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발광 인터뷰
소음발광
격분하는 소음 속 웅크린 선율과 자기 의중을 발견했다면 그때는 이미 잡음 따위의 무언가를 넘어섰을 공산이 크다. 겹겹이 쌓은 소리 꺼풀을 하나씩 헤치자 투박하면서도 정직한 연주와 읽어주길 바라는 노랫말을 마주한다. 부산 출신의 하드코어 펑크(Punk) 밴드 소음발광의 결실이 말마따나 빛을 뿜어내고 있다. 발광이란 단어가 꼭 긍정적인 뜻만을 가지고 있지 않듯 여타의 의미로 이들을 받아들여도 무관하다. 펑크만큼 눈치 볼 것 없이 한바탕 미치기 좋은 갈래도 드무니 말이다.
소리 없는 벌레가 결국 벽을 뚫는다. 내년이면 어느덧 결성 10년을 맞이하는 소음발광의 그간 여정이 그렇다. 몇 년 전 불었던 부산의 로컬 밴드 바람, 인디 록의 장르 다양성,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등 이들을 설명할 방법은 다양하나 이 모든 건 뚜렷한 정체성과 음악이 앞섰기에 가능했던 결과, 당사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이즘이 네 청년을 만났다. 스스로를 언더그라운드 중의 언더그라운드라고 칭하는 그들에게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보기좋은 야심과 놀랄만큼 단단한 뚝심, 강한 의지가 비쳤다.
왼쪽부터 마재현(드럼) 박성규(기타) 강동수(보컬, 기타) 김성빈(베이스)
네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강동수: 베이스 치는 성빈은 부산의 라이브 공연장 오방가르드에서 처음 만났다. 첫 만남에 대뜸 2집 < 기쁨, 꽃 >의 마지막 곡 ‘기쁨’의 가사를 읊더라.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지만 자주 만나다 보니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멤버를 구한다는 소식을 알렸고, 베이스를 6개월 정도 쳤다며 다가왔다. 알고 보니 악기를 산 지 6개월이지 코드도 잡을 줄 모르는 상태였다. 고민이 됐으나 ‘펑크는 패기다’라는 모티브를 무를 수 없었다.
성규의 경우, 밴드에 기타리스트가 시급했던 시기 그가 올린 자작곡이나 소개글을 보고 먼저 연락했다. 좋아하는 음악의 결은 조금 달랐지만 워낙 실력이 좋아서 이 정도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겼다.
드럼연주자를 찾는 구인 공고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을 찾아봤다. 재현이 있었다. 그렇게 그의 SNS를 보게 되었고 범상치 않을 거란 느낌이 들어 문자를 보냈으나 소식이 없었다. 포기할 수 없어 재학 중인 대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닿았다. 그렇게 처음 만난 날 합주를 하는데 긴장 하나 없이 웃으면서 드럼을 치더라. 이 사람이다 싶었다.
매번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강동수: 힘들긴 하다. 버스로만 장장 네 시간을 넘게 이동한다.
박성규: 처음에는 기차도 탔는데, 악기가 있다 보니 버스가 싣기 편하더라. 고된 일정일지라도 찾아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작년 10월 발매한 세 번째 정규 앨범 < 불과 빛 >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어떤 기분이었나.
강동수: 구성원의 변화를 겪은 후 발매한 첫 앨범이라 부담감이 있었다. 이전 멤버를 좋아해 주신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실망스러운 결과물은 만들지 말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값진 상도 받고, 평단에서도 좋게 봐주시니 ‘우리가 못하고 있진 않구나, 지금 친구들과도 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분 좋은 확신이 생겼다.
한국대중음악상의 부름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2집 < 기쁨, 꽃 >으로 최우수 록 음반과 록 노래 2관왕을 차지한 전력이 있는데.
강동수: 수상 실적을 떠나 1집과 2집은 정신적으로 힘들 때 만든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2집으로 상을 받았을 때는 ‘죽지 않고 음악해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고, 이번 상을 받을 때는 ‘계속 음악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집 < 도화선 >, 2집 < 기쁨, 꽃 >, 3집 < 불과 빛 >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강동수: 첫 앨범은 부글부글 끓는 분노와 패배주의로 가득 차 있다. ‘도화’의 가사가 대표적이다. 2집은 앞서 언급했듯 힘든 시기였기에 모든 걸 내려놓은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많은 분이 그런 진솔함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더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신 것 같다. 3집의 경우 음향과 가사 면에서 격분하고 있지만 마지막 두 트랙 ‘바라는’과 ‘새벽’의 노랫말이 그렇듯 아무리 힘들어도 난 내일로 나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살아가고 싶은’ 청춘을 위한 음반이랄까.
비유와 은유가 가득 찬, 어두운 내용의 가사가 주를 이룬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메탈코어나 하드코어 펑크, 노이즈 록 밴드들이 갖는 특징이다. 평소 노랫말의 영감은 어디서 찾는 편인가.
강동수: 작곡, 작사의 큰 틀은 대체로 내가 잡는 편이다. 가사를 쓸 때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가 있어 정말 솔직하게 쓰려 노력한다. 크게 영감이랄 건 없다. (때마다 감정을 기록하는 편인가) 예전에는 그랬다. 지금은 당시의 기억을 되짚는다기보다는 이제껏 쌓은 감정을 풀어내는 듯하다.
멤버들은 강동수의 가사를 어떻게 생각하나.
박성규: 존경스럽다. 가사가 좋아서 소음발광에 들어오려 했던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일절 터치하지 않으려 한다.
김성빈: 이 문장이 어떻게 노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보다 보면 결국 멋진 음악으로 만들어 낸다. 신뢰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라 생각한다.
장르 특성상 특유의 창법이 있고, 멜로디의 경계가 뚜렷해 이를 염두에 둬가며 가사를 쓰기란 쉽지 않을 텐데.
강동수: 부를 걱정을 하며 쓰진 않는다. 우선 쓴다. 멜로디나 창법을 가사에 맞춰 바꿀 때도 많다. 음률이 아무리 예뻐도 가사가 맞지 않으면 효과는 적다. 항상 노랫말이 먼저인 편이다.
이참에 소음발광의 전반적인 작업 방식을 간단히 설명해달라.
강동수: 가사를 포함한 곡의 방향을 꾸린 뒤 성규의 기타를 얹어본다. 다음으로 재현에게 이게 가능한 드럼 사운드인지 논의하며 수차례 수정을 거친 뒤, 마지막에 성빈의 베이스로 중심을 잡는 방식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모를 합주해 보며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박성규: 규칙화가 어느 정도 되어있다 보니 곡을 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오히려 합주하면서 고민이 생기는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