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카리스마, 로버타 플랙(1937 - 2025)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

by 염동교

2025.02.27



콰이어트 스톰(Quiet Storm). 얼핏 생경한 이름은 알앤비 명인 스모키 로빈슨의 1975년 곡 ‘Quiet Storm’에서 따왔다. 벨벳처럼 보드랍고 로맨틱하며 고운 선율을 가진 스타일의 작품들은 언제 들어도 좋을법한라디오 친화적 특성을 가졌으며 보사노바가 1950-6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특히 중산층과 엘리트들에게 사랑받았다. 도시 인구 증가와 학력 신장 등 흑인들의 인프라가 단단해짐에 따라 각종 사회적 사안을 잊고 잠시나마 여가를 즐기며 들었던 음악이 콰이어트 스톰이었다. 해당 장르의 주역이었던 로버타 플랙의 고급스러운 알앤비와 상통한다.


여흥의 도구로서 플랙의 음악이 가지는 힘은 유효하다. 홍대 인근의 세련된 카페에서 그녀의 음악이 종종 흐르며, 중고 음반을 취급하는 레코드 스토어에서 별도 섹션이 마련될 정도며 두 대의 턴테이블 사용하는 디제이들이 그녀의 음악을 믹스해 특별한 기류를 창출한다. 수십년 세월을 관통한 클래시컬 뮤직처럼 물리적 시간을 타지 않는 그녀의 영속성은 앨리샤 키스와 로린 힐 같은 대중음악가부터 디제이 겸 레코드 컬렉터인 질 피터슨, 지적인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의 추도사에 드러난다.


대중과 마니아, 싱글과 음반 예술을 모두 잡은 아티스트였다. 이완 맥콜의 원곡에 블랙뮤직 감수성을 드리운 ‘The first time I ever saw your face’가 수록된 1969년 데뷔작 < First Take >는 포크와 재즈를 절묘하게 융합했다. 1970년 소포모어 앨범 < Chapter Two >에서 밥 딜런 ‘Just like a woman’과 버피 세인트 마리 ‘Until it's time for you to go’에서 현대적 민속음악은 고풍스러운 알앤비로 변신했다.




소울 명반으로 평가받는 1971년 작  < Quiet Fire >에선 가스펠의 영적 기운으로 숭고한 예술가의 개성을 확립했고, 캐롤 킹-제리 고핀 콤비의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The hustle’의 밴 맥코이가 쓴 ‘Sweet bitter love’ 같은 수작을 남겼다. 미국음반산업협회 인증 더블 플래티넘으로 2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에서 재니스 이안 원작의 ‘Jesse’와 레너드 코헨을 9분 러닝타임의 알앤비로 바꾼 ‘Suzanne’같은 명품 트랙들로 절정기를 과시했다.


1970년대의 순도는 아니었으나 리 릿나워와 리처드 티 등 세션 연주자가 화려한 1982년 작 < Making Love >처럼 팝적 감수성을 도입한 1980년대 음반들로 방향성 선회를 알렸다. ‘Be real black for me’ ‘Only heaven can wait (for love) 같은 곡 이외에 옅었던 송라이터 정체성을 1988 < Oasis >에서 풀어헤쳤다. 프로듀싱까지 겸임하며 자주성을 높였다.


개별곡 위용도 대단했다. ‘The first time I ever saw your face’‘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으로 1973(15) 1974(16) 그래미에서 2년 연속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를 수상했다. 오직 유투와 빌리 아일리시만 보유한 기록. 두 곡 다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오르며 작품성과 대중성의 공존을 주창했으며 후자는 푸지스의 리메이크로 명성을 재고했다.


밥 제임스와 조지 벤슨 등 퓨전 재즈 뮤지션들이 사모하는 ‘Feel like makin’ love’와 버트 바카락이 작곡한 1982년 작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 ‘Making love’, 피보 브라이슨과 듀엣한 ‘Tonight I celebrate my love’이 골든 트랙이며 영국 출신 레게 뮤지션 맥시 프리스트와 ‘Set the night to music’1990년대까지 발자취를 남겼다.


타미 테렐과 마빈 게이,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애나 로스처럼 소울 명가수 도니 헤더웨이와 황금 콤비를 이룩했다. 일회성 만남으로 그치지 않고 1972년 음반 < Roberta Flack & Donny Hathaway > 1980년 작 < Roberta Flack Featuring Donny Hathaway >로 애시퍼드 앤드 심슨처럼 확고한 동반관계를 구축했다. ‘Where is the love’(1972) ‘The closer I get to you(1977), ‘Back together again’(1980) 같은 명곡들로 1970년대 아메리칸 소울 월드를 수놓았다.




그녀에게서 쩌렁쩌렁한 폭풍 가창이나 화려한 기교를 듣기 어렵지만 고전적인 향취와 절제 미덕으로 어느 시대에 들어도 기품 있는 아우라를 형성했다. 포크와 재즈, 소울 등 다채로운 스타일도 가창의 범용성 덕에 가능했다. 블랙뮤직에 종종 갖는 육체성과 본능성의 선입견과 상반되는 지성미를 드리웠으며 푸지스의 로린 힐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추도 포스팅에지성적인(Intelligent)”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평론가들은 흑의 로버타 플랙과 백의 조니 미첼 구도를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처럼 압도적 위용, 다이애나 로스 같은 셀러브리티 이미지도 아니었으나콰이어트 스톰(조용한 폭풍)이란 이름처럼 묵묵하게 파급력을 형성했다. 아카데믹하고 견고한 기본기와 우아한 음색으로 그녀만의 독보적 가창 인장을 새겼고 단출한 구성의 포크에 살을 붙여 변주하는 재해석 미학을 견지했으며, 포크와 재즈의 결합으로 약소하게나마 흑백 통합까지 달성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로버타의 음성이 널리 울려 퍼진 이유다. 그녀가 1971년에 취입한 ‘Will you still love me?’에 대한 대중의 응답은 한결같을 것이다. “For sure I will, Roberta”.

염동교(ydk88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