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이해하는 다각도 시선, 2024 음악 도서 11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각을 기르는 게 요리 실력을 늘리는 첫 단계라고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많이 듣고 많이 알아가는 것이 보다 풍부하게 듣는 관문의 시작일 테다. 깊게 매료되고 싶은 이들에게 과감히 음악을 주제로 한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언급된 곡을 들으며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작업 비화, 해당 멜로디가 좋은 이유 등 알아갈수록 그간 듣지 못한 부분에 매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풍성한 청취를 응원하며 열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수잔 로저스, 오기 오가스 < 당신의 음악 취향은 >
보다 폭넓은 음악 감상을 지향하는 초심자에게는 이 책이 수월한 선택지다. 각 장마다 앞에 적힌 곡들을 들어보며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새 자신만의 답을 찾게 될 테니 말이다. 프린스의 명반 < Purple Rain >을 비롯한 여러 앨범의 녹음 엔지니어부터 음악 원석을 발굴하는 프로듀서까지, ‘듣는’ 데 통달한 인물이 가이드가 되어준다. 이 여행길이 끝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든 부끄러워하지 않고 타인의 호오에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울 것이다. 한마디로 수긍하는 법을 배운다. 비단 취향 뿐만 아니라 삶에도 적용할 대목이다. 이제는 잘 듣는 것도 재능의 영역에 오른 시대다. 이러한 책으로 음악에 반응하는 원리를 파악하고 길라잡이 삼아보자. 새로운 길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경 < 음악, 밀당의 기술 >
기초부터 출발해 음악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박과 박자의 개념부터 시작해 어떠한 음악에 끌리는 이유를 사회적인 논조인 ‘동조’로 엮어 설명한다. 클래식도 예제로 포함되긴 하나 예시로 방탄소년단 ‘Dynamite’나 블랙핑크 ‘Shut down’ 등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음악을 설명에 들여 쓰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쉽다. 서술의 무게는 사뿐하나 내용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동물과 인간이 리듬을 타는 방식 등 심층적으로 파고들 주제가 많다. 음악학 박사인 이미경이 친절한 저술로 우리의 납득을 돕는다. 이 책을 소화하고, 저자가 번역한 에두아르트 한슬리크의 <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하여 >로 넘어가는 단계를 밟아보는 건 어떨까?
퀸시 존스 < 삶과 창의성에 대하여 >
어느 분야든 통달의 경지에 오르면 비슷한 포인트가 생긴다. 살다가 느낀 점을 예술에 투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술에서 배운 바를 삶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걸 전설적인 음악가 퀸시 존스가 정확히 보여준다. 음악을 하기 전부터의 일화, 여러 곡 작업을 하며 배운 노하우를 글로 전달한다. 본인이 점지했듯 비단 창작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단면에 적용해도 될만한 방법론이 쏟아져 나온다. 뮤지션이 쓴 만큼 재즈 뮤지션들 혹은 마이클 잭슨과의 작업기 등 음악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은 인생에 대한 언사다. 얼마 전 큰 별이 진 아쉬움을 달래며 그의 호흡이 담긴 메시지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책을 읽어 보기를. 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한 걸음 성장하는 시간이 되리라 확신한다.
백경권 < 작곡가 백영호 >
얼마 전 최고의 트로트로 손꼽히는 ‘동백아가씨’가 세상에 불리운지 60년이 되었다. 국내 한 장르의 으뜸으로 선 곡을 만들고 이미자, 배호, 남진 등 1960년대 다양한 가수의 곡을 쓴 작곡가 백영호. 그가 장르 전체에 일으킨 파장과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평전이다. 시대의 기록을 파헤치고 살지 못한 과거를 이해하게 되는, 저서의 장점을 휘두른 360 페이지. 국내 작곡가의 생애를 짚는 문서가 많지 않거니와 트로트를 대상으로 한 글은 더욱 부족하기에 장르 전체의 귀중한 사료로 남을 만하다. 트로트를 기반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한 단락을 알고 싶다면 이 책으로 시간을 거스르기를.
홍성규 < 청춘 조용필 >
어떤 이름은 그 자체로 서사가 된다. 조용필, 세 글자를 외면 대다수가 다른 제목을 떠올릴 정도로 무수한 히트곡을 가진 그가 ‘가왕’이라는 명칭을 거머쥔 데에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거룩한 표현을 붙인 홍성규 기자가 집필한 이 책에는 우리가 모르던 조용필이 담겨 있다. 근거리에서 오래도록 인간 조용필을 지켜본 관찰자의 시점으로 말이다. 무대 아래에서 나눈 대화와 ‘한류’가 시작되기 전 일본 진출기 등, 왕좌를 자신의 자리로 길들이기 이전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 조용필의 청춘이 책에 담겨 영원히 보존되었다.
태양비 < 케이팝의 시간 >
K팝은 독특한 장르다. 특유의 스타일이 자리잡은 역사는 배제하고 오로지 음표를 취합해 한 데 섞는다. 그 덕에 다양한 음악이 혼재할 수 있고, 디스코그래피가 통통 튀는 뮤지션이 많다. 해외 유수의 좋은 것을 발굴해 다듬어낸지 30년, 이제는 재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의 논리를 떠나 먼 발치에서 개발됐던 K팝의 역사를 역설적으로 되짚을 때가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부터 이세계아이돌까지, 연대기라 일컬을 만한 기록인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더구나 단순한 나열 이상으로 ‘사조’를 테마로 정의한 각 계보의 상징성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모르는 사람도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고, 아는 사람도 ‘이랬었지’ 하며 다시 푹 빠질 수 있는 K팝의 시간이 여기에 담겼다.
지나김 <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 >
메인 스트림을 평소 흥미롭게 듣던 사람이라면 클래식을 차용한 K팝을 쉽게 떠올릴 테다. ‘G선상의 아리아’를 품에 안은 레드벨벳 ‘Feel my rhythm’부터 ‘라 캄파넬라’를 담은 블랙핑크 ‘Shut down’,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 카르멘 >의 소리를 중심에 둔 (여자)아이들 ‘Nxde’까지. 대표 레이블 중 한 곳인 SM은 자사 음원을 클래식으로 주기적으로 편곡해 범용성을 높이고 있으며 유튜브에서 K팝 클래식 연주 플레이리스트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고전 음악 특유의 허들을 다양한 경로로 낮추고 있는 K팝을 한번쯤 고전음악과 결부해서 바라보자. 어쩌면 새로운 청각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문이 열릴지도.
보노 < Surrender >
추앙받는 선인의 평전을 읽으며 얻고자 하는 지혜의 폭을 대중음악인에게서, 더 정확히는 록 밴드에게서 배울 순 없을까. 아일랜드의 자존심 유투의 리더 보노가 집필한 해당 자서전은 마흔 곡의 대표곡을 짚어가며 밴드의 시작과 전성기, 암흑기, 침체기 모두를 관통한다. 중요한 점은 작품의 제작 비화나 짤막한 에피소드를 중점에 둔 디스코그래피 훑기가 아닌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개념과 의미 전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투는 어느덧 대중음악사를 학습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쳐야 할 관문이 되었다. 보노의 시선으로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시대를 읽는 안목과 노벨평화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올랐던 그가 논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동규)
중식이밴드, 정중식 < 도마에서 바다까지 >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제를 모았던 2015년의 신인 밴드가 10주년을 자축하는 방식은 독특하게도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놀라움은 표현 방식과 주제 선정. 동명의 앨범을 함께 발매해 음악과 글의 교차를 유도하고, 책 사이 해당 음반의 곡을 얹어 오디오북의 형태를 꾸린다. 아울러 우화의 틀을 가져와 절망과 희망을 ‘도마’와 ‘바다’로 이분화해 꿈에 다다르는 물고기의 고군분투를 그려낸다. 중식이가 직접 쓰고 그린 솔직한 표현과 투박한 그림이 이토록 애달픈 까닭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니 이상에 닿으려는 씨름의 연속이 우리네 청춘의 삶과 빼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어른을 쓰담는 한 편의 동화. 개개인에게 가닿는 위로의 폭이 글과 음악의 융화만큼이나 넓다. (신동규)
신해철 < 마왕 신해철 >
이럭저럭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여전히 불안정한 사회와 갈수록 불확실한 미래,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몰상식한 결정과 중력을 거스르는 흑백 논리의 울분. 세대로, 성별로, 지역으로, 또 무엇으로 갈라서고 대치하기를 반복하는 오늘, 한 사람이 보고 싶다면 그 이름은 신해철일 것이다. 그가 떠난 뒤 남겨진 그의 컴퓨터 속 ‘book’이란 이름의 폴더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은 물론 음악계로 뛰어든 후의 고뇌와 푸념, 세상을 바라보는 본인만의 올곧은 시각 등 그가 오랜 시간 차곡히 모아온 글이 놓여있었다. < 마왕 신해철 >은 이를 엮어 만든 단 하나의 유고집(遺稿集)으로 인간 신해철의 면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호흡, 단어, 문장, 생각을 차례로 곱씹어보며 해를 거듭할수록 커가는 그의 빈자리를 달래보자. (신동규)
오카다 아케오 < 음악을 듣는 법 >
< 음악을 듣는 법 >은 흠칫할 정도로 커다란 제목이다. 음향기기의 쓰임새를 알면 모두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듣는 법이라니.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일본의 음악학자 오카다 아케오가 고전음악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여러 방법은 클래식에 국한되기보다 대중음악을 듣는 청중에게도 훌륭한 쓰임새를 띤다. 어떤 음악의 좋은 점에 대해 구구절절 떠들고 싶은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단순히 “너무 좋다”는 발언에 갇혀 꺼내어지지 못하는 무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이 책을 읽는 과정 속에서 배울 수 있다. 일차원을 넘어선 표현은, 당신이 세상에서 느끼는 감정 전반의 범위를 넓힌다. 음악을 듣는 법을 알고 나면 세상에 그냥 소음은 없다고 여기는 다정한 귀를 얻을 것이다.
이미지 편집: 신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