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 위대한 프로듀서 리차드 페리(Richard Perry)

by 소승근

2024.12.30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24년 12월 24일에 프로듀서 리차드 페리가 영면에 들어갔다. 1942년 뉴욕에서 태어나서 10대 시절부터 로큰롤 음악의 팬이었던 그는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두왑 그룹을 결성할 정도로 음악에 관심을 보였지만 실연자로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음악 선장인 프로듀서로 집중해서 1970~80년대 대중음악에 거대하고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허나 그의 시작은 불안했다. 프로듀서로서 초기에 전담한 음반들은 록 밴드 캡틴 비프하트의 <Safe As Milk >와 흑인 로큰롤 가수 팻츠 도미노의 < Fats Is Back >이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보통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아방가르드 음악을 지향한 캡틴 비프하트와 당시로써는 철지난 팻츠 도미노의 노래들은 사이키델릭과 블루스, 포크록, 비틀즈의 열풍 속에서 부유하며 금세 휘발됐다. 리차드 페리의 프로듀싱으로 처음 히트한 노래는 1968년 빌보드 싱글차트 17위를 기록한 괴팍한 남성 가수 타이니 팀의 'Tip-toe thru' the tulips with me'였다. 히트하긴 했지만 이 기괴한 노벨티 송(이상하고 독특한 소재로 구성한 노래) 역시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곡의 상업적 성공으로 리차드 페리는 허물을 벗었다.




이 성공의 열매가 달콤했는지 리차드 페리는 1970년대가 되자마자 누가 들어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보편타당적인 대중음악의 인기 프로듀서로 선택되어 인기차트에 입성했다. 그는 'Without you'가 수록된 해리 닐슨의 Nilsson Schmilsson >, 'You're so vain'이 수록된 칼리 사이먼의 < No Secrets >, 다이아나 로스의 < Baby It's Me >, 리오 세이어의 < Leo Sayer >, 'Photograph', 'You're only sixteen'이 수록된 링고 스타의 < Ringo > 등 1970년대의 슈퍼스타들과 작업해 다양한 음악에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제작자로 확인받았다.


그는 거물급 가수들만 편애하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는 수 새드 앤 더 넥스트나 플림소울스처럼 언더그라운드에서 암약하는 뉴웨이브/펑크 밴드의 음반에도 참여하면서 상업적인 작품에만 참여한다는 비판을 희석시켰다. 음악에 대한 애정과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선택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이것으로 그는 경계 없는 프로듀서의 한계점을 극복했다. 그의 커리어 정점은 포인터 시스터스의 히트곡들이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원곡을 선택하고 끈적끈적하게 리메이크하게 설득한 인물이 바로 리차드 페리. 포인터 자매들에게 첫 번째 빌보드 탑 텐 싱글이라는 선물을 선사한 리차드 페리와의 의리는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포인터 시스터스의 명곡 'SIow hand'와 'He's so shy', 'Jump (For my love)', 'Automatic' 모두 리차드 페리와의 영광스런 합작품이다.




이후 도나 섬머, 닐 다이아몬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샤카 칸, 엘튼 존, 레이 찰스 등 전설들과 함께 했지만 그의 마지막 역작은 2000년대 초반에 로드 스튜어트가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 It Had To Be You : The Great American Songbook >이었다. 스탠더드 고전을 허스키한 음색으로 담아낸 이 음반으로 로드 스튜어트는 오랜만에 빌보드 앨범차트에 복귀했고 리차드 페리의 명성도 명불허전임을 증명했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무려 50여 년 동안 최고의 프로듀서로 인정받은 리차드 페리는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다가 2024년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에 82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훌륭한 음악에는 위대한 조력꾼이 반드시 존재한다.

소승근(gicsuck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