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예 인터뷰

오코예(O'KOYE)

by 박승민

2025.02.03

매년 한국 힙합에 제기되는 위기론과는 별개로 항상 예상치 못한 지점을 뚫고 멋진 음악을 내놓는 이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작년의 가장 날카로운 송곳은 단연 오코예다. 래퍼 화지의 이주민 프로젝트에서 조우한 후 오랜 준비를 거쳐 발매한 1집 <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 >은 2024년 힙합 신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앨범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비슷한 듯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결합하는 퍼즐 조각처럼, 두 사람 역시 다름의 가치를 바탕으로 견고한 원 팀을 이루었다는 것이 금세 느껴졌다. 대화 속에서도 서로의 의도와 영역을 누구보다 잘 알아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만이 아니라 자신을, 아집이 아니라 소신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좌측부터 오투(The o2), 이쿄(IKYO)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하고 싶다. 서로의 첫인상이 어땠는가?

오투: 이주민 프로젝트 당시 이쿄 형의 첫 자기소개가 “음악을 같이 하던 친구들과 연을 달리 해서”란 문장으로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노는 형들 생각이 나는데 목소리도 낮고 키까지 크니 더 무서웠다. (웃음) 하지만 함께 지내며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쿄: 오투의 첫인상이 괴짜 같았기에, 또 나이 차이도 7살이나 나다 보니 함께 작업을 진득하게 하리라 짐작하진 않았다. 오히려 송캠프가 끝난 후 참여자들과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오투 특유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스타일이 나와 다르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잘 맞는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최근 이즘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들의 연말 결산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으며 한국힙합어워즈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본격적인 활동 첫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자체 평가 혹은 소회가 궁금하다.

오투: 열심히 음악을 만들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웃음)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하는 동료들이 많다 보니 한편으로는 빚지는 듯한 마음도 있다.


이쿄: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발매 후에는 어떻게 될지 계속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중 하나를 달성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다. 둘 다 스스로를, 또 서로를 믿었기 때문에 이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힘들었던 시절을 되새김질하며 계속 나아가려고 한다.


재즈 랩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얼터너티브 힙합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힙합의 여러 요소를 조화롭게 뒤섞어낸 음악을 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찾기 힘든 독창적인 색깔이다. 이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이들이 있다면?

오투: 뉴스쿨 사운드 면에서는 LA 기반 프로듀서 마인드디자인(Mndsgn)이 먼저 떠오른다. 이어 계보를 되짚으며 클리퍼드 브라운,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같은 옛날 아티스트들도 접하기 시작했다.


이쿄: 데모를 완성하고 비교해나가며 제일 많이 찾았던 팀은 하이에이터스 카이요테(Hiatus Kaityote)다. 여러 장르와 사운드를 섞어내는 점이 우리의 음악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작업 과정에서는 그레이스 존스도 즐겨 들었고, 어스 윈드 앤 파이어와 프린스처럼 원래 좋아하던 아티스트들을 더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1MC 1PD 조합과 커버 아트에서부터 제이 딜라의 < Donuts >, 턴테이블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도 있다. 여러 전설적인 팀들이 떠오르는 대목인데, 이제 막 2인 1조로 첫발을 뗀 시점 목표는 무엇일까.

오투: 이번 앨범을 제작하며 음악적인 임팩트를 극대화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다행히 앨범을 통해 그러한 의도를 잘 구현해낸 것 같아 이제 새로운 스텝을 찾고 있다.


이쿄: 재즈뿐만 아니라 국악, 아프리카 전통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탐구하는 것. 매드립의 < Beat Konducta > 시리즈처럼 여러 나라의 사운드를 아우르고 싶다.


이쿄의 톤은 독특하면서도 풍부한 재즈 연주에 밀리거나 도드라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러면서도 톤을 바꾸거나 피치를 올리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래퍼다. 맥시멀한 사운드 속 균형을 잡기 위해 래핑을 어떻게 다듬어 왔는가?

이쿄: 음악을 들을 때 나만 느끼는 선이 있다. 그 선이 좁고 명확한 천편일률적 비트와 다르게 오투가 제공하는 넓은 프로덕션 안에서 마음껏 획을 그으며 놀고자 했다. 또 청각적 쾌감의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힙합이 아닌 곡들, 가령 마일스 데이비스의 ‘Black satin’ 위에 랩을 하며 훈련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체득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의 악기 라인에서 여러가지를 따왔다. ‘Yezzir’과 ‘We’를 예로 들면 각각 건반과 하이햇 느낌의 래핑을 지향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향점을 잘 구현한 트랙에는 무엇이 있을까?) ‘날개’와 ‘We’. 특히 ‘We’는 완성한 직후 느낌이 정말 좋았다.

 

오투에게는 ‘Jazztext’를 통해 방향성을 설정한 후 앨범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수행과 디깅의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다. 왜 하필 여러 음악 중 재즈였으며, 장르의 어떤 매력에 제일 깊이 빠져들게 되었는가?

오투: 매번 학생의 마음으로 공부하며 음악을 만든다. 힙합에 대해서도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는 중인데 유행이 정말 빠르게 바뀌어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 이때 근원을 기반으로 변형되는 것이 역사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그 뿌리가 바로 재즈라고 보았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흑인 음악의 원류를 탐구하기 위해 재즈를 파고들었다. 힙합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즈에도 관심이 생겨 이전부터 갈증이 있었다.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인 장르다.



 

<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 >은 완성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 준비 과정 속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뿌듯했던 순간을 하나씩 꼽아 보자면.

오투: 편곡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다년간 끝없이 작업해야 하는 탓에 아주 아득했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꿈꿀 수 있어 개방적이고 행복한 아이디어 구상과 다르게 편곡은 폐쇄적이고 유한하다. 실제로 구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주어진 예산과 시간이 한정적이기에 현실적인 타협이 많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너무 흔들려 주기적으로 형에게 응원 좀 해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제일 좋았을 때는 아무래도 앨범이 완성되었던 순간. 또 작년 말 얀씨클럽에서 했던 공연도 즐거웠다.


이쿄: 작업 과정에서 머리도 물론 아프지만 희열이 더 컸기에 음악적으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음악 외적인 에피소드들이 더 떠오른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말리는 걸 반복하는 방식으로 커버 아트 속 의상을 제작했는데, 잠깐 담배를 피러 갔다 오면 매번 누가 밟고 가서 ‘추운 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에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또 CD 제작을 준비할 때도 처음으로 디자인을 직접 하고, 한정반과 일반반 커버를 다르게 만들면서도 기한을 맞추어야 해서 고생했던 기억이다. 뿌듯했던 순간은 역시 발매 날이다.

 

앨범의 타이틀이 굉장히 독특하다. 제목에 담고자 했던 뜻을 알려줄 수 있나.

오투: 사실 말장난에서 시작해 나중에 의미를 가져다 붙였다. (웃음)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힙합 신 내에 낙관론이 존재하는 편이었는데, < 쇼 미 더 머니 > 라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지고 대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과도기가 오자 비관론이 팽배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해내는 게 제일 큰 목표였기에 시간이 지나도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에만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날씨가 변하든 말든 계속 가치 있을 음악이라는 뜻을 담았다.

 

윤석철, 큐 더 트럼펫, 안상준 등 다 열거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인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섭외 과정은 어땠는지, 그리고 이토록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무엇을 제일 신경썼는지 궁금하다.

이쿄: 먼저 (윤)석철이 형은 원래 개인 프로젝트인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의 앨범에 우리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시작됐다. 앨범에 래퍼가 필요하다는 SNS 글을 본 후 메시지를 보냈고, 음악을 좋게 들어주셔서 만남이 성사되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로 우리 앨범에 건반 세션이 필요한 순간이 오자 형의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셔서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다.


오투: 큐 더 트럼펫 형은 음악인 창작 지원 플랫폼 오픈창동(OPCD)의 위메이크뮤직(WMM) 2021 인스트루멘탈 트리뷰트 호스트로 먼저 만났다. 당시 송캠프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이전부터 활동하시는 것을 보며 그 존재를 알았다. 다른 관악 연주자분들 역시 형의 스카 재즈 유닛에서 활동하고 계셔서 컨택할 수 있었다. 기타리스트 안상준님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연주자가 한 명도 없었기에 SNS를 통해 디깅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나스의 음악 위에 솔로 연주하는 영상이 정말 기막혀서 바로 연락을 드렸던 기억이다. 마지막으로 베이시스트 강상훈님은 2021년 화지 형의 메타버스 트리뷰트 세션에 참여하셔서 인사를 나누었고, 이번 앨범을 만들며 다시 뭉치게 되었다. 아무래도 악기 연주자분들은 육체 노동적인 성격이 크고 녹음에 걸리는 시간도 많다 보니 요청 사항을 미리 상세히 준비한 후 나머지 편곡은 다 내가 직접 도맡는 식으로 신경을 썼다.

 

첫 트랙에서는 윤석철이 크레딧에 스윙 어드바이저로 오르기도 했다. 다소 생소한 명칭인 만큼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오투: 처음에는 재즈의 스윙 개념을 아예 몰랐기 때문에 기본적인 측면에서 어긋나는 점들이 많았다. 그러자 윤석철 형이 스윙에 동원되는 모든 악기를 건반으로 연주하시면서 원 포인트 레슨으로 하나하나 전부 가르쳐 주셨다. 그 헌신과 노고에 감사하고자 만든 이름이다.

 



한편 첫 앨범 정확히 3개월 후 내놓은 믹스테이프 <rheteW eTh thWaer ehanCg Or oNt>는 기존의 문법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라 신선했다. 자신의 음악을 재조합하는 과정 속에서 무엇을 지향점으로 두고,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는가?

이쿄: 힙합 본연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자 했다. <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 >보다도 훨씬 빠르고 편하게 만들었다.


오투: 타이틀 역시 기존 음악 샘플링이라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원래 제목을 재배열했다.

 

이 과정에서 오투의 랩/보컬 참여 비중이 훨씬 늘어나기도 했다. 앞으로의 음악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까?

오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참여하고 있었다. 내게 아이디어와 의지가 있다면 쭉 이어질 것 같다.

 

두 장의 음반과 최근 진행한 단독 공연까지 추진력이 대단하다. 2025년에도 이 기세를 몰아 활발히 활동할 예정인가?

이쿄: 아직 오코예로서의 앨범 계획은 없다. 열심히 달려왔으니 일단은 휴식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각자 개별로 활동하는 시간이 있을 것 같고, 올해 개인적으로도 결과물을 내려 한다.


오투: 목표를 공표하는 순간 스스로의 사이클이 깨지는 편이다. 당장은 체력을 보충하며 추진력을 채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음반 혹은 아티스트를 꼽아 달라.

오투: 닙시 허슬. 음악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주었던 모든 모습이 멋지다.


이쿄: 사람 자체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로는 역시 프린스. 래퍼로서는 안드레 3000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우탱 클랜과 블랙 아이드 피스, 윌아이엠을 통해 힙합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펑크(Funk)에선 펑카델릭과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을 좋아해 그들의 사운드를 차용하고자 했다.




진행: 임진모, 한성현, 정기엽, 신동규, 박승민

정리: 박승민

사진: 정기엽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