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고영배 인터뷰

소란

by 한성현

2025.07.04

인터뷰 제안을 받고 팟캐스트 녹음을 역으로 요청했던 것은 소란의 활동 기간과 맞먹는 고영배의 방송 경력 때문이다. 2010년부터 라디오 DJ를 맡고 지금은 아이돌 쇼케이스 등 여러 행사에도 MC로도 종종 나서는 그이기에 대화를 글만이 아니라 생생한 목소리로도 함께 들려주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성사된 만남, 날씨가 흐리던 금요일에 사무실을 찾아온 그는 약 한 시간 동안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갔다.

그가 이끄는 밴드 소란의 신곡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고영배를 뮤지션으로 세운 인생 음악을 거쳐 최근 그의 취향까지. 여러 곳에서 드문드문 얘기했던 내용을 한데 모은, 그의 말마따나 일종의 ‘극장판’이라 할 만한 대화였다. 전문은 하단 팟캐스트 '이즘 뮤직 클라우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4월에 발매한 소란 신곡 ‘너의 등장’을 짧게 소개한다면.
신나는 록 분위기에 운석의 충돌 같은 온갖 변수 중 최고는 너의 등장이라는, 약간 의외성이 있는 가사를 붙인 곡이다. 작년 하반기에 냈던 싱글 ‘목소리’는 소란 음악 중에 흔치 않게 감정적이고 진지한 편이었다. 제작에 참여한 권정열과 함께 겹치지 않을 다음 단계를 고려하다가 이런 경쾌하고 엉뚱하기도 한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

가사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가 인상 깊었다. 처음부터 이런 비주얼을 고려한 것인지. 그린스크린 촬영이 힘들지는 않았나?
첫 소절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운석의 충돌’을 보고 멤버들이 우주에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부터 기획이 시작되었다. 감독은 처음 만나는 분이었는데 굉장히 베테랑이신 분이라 감을 못 잡던 나를 잘 이끌어 주셨다. 필요한 부분만 효율적으로 찍어서 멤버당 촬영 시간이 20분 아래였을 정도.

초기 디스코그래피에 비해 2023년도 이후의 음악은 조금 더 역동적이고 화려해졌다.
내가 유행에 민감한 편이다. 정확히는 트렌드에 휩쓸리는 스타일. (웃음) 좋아하는 사운드가 계속 변한다. 한창 힙합과 알앤비가 인기를 얻었던 시기에는 그런 쪽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고 최근에는 국내 밴드 신이 조금 활성화되는 기조를 자연스레 따라가고 있다.

곡 발표 후에 버스킹도 했고, 이제 여름 페스티벌 시즌이 다가온다. ‘너의 등장’의 현장 반응은 어떤 편인가.
BPM이 빠른 것과 별개로 뛰어놀기 어려운 곡이 있고, 그렇게 신나지 않은데 호응이 잘 되는 경우가 있다. 노래는 전자 쪽이라 대체로 감상에 집중하는 편이나 중간중간 확실하게 관객들과 주고받는 떼창 포인트가 있다. (후자의 케이스는 ‘가을목이’ 같다) 맞다. 공연에서는 다들 춤을 추고 뛰어노는데 집에 와서 다시 들어보면 은근히 쳐진다. (웃음)

음반 단위 결과물은 오래되었다. 특히 정규작은 2016년 < Cake >가 마지막이다. 싱글 이상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항상 계획은 있지만 참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통이나 방송국 쪽에서도 싱글보다는 EP, EP보다는 정규 앨범에 무게를 실어줘서 홍보의 측면에서는 유리하나 트랙 수가 늘어날수록 제작비가 올라가는 것이 크다. 더군다나 다들 타이틀곡만 소비하니 나머지 곡은 너무 아까워진다. 요즘 뮤지션 누구와 이야기해도 다들 비슷하게 말할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음반 단위에 대한 수요는 존재하고, 특히 팬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앨범이 나와야 내러티브를 활용해서 콘서트가 가능하기도 하다. 한동안 싱글만 계속 냈으니 다음은 EP든 정규작이든 꼭 음반으로 낼 예정이다.



단독으로 이즘 뮤직 클라우드를 찾아온 만큼 이날의 대화는 고영배의 음악 인생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즘 인터뷰의 공식 질문이기도 한 ‘인생 음악’, 그러니까 어떤 음반이나 노래 혹은 아티스트가 당신을 음악의 길로 이끌었는가? 고영배가 가져온 픽에서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마이클 잭슨과 자넷 잭슨의 ‘Scream’을 골라 왔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내리게 만든 아티스트가 서태지, 그리고 마이클 잭슨이다. 특히 마이클 잭슨의 컴필레이션 < HIStory :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1 >은 처음으로 산 CD라 더욱 의미가 크다. 주요 히트곡을 수록한 첫 디스크에서 ‘Billie Jean’을 비롯한 그의 명곡을 듣고 ‘이것이 스타다’를 느꼈다. 앨범 월드 투어 실황 비디오를 보며 나도 저렇게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싶다는 꿈을 꿨다. 내 인생에서 뺄 수 없는 음반이다.

‘Scream’은 신곡으로 채운 두 번째 디스크의 첫 트랙이라 상징적으로 골라봤다. 정말 압도적인 사운드로, 지금 들어도 드럼과 리듬 섹션이 엄청 큰데도 소리가 안정적이다. 믹스가 잘 잡힌 교과서적인 댄스 트랙이다.

소란으로 보여주는 음악과는 결이 달라서 다소 의외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우리가 공연에서 보여주는 태도가 소위 말해 ‘월드 클래스의 애티튜드’다. 대형 스타를 꿈꾼다고 해야 할까. (웃음) 그런 면이 마이클 잭슨에게서 왔다. ‘Heal the world’처럼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거나 ‘We are the world’ 같은 프로젝트를 이끌고 싶다는 희망.

얼마 전 < 라디오 스타 >에 나가서 인생에 큰 굴곡이 없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우상인 마이클 잭슨은 굉장히 험난한 삶을 살았고 ‘Scream’에도 분노의 감정이 담겨있는데, 소란 음악에서도 행복하고 밝은 정서 외의 감정을 들을 수 있을까?
순탄한 연애 끝에 아이들과 잘 살고 있는 탓인지 슬픈 노래를 잘 못 만든다. 마음속에 아픔도 별로 없고, 그러다 보니 슬픈 곡을 만들면 가짜라는 느낌이 온다. 물론 더 열심히 해서 넓은 감정을 다루고 싶은 생각은 있다. 대부분 밝은 분위기로 제안이 들어오는 사운드트랙도 작업이 끝나면 다음에는 슬픈 노래를 줄 수 있겠냐고 묻기도 한다. (웃음)

그렇다면 가사를 쓸 때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지.
정해진 건 없지만 요즘은 아이들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낀다. 우리 아이들이 갑자기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첫째 딸이 결혼하면 어떨까 등등. 최근에는 해외 노래 가사를 해석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첨부하는 영상도 고려하여 색다른 뉘앙스를 넣기도 하는데 거기에서 의외의 포인트를 발견한다.

얘기했듯이 마이클 잭슨은 사운드에 굉장히 공들이는 아티스트였다. 그를 동경하는 고영배가 소란 음악을 만들 때 편곡 과정에서 신경을 쓰는 면은 무엇인지 궁금한데.
한동안은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강한 사운드가 스튜디오 버전에도 동일하면 피로감이 크다고 느꼈다. 정규 2집 < Prince > 즈음 마룬 파이브처럼 팝을 하는 ‘가요’ 밴드처럼 들리기를 지향해 더 부드럽게 다듬었던 것이 그 이유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무대 위에서의 느낌을 그대로 즐기고 싶어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둘을 애써 구분하고 있지는 않다.

두 번째 픽은 아까 말했듯 서태지다.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Take five’를 골라온 이유는 무엇인가?
첫 CD는 마이클 잭슨, 첫 테이프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었다. TV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 어머니가 불러 주실 정도로 좋아했다. ‘Take five’는 그의 커리어에서도 가장 오래 듣는 곡으로 얼마 전에도 기타 치면서 흥얼흥얼 부르기도 했다. 어릴 때는 사실 ‘무서운’ 것을 좀 싫어해서 ‘Take one’이나 ‘Take two’ 같은 트랙은 나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웃음) 반면 ‘Take five’는 평화롭고 예쁘지 않나. 그래서 더 애착이 갔던 노래다.

동년배에게는 언급할 수밖에 없는 뮤지션인 것 같다.
나는 특히 서태지를 통해 해외 음악을 많이 접했다. 스매싱 펌킨스도 이 앨범에 영향을 줬다고 해서 찾아보고, 나중에는 핌프 록 장르나 콘, 림프 비스킷 류의 음악으로도 향했다. 그 외 메탈리카 등의 음악은 중학교에 가서 밴드부를 하고 나서야 접했다.

밴드부에서는 어떤 음악을 했나. 서태지 음악도 커버했는지.
당연! 외에도 그린 데이, 너바나 등 요즘 록 음악 카페 금지곡 명단이 사실상 그 당시 우리의 레퍼토리였다. (웃음) 한창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인기있던 때라 뜻도 모르면서 ‘Take the power back’과 ‘Bombtrack’ 랩을 종이에 적어 달달 외우기도 했다.



마지막 인생 음악은 무엇인가.
존 메이어의 ‘No such thing’. 존 메이어와 제이슨 므라즈, 국내에서는 마이 앤트 메리를 들으면서 팝 성향의 음악으로도 밴드를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록적인 리듬 위에 텐션이 느껴지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얹으며 멜로디를 멋있게 뽑을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존 메이어는 오늘 골라 온 인생 음악 중 소란 음악과 가장 결이 비슷해 보인다.
군복무 당시 스쿨 밴드를 하던 친구가 구워서 보내준 CD에 이 노래가 수록된 < Room For Squares > 앨범이 있었다. 듣고 매우 마음에 들어서 자연스레 음악색으로 연결이 되었다. 처음에는 커버도 많이 했고, ‘가을목이’ 데모 작업을 하면서 미디 레슨을 잠깐 받았는데 그때 만든 비트의 코드 진행을 존 메이어의 두 번째 앨범 < Heavier Things > 트랙인 ‘Daughters’에서 따왔다. 노래를 커버하려다가 새로운 곡이 탄생한 경험이다.

지금은 소란 음악을 커버하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한 번씩 유튜브에 ‘소란 커버’ 키워드를 검색한다. 기타, 베이스, 드럼 다양하게 있더라. 나도 옛날에 악보 따라서 연습하고 코드 보면서 피아노 연주하고 하는 것들이 생각나서 신기하다. 찾아가서 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항상 응원하는 마음이다.

마무리로 최근 듣는 음악도 잠깐 묻고 싶다.
처음에 말했듯이 대세에 휩쓸리는 사람이라 J록을 주로 찾는다. 먼저 오피셜히게단디즘의 ‘Pretender’. 지인에게 추천받아 감명 깊게 들은 후로 항상 이런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비슷하게 미세스 그린 에플의 ‘Que sera sera’도 많이 듣는다. ‘J팝 명곡 이상형 월드컵’ 식의 유튜브 콘텐츠로 접했는데 처음의 다른 음악은 취향에 안 맞았으나 이 곡은 정말 짜임새가 탄탄해서 꾸준히 즐겨 듣고 있다. (최근에 두 팀 모두 내한을 왔다) 일정이 겹쳐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쉽게도 둘 다 못 갔다. 이상하게 너무 좋아하는 아티스트 공연은 또 못 가는 징크스가 있다. (웃음)

국내 뮤지션 중에서는 주혜린의 ‘미친 건가’를 많이 듣는다. 작년부터 우연한 계기로 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때 작곡과 학생과 대화하다가 알게 된 노래였다. 라디오에서 빨리 섭외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윤상 형님이 한 발 앞서서 초대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대중음악상에 신인으로 노미네이트되는 등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아티스트다.




진행: 한성현, 손민현, 염동교
사진: 정기엽
정리: 한성현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