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이즘x문화도시부평] #49 제이플로우(Jflow)
제이플로우(Jflow)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부평과 함께 하는 < 애스컴 아카이브 부평사운드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마흔아홉 번째 주인공은 힙노시스 테라피의 멤버로 활약 중인 제이플로우(Jflow)다.
제이플로우가 걸어온 예측 불허의 궤적은 논리나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의 색안경을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호기심만을 남길 때 비로소 그 곡선을 맨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순간의 호기심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라는 대답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커리어다. 원초의 자세로 접근해 매번 고도의 작업물을 깎아내는 그의 모습은 마치 깨달음을 얻은 도인을 닮았다.
파격적인 앱스트랙트 힙합으로 언더독 반란을 꾀한 ‘와비사비룸’, 알앤비의 적막한 어법으로 마음의 빈틈을 파고든 ‘히피는 집시였다’, 환락의 전자 음악으로 잠재된 레이브 정신을 끌어내는 ‘힙노시스 테라피’까지. 이 세 그룹을 통해서만 한국대중음악상 7회 노미네이트 및 1회 수상을 거머쥐었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어 각종 장르와 포지션을 넘나드는 경이로운 멀티 플레이어, 제이플로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인천에 거주 중이라고 들었다.
와비사비룸 활동 시기에 정착해 그 후로 떠나지 않았으니 거의 10년 가까이 산 셈이다. 스물한 살에 부산 김해에서 서울로 상경해 자취를 시작했다. 봉천동, 신림동 등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조명근(히피는 집시였다의 기타리스트)이라는 친구의 추천으로 인천 서구 검암동에 집을 구하게 됐고, 마음에 들어 그때부터 쭉 지내게 됐다.
이유가 있을까.
먼저 월세가 낮았다. (웃음) 공항 철도 덕분에 교통도 엄청 편했고. 집을 구하러 지하철을 탄 순간부터 호감이 들더라. 여러모로 물가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동네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지라 아예 여기서 터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주변 뮤지션에게 인천 홍보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부평문화재단 기획 < 전자도시부평 > 컴필레이션에 참여했다. 이디오테잎, 씨피카(CIFIKA), 키라라(KIRARA) 등 라인업이 화려한데.
블럭(박준우) 님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 이 짱짱한 라인업에 함께 이름이 올라갔다는 것도 좋았지만, 우리는 전자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 초대됐다는 점이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첫 정규 앨범을 낼 때만 해도 다들 이게 힙합인지 전자음악인지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나. 이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를 확실하게 일원으로 인정해 준 것 같아 기뻤다.
특이하게도 안치행의 '오동잎'을 리믹스했는데, 랩 대신 샘플링과 그루브에 집중한 점이 독특하다.
컴필레이션이라는 기획 의도에 맞춰 힙합보다는 전자음악의 바이브에 집중했다. 메인 샘플링은 짱유가, 그 밑에 깔리는 리듬과 베이스라인은 내가 담당했다.
이 곡을 고른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를 하려 했는데, 샘플 클리어 과정에서 차질이 생겨 후순위로 생각했던 '오동잎'으로 진행하게 됐다. 일단 들었을 때 귀에 걸리는 리프가 있었고, 이걸 만지면 재밌겠다는 직감이 있었다. 지금도 정말 만족하는 작업물 중 하나다. 이런 기회가 다른 분들에게도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노래를 공부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으니.
근래 인천과 연이 많다. < 랩비트 페스티벌 >도 있었고, 부평에서 한 < 뮤직 플로우 페스티벌 >도 있었고. 특히 부평에서의 공연은 격렬한 퍼포먼스로 화제가 됐는데.
짱유가 철조물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인기가 많더라. (웃음) 두 공연 모두 관객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특히 랩비트는 독일에서 공연을 마친 뒤 바로 도착해 밟은 무대였는데, 역시 본토는 다르더라. 진정 놀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게 인천의 바이브기도 하고. 대한민국 만세.
< 세종 보헤미안 뮤직 페스티벌 >에서는 관객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혹자는 턴스타일(Turnstile) 식이라 표했는데, 사실 작년 DMZ 때 비슷한 방식을 먼저 선보이지 않았나.
맞다. 실제로 1집의 ‘Benz’를 작업하면서 공연을 하게 되면 사람들을 무대에 올리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무리 잘 뒤섞여 논다고 해도 페스티벌 현장에서 관객과 퍼포머의 시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예 그 벽을 부숴 관객이 퍼포머의 입장을 체험하고, 반대로 우리는 내려가서 관객의 입장에서 노는 분위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물론 안전상 이유로 그때는 7~8명 정도밖에 올릴 수 없었다. 마침 턴스타일이 고점을 끊은 김에 우리도 본격적으로 다시 선보인 셈이다.
커리어 하나하나가 다양하고 굵직하다. 이렇게 다채롭게 색을 바꿀 수 있는 비결이 뭔가.
대단한 건 아니다. 그저 그때그때 생기는 흥미를 놓치지 않고 실행에 옮긴 덕이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고, 깊이 고민하지 않고 결단을 내리는 편이다. (웃음)
후속작을 내는데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많지 않은가.
다행히도 나는 그런 면에서 워낙 덤덤한 성격이라 큰 부담 없이 프로젝트에 임하곤 했지만, 음악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그런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개인적으로 그 나이와 그 시기에만 나올 수 있는 음악이 있다고 생각한다. 망해도 괜찮다. 오히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과감한 실행력만큼이나 꾸준함 역시 다작의 비결 같다.
이 또한 실행력에서 나온 게 아닐까. 내게 작업은 일종의 일기와도 같다. 나의 작은 순간들을 음악으로 풀어내 기록하는 거다. 와비사비룸의 모토도 부족함을 마음껏 드러내자는 ‘와비사비 정신’에서 시작했으니까. 나만의 작은 철학이다.
사실 이 커리어들이 장르적인 면 말고도 포지션에서도 각각 차이가 있다. 래퍼, 프로듀서, 그리고 이제는 디제이로 변신했는데.
혹시 모른다. 이러다 어디에 또 꽂히면 그쪽으로 갈 수도 있다. 갑자기 드러머가 될 수도 있고, 기타리스트가 될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혹시 지금 눈여겨 보는 분야가 있나.
아직은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일렉트로닉의 세계에 입문했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공부할 게 많은 장르다. 파면 팔수록 놀란다. 힙합과는 다르게 파생 장르도 정말 많고, 그 안에서도 소리와 습성이 전부 제각각 다르다. 한참 더 열심히 탐구해야 한다. (웃음)
소리 자체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헤비 리스너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왠만해서 편식 없이 두루두루 다 듣는 편이다. 애초에 음악 듣기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뭐랄까, 그냥 습관처럼 하는 거다. 차를 탈 때나, 운동할 때나, 할 거 없을 때 듣는. 다만 음악가라면 듣기만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무조건 시도는 해야 한다. 흥미로운 소리를 찾았을 때 이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공부하고 직접 해봐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와비사비룸, 히피는 집시였다, 힙노시스 테라피 순
와비사비룸의 시작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내 솔로 앨범을 만들기 위해 비트메이커 에이뤠 형을 만나러 간 게 시작이었다. 형이 만들어둔 비트를 들어보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나 홀로 곡을 채우기에는 심심할 것 같더라. 재밌는 사람 한 명이 더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때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동생이었던 짱유가 바로 떠올랐다. 곧바로 연락해서 우리 괴상한 거 하나 해보지 않겠냐 물어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히피는 집시였다, 힙노시스 테라피 모두 ‘원 프로듀서-원 MC’ 체제다. 와비사비룸도 둘이 될 수 있었는데, 혹시 2인 체제에 대한 열망이 있던 건 아닌지.
의도한 건 아니고 최적의 조건을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 멤버가 많아지면 생각도 방향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오래 경험해 본 결과 나는 두 명이 최적인 사람이지 않나 싶다.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지만 같이 사는 건 완전히 다르지 않나. 음악을 만드는 건 함께 사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 구도가 제일 편하다.
힙합, 알앤비,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로컬 장르 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음. 여러 파티나 페스티벌을 다니면서 든 생각은 아직 우리나라 서브컬처에는 아직 신이라 부를 만한 환경이 없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슬프지만, 그냥 모이는 정도에 그친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자생할 수 있는 거대한 생태계에 비하면 신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나.
만약 내가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면 장르적인 테두리를 만들지 말고 시작했으면 한다. 내 음악이 어느 신에 담길 것이라 딱 정하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는 힙합의 대부가 될 거야, 혹은 알앤비 대가가 될 거야 이런 생각으로 임하면 어찌 됐든 간극이 벌어지게 된다. 그냥 각자 큰 틀 안에서 마음껏 실력을 쌓고 성장한 다음에 세분화해도 늦지 않다. 어느 하나 완벽하게 자리 잡은 서브 장르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해서 뮤지션이 모든 걸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큰 안건이다.
확실히 해외에 비하면 공연 문화가 자연스럽지는 않다.
최근 힙노시스 테라피 이름으로 해외를 많이 다니면서 그런 온도 차를 피부로 체감한다. 호기심에 예술을 소비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그 온도나 마음의 여유 말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은 모든 일렉트로닉 클럽의 입장 시간이 기본 두 시간씩이다. 그에 반해 이태원은 사람이 적어 돈만 내면 입장할 수 있지 않나. 이탈리아의 페스티벌에 갔을 때 관객 대다수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일단 들어나 보자’ 하며 가볍게 들어오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음악을 듣기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카페 가듯, 마실 나오듯 동네 주민들이 보러 나오는 거다. 물론 별로면 또 자유롭게 나가지만 말이다. (웃음)
그래도 요즘은 페스티벌이나 공연이 점차 활성화되는 추세긴 하다.
맞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유명 아티스트 라인업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흥행할 수 있는 페스티벌이 생겨나는 거다. 펜타포트가 록을 지향하고 있지만 과연 관객 전부 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리고 날이 갈수록 록 페스티벌이 흥행하지만 홍대에 있는 록 공연장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는지에 대한 괴리들도 마주해야 하는 포인트 같다.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그냥 즐기고 놀기 위해, 혹은 어딘가 자랑하기 위해 찾아오는 유입 층도 전부 중요하다. 순환이 필요하고, 그게 진정한 ‘서브 컬처’ 신의 탄생이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힙노시스 테라피는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
일단 동양에서 할 법한 음악이 아니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짱유라는 유일무이한 에너지가 있지 않나. 관계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것도 있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봐주는 것도 꼽을 수 있다. 일단 우리 둘 다 영어를 정말 못한다. (웃음) 가사도 멘트도 대부분 한국어고. 그런데도 분위기 하나로 우리를 받아들여 주는 거니까 정말 놀랍다.
기억에 남는 나라가 있나.
전부 기억에 남는다. 사실 언어도 안 통하는데, 음악 하나로 연결되어 그 에너지를 공유한다는 점이 정말 신기하지 않나. 우리가 하는 음악이 굉장히 어려운 편인데도 그걸 받아들여 준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일본, 이탈리아, 독일 등등. 다들 엄청나게 잘 논다. 물론 한국이 짱이지만.
레이브 신과 힙합을 결합한 아이디어가 거의 없었는데. 어떻게 구상하게 된 팀인지.
사실 무언가 숭고한 의도를 기획하고 만든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짱유가 자기도 비트를 만들고 싶다며 나를 찾아온 게 시작이었다.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물어보니 막 디 안트우드(Die Antwoord) 같은 실험적인 전자음악가들의 작업물을 들려주더라. 아무래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나도 공부해야 했다. 그전까지는 대중적인 부분만 접하다가 제대로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장르는 이런 신스를 쓰고, 이런 패턴을 가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관심이 생기게 됐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된 거 둘이 같이 팀을 만들어보자 이야기가 나왔다. 그게 힙노시스 테라피의 시작이었다.
단순한 우연에서 시작한 건가.
맞다. 다만 전자음악 신에 들어가 사람들 앞에서 활동할 거면 먼저 신에 대한 존중과 공부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지금도 한국의 언더그라운드부터 각종 해외 레이브 신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가는 중이다. 다행히 한국 레이브 신도 우리를 반겨줬고, 최근에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과 파우스트 등과 협업을 거쳤다. 그들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바랐던 것 같다.
힙노시스 테라피를 규정할 수 있는 음악을 하나만 꼽아줄 수 있나.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나온 < Raw Survival >. 사실 항상 그렇다. 다음에 이 질문을 받으면 또 다음 음반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웃음)
이번에 나온 신보 < Raw Survival >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한다.
한글로 직역하면 ‘날 것의 생존’이겠다. 핵심은 공연에서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원초적인 에너지, 잊고 있던 우리의 본능을 되찾는 과정이다. 오히려 역으로 진화해, 앨범을 다 듣고 날 즈음에는 원숭이가 되어 있는 그런 느낌 말이다. (웃음) 삶을 살아가면서 불필요하게 겪게 되는 형식적인 면을 조금 더 걷어내면 훨씬 재밌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전작과의 차이가 있을까.
트랙 하나하나 실험적으로 가져가려 집중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어느 신의 음악을 합쳐도 이런 사운드는 없지 않았을까. 생경하거나 어색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 원시인이 불을 발견한 기분을 느끼길 바란다.
작업 기간은 어땠나. 바쁜 스케줄 가운데 발표한 음반인데.
국내외 공연이 많기는 했지만 앨범 작업은 또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즐겁게 작업했다.
커버가 독특하다. ‘Broken tooth’의 이빨과 ‘Die die’의 망치가 이어지는 구조 같다.
그렇다. 두 캐릭터가 합쳐지면서 벽화가 되는 구조다. 나름의 힌트를 던진 셈이다.
가장 애정이 가는 트랙이 있다면.
9번 ‘Blaze’. 이 트랙은 협업 트랙인데, 콰이어트 비종(QUIET BISON)이라는 해외 일렉트로 아티스트와 작업한 곡이다. 아마 플룸(Flume)의 < Palaces >(2022) 앨범 가운데 ‘Escape’라는 곡에서 이름을 본 분들도 있겠다. 이분이 먼저 우리 앨범을 듣고 함께 곡을 만들어보고 싶다 연락이 왔다. 7번 트랙에 참여한 ‘에코 바즈(Ecko Bazz)’는 우간다 뮤지션이다. 이분은 우리가 직접 섭외한 분이고, 그가 가진 에스닉한 분위기가 우리 앨범의 의도인 ‘원초로의 회귀’에 알맞다고 생각했다.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는지.
솔로 남자 뮤지션 가운데서는 가르종 로비에(Garzón Robie). 비주얼도 독특하고, 상당히 키치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다. 이런 특이한 행보를 가진 아티스트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밴드 중에서는 설(Surl)이 떠오른다. 공연장에서의 에너지가 단박에 꽂히더라. 꼭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는데 이제 곧 군대를 간다고 해서. (웃음) 아, 그리고 세일러 허니문(Sailor Honeymoon)이 떠오른다. 이 팀의 콘셉트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구상하고 있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는 또 없나.
아직은 전혀 계획이 없다. 지금 물이 들어오고 있고, 모든 걸 제쳐두더라도 이때 확실히 저어야 한다 생각한다. 지금은 힙노시스 테라피에 모든 시간을 올인 중이다.
혹시 목표가 있나.
음, 지금은 힙노시스 테라피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키우고 싶다. 어떤 대형 페스티벌이나 쇼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보다, 우리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신을 확장하고 세계에서도 조명받을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선례, 즉 퍼스트 펭귄이 되는 게 목표다. 우리가 계속 도전하고 들이받다 보면 자라나는 어린 뮤지션들이 용기를 가지게 되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한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밥 말리다. 와비사비룸 만들 때 제일 영향을 많이 받았던 아티스트다. 그다음은 지미 헨드릭스. 히피는 집시였다 활동 시기에 정말 많이 들었다. 음악적으로 연관은 없을지 몰라도 그들의 삶과 태도가 큰 동기를 줬다.
진행: 손민현, 장준환, 염동교, 한성현, 김태훈, 정기엽
정리: 장준환
사진: 정기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