에서 걸그룹이 이런 비극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 그때 ‘Galaxy’가 등장했다. 미니멀한 리듬에 건조하게 노래하는 세 멤버는 막연하게 슬픔을 토로하지도, 그렇다고 억지로 활력을 내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초연하게 복잡한 감정을 받아들이며 천천히 몸을 움직일 뿐이다. ‘날 아는 사람도 아무 누구도 없는 이곳/내 기분도 편안해’ 고독 속에서 역설적인 아늑함을 느끼는 가사는 우주를 부유하는 듯한 재즈 사운드와 어우러져 아픔을 치유하고, 세상의 미지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한줄기 기적을 바라본다. 비어 있지만 공허하지 않고 홀로 있지만 외롭지 않다. ‘끝이 없는 어둠속에 찾은 하나의 빛’이라는 마지막 가사처럼 희망은 발버둥치지 않고 가만히 인내하는 이에게도 다가온다. ‘Galaxy’는 현실과 몇 광년은 떨어진 듯한 K팝이 실재하는 고통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삼각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성현)


블랙핑크 ‘Stay’ (2016)
투애니원에게 ‘Lonely’가 있다면 블랙핑크에게는 ‘Stay’가 있다. YG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애니원의 계보를 이으며 중독적인 브라스 사운드와 대중적인 힙합 스타일로 그룹만의 개성을 살린 블랙핑크가 신선한 울림을 선사한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함께 뻔하게 흐르던 음악이 자신의 위치를 살짝 벗어나 산뜻한 리듬으로 분위기를 뒤집는 순간, 보편적으로 생각하던 ‘감동’의 의미가 흔들린다. 자칫 침울함으로 가라앉을 그 경계에서 가벼운 박수 소리 하나로 넛지 효과를 발동한다. 마음을 움직이고, 감정의 무게를 분산하며, 쌓인 응어리를 풀어준다.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처럼 ‘슬픈 멜로디’와 ‘흥겨운 박자’가 공존재하는 그 균형감이 노래의 핵심. 기존에 알고 있던 블랙핑크의 채도와는 살짝 다르지만, 팀의 색다른 매력이 돋보이는 동시에 감동의 물결이 차분하게 일렁이는 ‘Stay’를 다시 한번 추천한다. (임동엽)


데이식스 ‘예뻤어’ (2017)
'예쁘다'도 아니고 '예쁘지 않아'도 아니다. 과거형 어미에 꾹꾹 눌러 담은 화자의 복합적인 현재 감정은 록 사운드를 타고 너끈하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 제쳐두고 청춘이 타오르지 않는가. 이 처연한 애정의 심상은 영혼의 파트너 홍지상의 프로덕션 아래 특유의 모래처럼 부서지는 밴드 톤으로 치환되었고, 그 위에서 멤버들은 메마르게 감정을 분출한다. 절절한 가창과 대조적으로 언어는 멈칫거리고 담담하다. 추억, 미련, 후회 등 아직 묻어나는 사랑의 부산물을 떨쳐내기 위해 단어를 부단히 정제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고민을 옮긴 영케이의 적확한 노랫말은 은은한 쓴맛으로 감동의 균형을 잡는다. 그렇게 역설적인 두 요소가 뭉친 ‘예뻤어’는 데이식스를 찬란한 성공으로 이끌었고 K팝과 록의 뚜렷한 교차점을 만들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가 있으니 대중가요의 충분조건을 갖췄고 멤버들이 직접 연주까지 하니 당사자성도 뚜렷하다. 몇 년이 지나도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밝게 빛날 게 분명한 트랙. 풋풋하던 그 시절 이 밴드를 상징하는 키워드와 이미지가 무엇이었는가. 아련한 눈빛의 소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빛났던 우리들의 청춘 송가 ‘예뻤어’다. (손민현)


방탄소년단 ‘봄날’ (2017)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자리에 여섯 곡이나 남긴 성과를 차치하더라도 방탄소년단이 쌓아올린 금자탑은 그 자체로 눈부시다. 일곱 소년이 써 내려간 신화를 드라마에 빗대는 까닭은 그들의 시작이 처음부터 ‘봄날’이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고 연습만이 살길이라며 그간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온 인고의 기간을 십분 이해하기 때문이다. 버티는 자에게는 결국 따스한 햇살이 비춘다. ‘봄날’은 방탄소년단 일기의 전환점이자 깊이 아로새긴 흉터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도입부, 이어지는 랩과 비트 간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 후렴구를 지탱하는 보컬의 짧지만 강한 흡인력까지 내세울 수 있는 서정성의 극치이자 아직 곡의 절반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은 안도감의 원인이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 없이 각 구성원 간의 적절한 양보와 과시가 계절감 속 한데 어우러져 그려낸 한 폭의 명화에 가깝다. 가사는 어떤가. 떠난 상대를 그리워한다는 익숙한 제재에도 여느 곡보다 여운이 깊다. 단순 연정의 정서를 넘어 ‘벚꽃이 피나봐요 이 겨울도 끝이나요 /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를 되뇌며 듣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봄을 향한 겨울나기에 진한 위로를 전한다. ‘Butter’나 ‘Dynamite’ 등 세계에 이름을 드높인 혁혁한 성과의 산실에도 가장 오랫동안 곁에 남을 음악은 분명 ‘봄날’일 것이다. 속는 셈 치고 다시 들어보자. 온통 겨울 뿐인 우리네 인생에도 끝끝내 봄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처럼. (신동규)


종현 ‘Lonely (Feat. 태연)’ (2017)
종현의 음악은 섬세하고 따뜻하지만, 금방이라도 몰려올 듯한 감정의 해일을 막아내는 방파제처럼 담담했다. 휩쓸리지 않도록 버티지만, 조금씩 마모된다. 'Lonely'에는 한 소절마다 깎는 아픔이 도사린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위로를 건네주려는 타인에게도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 더 가득하다.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면 다른 사람마저 아파할 거라는 처연한 이타심에 의한 자의적인 고독은 스스로를 더욱 좁고 어두운 곳으로 내몰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기에 어쩔 수 없다. 곡 안에 등장하는 남녀는 서로가 아프지 않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가진 아픔은 참으려 한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고, 함께임에도 계속 외로울 수밖에 없다. 진심 어린 공감에는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발현은 어렵다. 모두가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상황 자체를 담은 'Lonely'는 수많은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어 주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종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소중한 슬픔을 전한다. (김태훈)


지드래곤 ‘무제(無題) (Untitled, 2014)’ (2017) 
허울의 껍데기를 탈피한 자리에 순백색 마음이 피어나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이의 덜어내기는 자칫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란 상투적 표현으로 묶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도 초심을 잊은 적이 없기에 이를 진심이라 칭하자. 거센 관심을 벗 삼아 휘몰아치는 파급은 매 순간 그를 흔들었다. 다만 서른 살을 맞이한 지드래곤은 오히려 태풍의 눈으로 걸어 들어가 숨겨온 내면을 드러냈다. 드럼 비트와 전자음이 떠나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 반주 위 읊조리는 멜로디가 앨범의 제목 < 권지용 >처럼 한 톨의 가식 없이 음악 앞에 선 본연이다. 코드를 따라 잔잔하게, 때로는 절규하듯 토해내며 요동치는 감정이 연인과의 이별을 넘어 ‘후회’라는 더 큰 범주와 맞닿았다. 이에 대중은 감응했다. 한 청년의 진정 어린 호소가 만든 ‘무제(無題)’의 공백. 각각이 붙잡고 싶은 찰나가 차곡차곡 쌓이며, 명곡이란 이름으로 채워졌다. (손기호)


비투비 ‘그리워하다’ (2017)
아름다우면서 슬프고, 안타까우면서 멋지며,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먹먹하다. K팝 아이돌 그룹들이 발표한 수많은 노래들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듣기 편한 선율을 소유한 ‘그리워하다’는 언어와 필력만으론 표현하고 담아낼 수 없는 최고의 멜로디 훅과 미국의 보이밴드 98 디그리스의 데뷔곡 ‘Invisible man’이 떠오르는 잔잔한 도입부, 모든 사람들이 경험해 봤을 후회와 그리움이 투영된 가사가 자석의 N극과 N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최상의 조합을 이뤘다. 아버지 임지훈의 작곡 재능을 물려받은 멤버 임현식과 K팝 프로듀서 이든의 심장에서 탄생한 ‘그리워하다’를 듣는 동안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머리는 멍해진다. 비통을 비애로 승화한 노랫말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은 겪어야 할 성장통이자 훗날 추억으로 저장될 기억이라고 위로하면서 대중과 눈높이를 맞춘다. 종이배를 띄운 시냇물처럼 완만하게 진행하는 코드진행, 프리 코러스에서 주요 멜로디 구간으로 넘어가는 천상의 이음새는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유려하고 멋진 부분 중 하나다. 비투비는 ‘그리워하다’ 이 한곡만으로도 ‘K팝 역사실록’에 등재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소승근)


샤이니 ‘네가 남겨둔 말 (Our page)’ (2018)
2008년 5월 25일, 광채를 머금은 이름처럼 빛을 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섯 소년의 약속을 기억한다. 이제는 그 여정에 모두가 함께할 수 없게 되었지만, 남은 멤버들은 그 원대한 꿈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앞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데뷔 10주년에 등장해 4인 체제로 돌입을 알린 < The Story Of Light >의 수록곡 ‘네가 남겨둔 말’은 샤이니의 훌륭한 곡들 가운데서도 깊고 먹먹한 울림을 안긴다. 덤덤히 응시하기에 그 사무침이 배가 된다.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멤버들의 모습을 차례로 담을 뿐인 뮤직비디오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듯 보여도 미묘한 이질감을 담아 지워지지 않는 공백과 그리움을 여실히 그려낸다. 잔향과 함께 천천히 감정을 쌓아 올리다 마침내 유니즌 코러스로 완성되는 후렴, 그리고 각 파트를 정교히 분배해 공백 없이 메운 팀워크는 그의 빈자리를 결코 헛되이 않겠다는 의미와 같다. 멤버 전원이 작사에 참여해 담아낸 소중한 글귀들은 편지가 된다. 이번 특집을 준비하면서 유독 샤이니만큼 후보가 많았던 그룹이 없었지만, 그중 ‘네가 남겨둔 말’을 조심스레 골라본다. 마지막에 나즈막이 들리는 한마디 ‘수고했어’가 종현에게 닿기를 바라며 말이다. (장준환)



이달의소녀 ‘Butterfly’ (2019)
작금의 K팝은 동시대 메인스트림 팝 시장의 문법을 충실히 따라간다는 특징을 가진다. 허나 종종 그 원류보다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아웃라이어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유닛 활동 끝에 완전체로 데뷔한 이달의 소녀가 가장 빛났던 순간인 ‘Butterfly’가 대표 예시다. EDM 유행의 황혼기였던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두 장르인 퓨처 베이스와 퓨처 바운스를 결합한 드롭은 아찔할 정도로 몽환적이면서도 확실한 리듬 패턴을 지녔다. 피치를 조절한 보컬 샘플과 휘슬 레지스터를 전면에 내세워 천편일률적인 훅 없이도 멋진 곡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한방이다. 비단 사운드적 요소뿐만 아니라 서사 면에서도 이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남다르다. 고치를 깨고 세상으로 날아가는 나비를 향한 찬가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 대상이 더욱 구체화된다. 앳된 중국인 학생부터 머리를 짧게 깎은 흑인, 히잡을 쓴 채 달려 나가는 이까지 모든 등장인물은 틀을 부수는 여성이라는 공통점 아래서 하나로 융화한다. 경제 논리를 기반으로 철저히 공장화된 K팝 산업에서 쉽사리 내세우기 힘든 파격이다. 탄생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룹 이달의 소녀는 그렇게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 (박승민)


온앤오프 ‘Moscow Moscow’ (2019)
어떤 음악이나 영화는 감상하는 것만으로 발이 닿아 있는 시공간을 뒤바꾼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서 간접적으로 느낀 온기가 누군가에겐 여행을 선택할 이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영화 < 릴리슈슈의 모든 것 >을 보고 일본 오키나와로 떠나 향취를 느끼는 이들처럼, 이 곡을 듣고 러시아 모스크바 야행을 꿈꾸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곡을 만든 작곡가 황현 또한 이 차디찬 도시를 방문해 본 적이 없다는 것. 지역이 가진 심상(心象)만으로 또다른 차원의 창작을 할 수 있는 능력부터 심상(尋常)치 않다. 그는 이 미지의 지역에 발자국을 디딜 방법으로 국내에서 주로 쓰이지 않은 이국적인 피아노 연주와 기타 리프를 선택했다. 랩 파트를 제외한 보컬 멜로디 역시 뚜렷하면서도 서정적인 전개로 곡이 담은 세계관을 지탱한다. 간혹 외국어 혼용 가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도 없어 뜻도 모르는 러시아어가 곡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마음에도 깊숙이 침투한다. 음악이 이끄는 몰입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 곡의 발매 후, ‘모스코’를 두 번 외치는 게 차가운 도시로 향하는 가장 쉬운 주문이 됐다. (정기엽)


웬디 ‘Like water’ (2021)
대형 엔터테인먼트의 메인 보컬 라인에 속한 가수가 솔로 앨범을 낼 때는 어느 정도의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선배들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서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첫 솔로 앨범을 내는 비슷한 시도들에선 얼마간의 자기 증명 욕구가 묻어나는 게 보통인데 웬디의 선택은 남달랐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욕심을 드러내기보단 지루할 정도로 계속된 거리두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시간이 지나도 많은 이들이 이따금씩 ‘Like water’를 찾는 이유는 그의 이러한 따뜻함에 있다. 곡에선 사랑을 물에 비유한다. 삶에서 꼭 필요하지만 너무나 흔해서 중요한지를 모르고 지내는 것들은 우리 곁에 없어졌을 때 그제야 역체감으로 중요성을 알게 된다. 그때의 우리에겐 사람이 그랬다. 혹자는 케이팝의 본질이 글로벌 뮤직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끔은 이 산업 현장에서도 어떤 전략이나 브랜드 가치를 넘어서는 감동을 발견할 수 있다. ‘Like water’도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성공했다. 이 경우에 그 비밀은 약간의 다정함이다. (김호현)


스테이씨 ‘I’ll be there’ (2021)
'색안경'을 끼지 말라거나, 잔소리는 다 'Bubble'이라거나, 'Teddy bear'처럼 가만히 있으라거나. 스테이씨는 항상 노래로 상대방에게 당돌하게 요구한다. 틴 프레시(Teen Fresh)라는 산뜻한 음악 지향이나 'Asap'의 꾹꾹이 댄스로 형성된 스테이씨의 상은 여느 아이돌과 다를 바 없지만 주요 곡들에서 이들은 어딘가 씁쓸하고 어른스러운 대화를 시도한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친교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 너 그리고 나, 인연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다. 일반적인 이별 노래 같은 'I'll be there'가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도입부의 퍼커시브 기타 반주에 부드럽게 올라탄 제이의 저음이 먼저 마음의 표면을 긁고, 멤버들의 뚜렷한 음색이 뒤이어 깊은 속을 후벼파면 그제야 수줍은 진심이 모습을 드러낸다. 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소녀들이 이번만은 깊은 상자 속에 품고 고민하던 내용을 어렵게 토해내는 듯한 곡. 당돌한 소녀들의 순수한 믿음과 치기 어린 약속이 전신을 찡하게 두드린다. (손민현)


피프티피프티 ‘Lovin’ me’ (2022)
최근의 K팝 노래와 다른 뚜렷한 기승전결, 4분 20초의 짧지 않은 러닝 타임, 슬픈 듯 희망을 잉태한 건반 리프, 물 흐르듯 자연스런 멜로디, 과시하지 않고 음을 정확하게 짚는 보컬, 영상과 편집만으로 막대한 돈만 퍼부은 뮤직비디오를 부끄럽게 만드는 뮤직비디오까지 모든 것이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을 마비시킨다. 시계의 초침 소리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인트로부터 유행이 한참 지난 아웃트로(Outro)까지 곡 전체는 최신 유행이나 거대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한다. ‘Lovin me’가 여느 K팝 걸그룹의 노래들과 다른 이유다. 이 곡은 ‘Cupid’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소녀가 힘든 시간을 극복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300여 개의 후보 곡 중에서 어트랙트 전홍준 대표가 직접 선택한 ‘Lovin me’의 작곡가는 ‘Cupid’를 만든 아담 폰 멘처. ‘Lovin me’를 인상적으로 들은 전대표가 그에게 춤출 수 있는 곡을 의뢰해서 탄생한 노래가 ‘Cupid’다. 이 연관성 덕분에 ‘Cupid’와 ‘Lovin me’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한국 가요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의 성장 스토리로 등극했다. 감탄하면 박수를 치지만 감동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처럼 나는 이 명곡을 듣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소승근)

이미지 편집: 신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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