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올해의 해외 앨범

by IZM

2024.12.15


“앨범은 여전히 중요합니다(Albums Still Matter)” 2016년 어느 시상식에서 프린스가 한 말이다. 엄연한 싱글 시대에도 여럿 빛나는 작품들이 음반 미학을 제고했고 그 가치를 되새겼다. 힙합이 비교적 약세를 보이는 사이 록과 일렉트로니카가 치고 올라왔으며 수십 년 구력의 대가와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은 미래의 거장이 균형감을 드리웠다. 장르적으로 두 중심축 이외에도 레게톤과 아프로비츠가 대중음악의 탈 서구화와 그에 모순되는 교배종을 예견했고 자연스레 청자의 취향도 두루 충족했다. 세계 지도 그리듯 다각화한 2024년의 팝 앨범 10장을 정리했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염동교)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 Hit Me Hard And Soft >
이제야 갓 성인이 된 우리 시대의 음악 작가가 벌써 원숙한 거장의 궤도로 진입하려 한다. 우울한 세계 속 더욱 음울해진 Z세대와 알파 세대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사랑, 혐오, 상실의 주제 아래 감정과 음악의 요동치는 변주로 잔잔하게 휘몰아친다. 초록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놀았던 데뷔작, 스스로 스테레오타입으로 분하며 세상의 폭력적인 시선에 맞섰던 소포모어작의 세계가 안정적인 프로듀싱과 한층 성장한 보컬을 통해 조화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주인공의 입가에는 미소가, 몸짓에는 여유가 느껴진다. 제목 그대로 강하게 때리고 부드럽게 쓰다듬는 작품이다.


전체 완성도를 위해 선공개 싱글도 발표하지 않은 앨범이지만 놓칠 곡이 없다. 지난해 영화 ‘바비’의 사운드트랙 ‘What was I made for?’로 전 세계 10대들의 심금을 울렸던 섬세한 멜로디는 달콤한 러브송 ‘Birds of a feather’로 한층 가볍고 아름답게 진화했다. 커밍아웃을 선언하며 깊어진 자기애는 파트너를 한끼 식사로 비유하는 ‘Lunch’를 통해 진솔한 갈망으로 분출한다. 차가운 전자음악과 따스한 현악 오케스트라, 록과 신스 웨이브 등 폭넓은 장르가 차분한 지휘 아래 산뜻한 혼란이라는 낯선 개념의 공존 지대를 구축한다.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 오코넬이 2020년대를 대표하는 팝 듀오로 자리매김한 앨범. 남매의 전성기는 지금부터다. (김도헌)




찰리 XCX(Charli XCX) < Brat >

지구를 뒤덮는 나노머신의 공포를 그린 그레이 구 시나리오처럼 이 형광 녹색은 2024년 온 세계를, 심지어 찰리 XCX 자신마저 집어삼켰다. 음악을 넘어 ‘브랫 서머’라는 하나의 거대한 현상으로 떠오르고 미국 대선 주자 카말라 해리스가 눈독 들이기까지, 음반은 현시대의 ‘힙’과 ‘핫’을 상징하는 대표 주자로 우뚝 섰다. 디럭스부터 리믹스 앨범, 수십 종의 바이닐 발매로 이어지는 공격적 프로모션 또한 의도한 과잉에 가깝다. 커버 아트로 미니멀리즘을 가장하지만 그 안에는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와 빌리 아일리시를 함께 아우르는 확장주의가 숨겨져 있다.


스스로 찬탈자가 되어 디스코그래피를 모조리 Arial 폰트와 단색으로 덧씌워 버린 전조조차 본진(本震)의 충격엔 미치지 못했다. PC 뮤직의 종언을 문제없이 넘기듯 A. G. 쿡을 다시금 불러들여 빚어낸 결과물은 굳이 여러 담론을 보태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강력하다. 팝의 친숙한 접근법을 취한 채 다가와 단숨에 레이브의 광기 속으로 대중을 인도하는 손길, 클럽 신의 기저에서 채굴한 원석을 정밀하게 세공해 내놓은 형형한 초록빛의 보석이다. 올해 모두가 선망하는 ‘파티 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단 두 가지, 이어폰과 < Brat > 뿐이었다. (박승민)




큐어(The Cure) < Songs Of A Lost World >
큐어가 16년 만에 발매한 작품 < Songs Of A Lost World >에는 아름다운 천국과 회색빛의 심연이 동시에 존재한다. 초반부 트랙 'Alone', 'And nothing is forever'가 안겨주는 황홀감은 곧 비탄의 소리들로 가득한 'Warsong'에 이르렀을 때 소멸한다. 그 이후로 남는 것은 혼란과 불안의 디스토션에 섞여 회오리치는 절규의 음악이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키보드는 'Endsong'에서 자취를 감추고, 리더 로버트 스미스는 상실의 단어만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그가 겪어야만 했던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다.


영원하길 바라는 빛은 순간이고, 부디 끝나길 바라는 어둠은 삶에 내려앉아 야속한 고행의 나날을 만든다. 그 속에 갇혀 발버둥 치는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며 시간은 그런 인간에게 체념이라는 불행한 안식을 전한다. 이러한 삶 속에서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을 짊어진 채 한 걸음씩 내딛은 발자국은 큐어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음악으로 변했다. 해가 바뀔수록 낭만과 허무가 공존하는 모순의 삶이 더욱 선명해지는 현재, 큐어는 마음의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을 안식의 종착지로 인도했다. (김태훈)




잭 화이트(Jack White) < No Name >
잭 화이트의 지난 홀로서기 음반은 뒤따르는 해석을 간식 삼아 몇 번을 곱씹어가며 의도를 탐하는 맛이 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 시절의 간명한 빛깔을 고대하는 대중과 상충하기도 했지만 그의 또 다른 이름인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극강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연출하며 매번 설득 그 이상의 납득을 일궜다. 그렇기에 의미심장한 홍보 방식을 거쳤던 < No Name >은 더더욱 만나본 적 없는 그의 새로운 현신이자 생각지 못한 도전의 집합물이라 예상했다. 하나 웬걸.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이 적잖이 놀랍다. 기억 속 잭 화이트가 돌아온 것이다.


밴드의 미니멀리즘 구조를 기저로 솔로 음반의 맥을 잇는다. 블루스와 개러지 록의 정통성 위로 뻗은 펑크와 메탈의 쾌활한 질주는 물론, 무엇보다 대중성을 겸비한 간결하고도 독창적인 리프가 내내 흐뭇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니 ‘That’s how I’m feeling’과 ‘What’s the rumpus?’의 담대한 승부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지나간 영광에 세월이 내려앉았어도 그 광채는 변함이 없지만 새로움만을 좇다 보면 서서히 먼지가 쌓여 어느 순간 형체를 가릴지 모른다. 잭 화이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 No Name >이란 고운 천으로 때를 닦아내는 것, 그 이상의 푸른 빛을 창조해내며 2024년 대중을 철저히 흡수했다. (신동규)




칼리 우치스 (Kali Uchis) < Orquídeas > 

라틴 팝, 레게톤 유행 속에서 튼 하나의 새싹이 자라나 난초가 되었다. 콜롬비아계라는 태생적 특성으로부터 말미암은 음악적 탐구 안에는 민속적인 색채와 예술성이 깊게 스며들어있다. 첫 정규앨범 < Isolation >부터 증명해 냈던 넓은 장르적 스펙트럼은 꾸준히 확장을 이루고 있고, 개인적인 서사도 지속적으로 깊어지니 칼리 우치스라는 뮤지션의 아이덴티티가 더욱 단단하고도 유니크해졌다.


몽환적이면서도 레트로한 맛의 ‘Igual que un ángel’, 직관적인 비트와 피쳐링으로 즐거운 판을 만드는 ‘Muñekita’, ‘Labios mordidos’, 고혹적인 볼레로 ‘Te mata’까지, 중남미에서 발현된 여러 장르를 끌어안은 다양함과 모든 이들이 춤추며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이 공존한다. 은은한 향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난초처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 Orquídeas >는 칼리 우치스를 2024년 최고의 라틴 팝 아티스트 자리에 올리며 팝 신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웠다. (김태훈)




라스트 디너 파티(The Last Dinner Party) < Prelude To Ecstasy > 

괜한 하입이 아니다.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착장과 무대 위 당돌하고 격정적인 무대 위 퍼포먼스처럼 외양의 카리스마는 제목부터 강렬한 데뷔작 < Prelude To Ecstasy >의 내연으로도 이어진다. 직설화법으로 똘똘 뭉친 ‘Nothing matters’부터 물 흐르듯 유려한 멜로디가 극적 분위기를 연출한 ‘Caesar on tv screen’와 글램 록 대선배 스파크스의 영향이 또렷한 ‘Sinner’ 등 개성파 트랙 행렬을 펼치며 신시사이저를 가미한 ‘My lady of mercy’가 다채로운 사운드 아이디어를 집약한다. 


바로크 팝과 시어트리컬 록적 요소가 아트 팝 테두리 안에 자유로이 혼재된 대담하고 야심 찬 작품이지만 과하게 흘러넘치기보다 다채로이 물들인다. 보컬 아비게일 모리스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기량의 멤버와 데클란 메케나부터 디페시 모드까지 협업의 시대적 스펙트럼이 넓은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가 복고적이면서도 고루하지 않은 사운드스케이프를 연출한 덕이다. 솔직한 노랫말이 의기소침한 청춘에게 용기를, 고민하는 소수자에게 공감대를 남긴 라스트 디너 파티는 쿨하고 힙한 영국 포스트 펑크 밴드 사이로 유유히 빛나며 넥스트챕터를 주시하고 있다. (염동교)




레몬 트윅스(The Lemon Twigs) < A Dream Is All We Know >

지성과 감성을 모두 일깨우는, 반세기를 넘나드는 음악 복각 프로젝트가 2024년 드디어 선명한 열매를 맺었다. 흥겹고 안락한 비틀스부터 비치 보이스의 편안한 화성, 킹크스의 힘찬 연주와 버즈(The Byrds)의 직선적인 포크 록 등 주요한 무형 문화재가 잔가지에 생동한다. ‘레트로’라는 피상적 수식이 불가능할 만큼 신선도와 당도 높은 과육, 여기서 풍기는 노스탤지어 향은 밴드 사운드의 뿌리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이 레몬 나무에서만큼은 퀘퀘하다고 치부되는 역사 내음도 싱그럽다. 


수수한 탬버린으로 지향을 설파하는 ‘My golden years’부터 풍성한 공간감의 ‘How can I love her more?’까지, 디지털을 전폐하면서 획득한 옛 질감의 재현도는 완벽하다. 그러나 팝의 정론 비틀스마저 현대화 물결에 외면받는 지금, 과거를 쫓는 다다리오 형제의 핵심 과제는 시대 흐름을 거슬러 청취할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게다가 단일 곡도 아니고 한 장의 음반이다. 이들은 음악인에게 언제나 가장 적확한 정답, 막힘 없고 세련된 멜로디를 덧붙여 모범적으로 타개했다. 모든 의의와 설득의 필요성이 종식되는, 그자체로 생생하고 쉬운 해설집이다. (손민현)




막달레나 베이(Magdalena Bay) < Imaginal Disk >
그라임스, 찰리 XCX 등 동시대 뮤지션 영향 하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의 아류로 전락하는 건 아니다. 창의성만을 터득해 다른 뿌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두 장의 음반으로 증명했다. 현대에 밀접한 인풋을 쌓아 도출한 미래지향적인 아웃풋은 향후 음악계에 더 큰 거름으로 쓰일 것이다. 뱀파이어 위켄드와 더불어 ‘Vampire in the corner’를 수록한 막달레나 베이, 두 뱀파이어가 올해 혁신적인 면모를 살뜰히 챙겼다.

평가가 음악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여러 평단이 일정 수준 이상의 고평가를 했다는 건 음반의 표식으로 충분하다. 척 내민 다수의 엄지가 이 음반의 뛰어난 완성도를 증명한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의 교집합만을 곡마다 골라 눌러 담았다. 단타로 잡아끄는 장치를 배치하며 어떻게 매료하는지가 판도를 흔드는 2024년, 변화무쌍한 리듬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쉬이 지나치긴 어렵다. 게다가 전작과 연결마저 고려한 치밀한 계산의 결과물이다. 참신한 소리의 향연을 연달아 선보인 이들은 독창성의 단계를 독보적으로 끌어올리며 올해도 활보했다. (정기엽)




템스(Tems) < Born In The Wild >
리듬의 배치, 진행, 곡 스타일에 있어서 다양성의 구현이라기보다 차라리 예술적 실험의 본질이라 할 ‘비일관성’의 실천이란 수식이 적합하다. 샤데이 혹은 아니타 베이커 같고, 로린 힐 같다가도 불쑥 피프티 센트의 느낌도 던진다. 일관되지 않은 것들을 장장 54분에 걸쳐 펼쳐놓았다. 2020년대에 융기한, K팝도 차용한 아프로비츠(Afrobeats) 추세에서 단일 곡으로는 타일라의 ‘Water’일지 모르나 앨범으론 템스의 데뷔작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래미 3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인정은 작품 다수의 지점에서 감흥이 분출한 데서 비롯한다. 


나이지리아 선배뮤지션 세이 소디무에 대한 헌정으로 올 코첼라를 달군 ‘Love me jeje’, 감각적인 ‘Burning’, 멜로딕한 ‘You in my face’, 힙합과 만난 ‘Unfortunate’, ‘T-unit’ 등이 무차별로 심층에 박힌다. 야생임을 밝힌 타이틀과 격앙된 ‘Gangsta’를 통해선 서구의 침탈이 서구와의 교류로 둔갑한 아프리카대륙의 상흔에 대한 분노도 움켜쥔다. 물론 전체를 가로질러 현 영미권 음악은 모조리 아프리카가 기원임을 유려하게 증거한다. 글로벌 주류 팝에 부재한 도저한 신비스러움! 분과 화 그리고 낙관을 삭인 ‘보이스 오브 아프리카’가 들린다.  (임진모)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 Only God Was Above Us >
초연결사회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서로 끊어져 있다. 성별, 인종, 재산, 나이 등 모든 것이 우리를 갈라놓은 세상이다. 발랄한 대학생 밴드로 시작해 점차 차가운 사회에 찌들어버린 뱀파이어 위켄드는 기묘한 지하철 사진 속 신문 기사에서 그들이 해야 할 말을 발견했다. ‘우리 위에는 오직 신만이 있었다.’ 항공기 사고를 설명하는 헤드라인에서 제목을 딴 < Only God Was Above Us >는 분열이라는 재앙 앞에서 하나 되기를 간곡히 소망하는 작품이다.

단절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논하나 따분한 훈계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빼곡하게 새긴 변주 덕분. 오랜 정체성이었던 실내악 구성과 아프로 리듬에 재즈 피아노와 힙합, 트립합까지 혼합한 사운드는 결성 16년 차에도 멈추지 않는 밴드의 진화를 실증한다. 우직함과 변화 의지, 이성과 감성, 절제와 충동, 염세주의적 언어와 청각적 모험이 부딪히고 화해하는 현장이다. 그 끝에서 적에게 항복을 선언하는 마지막 ‘Hope’도 무책임한 비관이 아니라 자기 소멸을 통한 폭력의 대물림과의 작별, 미래를 위한 희생이 된다. 멋진 앨범을 만들기, 더 나아가 좋은 어른이 되기. 뱀파이어 위켄드는 이 어려운 작업을 거뜬하게 완수했다. (한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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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작: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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