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팝 데몬 헌터스 >와 < 씨너스: 죄인들 >: 대척점 사이 뜻밖의 교차로
코로나 이후로 IP 기반의 실사화와 시리즈물이 영화계를 장악한 가운데, 2025년 상반기 전 세계에서 이례적인 경쟁을 벌이는 화제작들이 있다. < 씨너스: 죄인들 >은 오리지널 공포영화 사상 최고 수익을 거두었고,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는 공개 4일 차에 40개국 이상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고 4주 차에는 역주행 1위를 달성했다. 오리지널 무비로서 이들은 ‘역대’, ‘역사상’ 등의 수식어로 종전의 기록을 갱신 중이다.
대척점에 서 있는 양대 타이틀을 나란히 두는 것 자체가 의아할 것이다. 그도 그럴 듯이 하나는 1932년 미시시피 델타를 살아가는 흑인의 연대기 속 블랙 호러를, 다른 하나는 21세기 케이팝 스타 걸그룹의 초현실적 모험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 문화, 장르 심지어 상영등급마저 극과 극이다. < 씨너스: 죄인들 >과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 흥미로운 교차의 순간 세 가지를 짚어본다.
1. 선입견을 지우고 주변에서 중심으로
어느 순간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인 캐릭터가 나온다고 하면 브릿지 염색의 수학 천재일까 봐 지레 겁부터 먹었다. 오랫동안 유색인종은 미디어 속 두텁게 쌓인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고유문화를 주체적으로 담아낸 두 감독의 노력이 장쾌하게 느껴진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가 “최대한 한국다웠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일례로 걸그룹 헌트릭스의 무대를 ‘일월오봉도’와 단청 무늬로 장식하고, 조선시대 민화 ‘작호도’를 재해석한 신스틸러 호랑이와 까치를 등장시켜 전통문화를 세심하게 녹여냈다. 김치를 일절 언급하지 않는 선택과 수저 밑에 휴지를 까는 국밥 장면은 신선함과 동시에 국내 관객에게 큰 안도감을 안겼다. 다른 인종에 적합한 조명을 동양인 조형에 맞게 새로 제작까지 했으니,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려한 셈이다.
< 씨너스: 죄인들 >의 경우, 남부 흑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틔운 주크 조인트(Juke Joint)에서 일어난 하룻밤 대소동은 처절한 ‘정체성 지키기’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뼈아픈 역사에서 더 시선을 넓힌 것이 감상 포인트. 흥겹게 블루스에 몸을 맡기는 흑인 소작농 이외에 흑백 혼혈, 중국인 이민자, 백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아일랜드인 그리고 원주민 촉토족까지.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그간 접하기 어려운 유색인종의 다양한 서사를 고르게 비춘다. (물론 기득권 백인에게는 단 한 줄의 변명도 허락하지 않았다.)
2. 단순한 이야기 속 독특한 설정
두 작품의 내러티브 자체는 꽤 익숙하다. 그럼에도 ‘진부하다’는 평을 듣지 않는 한 끗 차이는 '음악과 오컬트'의 결합에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오프닝부터 음악의 초자연적 능력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음악에 영혼과의 교감을 통한 결속력을 부여한 결과, 우리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맞닥뜨린다. K팝 걸그룹이 악귀를 퇴마하고, 뱀파이어 무리가 아일랜드 민요로 융합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새롭게 상상하려는 사고의 산물이다. 특히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에서 선대 무당 헌터의 등장 곡으로 전통 창법 ‘구음’이 흐르는 시퀀스는 해외에서 막대한 지지를 얻고 있다. 생경할 수 있는 문화를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전파한 접근은 영리했다.
3. 음악으로 증명한 궁극의 힘
< 씨너스: 죄인들>과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의 마지막 교차점은 바로 음악이다. 이 중요한 키워드가 여러 레퍼런스가 스쳐 가는 평면적 스토리와 헐거운 개연성을 꽉 동여매는 결정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사실상 < 씨너스: 죄인들 >은 블루스 헌사와 다름없다. 델타 블루스의 명인 로버트 존슨을 떠올리는 주인공 새미, 찰리 패튼의 기타, 블루스 기타의 전설 버디 가이의 깜짝 출연 등 상당수의 장면에 블루스를 삽입하여 선구자를 향한 예찬을 곳곳에 배치했다. 목화밭에서의 노동요, 감정이 북받친 델타 슬림의 허밍… 그중 새미의 진가가 발휘되는 ‘Travelin’’도 범상치 않은 느낌으로 우리의 청각 성질을 흔든다.
‘I lied to you’는 두말할 것 없는 하이라이트. 아프리카 드럼 비트부터 일렉트릭 기타 리프, 힙합 디제잉으로 이어지는 멀티 제너레이션의 화합은 문자 그대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절묘한 화면 연출의 ‘Pale, pale moon’까지, 음악 프로듀서 고란손 부부는 영화 속 생존과 저항의 블루스를 살아있는 아카이브로 기능하게 한 일등 공신이다.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의 OST는 K팝의 새로운 역사를 집필 중이다. 7월 기준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 앨범차트 2위 진입에 역대 사운드트랙 최초로 미국 스포티파이 Top 5에 총 4곡을 올리는 쾌거! 멈출 줄 모르는 고공 행진은 K팝과 뮤지컬의 적절한 균형에서 기인한다. 감정을 증폭시키는 뮤지컬의 성질을 따르면서, 넘버 직전 특유의 ‘시동 거는 순간’을 K팝이 상쇄하는 상호보완 관계가 두드러진다. 이를 극적으로 연출한 트랙이 ‘Golden’과 ‘Takedown’이다.
음악/뮤지컬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건 매력적인 ‘빌런 송’이라 하지 않던가. 중독성으로 무장한 사자보이즈의 ‘Your idol’과 ‘Soda pop’은 N차 관람을 이끈 주역이다. 또한 < 씨너스: 죄인들 >의 악마 레믹이 스텝댄스와 함께 부르는 아일랜드 민요 ‘Rocky road to Dublin’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축제를 선보인다. 주연의 테마 곡이 서사를 짙게 물들였다면, 악역의 모먼트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쾌함이 찾아오는 것도 재미있는 공통점이다.
결국 각기 다른 세계에서 온 두 이야기는 음악 앞에서 놀랍도록 일맥상통한다. 철저히 타자로 살아온 이들을 향한 깊은 경의를,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올곧게 담아내겠다는 결연한 태도가 깃든 음악은 그 다짐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언어다. 천 번의 대사보다 잘 만든 한 곡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