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래퍼 샤부지의 ‘A bar song (Tipsy)’이 빌보드 싱글 차트 19주 1위를 끝으로 왕좌에서 물러났다. 이는 2019년을 집어삼킨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 (Remix)’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장 기록으로 2017년 루시스 폰시와 대디 얀키의 ‘Despacito’, 1995년에 발표해 이듬해까지 이어진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의 ‘One sweet day’, 작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모건 월렌의 ‘Last night’을 뛰어넘은 수치다.
지난해를 달군 컨트리 열풍은 모건 월렌의 16주 장기 집권에서 그치지 않고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블레이크 쉘튼, 브래드 페이즐리, 브룩 앤 던 등 오랜 경력을 가진 기존 백인 음악가부터 젤리 롤, 자크 탑, 메건 모로니와 라일리 그린 등 새로 유입된 젊은 층의 지지로 가파른 성장 가도를 달린 새 얼굴이 뒤엉켜 연이은 순풍에 춤을 추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작 메인 차트 정상의 자리는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샤부지는 백인이 아닌 흑인이다. 정통 컨트리도,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신생 장르 브로 컨트리(Bro-Country)도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건 월렌처럼 컨트리의 심장 내슈빌이 속한 테네시주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수도 워싱턴에 근접한 버지니아 우드브릿지 출신이다. SNS에서 바이럴된 것도 아니다. 각종 플랫폼에서 그의 음원 사용 빈도는 다른 컨트리 가수보다 현저히 적다. 그렇다면 샤부지는 어떻게 대중을 홀리고 컨트리 계의 총아가 되었을까. 또 흑인으로서 컨트리를 장착하고 수많은 기록을 주파한 사실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두 질문을 큰 갈래로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며 답을 찾아가 보자.
샤부지, 두 후광을 얻다.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와 샤부지의 ‘A bar song (Tipsy)’은 외형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흑인의 주선으로 이뤄진 컨트리와 힙합의 만남. 5년 전 릴 나스 엑스가 빌보드 싱글 차트 19주 1위의 대기록을 세울 당시에는 ‘흑인과 컨트리’, 즉 인종과 장르 간의 이색 결합을 주제로 접근하는 움직임은 비교적 적었다. 그때만 해도 틱톡 등지의 숏폼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최상위 순위권에 도달한 드문 사례였기에 이것이 우선 분석 과제가 되었던 탓이고, 이는 곧 역대 기록을 빠르게 갈아치워 가는 돌풍 속도에만 집중하게 하는 차안대로 기능했다.
이제는 공동 1위가 된 릴 나스 엑스의 질주는 수십 년 전부터 허물기 시작했던 흑백의 경계가 진정 옅어져 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정상에 도달한 음악이 홀로 부른 원곡이 아닌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이자 관록의 컨트리 싱어 빌리 래이 사이러스와 함께한 리믹스 버전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샤부지의 음악을 들을 때 미국인이 느끼는 기시감은 기분 탓이 아니다. ‘흑인, 힙합, 컨트리, 크로스오버, 빌보드’. 위 다섯 단어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지난날의 한 곡이 무의식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올해 3월 발매한 비욘세의 여덟 번째 앨범 < Cowboy Carter >는 불붙은 컨트리 신 한가운데 좋은 의미로의 찬물을 끼얹었다. 해당 작품은 오늘날 미국의 대중음악은 흑인의 직간접적 영향 속에서 피어난 산물임을 잊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은 트릴로지 프로젝트의 중간에 위치한 음반으로 백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컨트리도 그 연원은 흑인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말한다. 스물일곱 곡의 장대한 서사시, 유색 인종의 궁핍한 삶과 낙관적 해학, 인권 운동적 면모를 고루 펼쳤다. 샤부지도 그와 두 곡을 협업하며 이른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다분히 정치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도전을 누구도 아닌 비욘세가 시도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었고, 이는 곧 장르마다 점철된 인종적 잣대에 관한 대중의 인식 변화에 효과적인 결과를 낳았다.
선을 넘거나 선을 엮거나.
흑백 분리의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흑인과 컨트리의 융합 행위는 꽤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오른다.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n)의 재즈, 블루스와 대척하는 백인의 힐빌리(Hillbilly) 음악에서 시작한 컨트리. 두 갈래의 교차에 있어 레이 찰스의 거대한 지점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1959년 애틀랜틱 레코드를 떠나 ABC 레코드에 새 둥지를 튼 그는 ‘What I’d say’를 곧바로 히트시키며 독보적 입지를 다졌다. 블루스에 가스펠과 재즈를 연결해 팝의 문법으로 포장하는, 당시로선 실험적인 시도를 완수한 그는 1960년대에 접어들자 그 이상의 가치를 향해 선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이를 대표하는 음반이 바로 1962년 발표한 < Modern Sounds in Country and Western Music >이다.
어릴 적 힐빌리 밴드에서 건반을 연주하며 경험을 쌓았던 레이 찰스는 소울과 컨트리의 교배를 이끌었다. 원곡 특유의 흥취와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알앤비의 접근법을 따른 연주 세례는 대중음악계를 넘어 사회적 파장을 남겼다. 그는 두 장르를 소비하는 주체 집단이 다를 뿐 음악을 듣고 획득한 가치의 본질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컨트리와 소울의 상이한 인종적 기반 위에서 대중의 사회적 관용을 시험한 것이다. 주위 모든 사람이 말렸지만 레이 찰스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돈 깁슨 원곡의 ‘I can’t stop loving you’와 에디 아놀드 원곡의 ‘You don’t know me’의 재해석 본이 빌보드 싱글 차트 1, 2위에 나란히 올랐고 양쪽 진영에 새로운 이정표와 모델을 제시하며 근간을 흔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음악적 가치와 달리 고까운 시선은 항상 존재했다. 앞서 언급한 레이 찰스의 음반은 미국 내 민권 운동이 절정에 다다랐던 1960년대에 던져진 작품이었기에 한편으론 해소하지 못할 인종적 불화를 부추겼다는 여론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인종적 인기와 레이 찰스의 퓨전 행보를 일차적 결합이라 한다면 1980년대의 흑백 공존은 이차적 결합이라 할 것이다.
라이오넬 리치는 대표적인 예시다. 코모도스 시절 ‘Sail on’, ‘Still’ 등의 컨트리 넘버를 작곡하며 주류 시장 진입을 열망했던 그는 1980년 컨트리 가수 케니 로저스에게 선물해 히트한 ‘Lady’를 대표로 흑백분리선을 여러 차례 이용했다. 1986년에는 컨트리 밴드 알라바마와 함께 모타운의 명의로 ‘Deep river woman’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2년, 그동안의 히트곡을 모아 후배 가수들과의 듀엣곡으로 채워낸 셀프 리메이크 앨범 < Tuskeqee >에 컨트리 보컬 그룹 리틀 빅 타운과 호흡을 맞춘 ‘Deep river woman’을 실었던 선택이 그리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안정적인 시장 확보에 목적을 둔 백인을 향한 구애에 지나지 않다는 뭇매가 잇따랐다. 심지어 알앤비에 본적을 둔 그가 두 장르, 아니 양 인종 간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대중은 그를 검은 쿠키 사이 흰 크림이 들어있는 과자에 빗대 ‘오레오 싱어(Oreo Singer)’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화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 Cowboy Carter >를 발매한 비욘세가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다는 사실과 다가올 그래미 어워즈에서 그의 수상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광경은 인종 차별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 레이 찰스, 라이오넬 리치를 건너 릴 나스 엑스와 비욘세를 지나 샤부지에 닿기까지 하나가 됨은 무리라 하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인식만큼은 차츰 변하고 있다는 점이 긴요하다.
샤부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DNA에 깊이 새겨진 통한의 기억과는 별개로 당시를 경험했던 세대와 멀어지며 새롭게 출현한 젊은 층이 가진 시각은 결국 분리보다는 통합에 가깝다. 누구라도 미워할 수 있는 자유보다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을 평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풍조다. 현재 해당 세대의 중심에 위치한 장르는 힙합이다. 이에 인종적 갈등 혹은 무신경의 영역에 존재하던 컨트리가 청춘 세대의 불안한 미래 앞에서 낙천적이나마 달갑게 다가오며 돌아온 유행을 인도하고 있다. 샤부지는 바로 이 지점을 돌파했다. 흑인의 목소리로 힙합과 컨트리를 섞어 충고가 아닌 낙관적 이상을 심어준 것이다.
‘A bar song (Tipsy)’은 변화하고 있는 인식적 측면과 아울러 크로스오버 곡으로서도 산술적 이득을 취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오랜 기간 수성하기 위해선 라디오 지수가 필수적이다. 해당 곡이 수록된 정규 앨범 < Where I’ve Been, Isn’t Where I’m Going >을 발매했으나 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음반은 비교적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나 단일 곡으로는 2천만 건 이상의 공식 스트리밍 횟수를 확보함은 물론 라디오 청취 횟수는 무려 7천만 회 이상의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힙합과 컨트리만을 다루는 장르별 전문 라디오 매체의 어느 쪽에도 경계를 두지 않고 재생되며 무한 소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샤부지의 이번 역주(力走)는 점차 짧은 주기로 나타날 제2, 제3의 샤부지의 예고편이다. 기술 발전과 함께 대중음악의 물리적 부피가 증대함에 따라 장르 간 혼합은 늘어가고, 신세대의 평등지향적 인식 변동은 희석되는 역사성과 발을 맞춰 각 분야를 바라보는 과거의 시선을 거둘 전망이다. 소비 매체 또한 시스템 구축과 미국 고유의 지리·문화적 특성에 있어 라디오의 위력을 넘을 장치는 나타나지 않았기에 해를 거듭하며 컨트리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오늘은 머지않아 유행이 걷힌다고 하더라도 상기한 흐름을 굳힐 수 있는 적기다. 숫자에 연연할 필요 없이 새로운 해에는 새로운 샤부지가 등장할 테다. 중점은 결국 희미해지는 전통적 구분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각, 샤부지가 남긴 건 우리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여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