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남긴, 역사가 기억할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에센셜 플레이리스트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by 한성현

2025.06.25



6월 9일 작고한 슬라이 스톤이 이끈 밴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은 약 7년의 짧은 전성기에도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흑인과 백인이 섞인 팀이라는 상징성을 지녔고, 시대를 반영한 화합의 언어를 열변했으며, 소울과 펑크에 사이키델리아를 가미한 혁신가였다.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미국 외의 시장에서는 히트 기록이 덜하고 아시아권에서는 더욱 그러하나 대중음악의 역사를 논할 때 이들은 그 누구 못지 않게 중요한 이름이다. 리더 슬라이 스톤의 존재감을 정리한 ‘슬라이 스톤(1943-2025), 흑백을 허문 게임 체인저’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듣고 챙기면 좋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대표곡 10곡을 선정했다. 음악과 함께 밴드의 자취를 더 깊게 이해하고 따라가보자.



Dance to the music (1967)
데뷔 앨범 < A Whole New World >는 평단의 찬사와는 달리 상업적으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소규모 클럽이 전부였다. 타개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CBS 레코드의 프로듀서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노래를 써보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첫 히트 싱글 ‘Dance to the music’이다. 색소포니스트 제리 마티니가 “힙하지 않다(unhip)”고 말했을 정도로 밴드는 지나친 상업적인 색채를 탐탁치 않아 했으나 어쨌든 곡은 팝 차트 8위의 기록과 50만장의 판매로 골드 레코드 인증을 받으며 의도대로 흘러갔다. 사람들이 이들의 노래에 맞춰 춤추기 시작했고 그 영향력은 슈프림스와 포 탑스, 특히 템테이션스의 ‘Cloud nine’ 같은 곡까지 미쳤다.



Everyday people (1968)
노래가 발매된 지 45년 후인 2013년 뒤늦게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는 세상 여러 부류의 사람을 비춘다. 굉장히 직관적이다 싶지만 가사를 착실히 따라간 연출이다. ‘내가 옳을 때도 틀릴 때도 있겠죠/내 믿음은 이 노래 안에 있어요/정육점 주인, 은행원, 드러머 등등/내가 어느 집단에 있든 차이는 없어요’ 결론은 간단하다. ‘나는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I’m everyday people)’ 그러나 가장 아이코닉한 것은 역시 이 문장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이 있어요(Different strokes for different folks)’ 갈등, 차별의 봉합과 세계 평화를 노래한 ‘Everyday people’로 빌보드 차트의 정상에 오르며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은 직전 앨범 < Life >의 부진을 딛고 본격적인 전성기로 진입했다.



Stand! (1969)
때는 1969년, 달이 인류의 첫 발걸음을 맞이한 반면 지구는 베트남 전쟁의 여파와 냉전으로 뒤숭숭했다. 슬라이 스톤의 태도는 확실했다. 일어나라! 직접적으로 사회 참여를 요구하는 내용은 아니었으나 자주적으로 발을 딛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는 메시지가 그의 목소리에 녹아 있었다. ‘당신이 짊어야 하는 십자가가 있죠’라는 가사처럼 노래에는 사회를 막론한 종교적인 분위기가 있고 이를 반영하듯 가스펠 타입의 보컬 코러스와 박수 소리가 곡의 끝을 장식한다. 노래는 영적인 울림과 함께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22위라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차트 순위에도 밴드의 에센셜 넘버로 자리잡았다.



Hot fun in the summertime (1969)
< Stand! >로 황금기를 보내며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은 여러 공연에 초대받았다. 그중 하나는 역시 상징적인 8월의 우드스탁 페스티벌. 50분 동안 최고의 무대로 꼽히는 퍼포먼스를 장식한 그들은 같은 달 곧바로 새 싱글 ‘Hot fun in the summertime’을 발표하며 여름을 만끽했다. 시원한 건반 소리와 옅게 부는 바람처럼 낭만을 품은 현악기,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관악기까지 모든 악기 사운드에 행복감과 여유가 가득하다. 빌보드 팝 차트 2위를 기록하며 히트 레퍼토리에 추가된 곡은, 당시 앨범 제작의 난항으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듬해 11월 발매된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에 신곡으로 실렸다.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 (1969)
과장을 조금 보태 말해본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다른 노래는 몰라도, 설령 밴드 이름조차 듣지 못했어도 ‘Thank you’는 어디선가 한 번 들어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들리는 대로 발음을 적은 부제처럼 'Thank you/for lettin’ me/be myself/again'으로 끊어가는 후렴 하나만큼은 굉장히 유명하다. 슬랩 주법으로 펑키(funky)하게 튕기는 기타 리듬위에 툭툭 던지는 듯한 흥겨운 보컬 합창 덕분에 상대적으로 기존 싱글보다 긴 4분의 러닝타임도 짧게 느껴진다. 2주 연속 빌보드 1위의 기록과 플래티넘 레코드 인증을 받으며 밴드의 히트 행렬을 이어간 곡은 20년 후에 뜻밖에 부활을 겪었다. 무슨 일이냐고? 바로 자넷 잭슨이 이 노래에서 기타 샘플을 따 ‘Rhythm nation’을 만든 것이다.



Everybody is a star (1969)
‘Thank you’와 더블 A사이드 싱글로 발매되어 당시 차트 규정 덕분에 함께 빌보드 1위에 올라간 곡이다. 비틀스의 ‘Come together’와 ‘Something’과 같은 케이스다. 지금이야 스트리밍 시대라 곡마다 집계가 되지만 당시는 실물 음반으로 들어야 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얼떨결에 정상을 찍은 노래로 치부한다면 곤란하다. 다른 노래에 비해 느린 템포, 포근한 소울 가창과 악기 운용이 모여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주요 곡 중에서 남다른 감성을 자랑하는 트랙이다. 차례로 돌아가며 모두가 스타라 말하는 네 명의 목소리에 위로를 받게 되는 힐링 송. 비가 내리는 날에 들으면 더욱 효능이 좋다.



I want to take you higher (1970)
영어 ‘High’에는 ‘높다’ 말고도 ‘취하다’의 뜻도 있다. 실제로 취기가 돌면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나지 않나. 그 뜻대로 ‘I want to take you higher’는 파티 송이다. < Stand! >에 같이 수록된 트랙 대부분이 인류애의 주제를 논하는 것과 달리 동적인 감각, 에너지를 북돋는 것에 집중한다. ‘붐 라카-라카-라카’를 반복하는 파트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드럼 비트를 듣고 있으면 점차 끓어오르는 흥을 몸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테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수식어인 ‘사이키델릭 소울/펑크’ 장르의 특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곡. 1969년 ‘Stand!’의 B사이드로 처음 실린 곡은 공연 세트리스트에 꾸준히 오르며 이듬해 A사이드로 재발매, 차트 흥행 기준인 40위 안에 안착했다.



Family affair (1971)
< Stand! > 이후 밴드는 부침이 많았다. 드러머 그레그 에리코가 탈퇴하는 등 멤버 간 갈등과 앨범 제작의 지연, 이에 가세해 백인 멤버들을 흑인으로 교체하라는 미국 흑표당의 압박까지 들어왔다. 그 사이 슬라이 스톤은 레이블 스톤 플라워 프로덕션을 만드는 한편 마약 중독으로 공연에 종종 불참하고는 했다. 2년의 공백을 끝낸 1971년 복귀작 ‘Family affair’의 가사는 간접적으로 그의 혼란을 암시한다. ‘넌 울 수 없지/무너진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희망과 화합을 노래하던 그전에 비해서는 확연히 멜랑콜리해졌으나 차트에서는 팀의 세 번째 1위 싱글이 되어 위기를 타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래는 드럼 머신을 사용한 최초의 히트곡 중 하나로 후대 많은 영향을 끼쳤다.



Runnin’ away (1972)
깊게 생각하지 않고 들었다가 나중에 가사를 보고 어두운 내용에 놀라는 경우가 있다. ‘Runnin’ away’도 그럴 만한 곡이다. 로스 스톤의 차분한 음색과 중간중간 들어간 ‘하하-하하’, ‘히히-히히’ 같은 추임새만 놓고 보면 목가적인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암울하다. 달아나려 하는 와중에 신발은 닳아가고, 빚은 늘어만 간다. ‘또다른 하루, 당신은 더 멀리 가있죠/하하-하하/집으로 오는 길은 더 멀어요’ 단조로운 연주와 잿빛 도심 속 노동자의 애환이 그려지는 듯하다. “폭동이 벌어진다”는 의미처럼, 노래가 수록된 다섯 번째 정규작 < There’s A Riot Goin’ On >은 시민권 운동이 흑인 중심의 급진적 블랙 파워(Black Power) 행렬 사이 발매되어 찬란한 밝음 뒤에 있던 어둠을 조명했다.



If you want me to stay (1973)
앨범 커버가 두 가지를 암시한다. 다시 택한 밝은 무드, 그리고 밴드 리더의 1인 플레이. 전작 발매 이후 내부 분열은 더욱 심각해져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이엄이 슬라이 스톤과의 싸움과 암살자 고용 소문 끝에 팀을 떠났다. 위기 속에서 슬라이 스톤은 사실상 혼자서 앨범을 주조했고 다행히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앨범 차트 7위의 성적과 더불어 첫 싱글 ‘If you want me to stay’는 팝 차트 12위에 올랐다. 가사는 상황을 반영한 것인지 거대한 주제 대신 슬라이 스톤이 당시 아내와의 일화를 차용해 연인 사이의 싸움과 화해를 다룬다. 애석하게도 이후 밴드는 계속되는 위기로 내리막길을 타며 슬라이 앤 더 스톤은 노래 제목과 달리 대중 곁을 서서히 떠났다.

♬플레이리스트 감상하기♬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