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IZM)에서 들어보는 크리스마스 뮤직
태양이 잠시 눈길을 거두는 한랭한 계절에도 음악만큼은 따뜻하길 바라는 온 지구인의 염원. 캐롤과 겨울 음악은 독창성보다는 따스한 보편 감정을 전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원섭섭한 마음, 가장 먼저 계절을 새치기한 월력에 여러 계획을 세워보는 치기 어림, 이번 1년도 찬란하리라는 순수한 소망. 비일상적인 한파로 인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연말 분위기를 미뤄뒀던 대한민국의 12월, 가장 어두웠지만 마침내 밝게 빛난 이번 12월을 떠나보내며 이즘에서 겨울 시즌 특집을 마련했다. 곧 있을 크리스마스에는 온화함을 되찾길 바라며, 이즘에서 선곡한 캐롤과 겨울 시즌 송 리스트를 전한다. (손민현)
빙 크로스비(Bing Crosby) ‘White Christmas’ (1942)
빙 크로스비 하면 산타 모자를 쓴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르게 한 일등 공신. 크리스마스 팝의 클래식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타이틀로 캐롤의 범주를 벗어나 대중음악사 속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거창한 요소 없이도 중후한 바리톤 보컬과 스트링, 브라스만으로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감싸안는다. 수많은 세월을 넘어 최근 뷔와의 듀엣으로 다시 부활하기까지, 이 곡은 18년 후 100주년을 맞는 해에도 영원할 것만 같다. (박승민)
르로이 앤더슨(Leroy Anderson) ‘A Christmas festival’ (1950)
‘Sleigh ride’ 작곡가로 유명한 르로이 앤더슨의 캐롤 메들리로 1950년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통해 처음 녹음 됐으며, ‘Jingle bells’, ‘Silent night’ 등 총 9곡을 1개의 노래로 엮었다. 뻔한 고전들뿐이지만 지금만큼 클래식한 사운드가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 언제나 효율을 따지는 민족에게 안성맞춤이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곡이다. 만토바니, 퍼시 페이스와 함께 1950~60년대를 장악한 경음악 전설의 선율로 플레이리스트를 따스하게 물들여 보자. (임동엽)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1957)
영화 < 그린북 >의 후반 성탄 파티 장면에서 바리톤 레전드가 전하는 신뢰와 친밀은 압권. 경탄을 부르는 전염력이다. 1957년 것이지만 후대 마이클 부블레, 샘 스미스, 사브리나 카펜터도 상대가 안된다. 크리스마스 앞두고 우울과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을 굴복시키는데 최적. '작은 크리스마스'라도 누리세요!! (임진모)
호세 펠리치아노(José Feliciano) ‘Feliz navidad’ (1970)
캐롤은 단순해야 한다.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소중한 사람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명절의 따스함을 담아야 한다. 단 19개의 단어로 세계인의 연말을 밝히는 이 노래가 그래서 걸작이다. 호세는 고국 푸에르토리코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후 1960년대 숨가쁘게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소속사 RCA 빅터 레코드가 위치한 뉴욕의 겨울은 따스한 카리브해의 고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하고 추웠다. 1970년 크리스마스 작업 제안을 받은 호세는 그리움과 행복을 담아 모두를 위한 곡을 쓰고 10분 만에 녹음을 마쳤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 행복한 성탄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도헌)
조니 미첼(Joni Mitchell) ‘River’ (1971)
화기애애한 분위기만 오갈 것 같은 연말연시 속에서도 이별과 고독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 징글벨의 희망 섞인 선율에 조니 미첼 특유의 울적한 어법을 입힌 < Blue >의 수록곡 'River'는 홀리데이 송 계의 이단아라 봐도 무방하다. 그레이엄 내시와의 결별 과정에서 겪은 감정을 토대로 만들어진 곡은 캐럴을 소재로 한 것치고도 손에 꼽을 만큼 먹먹하고 차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는 단 하나. 크리스마스의 따스한 품에서 소외되거나 그 낙관주의에 지친 이들에게 외로가 되어줄 곡이기 때문이다. (장준환)
위저드(Wizzard) ‘I wish it could be Christmas everyday’ (1973)
위저드는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원년 멤버였던 로이 우드(Roy Wood)가 결성한 영국의 글램 록 밴드다. 1973년 발표 당시 영국 차트 4위에 올랐던 이 곡은 영국의 국민 캐럴 중 하나로 남았다. 경쾌한 밴드 연주와 브라스 사운드, 깜찍한 어린이 합창단의 코러스가 풍성하게 어우러진 이 노래에서 로이 우드는 날마다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사라 브라이트만, 카일리 미노그, 더 뱀프스, 리오나 루이스 등, 이 곡을 리메이크한 가수 명단만 봐도 영국이 이 곡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정민재)
스파크스(Sparks) 'Thank God it’s not Christmas' (1974)
제목부터 반골 기질 다분하다. 역설과 풍자, 삐걱댐으로 똘똘 뭉친 예술성으로 본국보다 유럽에서 널리 사랑받았던 미국 아트록 집단 스파크스의 1974년 숨겨진 걸작 < Kimono My House > 수록곡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언가 어려울 것 같지만 누구나 즐길법한 팝록 사운드에 밴드 고유의 연극적 톤을 가미했다. 서구권에선 성역과도 같은 성탄절마저 비틀고 부수는 스파크스에 경의를 표한다. (염동교)
밴드 에이드(Band Aid) ‘Do they know it’s Christmas?’ (1984)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 자선곡은 밴드 붐타운 랫츠의 보컬리스트 밥 겔도프의 인류애에서 발현됐다. 그는 가뭄으로 고통 받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뉴웨이브 밴드 울트라복스의 멤버 밋지 유어와 함께 이 거룩한 성가를 작곡했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국 뮤지션들이 그의 진심에 동참했다. 따뜻하고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를 쓸쓸하고 불행하게 보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 노래는 타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넘는 인간적인 감동과 벅찬 환희를 잉태하고 있다. (소승근)
이승환 ‘크리스마스에는’ (1989)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시선은 과거로 향한다. 눈내린 성탄절을 고대하는 부푼 마음, 머리맡에 놓여진 산타의 선물, 치열하게 눈싸움하던 또래 친구들. 1989년 이승환의 데뷔작 < B.C 603 >에 수록된 ‘크리스마스에는’을 듣다보면 정다운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채 몸만 자란 우리를 마주한다. 그 때 그 친구들과 아버지를 똑 빼닮은 산타는 어디로 갔을까. 내리는 눈이 반가웠던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추억은 세상과 속도를 맞추려 하염없이 걷고 있는 많은 이들의 원동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잊고 살던 그대의 ‘작은 소망’이 한껏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신동규)
SG워너비 & 브라운 아이드 걸스 ‘Must have love (우리들의 겨울)’ (2006)
머라이어 캐리가 매년 전 세계 스피커를 장악하는 계절, 국내에선 이 곡이 따스한 방파제가 되었다. 언제라도 2006년 각자의 겨울로 돌려주는 시간선을 타고, 해를 거듭할수록 추억이 담겨 더 큰 파도를 머금는다. 겨울 바다를 떠올리듯 자연스럽게 ‘Must have love’가 얽힌 순간을 모두가 공유한다. 세대를 초월해 연말 무대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타고 재해석되는 만큼, 몇 해가 지나도 사랑을 머금고 울려 퍼질 상징적인 노래다. (정기엽)
아이유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Feat. 천둥 of MBLAQ)’ (2010)
수명이 긴 캐롤의 영예는 소수에게만 돌아감에도 '미리메리크리스마스'는 아이유의 숱한 업적에 밀리곤 한다. 독보적인 솔로로 발돋움하기 전 남긴 히트곡이자 무려 15년 세월의 ‘겨울 길보드’ 인증마크를 달았는데도 말이다. 순수와 성장을 상징하던 아이유의 풋풋한 음성과 엠블랙 천둥의 벅찬 랩이 차곡차곡 겨울 분위기를 쌓으며 추억을 퍼트린다. 추위에 불그스름해진 볼, 따가운 목도리, 식어버린 카페모카에도 행복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는 어딘가 아련한 곡이다. (손민현)
켈리 클락슨 ‘Underneath the tree’ (2013)
언젠가는 뜰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켈리 클락슨의 첫 크리스마스 앨범 < Wrapped In Red >에 수록된 ‘Underneath the tree’는 2013년 발매 당시 앨범의 히트와는 별개로 곡 자체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전성기가 지난 2018년부터 차트를 등반하더니 2023년에는 미국 11위, 영국 10위까지 도달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성대한 축제 분위기와 풍성한 목소리의 만남이 먹히지 않을 리 있나. 신세대 크리스마스 팝의 주역이 된 켈리 클락슨, 매년 더 올라갈 일만 남았다. (한성현)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Santa tell me’ (2014)
찰랑이는 차임벨, 귀에 감기는 기교 그리고 잔망스러운 가사까지. 익숙하다 못해, 조금은 지겨울지도 모를 이 곡이 등장한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발매 이후 도합 10번의 크리스마스를 지나, 마침내 올해 유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역대 가장 많이 찾아 들은 캐럴 10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최단기로 쌓아 올린 금자탑은 그야말로 파퓰러, 아리아나 그란데의 디스코그래피를 대표함과 동시에 21세기 홀리데이 클래식이다. (노태양)
시아 ‘Snowman’ (2017)
2017년 11월, 슬픔 어린 행복을 지닌 눈사람이 시아의 손에서 탄생했다. 마냥 즐거워야만 할 것 같은 캐롤의 스테레오타입과 달리 서글픈 감정이 짙게 배여 있지만, 그 유니크한 감성 덕분에 그의 대표곡이자 매년 들려오는 캐롤 라인업이 될 수 있었다. 추운 만큼 서로의 온기를 원하고,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큰 애틋함을 느끼는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되는 크리스마스 시즌, ‘Snowman’은 과장된 찬란함이 아닌 낭만적인 연대를 그리며 대중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김태훈)
에드 시런(Ed Sheeran) & 엘튼 존(Elton John) ‘Merry Christmas’ (2021)
해를 거듭할수록 다사다난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인생 3막을 목전에 둔 2024년은 더욱 그렇다. 폭풍처럼 강타한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말은 “올해도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지금은 일단 모든 걸 훌훌 털어내자”가 아닐까. 밀려오는 시원섭섭한 감정을 뒤로하고 엘튼 존과 에드 시런의 목소리를 빌려 막연하게 낙관적인 미래를 그려본다. 그들의 말마따나 내년은 또 모르니까. “(But) for now, Merry Christmas”. (김성욱)
♬플레이리스트 감상하기♬
이미지 제작: 김태훈, 한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