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이즘x문화도시부평] #48 NSW 윤

NSW 윤(NSW Yoon)

by 손민현

2024.11.19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부평과 함께 하는 < 애스컴 아카이브 부평사운드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마흔여덟 번째 주인공은 인천 출신의 힙합 아티스트 NSW 윤이다.




음악 도시 인천에서 자라난 래퍼 NSW 윤은 파괴적인 장르 드릴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속 시원한 발성에 재치 있는 가사로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주목받은 그는 < 쇼미더머니 11 > 등 경연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렸고, 인천 선배들이 설립한 팀플레이 뮤직에 입단하며 본격 힙합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꾸준한 작업에 이어 올해 솔직한 스토리텔링 음반 < Slept In Bermuda >와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 DTF >를 연이어 발매하기까지. 그는 누구보다 랩을 잘하고 싶었고 자기 음악으로 열심히 세상의 문을 두드려 왔다.


털털하고 솔직했다. 인천에 대한 소회나 현재 본인이 몸담고있는 힙합 신에 관해 물었을 때 흘러나온 대답에서 인간 이승윤이 겪은 일화, 아티스트 NSW 윤이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였다. 랩을 위해 빠르게 진로를 결정하고 장비 구입을 위해 돈을 벌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성과를 낸 그는 다른 사람들도 힙합으로 힘을 얻고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열정. NSW 윤은 인생 내내 인천에, 그리고 힙합에 몸담은 사람이었다.


먼저 NSW 윤이라는 독특한 랩 네임의 출처가 궁금하다.

처음 랩을 시작했을 때 YNW 멜리(YNW Melly)처럼 알파벳 대문자를 앞에 쓴 이름이 멋져보였다.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과 ‘Never Stop Worship’의 약자 NSW를 모두 앞에 붙이기로 약속했고 나는 뒤에 이름의 마지막 철자 ‘윤’을 붙였다.

 

< 슈퍼비의 랩 학원 >, < 쇼미더머니 11 > 등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는가?

처음에는 가족이 음악하는 것을 반대했다. 어머니도 내가 인문계 진학하길 희망했지만 마침 인천 대중예술고등학교가 생겨서 내 뜻대로 작곡과로 진학했다. 그렇지만 딱히 특별한 성과가 없기도 하니까 어머니가 진로를 물으시더라. 그때 내가 TV에서 뜨지 못하면 그만 두겠다 선언했고, 여기서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에 누나 컴퓨터에서 < 쇼미더머니 5 >를 우연히 보고 너무 재밌어서 입문하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즈음 직접 가사도 쓰고 2만원 짜리 마이크로 랩 녹음도 시작했다. 랩을 하다 보니 마음이 풀리는 걸 느껴서 재미가 들렸다.


어렸을 적 본인의 힙합 우상은 누구였는가.

많이 바뀌었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국내 아티스트는 더콰이엇과 염따다. 해외에서는 YNW 멜리와 카니예 웨스트. 올해 발매했던 < Vultures >는 아직도 잘 듣고있다.


꽤 어린 나이였을 텐데 본격적으로 래퍼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했는가?

먼저 인천 서창동에 있는 스타벅스 컵 포장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사실 발매까지는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일을 하다보니 돈이 모이고 마이크 같은 장비도 사서 집에서 녹음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곡 발매도 하게 되었다.

 



그럼 혹시 인천에서, 혹은 학창시절에 공연에 대한 추억이 있는지.

아쉽게도 인천에는 힙합 클럽이 없어서 학교 축제에서만 많이 했던 것 같다. 몇 곡 발매하고 주목 받을 때 홍대 클럽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해봤다. 인지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고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인천 지역과 꽤 관계가 깊은 것 같다. 인천의 어떤 특징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인천에 있으면 사람에게 독기가 생긴다. 한적한 곳에서 걸으면 기분 전환도 되고, 바다를 보면서 마음 정리도 많이 한 것 같다. 지금 작업실도 송도 근처인데 바닷가가 근처라 심심할 때 자주 찾는다. 물가가 저렴한데도 서울과 가깝다는 장점도 있다.

 

비와이나 리듬파워 등 인천 출신 힙합 아티스트도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비와이가 인천 홍보대사에 위촉되어서 인천 지하철 2호선을 타면 그가 매번 보였고 인천시와 함께 만든 음악도 흘러나왔다. 인천에 있으면 나도 그분들처럼 할 수 있겠다는 생각, 아까 말했던 그런 독기가 생겼다.

 

‘인천시’같은 곡들이나 ‘ICN’과 같은 단어들도 의도적으로 반영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그곳에 있었던 일들, 배경이 가사에 녹여진다. 촬영이나 공연 스케줄 빼면 거의 인천에 있으니 내가 사는 곳을 굉장히 많이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교적 지역에 대한 애착이 덜한 서울 래퍼들에 비해 인천은 하나의 캐릭터가 된 것 같아 재밌기도 하다.

 



NSW 윤의 첫인상하면 역시 드릴이다. 이 독한 장르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음악 선배가 처음 씨제이(CJ)의 ‘Whoopty’를 들려줬고 드릴에 빠졌다. 일단 템포가 빠르고 사운드도 공격적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랩 실력이나 기본기가 부족하면 드릴에서는 바로 티가 난다. 당시 한국에서는 드릴이 유명하지도 않았으니 내가 잘 보여주면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릴의 정서가 한국과는 다른 면도 있는데 현지화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지.

사운드는 레퍼런스 삼고 가져온다 하더라도 가사가 늘 고민이었다. 현지 래퍼들의 ‘드릴’, 즉 누군가를 향한 위협이나 갱단의 전쟁 같은 소재는 순도 100%의 실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잔인한 것들이 그들의 삶이라면 드릴은 누군가의 삶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장르라고 본다. 그래서 나도 내 삶을 멋있게 풀어내면 그것이 드릴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가사, 발성 등 드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드릴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추천해준다면.

일단 전달력과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진정성이 있고 자기 얘기를 써도 실력이 별로라면 결과물이 좋을 수가 없다. 가장 근본은 팝 스모크(Pop Smoke)가 있겠고 영국의 러스 밀리언스(Russ Millions)도 추천한다.

 

올해 8월 < Slept In Bermuda >는 살짝 쉬어가는 모습인 반면 9월 < DTF >는 날 선 비판이 주요 테마다. 최근 작업 방향이 어떤지 공유해줄 수 있을까?

드릴 없는 EP를 먼저 만들다 보니 강하고 날 서 있는 음악만 모아서 바로 9월에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앨범에 드릴이 없으면 바로 부정적인 피드백이 오더라. 처음에는 이런 비판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조차도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내가 표현하는 바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싶다.



좌측부터 < Slept In Bermuda >, < DTF > 앨범 커버 아트


순수 영어로만 쓴 노래도 있다. 가사를 쓸 때 어떻게 접근하는지?

사운드를 먼저 고려하고 가사를 쓰면서 동시에 플로우를 맞춘다. 힙합이 해외에서 넘어온 장르인 만큼 자연스럽게 작사와 함께 영어공부도 하게 된 것 같다.

 

래퍼로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만 독특한 목소리와 톤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 다만 방송에 출연한 내 모습을 보며 느끼는 거지만 당시에는 너무 과했다. 지금 보면 랩하는데 숨이 너무 차고 가사도 잘 안 들린다. 타격감이 좋다는 평도 들었지만 귀가 너무 아프다. 그 이후로는 힘과 기(氣)를 조절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또 힙합 아이돌 영파씨의 ‘Young posse up’에 함께 했다. 이 콜라보레이션은 어땠는가?

솔직히 처음부터 취향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끌리는 맛이 있었다. 그러다 녹음을 위해 만났는데 재밌게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다른 장르 아티스트와 계속 만나고,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매번 메모장에 가상 피쳐링 진을 적어놓고 트랙리스트를 만들며 상상하기도 한다.

 

영파씨처럼 힙합을 지향하는 K팝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일단 고마웠다. K팝이 해외에서 반응이 많이 오기도 하는 만큼 아이돌이 국내 힙합 신을 도와주는 것이 좋았다.

 

오지 오스본 노래를 따오는 등 샘플링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지?

꾸준히 합작한 프로듀서 투턱(T₩OTUK)이 샘플링을 좋아해서 함께 작업한다. 창모와 청하의 ‘Remedy’라는 노래를 샘플링해서 ‘Girls remedy’를 만들어 SNS에 올렸고 원작자인 창모가 저작권도 허용해줬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샘플링 클리어가 어려워서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재밌게 도전하는 맛이 있더라.

 

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동료는 누구인가?

< 고등래퍼 4 >에 나왔던 터치 더 스카이. 마찬가지로 부평에 거주하는데 우리 함께 하는 크루가 보통 부평 아니면 송도에 모여서 작업한다. 함께 열 곡 정도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더 좋은 게 나올 것 같다.




최근 한국 힙합 신에 대한 생각 궁금하다.

한국 래퍼들의 랩 실력도, 사운드도 정말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오늘도 최근에 발매된 카모(CAMO)의 신보가 너무 좋아서 계속 들으면서 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리스너가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가장 힙합이 멋있는 때인데 말이다.

 

변화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전처럼 노래방에서 따라 부르기 힘들어서가 아닐까? (웃음) 어떻게 보면 질적 성장과 동시에 한국 힙합만이 갖고 있는 따뜻한 맛, 아기자기한 맛도 사라졌다고도 본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없을 만큼 랩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취향과 기준이 달라졌고 거기서 간극이 벌어진 것 같다.

 

상향평준화이면서 동시에 서구화에 가까운 것인지.

대중이 인식하는 ‘재래 힙합’과 놀랍도록 현지화가 빠르게 진행된 지금의 힙합은 아주 다르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 있는 래퍼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계속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할 것이고 들어주는 사람들과 합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더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NSW 윤이 생각하는 힙합 음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가.

나에게 힙합은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다리고 내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도와주었다. 예전에는 ‘할 수 있을까?’였다면 지금은 ‘빨리 해보고 싶다’로 바뀌었다. 내가 이렇게 느낀 만큼 청자들도 힙합이 주는 좋은 영향을 나처럼 받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고 받는 래퍼가 되고 싶다. 음악으로 힘을 주고 위로해 주어서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고 싶다.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NSW 윤의 인생 앨범은 무엇인가?

염따의 < 살아숨셔 2 >다. 음악을 통해서 힘을 받았고 나도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고 느끼게 해준 앨범이다.


진행: 손민현, 염동교, 한성현, 김태훈, 정기엽

정리: 손민현

사진: 정기엽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