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한 30주년 기념 파티, ‘SMTOWN LIVE 2025’
‘The Culture & The Future’.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SM엔터테인먼트가 새롭게 표어를 내걸었다. K팝의 근간이자 과거는 하나의 문화로 만들고, 미래에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가상 세계로까지 나아가겠다는 포부까지 담은 문장이다. 새 슬로건 아래 지난 1월 11일, 12일 양일간 고척돔에서 열린 기념 콘서트 <SMTOWN LIVE 2025>가 지닌 의미는 그만큼 진지했다. 현장을 채운 수많은 다국적 응원봉 행렬이 증명하듯 가지각색 지지자들도 이 의식에 함께했다.
관객 관점에서 운영은 깔끔했으나 분명 5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도전적인 과제였을 것이다. 다행히 SM타운은 이 긴 시간을 채울 아티스트와 IP를 충분히 갖췄고, 약 60개의 무대에 이를 균형감 있게 배치했다. 동방신기 같은 선배 그룹부터 연습생 군단까지 우리 삶 속에 있었던, 현재를 함께 하는, 앞으로 나아갈 수십 명의 아티스트들이 빽빽하게 타임라인을 채우며 관객과 호흡했다. ‘Town’이 내포하는 특유의 공동체성과 조직력이 빛난 시간이었다.
동시에 이 축제는 역사와 문화가 엮이는 장으로, K팝 각 세대를 묶는 중요한 의미까지 지닌다. 긴 시간 만큼, 나아가 ‘Culture’와 ‘Future’를 제시한 만큼 단순한 기념식이 아닌 스토리를 연결하는 세레모니다. 신예의 패기와 열정, 과거 얼굴의 단순한 재등장이나 재해석을 나열한 옴니버스로는 그 뜻이 깊고 넓게 닿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속을 파고들면 약간의 아쉬운 점도 드러나지만, 분명한 장점도 부각되는 공연이었다. 경기장을 음악으로 가득 메운 SM 마을의 대축제, 세대별로 나누어 무대의 면면과 의미를 분석해본다. (손민현)
역시 경력이 달라, 든든한 SM 선배들
이목은 현역 그룹에 쏠려도 감동은 SM ‘근본’ 라인업의 몫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데뷔한 선배 가수들이 단독으로, 혹은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30주년 생일 파티를 기념했다. 보아는 2005년 발매한 페미니스트 앤썸 ‘Girls on top’을 불러 K팝 선두주자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한편, 기념 앨범 < 2025 SMTOWN : The Culture, The Future > 수록곡으로 마련한 후반부 커버 섹션에서는 故종현의 자작곡 ‘하루의 끝’을 선곡해 따뜻한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를 한국 최초의 여성 아이돌 보컬이라 소개한 에스이에스의 바다는 고척돔의 조악한 음향을 뚫는 성량으로 타이틀이 가지는 무게를 지키기도 했다. 더불어 진지한 편지를 읽다가 난데없이 관객들에게 SNS 팔로우를 부탁하는 유머는 연차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구성에서도 공을 들인 티가 가득했다. ‘Rising sun’으로 본 공연의 시작을 알린 동방신기는 노련한 퍼포먼스로 2000년대 SM의 중역으로서의 존재감을 증명했고 엔시티, 라이즈와 함께한 에이치오티의 공연은 아기자기한 아케이드풍 백드롭 연출 덕에 보는 재미가 한층 살아났다. 멘트 시간 내내 서로를 놀리며 떠들썩하던 슈퍼주니어도 ‘쏘리 쏘리’와 ‘Black suit’에서는 표정을 진지하게 싹 바꾸며 대형 군무만의 쾌감을 선사했다. 이외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환희처럼 타 소속사에서 활동 중인 가수들의 등장은 SM이 유독 공동체 의식이 강한 회사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포인트였다. (한성현)
과거의 서사와 미래의 포부를 이어, 튼튼한 SM의 허리
서사를 쓴 선배들의 정체성은 튼튼한 연결고리 덕분에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다. 긴 역사의 중간을 담당한 추억의 그룹들은 학교, 방송, 내무반의 TV를 타고 음악을 전파하며 세대를 결속시켰다. 유일한 소녀시대 멤버 효연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엔시티 양양, 에스파 지젤과 함께 ‘Dessert’를 꾸미고 실상 과장급의 여유와 넉살을 선보였다. ‘Cosmic’과 ‘빨간 맛’으로 ‘SM 식 키치’를 표한 레드벨벳은 막판 기념 앨범 수록곡 무대에서 ‘Run devil run’을 커버하며 건재를 알렸다. 동시대를 함께 한 팬들에게 선사한 짧은 추억 여행이다.
다만 이들이 성장한 방향과 갈래를 보여주기에 이번 콘서트는 단체 지향성이 강했다. 엑소의 수호와 찬열이 분투한 ‘첫눈’은 짚어주기에 가까웠고 슬기와 샤이니의 키, 민호도 후배들과 합동 무대를 꾸렸지만 중견 아이돌 멤버의 매력을 각각 조명하기엔 부족했다. 작년 앨범이 돋보였던 태연과 웬디, 단순히 그룹 활동 이후 의무적 전환이 아닌 솔로로 완전히 변신한 두 보컬리스트의 빈 자리도 마찬가지. 그룹이 가진 IP의 존속, 그리고 SM 전체의 미래가 아니라 나아가 회사와 동행의 앞길을 보여주는 컷 하나쯤 더 있었다면 어땠을지.
누가 뭐래도 차근차근 세력 확장에 성공한 SM 신시대
지난 세대의 공유 기억이 이어진 허리 라인과 달리 SM 신시대의 키워드는 개성과 독자성이다. 높은 진입 장벽, 구심력의 부재, 복잡한 세계관으로 초반 지지자 결집에 주춤했으나 꾸준히 힘을 쌓은 세대들은 이번 행사의 중역이 되어 자기 힘을 과시했다. 2024년을 제패한 에스파의 화려한 행진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올해 많은 노출에도 불구하고 ‘Supernova’와 ‘Whiplash’는 기대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로 정상에 오른 이의 고고한 자태를 보였고, 기념 앨범에서도 에프엑스의 ‘첫 사랑니’를 재해석하며 당당히 유산을 계승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소년들, 활기와 성숙미를 동시에 갖춘 엔시티 유니버스였다. 최근 등장한 글로벌 분파 엔시티 위시와 웨이션브이는 현장에서 여러 언어로 팬과 소통하며 호응을 끌어냈다. 고도로 발전한 K팝의 현재가 몸소 느껴지는 구간. 그중 샤이니를 빼닮은 웨이션브이의 ‘Give me that’은 몽글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만큼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선봉장 도영과 마크의 노련함이 빛났던 엔시티 127의 ‘삐그덕’과 엔시티 드림의 ‘Smoothie’도 이 사단의 중심을 힘차게 잡았다. 뒤를 이은 똘똘한 도련님 라이즈 역시 ‘Impossible’과 ‘Boom boom bass’로 자신감 넘치게 지난 성과를 알렸다. (손민현)
아직까지는 의문이 많이 드는 미래
머리만큼 중요한 것이 꼬리다. ‘SMTR25’라는 이름으로 남성 연습생들의 별도 시간을 마련하는 등 SM은 향후 계획을 공개하는 일에도 적극이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비전인지는 글쎄. 앞뒤 설명도 없이 덜컥 등장해 노래만 부르고 떠난 버추얼 가수 나이비스의 순서에서는 모두 어떻게 반응할지 망설였으며, 영국 레이블과 합께 기획한 보이그룹으로 2월 데뷔를 앞둔 디어앨리스(dearALICE)는 콘셉트부터 노래 가사까지 거의 모든 요소가 당황스러움을 남겼다. 끊임없는 도전 자체는 존중할 일이지만 많은 이들의 이해를 위해서는 더 풍부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한성현)
훌륭한 팬미팅 겸 실적보고서, 영 아쉬운 공연 및 사업계획서
고척돔을 꽉 채운 다국적 팬들과 엔시티, 라이즈, 에스파 등의 멋진 무대를 감상하며 SM 엔터테인먼트가 그래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음을 느꼈다. K팝의 여러 담론이 생성되고 해체되는 2020년대 맞이한 자잘한 위기가 결과적으로는 고전적인 형태의 충성심을 집결하는 요인 아니었을까. 멘트 시간에 팬들과 적극 소통하는 모습은 살짝 낯간지럽긴 해도 ‘핑크 블러드’를 주입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하나의 ‘공연’으로서는 아쉬움이 적잖이 남았다. 친절히 가사를 띄워주는 배려심이나 다양한 효과가 어우러진 스크린 등 기술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무대 간 연결점이 부족해 전체적으로는 다소 두서없이 진행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수들의 각개전투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스토리텔링이 부족해 30주년이라는 역사성은 초반 VCR이나 엔딩곡 ‘빛’ 정도로만 느껴야 했다. 더군다나 장소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답답했던 현장 음향 상태는 더더욱 집중을 방해했던 요소.
우루루 등장한 연습생들을 보며 남성 아이돌 가뭄 시대에 대규모 인재 풀을 꾸렸다 싶어 놀라다가도 나이비스와 디어앨리스 등 낯선 시도를 생각하니 또 혼란스러워지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 등 격변의 시기를 거쳐 오랜만에 열린 만큼 명확한 결론보다는 지속적인 고뇌의 흔적이 드러나는 콘서트였다. 과연 2025년 그리고 그후의 SM엔터테인먼트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이들의 고민에 나도 모르게 동참하여 몰입하게 만드는 과정까지 다 SM의 ‘핑크 블러드’ 확산 작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표와 물음표가 뒤섞인 채 다섯 시간 반 동안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한성현)
정리: 손민현, 한성현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