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 인터뷰
신인류
< 빛나는 스트라이크 >는 잊고 있던 청춘의 감각, ‘몽글몽글’한 기류를 일깨우는 앨범이었다. 유약한 기억의 일면을 꺼내게 만드는 음악은 짙은 색채를 띠게 마련이고, 인터뷰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세 멤버와 더불어 ‘제4의 멤버’로 작업 내내 함께했다던 강아지 김밥이까지 자리한 대화에는 부드러운 단단함이 도사렸다. 반대의 두 단어가 조화를 품는 역설이 거부감 없이 스며들었다.
제작 과정에 대한 기억을 톺아보는 내내 대답에 멤버와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겪고서야 얻어낸 확신일 테다.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따스한 말이 온화한 웃음을 동반해 오갔던 대화가 충분한 시간 속에 흘렀다. 실로 오랜만에 겪어 본 무장해제의 순간. 세 사람이 갈피를 잡아가던 과정이 언제든 되짚어 볼 수 있는 책갈피가 되어 한 편의 시집 같은 < 빛나는 스트라이크 >를 기록했다.
문정환 (베이스)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소감이 어떠한가.
문정환: 발매 후 한 달 정도 된 시점이다 보니 여러 플랫폼 댓글을 보는 게 참 재밌다. ‘색연필 질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 그림 같다’는 얘길 본 적이 있는데, 이렇듯 작업 중 의도한 것이 정확히 닿을 때 혹은 또 다른 해석이 가미되는 경우 모두가 좋다. 이런 상호작용이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게 만든다.
앨범 공개 당일 공연도 했던 걸로 안다. 기억에 남는 현장 반응도 있는지.
신온유: 앞쪽에서 굉장히 집중해서 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장소가 여의도 공원인지라 가족끼리 나들이도 많이 오신 분위기였는데, 아이들이 뚫어져라 보는 눈빛에 의지하게 되고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면서 ‘정면돌파’했다. (웃음)
기존 음악과는 다른 면모가 많이 엿보이는 앨범이었다. 실제로 차별점을 준 부분이 있나?
신온유: 제목에 여름이라는 단어를 넣거나 가사에 계절감이 묻어나던 기존 앨범과는 다르게 사계절 내내 들을 앨범이길 바랐다. 그래서 계절감을 최대한 빼고 한 사람의 인생이 투영되는 이야기가 되길 의도하며 작업했다.
EP나 싱글보다 고려해야 할 범위가 넓었을 텐데.
신온유: 오래 걸리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많은 경험과 인식을 담아내는 게 정규 앨범이라는 생각이 있다. 실제로 3, 4년 혹은 그 이상 공들여 만드는 팀도 많지 않나. 나는 집중력이 긴 편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이상고온’, ‘푸른 열대’라는 두 단독 공연에서 총 여섯 곡을 선공개한 덕에 이미 응축된 결실이 어느 정도 있었고, 몇 년간 다수의 활동, 멤버 각자가 가진 경험들이 녹아 뼈대가 빠르게 나왔다. (힘든 점도 많았겠다.) 작업하는 동안 정말 오전 10시쯤 만나서 오후 11시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풀타임으로 작업했던 게 쉽진 않았다. 야근하는 느낌. (웃음) 그래도 재밌는 기억이 많이 쌓였다.
신온유 (보컬)
앨범 소개 글도 직접 쓴 걸로 안다. 단편 소설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소개에 담긴 의도를 설명해 준다면.
신온유: 지금까지 쓴 소개 글 중 가장 길었다. 가사를 포함해서 멤버들의 가치관과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고려해 적고자 노력을 기했고,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가 얽힐 수 있는 평행 세계를 상상하면서 소개 글을 써내려 했다. 그러다 보니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게 됐는데, 마치 SF 영화처럼 현실에 일어나지 못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길 바랐다.
가사도 모두 신온유가 썼지 않나. 멤버들은 신온유의 가사를 어떻게 느끼는지 듣고 싶다.
문정환: 우리가 처음 만난 계기가 생각난다. 대학에서의 싱어송라이터 작곡 수업이었는데, 동기 소개로 베이스 연주 세션으로 함께하게 되어 누나의 자작곡을 처음 듣게 됐었다. 그때 가사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고 분명히 느꼈고, 지금도 그렇다. 직설적으로 쓰기보다 은유적으로 쓰는 편이라 받아들이게 되는 해석 포인트가 매번 달라지는 게 재밌다. 듣는 당시의 기분과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두 개의 제안’ 등 수록곡 제목들이 독특하다. 제목에도 의미를 많이 담는 편인가?
신온유: 그렇다. 듣기 전에 보이는 게 제목이다 보니 호기심을 이끌 만한 측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접근에 궁금증을 불어넣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타이틀 곡들도 제목과 멜로디 모두 강하게 각인됐다는 인상이다. 두 곡의 선정 계기가 있다면.
신온유: ‘정면돌파’는 전체가 완성되기 전부터 확정돼 있었다. 공연에서 미리 선보였을 때의 반응과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 경우였기에. 그리고 ‘일인칭 관찰자 시점’은 작업 막바지에 순서대로 듣다 보니 결말 부분에서 모든 이야기를 잡아줄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마지막 곡이 타이틀이면 앨범 전체의 감상을 유도하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취지도 있었다.
앨범에 고루 애정을 가진 게 느껴진다. 녹음 테이크가 가장 많았던 트랙이 궁금해지는데.
문정환: ‘정면돌파’도 만만치 않았지만, ‘송곳니’가 가장 많았다.
신온유: ‘송곳니’의 경우 스트링과 코러스가 많이 들어갔다. 그 외에도 곡마다 주인공처럼 만들어 둔 각자의 연주 파트가 있어서, 악기 기량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들어갔다.
각자가 주인공이 되는 파트가 있다니 말인데, 서로가 꼽는 멤버별 강점이 드러난 부분을 말해준다면.
하형언: 온유 언니는 작사와 스토리텔링 등으로 세계관을 구축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준 덕에 우리도 그 이야기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아 작, 편곡을 하게 됐다. 정환은 베이스 연주도 물론 잘하지만, 음향과 믹싱 관련 외부 작업도 많이 하는 만큼 보장된 실력으로 우리 앨범의 후작업도 일사천리로 진행해 주었다. 믹스 과정에서 소통이 중요한데, 정환이 늘 원활한 대화를 이끌어주는 점이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신온유: 형언을 떠올리면 두 곡이 생각난다. 우선 ‘미완성 효과’에서 선보인 신시사이저 솔로 라인. 즉흥적으로 연주된 구간임에도 잘 표현됐다. 개인적으로 멜로디 위주로 음악을 감상하는 편인데 그 부분은 들을 때마다 꽂힌다. 또 하나는 ‘용이 되고 싶은 아이’의 마지막 신시사이저 라인이다. 이 곡이 초반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중반부터는 컨트리, 막바지는 신스팝 느낌을 내면서 다양한 변주가 담긴 곡인데, 그 매듭을 형언이 잘 지어줬다. 그리고 정환은 거친 사운드의 구현을 잘한다. 정환이 베이스를 연주하기에 리드미컬한 요소나 현을 튕기는 매력이 돋보이는 데모를 곧잘 가져오는데, 그 포인트가 신인류가 표방하는 색깔과 잘 녹아든다. 믹스 작업도 물론이고. 각자의 역할이 달라서 팀으로 묶였을 때 시너지가 되는 것 같다.
문정환: 형언은 우리 모두의 다른 음악 세계를 잘 조합해서 더 대중적인 색채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마이너한 걸 제시해도 정제된 결과물로 다듬어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고, 어딘가 갈피를 잡아야 할 때면 적절한 합일점을 항상 찾아준다. 정규 앨범의 말끔한 결이 형언 덕분에 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유 누나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하는데, 거기서 파생되고 발전되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아진다. 독특한 관점을 팀에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좋다. 그리고 모두에게 고마운 점은 마감일을 미루더라도 타협 없이 최선을 다하는 멤버들이라는 것. 한 명이라도 “이쯤 하자”라고 말한다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을 텐데, 최대한 노력해 주는 덕분에 힘을 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향해 달릴 수 있었다.
하형언 (키보드)
언급했듯 멤버들의 외부 작업도 잦은 편이다. 본인이 참여한 곡 중 알리고 싶은 곡이 있다면.
하형언: 최근에 발매된 라쿠나 정민혁의 솔로 EP 중 ‘다가오는 월요일’이라는 곡에 참여했는데, 곡 자체가 좋아서 추천한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초승의 싱글 ‘바람’은 작업 과정도 재미있었고,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곡이라 추천하고 싶다.
최근 참여한 유니스 ‘Swicy’는 기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K팝이다. 작업의 차이가 있었나.
하형언: 예전에는 막연히 구분을 지어 생각했는데, 요즘은 장벽 자체가 허물어진 느낌이다. 신인류 가사를 볼 때도 일견 K팝 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아이돌 곡에서도 인디 음악 같다고 여겨지는 포인트가 있는 식으로. 그리고 보통 K팝은 협업을 많이 하지 않나, 같이 작곡에 힘쓴 일원들이 나의 인디 작업 방식을 반겨주었다. 정형적이지 않고 새로운 스타일인 것 같다면서. 그래서 차이를 느끼기보다 재밌게 만들었다.
문정환은 < 배민라이브 > 현장 녹음도 오래 했고, 스튜디오 녹음도 많이 한 걸로 안다.
문정환: 맞다. < 배민라이브 > 음향 감독을 2년 반 정도 맡았었다. 재밌는 경험이고 좋았지만, 스스로 발전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톤 스튜디오라는 녹음실의 엔지니어로 합류하게 됐다. 구성원들에게 배울 점이 굉장히 많아서 현장 녹음을 줄이고 스튜디오의 비중을 늘렸다. (믹싱 작업했던 음악들을 소개해 줄 수 있나.)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 손혜은의 이전 곡들을 포함해 정규 앨범 작업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한로로의 < 이상비행 >, ‘정류장’ 그리고 로우 행잉 프루츠의 정규 앨범 < Passion of Various Types > 등의 녹음을 맡았다.
믹싱할 때 주안점으로 두는 부분이 있나.
문정환: 아까 멤버들이 말했듯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신인류 작업의 믹스를 맡고 싶다고 자처한 이유도 우리가 의도한 바를 가장 잘 아는 위치다 보니, 직접 해석하고 소리를 배치하는 게 더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와 엔지니어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게 장점이 되는 듯하다. 외주를 맡게 될 때는 타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기에 미팅을 먼저 잡는다. 곡을 쓴 이유부터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 등을 공유하고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노란색과 내가 생각하는 노란색이 일치해야 하지 않겠나, 서로의 의도를 맞춰가는 과정이 믹스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음향을 중심에 두고 좋게 들은 음반은 무엇인가.
문정환: 에스파의 < Whiplash >. 작업 모니터도 많이 듣지만 운전하면서도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가족과 함께 차를 타면 K팝을 좋아하는 동생이 선곡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듣게 된 이 앨범에 놀랐다. 마스터 볼륨이 크면 귀가 아플 거라는 편견을 깬 앨범이다. 소리가 커도 찢어지는 음이 없고, 악기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극적인 리듬이 편안하게 전달되는 느낌을 받으며 더 발전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신인류를 음악의 길로 인도한 음악을 소개해 달라.
하형언: 스티비 원더의 ‘Superstition’ 라이브와 데이비드 포스터 & 프렌즈 공연 영상을 보면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모습을 보며 고등학생 때 큰 영감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혼자 피아노 치고 곡 쓸 줄만 알았던 내가 더 큰 필드로 나가고자 하는 꿈을 꾸게 해준 두 기록이다.
문정환: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때가 생각난다. 밴드 동아리를 했어서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하드한 음악들을 많이 접했다. 서태지 ‘교실 이데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Take the power back’ 등. 거친 사운드의 모티브를 많이 들고 온다고 언급됐는데, 그때 들었던 음악들의 영향인가 싶기도 하다.
신온유: 노래, 음반, 아티스트를 따로 준비했다. 노래로는 J팝이나 신스팝 리듬을 좋아하는 편이라 최근 장들레의 ‘잠들 수 없어’에 푹 빠져 있다. 그 곡의 간드러지는 멜로디 라인과 방향을 이리저리 오가는 반복성이 좋았다. 그리고 음반은 1980년대 신스팝이 응축되어 있는 <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의 OST 앨범들 모두를 꼽고 싶다. 시절의 기운을 담은 빈티지한 질감이 좋다. 마지막으로 아티스트는 국내론 잔나비. 멤버 모두 좋아하는 밴드기도 하지만, 그들의 궤적과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드는 느낌이라 애틋하다. (인터뷰 기준) 이번 주에 공연을 가기도 할 정도로 좋아한다. 해외에서는 카네코 아야노, 이시바시 에이코를 동경한다. 둘 다 무대에서의 힘찬 모습과 더불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싱어송라이터인지라 롤 모델 삼고 활동의 지표로 여긴다.
정리: 정기엽
진행: 한성현, 염동교, 정기엽, 장대휘, 정하림
사진: 정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