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선정, 21세기 첫 25년을 빛낸 힙합 뮤지션 25

by IZM

2025.05.30


힙합이 이 땅 위 자리잡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는 가족에서 듀오로 변화하며, 또 누군가는 음유시인이 되어 멋진 노랫말을 내걸며 성장한 장르는 더 이상 변두리의 생소한 소리가 아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서양의 지껄임에 ‘한국 거’라는 원산지를 붙일 수 있게 된 데에는 이 문화가 거센 바람을 걷어 앞으로 나가 빛을 발하도록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자리를 지킨 이들의 공이 크다.


IZM 선정, 21세기 첫 25년을 빛낸 뮤지션 25’의 후속 시리즈인 이번 특집은 그간 겹겹이 더해진 나이테를 톺아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힙합이 우리 대중음악의 커다란 일부분으로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무시하지 못할 독자적인 자취가 새겨진 까닭이다. 비단 래퍼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와 DJ까지, 앞선 글에서 조명의 범위를 좁혀 역사를 쌓아 올린 뮤지션들을 찬찬히 비추어보고자 한다. (박승민)



가리온
랩 힙합에 대한 소화력이 약했을 때 2006년 이즘에 합류한 한동윤필자는 구세주였다. 웹진에 즉각 힙합이 살아났다. 그에게 가리온 1집은 불후의 힙합 명반이었다. “우리말 랩, 비트, 리듬의 탄력성, 예술성과 랩 스킬의 합치가 놀랍다. 이건 ‘기예(技藝)의 완성’이다.” 얼마 후 그는 빼어난 필체로 < 그날 이후 > 리뷰를 썼다. 한동윤 이후 편집장이 된 홍혁의필자는 2010년 2집에 그만의 지혜와 성찰의 글을 남겼다. “진중한 사상과 테크닉의 극치를 시연. 허투루 배치된 트랙이 하나도 없다!” 무려 14년 만에 나온 2024년 3집 비평은 현 손민현편집장 소관. 과작(寡作)의 특혜인지 몰라도 가리온 앨범은 전부 편집장 몫인 것도 기연이었다. 비범한 언어배치가 특장인 그는 “올해 힙합의 가장 편안한 작품은 노마(老馬)의 품에서 나왔다”고 했다. 

어느새 나도 이 랩 듀오 추종자로 변해 있었다. 남들도 가리온에 속하기를 사실상 강요하면서 누군가가 ‘무투’, 불한당, ‘영순위’가 뭔지 모르거나 가리온이 맘에 안 든다고 하면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고독이 밀려오고 세상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인터뷰 때 둘은 “3집 내기 전 10여년 간 음악 공부를 열심히 했고, 3집 추진력으로 음악에 더 정진하자”는 마음이라고 했다. 공부란 말을 듣고 반감이 안 생긴, 거의 최초의 순간. 너무 속도가 빨라 성실히 듣고 배우는 방법밖에 없는 게 힙합이었다. 메타와 나찰이 그걸 내게 가르쳐 주었다. 다음의 진리도 그들로부터 익혔다. “음악은 아름다워야 하지만 ‘풍부한 의미’와 ‘광대한 범위’를 지녀야 진정 아름다운 음악이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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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JK
불모지에 검은 혼을 새긴 선구자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드렁큰 타이거가 던진 도발적인 반문은 척박한 땅에 정통의 씨앗을 뿌렸다. 이후 'Good life'로 곁가지였던 랩이 가요와 동등한 위치에 올라섰음에도 멈추지 않고 미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브먼트 크루 구심점으로 공동체 문화를 공고히 다지는가 하면 거장 라킴(Rakim)과 협업하며 본토와 직접적인 연결점도 마련했다. 도끼와 비비 등 후대 양성에도 힘을 쏟았으니, 본질을 알리려 노력했던 우직한 호랑이의 여정이 곧 한국 힙합의 지도다.

몸체는 미국이었지만 개척자의 심장은 늘 가까이 두었다. 올드 스쿨 비트 위에 쌓은 ‘남자기 때문에’의 애환, ‘8:45 Heaven’에 담긴 상실과 추모, ‘Monster’로 표출된 자유와 저항정신까지. 모두 폭력과 마약을 주제로 퍼졌던 장르의 태생적 한계를 우리 정서로 꾸밈없이 정제한 결과다. 그의 노래는 고단함에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날 혹은 답답함을 토해내고 싶은 일상적인 순간에 더욱 또렷이 들렸다. 트렌드 홍수 속 회자되는 중후한 클래식의 멋과 향수. 생경했던 리듬과 작법을 한국적 문화로 꽃피워낸 그를 기록 첫 장에 올려놓는다. (정하림)



다이나믹 듀오
선정은 수월했다. 힙합이 비주류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강했던 2000년대 초반, 장르에 익숙지 않은 대중에게 이만큼 거리감을 좁혀준 인물도 드물다. 묵직한 톤의 최자와 날카로운 래핑을 선보인 개코의 이력서는 힙합의 주류 시장 진출 선언이었다. ‘Ring my bell’, ‘고백(Go back)’, ‘죽일 놈’ 등 수많은 히트곡은 랩이란 음악의 향유 주체를 전방위적으로 확장했다. 사회의 ‘나쁜 소식’을 향한 날 선 비판을 하다가도 ‘돈이 다가 아니야’라며 고된 삶을 위로하기도 했으니. 모두를 감싼 포용력은 다이나믹 듀오의 원동력이자 2025년 다원화된 한국 힙합의 모태였음을 깨닫는다. 

대중성과 연차만으로 한국 힙합의 대들보로 여긴다면 오히려 평가절하다. 시대와 발을 맞춰 트렌드 요소를 적극 반영한 < Luckynumbers >나 여전한 기품을 선보인 < Off Duty >와 < 2 Kids On The Block > 등의 수준 높은 작품은 물론, 아메바 컬쳐의 수장으로서 후배 양성과 힙합 신의 존속까지. 음악적 행보는 매너리즘보단 기민함과 우직함이 돋보였고 외적인 영향력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보단 둘이 나은 ‘살발’한 두 남자 다이나믹 듀오. 한국 힙합의 25주년을 맞아 다시금 되새기는 이름은 사실 선정보단 헌정에 가깝다. (박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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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소울스케이프
힙합과 랩은 동의어가 아니다. 이 명백한 명제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다.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가 정의한 4요소인 랩, 디제잉, 그래피티, 비보잉 중 대중의 관심은 맨 첫번째에 쏠려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문화를 일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크루 360 사운즈를 이끌며 음악이 필요한 모든 곳에 함께했던 그는 이제 힙합의 범주를 넘어 드넓은 영역을 확보했다. 집요한 디깅으로 빚어낸 온갖 장르의 믹스셋에서 < The Sound Of Seoul > 시리즈와 작년 유수의 연주자들과 꾸린 1970년대 한국 재즈 리바이벌 < 예언 >으로 이어지는 왕성한 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수집한 레코드만큼이나 광활한 작품 세계를 자랑하는 그지만 이미 2000년대의 출발점에 큰 족적 하나를 찍었다. 국내 턴테이블리즘의 성경이나 다름없는 < 180g Beats >가 그것이다. 여러 소스를 마음껏 주물러 만든 비트는 25년의 세월 동안 하나도 늙지 않았다. 이 밖에도 바이닐 컬렉터들의 성배와 같은 < Lovers >, 래퍼들을 위한 인스트루멘탈 앨범 < 창작과 비트, Vol. 1 >로 후배들이 걸어갈 길을 미리 닦았다. 수많은 디제이와 프로듀서들이 신을 누비는 작금 응당 경의를 표해야 할 선구자다. (박승민)


양동근
처음부터 보통내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른 나이에 아역 배우로 시작해 촬영장을 지키며 ‘어른들은 몰라요’를 외치던 꼬마가 어느 날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고 문구를 고쳐 매고 마이크를 잡았으니 말이다. 우린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사람에게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을 붙이곤 한다. 사실 그런 사람은 많다. 그러나 스크린 매체와 무대 연기는 물론 음악성과 퍼포먼스, 그것도 힙합을 택한 다면적 행로에서 이 모든 걸 쟁취한 사례는 여전히 양동근이 유일하다. 

독보적인 플로우와 수준급 연출, 무엇보다 울림을 품은 손위의 가사가 후배들의 바지춤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좁은 골목길일지라도 다같이 흔들어 보자는 거리낌 없는 주도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보는 게 청춘이라며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양면의 온기는 막대한 개성의 형체감을 지탱하는 심장이다. 사람 냄새 가득한 일상의 낱말과 투박한 만큼 번화한 아우라. 일찍이 점령한 한국 힙합 희귀종 포지션에도 누구보다 대중과 가까웠던 그의 무브먼트를 향해 시장의 다양성, 그 이상의 범주에서 박수를 보낸다. (신동규)



버벌진트
한국 힙합 계몽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EP < Modern Rhymes >가 촉발한 한국어 랩 작법의 혁명은 비가역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비난은 반동세력에 반하는 이들의 숙명인 법. 필연적으로 찾아온 변혁의 이데올로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추종자들과 동시에 존재했다. 반발자들이 남긴 생채기에서는 예술이 발아했다. 그 결정체인 < 무명 >에서 < 누명 >으로 이어지는 ‘지진아 사냥’은 아름답도록 잔인하다. 

조롱의 수준이 달랐다. 멸시의 대상과 이유의 합당성은 차치하고 비난의 방식과 구성으로 잔혹미의 극치에 도달했다. 당시 여타 힙합 뮤지션들과 감성의 폭도 달랐다. ‘좋아보여’, ‘시작이 좋아’와 같은 곡은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힙합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힙합의 혁신부터 오버클래스 활동, 부동의 명반 발매까지. 한국 힙합의 역사를 돌아볼 때, 아티스트 버벌진트를 선정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이다. (장대휘)



에픽하이
비단 힙합에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범 대중성은 대단했다. ‘평화의 날'과 ‘Fly'의 쏙쏙 박히는 재기 넘치는 랩과 곡조의 결합은 그들을 친숙한 랩 집단 꼭대기에 올려놓았고 윤하('우산')와 러브홀릭 지선('Paris'와 'One') 등 여성 보컬리스트와의 협업으로 랩뮤직 메인스트림화를 이끌었다. 투컷이 주조한 명쾌한 비트에 미쓰라의 묵직한 랩과 타블로 고유의 문학적 터치가 접붙을 때 누구 하나 두려울 것 없던 트리오는 대중의 마음에 친근하고도 유연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장르성과 작품을 놓치지도 않았다.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힙합”을 거머쥔 < Remapping The Human Soul >과 재도약 선언 < 신발장 >(2010)은 음반 예술의 개가(凱歌). ‘Born hater’ 속 고밀도 비트와 “무한대를 그려주려 쓰러진 팔자”의 경지(境地)를 보라. 2024년 믹스테이프 < Pump > 속 여전한 총기에 이르기까지 에픽하이의 20년은 가요사와 국힙사가 기억할 꼭짓점이다. (염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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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
팔로알토의 음악구조는 거북선처럼 탄탄하다. 확실한 발음과 발성, 중저음의 톤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기본기는 당연하게 느껴지기에 쉽게 간과되면서도 어설픈 자는 절대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다. 보편적이면서도 범용성이 넓은 그의 랩은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항상 보장된 맛을 내는 조미료처럼 그 어떤 곡에 뛰어들어도 감칠맛을 낸다. 여기에 깊은 통찰이 담긴 담백한 가사, 간결하고도 강렬한 훅 메이킹까지 합쳐지니, 그가 구축한 음악세계에 허술함이라는 단어는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다.

탄탄한 실력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힙합신 전체의 원동력이 되었다. 2010년 3월부터 2022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존속한 하이라이트 레코즈는 국내 힙합의 파이를 키워나간 레이블이자 2010년대 대중음악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수장으로서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이 고유한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다채로운 그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팔레트였고, 레이블 활동 기간동안 앨범 발매와 각종 프로젝트 활동, < 쇼미더머니 > 시리즈 출연 등 본인의 발전도 게을리하지 않은 허슬러였다. 음악에 젊음을 불태우고 영광의 흉터를 새기며 좋은 날들을 만들고자 달려왔기에, 그의 커리어는 수많은 하이라이트로 밝게 빛난다. (김태훈)



이센스
등장부터 소위 ‘난놈’이었다. 기념비적 믹스테이프 < New Blood, Rapper Vol.1 > 다음 전 국민이 ‘땡땡땡’을 따라 부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년. 선배들이 탐내던 슈퍼 루키에서 대중 인기를 견인하는 선봉장으로, 다시 아픔을 딛고 흉터를 가진 모두의 마음을 붙잡은 ‘독’으로. 이후 힘든 나날을 보내던 2015년부터 4년 간격으로 발매한 < The Anecdote >, < 이방인 >, < 저금통 >은 힙합 팬이라면 눈 감고도 술술 외울 발자취다. 사실 이 앨범 세 장만으로도 이미 역사책의 첫 페이지를 보장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차례 풍파에 깎이지 않고 참 멋지게 단단해졌다.

모호하고 유치한 논제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랩을 잘하는 래퍼로 늘 꼽히는 이 역시 이센스다. ‘꽐라’라는 별명대로 드럼 사이를 유유히 넘나드는 래핑은 스스로의 말마따나 ‘원 앤 온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단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플로우와 라이밍만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기 마련. 오래간 축적한 인생 경험을 녹여낸 가사를 함께 헤아릴 때 비로소 그의 말은 우리 가슴에 날아와 으늑히 박힌다. 속 깊고 수더분한 형이 술자리에서 풀어 놓는 것 같은 이야기에 나 또한 많이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여기서 또 던질 수 있는 물음 하나. 우리나라 최고의 MC는 누구인가? 예나 지금이나 내 대답은 한결같이 한 사내를 가리킨다. (박승민) 



더 콰이엇
훌륭한 서포터는 게임을 이끈다. 더 콰이엇이 앨범 제작비를 쾌척하며 이센스의 기념비적 믹스테이프 < New Blood, Rapper Vol. 1 >이 나오게 됐으며, 고등학생이던 창모를 더 콰이엇이 래퍼의 길로 인도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게다가 소울컴퍼니 시기부터 멤버 대다수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그가 현재도 루키들이 공연 기회를 가지도록 매달 공연을 열며 여전히 힘쓴다. 참된 리더는 여러 군상의 순수한 존경을 받는 법, 그가 얻은 ‘대부’라는 타이틀은 걸어온 궤적에 더없이 적절하다.

명성의 이유를 외부에서만 찾아도 지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지만, 독자적인 행보 또한 독보적이다. 데뷔 앨범 < Music >이 설파하는 순수함과 제목 그대로 품격을 드러낸 < Luxury Flow > 사이 20년 전부가 한국 힙합의 생생한 역사다. “계약서 한 장 없이 탄생한 랩 스타”라는 가사는 결코 허풍이 아니다. 힙합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인 2007년부터 뮤직뱅크 차트에 오른 파급력을 지니며, 일리네어 레코즈를 필두로 한 머니 스웩 등 과시의 미학을 트렌드로 내세운 주인공이 누구던가. 우리 모두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 (정기엽)




도끼
200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릴 웨인(Lil Wayne), 티아이(T.I)를 위시한 남부의 사운드는 작은 점유율을 나눠야 했다. 도끼는 이를 타협 없이 수용하며 기술적 완성도와 자기 서사를 동시에 축적해 나갔고 반 박자 느린 국내 시장에서 대체 불가한 아티스트로 입지를 다졌다. 이러한 지향은 개인적 취향에 그치지 않고 더 콰이엇과 함께 설립한 일리네어 레코즈(Illinare Records)를 통해 성공과 자본을 전면에 내세운 운영 모델로 제도화했다. 당시에 발매한 < Multillionaire >와 < Reborn >의 성공은 독립적인 움직임 안에서도 음악적 성취와 수익 구조가 함께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이 구조는 단순한 음반사 경영을 넘어 하나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문화적 지형을 재편했고 이후 신생 레이블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기준선이 되었다. 도끼는 가사 안에서 돈을 말하고, 실제로 벌고, 그것을 다시 음악에 되돌리는 순환을 구현했으며 이는 힙합을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기획과 운영, 실행을 포함한 시스템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도끼는 전례 없는 독립 모델을 심어놓았고 지금도 그 궤도 위에 서 있다. (백종권)




딥플로우
항상 파르라니 깎은 머리, 넉넉한 사이즈의 가죽점퍼, 팀버랜드 부츠와 목걸이. 겉모습만큼이나 확고한 음악과 태도로 나아갔던 딥플로우의 발자국은 21세기 한국 힙합의 궤적을 그대로 관통한다. ‘Punch line 놀이’ 피처링 벌스의 신랄한 맹타, 붐뱁을 벗어나 작렬한 ’이 구역에 미친놈은 나야’, 다들 따라 부르기 위해 용썼던 ‘작두’를 기억한다. 육중하게 다가와 적재적소에 다음절 라임을 꽂아 넣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얼마나 멋졌는지! 굳이 < 양화 >와 < Founder >라는 두 음반이 지탱하는 디스코그래피의 탄탄함을 열거하지 않아도, 또 2016년의 화려한 수상 순간을 돌이키지 않아도 꼽을 명장면이 많다.

빅딜 레코드와 지기펠라즈, 메스퀘이커 등 2000년대를 풍미한 집단에 두루 속했던 딥플로우는 동료들이 지켜 왔던 홍대 가치의 계승이라는 책무를 기꺼이 짊어졌다. 정규 1집의 제목 ‘Vismajor’가 크루에서 컴퍼니로 바뀌는 과정은 곧 힙합 역사의 격동기와 맞물려 있다. VMC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실력자를 불러 모은 빛과 방송 출연 이후 변절자 딱지가 붙은 어둠, 그 사이에서도 흔쾌히 앨범 제작비를 건네고 ‘보일링 포인트’ 프로젝트로 후배를 도운 ‘상구 형’의 헌신은 여전히 신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여태까지,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언더그라운드리라. (박승민)

인터뷰 보러가기: 2020년 / 2015년



스윙스
스윙스는 태도와 산업 구조 양면에서 기존의 문법을 흔들었다. 힙합 신의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구호를 표방한 출사표 < Upgrade >에서의 거만해 보일 수 있는 자기 확신을 수준 높은 작업물로 입증했으며 이에 상응하는 무대 매너가 업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이러한 호전성은 메이저 래퍼로서 이례적이었던 < 쇼미더머니 2 > 참가를 통해 전파를 탔고, 같은 해 컨트롤 디스전이라는 전무한 규모의 랩 배틀까지 점화하며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했다. 

씨잼, 기리보이를 필두로 한 저스트 뮤직(Just Music) 컴필레이션 앨범 < 파급효과 (Ripple Effect) >의 성공이 불어난 영향력을 가시화한 데 이어 인디고 뮤직(Indigo Music) 등 성향별 자회사를 연달아 설립하여 자율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다중 브랜드형 레이블 구조를 실험했다. 각 음반사는 단순한 소속사를 넘어 개별적인 서사로 기능했고 이후 유사한 구조의 모델 확산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이들을 에이피 알케미(AP Alchemy)로 통합해 운영 중이며 스윙스의 업그레이드는 창작자이자 설계자로서 현재진행형이다. (백종권)



화지
단 두 장의 앨범. 한국 최고의 리릭리스트 반열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채비는 딱 그뿐이었다. 래퍼 화지의 장점이자 정점은 바로 가사다. 담백하고 통쾌한 우화처럼 들리지만, 듣다 보면 그 속에 숨겨둔 예리한 날붙이에 어느새 온몸 곳곳에 상처가 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화지’라는 랩네임을 텅 빈 도화지에 하고픈 말을 게워 내는 ‘말하는 종이(話紙)’로 읽어도, 혹은 뿔난 자세로 세상을 우습고 추악하게 바라보는 ‘화난 돼지’로 해석해도 상관없다. 어떤 수식이라도 부합하듯 민감한 소재부터 부조리의 일편까지 꼭꼭 씹어대고 질척한 혀를 거쳐 건조한 유희와 냉소를 빚어낸다. 그야말로 모든 글귀가 정곡을 찌른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결국 전달력의 모범이 된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앨범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작가주의 정신이 있었기에 세울 수 있던 업적이다. 화지 특유의 묵직한 톤과 여유로운 플로우를 보고 싶다면, 코드 쿤스트와의 합을 맞춘 히트 넘버 ‘Lounge’와 ‘주소’를 보면 된다. 추구하는 작품성을 긴밀하게 알고 싶다면 군말할 필요 없이, ‘국힙 클래식’의 정의를 새로 갱신한 < EAT >과 < ZISSOU >를 권하고 싶다. 보이는 족족 물어뜯는 ‘들개’로 태어나, 만져지는 모든 가치에 달관한 ‘히피’가 된 남자. 그의 일대기는 힙합이 가진 고유의 예술성을 탐닉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멋진 열반이 된다. (장준환)




비프리
삶의 희로애락과 동료와의 유대, 음악에 대한 예찬을 그려내던 풍운아에서, 엽기적인 행보로 수위를 넘나드는 무법천지의 수장까지. 비프리는 말 그대로 선과 악, 극과 극을 달리는 한국판 ‘카니예 웨스트’ 같은 래퍼다. 수많은 논란의 곡절과 녹록지 않은 현실의 풍파는 온전한 형상을 깎고 도려내며 통제 불능의 괴물을 조각했다. 그럼에도 가려지지 않는 번뜩임이 계속해서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힙합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매 순간 전력을 다하는 태도만큼은 부정할 수 없던 ‘진짜’였던 셈이다.

고달픈 청춘의 초상을 진솔하게 그려내 2010년대 격동의 한국 힙합 신에 긍정의 미소를 지어보인 < 희망 >과 < Korean Dream >이 누구나 다시 일어설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면, 무서운 흡입력과 탁월한 장르 이해도로 향후 2020년대를 대표할 명반 후보에 당당히 올라선 문제의 작품 < Free The Beast >는 반대로 누구나 가진 내면의 분노를 꺼낼 방아쇠를 건넨다. 게다가 최근 허키 시바세키와의 합작은 아예 힙합의 기존 공식마저 부수는 규격과 상식 파괴의 현장이다.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주의 인물. 그럼에도 그가 하는 메시지는 늘 올곧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맞서 싸울 것. 그리고 그것이 곧 힙합의 미덕이라는 것. “원하는 게 있다면 말을 해 / 시원하게 제발 좀 말해” - 'Get it' 中  (장준환)



박재범
투피엠 탈퇴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의 박재범을 예상했던 사람은 솔직히 전무했을 테다. 처음의 시선으로는 ‘아이돌 출신’ 딱지만 떼어내도 성공이었다. 지금 보면 너무나도 과소평가다. 단순히 솔로 뮤지션으로 자리잡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갔으니까. 2013년 AOMG를, 2017년에는 하이어뮤직을 설립해 사이먼 도미닉, 로꼬, 식케이와 그루비룸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거쳐간 레이블 수장 자리를 오래 지킨 것이 박재범의 욕심 혹은 진심을 설명한다. 방송 출연도 잦고 기타 사업에도 적극적이었던 그를 음악, 그리고 한국 힙합 신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건실한 이미지를 갖췄지만 아티스트로서 박재범의 진가는 가요계를 통틀어서도 대적할 자가 없는 섹스 심볼이라는 사실에 있다. 가사에 낯부끄러워하는 이들도 ‘몸매’가 나오는 순간 떼창 폭발, 페스티벌은 곧바로 클럽이 된다. 이제는 박재범의 시작점이 K팝 보이그룹임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힙합 리스너에게는 신에 대한 기여도로, 관객에게는 멋진 퍼포먼스와 육체미로, 그리고 기타 대중에게는 ‘All I wanna do’, ‘Ganadara’ 같은 달콤한 알앤비 넘버로 기억되고 있으니. 오래된 수식어에 내줄 빈자리가 없다. (한성현)



빈지노
여덟 마디 언어에 장면과 생명을 불어넣는 재능을 지닌 그의 본적은 화가다. 삶을 그대로 묘사한 리얼리즘 < 24:26 >와 급변한 초현실주의 화풍의 < 12 > 모두 젊은 가슴에 뚜렷한 자국을 새겼다. 주로 청년 서사의 대변인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그 시대의 청춘도 이 래퍼가 지닌 순수한 품격을 모방하기에 바빴다. 능글맞은 재지팩트, 잠시 트렌드에 몸을 의탁한 트랩, 삼십 대를 개성 있게 받아들인 < Nowitzki >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변용에서도 그는 언제나 꾸밈이 없었다. 멜로디와 리듬을 주무르는 창의적인 플로우와 한영 혼용 라임 등 수준급 랩 기술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결정적인 이유 역시 이 낭만주의적 솔직함에 있다.

일리네어 레코즈의 개국공신이라는 것 외에는 우리 힙합의 큰 줄기와 애초에 다른 길이다. 크루와 레이블, 올드스쿨과 뉴스쿨, 언더와 오버 등 통속적인 랩 게임의 기준 자체가 무의미. 그러나 도끼, 이센스, 다이나믹 듀오 등 그의 친교 명단은 늘 이 가문의 극단을 넘나든다. 애써 이끌지 않더라도 유행은 늘 빈지노를 쫓았고, 그의 취향에 따라 선택된 자들의 꼬리표에도 무리의 관심이 뒤따랐다. 25년 한국 힙합의 굴곡은 그의 홀연한 행적과 압도적인 영향력에 따라 크게 일렁였다. 투덕거리는 집안에서도 모두에게 사랑받은 그는 독특한 외인(外人)이다. (손민현)




지코
흥행의 보증수표를 넘어 이젠 백지수표가 더 어울린다. 힙합부터 K팝, 서정적 잔향과 파티 튠까지 어떤 필드를 내어줘도 능률이 이상(理想)향의 이상(以上)이니 말이다. 올해 상반기 작업만 해도 식케이&릴 모쉬핏과의 강렬한 교류, 애쉬 아일랜드와 나눈 싱잉 랩 등 피처링과 제니의 과시적 가사에 한글로 풍성함을 더해준 다채로운 이력을 보라. 크러쉬, 딘, 페노메코와 꾸린 팬시차일드 그리고 시작을 함께한 동지 블락비의 메인 캐릭터로 각 분야 파급력 최전선에 우뚝 선지도 오래다.

지코가 오른 무대가 신나는 이유는 단순히 유명 연예인이어서만은 절대 아니다. 대중성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힙합 특유의 멋을 널리 퍼뜨린다. 자신을 있게 한 크루 두메인과 벅와일즈에 대한 지속적인 의리, 탄성을 자아내는 펀치라인과 화려한 랩 스킬은 청각적 쾌감과 언어 구조 상 재미를 동시에 잡는다. 그 덕에 아이돌이 일종의 족쇄로 작용하던 장르 특유의 배척을 가뿐히 날려버린 주역이 됐다. 스스로를 표현한 가사처럼 “Show and prove의 심볼”은 지코다. (정기엽)




기리보이
11장의 정규 앨범과 400곡이 넘는 작업물. 1등보다는 중간 정도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던 기리보이에게 ‘믿고 듣는’이란 수식어 쯤은 놀랍지 않다. 스윙스와의 시작부터 자이언티와의 만남까지 음악 인생의 굵직한 분기점으로 촘촘히 기록한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흥행의 기준선을 상회하는 중이다. ‘찌질 감성’의 원조격인 < 육감적인 앨범 >과 < 졸업식 >을 채운 솔직함, 다른 장르의 작법을 빌린 < 기계적인 앨범 >, < GRBO1 >의 실험 정신, < 치명적인 앨범 III >의 감성적인 스토리텔링 등 창작욕 이상의 학구열이 묻은 ‘허슬 본능’이 힙합 신의 신선도를 꾸준히 갱신한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팬의 사연을 아이디어 삼은 ‘우리서로사랑하지는말자’나 오래 전 메모장에 적어둔 이별 이야기 ‘미춰버리겠어’ 모두 어깨 너머로 본 대중의 일상이다. 예민한 감각을 가졌음에도 영감의 소진 따위는 없다. 피셔맨, 코스믹 보이와 꾸린 DJ크루 우주비행(WYBH) 역시 하고 싶은 것이라면 해버리는 대담함에서 탄생했다. 대화보다 창작이 어울리는 그에게 힙합은 가능성과 추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언어다. 이십 대 초반 길이 보일 거라며 지었던 이름이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남강민)



코드 쿤스트
음악 차트보다 예능에서 더 자주 보이는 최근 행보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 이유로 21세기 한국 힙합에서 그가 남긴 흔적을 지나치는 것 또한 힘들다. 시작부터 무기는 확실했다. 무거운 고독이 스며든 뿌연 안개, 그 속을 헤매는 비트로 주목받은 정규 1집 < Novel >부터 < Remember Archive >에 이르는 경로엔 소리의 주인을 알리는 인장이 선명하다. 그 덕에 넉살, 씨잼 등 목소리가 곧 지문인 객원들의 입을 빌렸음에도 곡의 이야기는 코드 쿤스트 자신의 내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조력자들이 뱉어낸 언어의 낱장이 모여 만든 예술(Kunst)이라는 이름의 에세이다.

하이그라운드, AOMG 등 굵직한 레이블을 거치며 힙합의 거친 질감뿐 아니라 알앤비의 말랑한 감성까지 두루 끌어안았다. 고유한 정서와 친절한 접근법의 중간 점을 잡아낸 < Muggles’ Mansion >은 힙합 마니아를 넘어 대중에도 소구력을 발휘했다. 혹자는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경향성에 불만을 표하기도 하지만 근간은 변함없다. < Crumple > 속 메케한 담배 연기로 싸인 뒷골목에서도, < People > 속 몽글몽글한 향이 불어오는 꽃밭에서도 기저엔 낭만적 우울이 맴돈다. ‘시그니처 멜랑콜리’로 젖은 이곳에 여타 시그니처 사운드는 필요치 않다. (박수석) 



씨잼
< 쇼미더머니 >의 흥행 속 던져진 ‘신기루’의 파급효과를 기억한다. 시의에 담긴 노골적인 언어와 수려한 완급 조절로 맞이한 빈틈없는 래핑에 홀딱 반해 음원도 없는 곡의 가사를 외려 애썼던 추억까지도 말이다. 비뚤어진 사실 관계와는 별개로 어느덧 십 년을 꽉 채운 첫 감상의 쾌감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후 경연곡의 잇따른 인기와 ‘Puzzle’로 각인된 상업적 성행, 생장을 같이한 섹시 스트릿 크루 멤버들의 오름세 등 연타석 안타를 쳐내며 씨잼은 스윙스가 이끄는 저스트 뮤직 사단의 전성기와 국내 힙합의 호황기를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 잡았다. 

뒤따른 약물 소동을 지나 되돌아온 형상은 변화보단 변모에 가까웠다. 더 이상 비와이와 함께 자화상을 그리던 씨잼이 아니었다. 장작이 됐건 이를 감싸는 불꽃이 됐건 결국 순방향으로 나아가던 그가 형이상의 문장과 스스럼없는 감정 고백을 휘감아 곡예를 부리며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 킁 >은 이모 랩 유행 속 또 다른 해석을 제시함과 동시에 작금의 힙합 계통을 대변할 새 아포리즘으로 남을 수 있었다. 가만 보면 주변이 어두울수록 강한 효력을 발휘하는 섬광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의 지난 십수 년은 어떤 의미로든 어둠을 더했고, 씨잼은 거센 빛을 내뿜으며 보란 듯이 산화하는 중이다. (신동규) 



그루비룸
트렌드, 히트, 핫, 세련됨, 감각적… 팀을 형용하는 말을 떠오르는 대로 모아봤다. 짧은 유통기한이 암묵적으로 내포된 단어가 활동 10년 동안 따라붙는, 마치 ‘순간의 진행형’ 같은 아이러니 현상의 주인공이 바로 이휘민과 박규정이다. 초장부터 개리, 박재범, 다이나믹 듀오와 작업하더니 데뷔 1년 만에 내놓은 식케이의 ‘랑데뷰’를 기점으로 힙합 세대교체를 정립하면서 빠르게 몸집을 부풀렸다. 와중에 효린, 창모의 ‘Blue moon’, 헤이즈의 ‘널 너무 모르고’처럼 트로피컬, 알앤비 심지어 록 또한 챙기며 시제와 장르 모든 것에 구애받지 않음을 입증해왔다.

따지고 보면 프로듀서, 메이커보다 테일러(Tailor)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시장을 빠르게 포착하고, 다양한 질료를 받아들여 맞춤형으로 직조한 결과, 아티스트의 재발견 < Everywhere >는 지금도 손이 가는 선집이며 < 고등래퍼 2 >, < 쇼미더머니 9 >가 배출한 ‘붕붕’과 ‘VVS’는 실연자의 주가 상승에 자명한 요인을 제공했다. 듀오에 그치지 않고 솔로 페르소나로의 이미지 변신과 TV 스크린의 음악감독까지. 그룹이름 앞에 놓인 수식어의 일시성을 지워 나가 찰나마다 새로움을 만드는 섬세한 재단사들이다. (임선희)



창모
칠흑의 건반에서 손을 떼고 검은 마이크를 잡은 소년이 이제는 대한의 건아가 되어 돌아왔다. 색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음악 도구로 21세기 힙합 25년에 거대한 ‘Meteor’를 떨어뜨린 창모는 원 그레이트 송으로 막강한 지위를 누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노래가 2020년 한 해를 점령하고 차트를 지배한 것이다. < 쇼미더머니 >가 그랬던 것처럼 유행의 흐름과 장르의 발전에 필요한 만인의 관심을 이뤄내며 단 한 곡으로, 그리고 혼자의 힘으로 언더그라운드 록스타 칭호를 쟁취했다. 

빛나는 히트곡보다 더 반짝이는 매력은 눈부신 개성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오토튠, 투팍의 래핑, 서태지의 록을 창모만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재편성해 완벽하게 지휘한다. 악단을 조율하는 기준은 듣기 쉬운 음악. 그 옛날 모타운 레코드의 모토를 닮은 젊은 마에스트로는 힙합 역시도 대중음악의 한 갈래임을 직시하며 대중적 흡인력을 풀어헤친다. 2010년대 중반에 데뷔해 시기상 긴 역사를 가로지르긴 힘들었지만 역으로 틀어 역사를 세로로 관통하며 확실하고도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 (임동엽)

인터뷰 보러가기: 2021년 11월 / 2021년 4월



키드밀리
독보적인 플로우, 트렌드 세터, 허슬러. 모두 키드밀리를 어설프게 형용하려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단어다. 분명 수식어들은 하나의 단면을 조명하고 있기는 하다. 첫 비상(飛上)부터 독창적인 랩 스킬을 드러낸 그는 단숨에 < 쇼미더머니 777 >의 우승후보로 지목되며 ‘올해는 우리꺼’라는 인디고 뮤직의 사훈을 실현했다. 2018년 한 해에 단순히 허슬이라는 말로 넘어가기 아쉬울 만큼 아이코닉한 정규 1집과 항해 트릴로지의 완성, 보름 만에 만든 EP에 메가 히트 단체곡 ‘Flex’, ‘Indigo’까지. 어쩌면 이 시절 인상에 머물며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어제의 그는 그가 아닌 듯이 탈피한다.

유일무이한 스타일은 클리셰라 칭하고 유행보다 영원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부분, 푹 패인 눈 안 솔직함이라는 빛이 있기에 여전히 견고하게 사랑받는다. 일본 서브 컬처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고 멋으로 승화한 가사에서의 진실됨은 음악 전반으로 확장되어 힙합을 시작할 때부터 원했던 베이지 색의 원초적 흥에 도착했다. 이제 바라보는 목적지는 지금보다 훨씬 멀리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섣불리 지금의 모습으로 그를 정의하고 싶지 않다. 예상과 다르게 변화하면서도 솔직하게 돌아와 스스로 이야기하기에 구태여 틀에 가두지 않아도 된다. 이미 가사에서 말해주었듯 키드밀리의 시간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이재훈)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별종으로 볼 수 없다. 격변의 세상이 자연스럽게 배출한 스타다. 무의미한 ‘구찌 갱’ 남발만으로도 빌보드를 정복한 릴 펌 현지화로 한국에 나타난 그는 선도자가 되어 미래를 이끈다. 자극 포화 시대에 투명하게 일삼는 기믹 랩이 원초적인 욕망과 재미를 이끄니 그저 통한다. 여기서 유치하고 기계적인 그만의 계급화가 한술 더 뜬다. 네가 돈이 많아? 난 못 배웠지만 너보다 더 버니까 내가 더 위야. 원래 이 땅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정서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의 데뷔 음반 < Uneducated World > 이후 한국 힙합이 치기 어린 장난으로 바뀌었고 우리 랩의 리릭시즘이 결정적으로 붕괴되었다.

분할지라도 근거가 분명하다. 폴 블랑코, 재키와이, 언에듀 트리오의 ‘Amazing’을 보면 안다. 어지러운 사운드와 단순한 라임만으로 욱여넣는 투박한 방식이 혼란스럽고 도발적이며 직관적인 쾌감을 준다. 이듬해 빠르게 이 매력을 인지한 박재범과 오케이션을 끌어들였고, 폭격의 결정체 < Hoodstar 2 >에 이어 결국 빈지노 마크까지 획득했다. 한 철 장사를 넘은 뚝심으로 ‘저급함’에도 명확한 급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그는 청춘과 저항을 외치던 힙합 보수주의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게다가 그가 대표하는 ‘황금만능 개인주의’는 이미 하나의 장르를 넘어섰다. 안타깝지만 지금의 씁쓸한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손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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