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하는 < 애스컴 아카이브 부평사운드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어느덧 예순 번째를 맞이한 이번의 주인공은 포근한 호흡으로 위로를 전해온 청춘의 거울 옥상달빛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하드코어 인생들에게 가끔은 그래도 괜찮다며 수고했다고 말하던 이들의 여정도 벌써 열다섯째 달력을 넘겼다. 언제까지나 나박한 청춘으로 남을 줄 알았던 우리도 그 시간을 따라 걸었다. 2011년 < 28 >에 괜스레 눈물짓던 기억을 품은 채 마주한 사십 대 옥상달빛의 작년 음반 < 40 >. 늘어난 숫자만큼이나 오랜 기간 받아온 위로와 격려의 낱말에 고마웠고, 모름지기 같이 커졌을 부담과 굳혀진 이미지의 압박을 이겨낸 그들에게 감사했다.
8월의 무더운 어느 날, 홍대 인근에서 만난 옥상달빛은 그동안 각종 라디오와 팟캐스트, TV 매체 등에서 본 것과 다름없이 호쾌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솔직한 입담으로 모두를 홀리던 두 사람 덕에 더위까지 잠시 잊혀졌다. 대학 시절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가장 가까운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옥상달빛의 과거와 오늘, 미래가 함뿍 담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나 옥상달빛의 음악적 기조는 여전히 어쿠스틱, 언플러그드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지난해 새 앨범을 발매했고, 올해는 몇 해 전 차린 회사에 새 둥지를 튼 상황이다. 과감한 음악적 변화를 꾀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세진: 옥상달빛으로 15년을 지내오면서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부족한지 알게 됐다. 큰 틀에서 변화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여러 아티스트와의 프로젝트 협업이나 옥상달빛 이외의 행보로서는 언제든 열려있다. 와우산스(WOWSANS)란 이름으로 같은 회사 음악인들과 몇 차례 싱글을 발매했었고, 또 계획에 있다.
윤주: 지난 8월 21일 와우산스의 새 곡이 나왔다. 이번에는 각자 해보지 않았던 음악에 도전했다. 이번 신곡의 주인공은 박세진과 강아솔, 장르는 디엔비(DnB)다. 프로듀싱은 힙노시스 테라피의 제이플로우와 함께했다.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즘과는 첫 인터뷰다. 이참에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알려달라.
세진: 윤주는 클래식 피아노를 쳤고, 나는 재즈 피아노를 쳤다. 하지만 각자 부족함을 느꼈고 새로 준비해 들어간 대학교 작곡과에서 처음 만났다. 아무래도 나이가 같은 친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만의 공통점이 많아 빨리 친해졌다. 그렇게 약 2년을 가까이 지내다 윤주의 지인이 갤러리에서 미술 전시를 여는데 오프닝 공연을 부탁하셔서 무대 경험도 없던 두 아이가 첫 공연을 치렀다. 그게 시작이었다.
작곡과 진학을 희망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윤주: 피아노는 꾸준히 쳐 왔다. 어느 날 선생님의 곡 한 번 써보라는 말에 준비하게 되었고, 이 과정이 완성도를 떠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스스로 감정 표현에 능하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해 와서 그런지 표출되지 못한 그 무언가를 소리를 통해 대신 들려줄 수 있는 데 큰 매력을 느꼈다. 대단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때마다의 일기를 쓰는 듯한 느낌이 좋았달까.
세진: 이전부터 남에게 곡을 써주는 사람이 될 거로 생각했다. 직접 노래를 부를 것이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 사이에서 버겁기도 했고, 작곡만 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를 믿었고, 항상 옆에 있어 줬던 윤주를 믿었다. 지금은 행복하고 만족한다.
팀명도 바로 지은 걸까. 옥상달빛이란 이름은 어떻게 갖게 되었나.
윤주: 초반에는 이름도 없었다. 말씀드린 전시 공연 한 번이면 그만일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뭔가 일이 생기더라. 결국 그 이후에 따로 자취방에서 지었다. 옥상이란 공간을 워낙 좋아했고, 마침 옥상 정원이라는 아이템이 유행할 때기도 했다. 세진과 둘이 옥상에서 놀던 기억도 있었고. 다들 큰 의미 없이 순간 꽂히는 걸로 정하지 않나. 우리도 그랬다.
그렇게 대학교에서 만나 옥상달빛이라는 이름을 얻고, 지금껏 20대 청춘을 쓰다듬는 한 축을 담당했다. 지금의 시점에선 2010년대 초반 자화상을 그리던 시기로부터 꽤 멀어지지 않았나. 소회가 궁금하다.
윤주: 누굴 위로하자는 의도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우리 둘 다 곡을 쓰며 스스로 갈증을 해소하고, 직접 위로를 받고자 했다. 새 곡을 만드는 행위만으로도 동력을 얻던 시기였다. 처음 음악하던 때였으니 할 말도 참 많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30대에는 옥상달빛을 너무 ‘위로’와 ‘힐링’으로만 바라보고 계시는 건 아닐까 부담이 됐다. 바꿔보려 애를 쓰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아닌가 하며 감사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40대는 조금이나마 더 생긴 여유로 다시 한번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보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부담이라면 음악적 방향성에 대해 후회하거나 지쳤던 시기가 있었던 걸까.
윤주: 후회까지 된 적은 없었지만, 한 가지 색으로 규정되는 일에 아쉬움은 있었다. 언제나 힐링, 뭘 해도 위로로 받아들이시더라. 때때로 과격한 노랫말이 생각날 때면 ‘그러면 안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먼저 다가올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고,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세진: 30대를 돌아보면 지쳤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괜찮습니다’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힘내요 잘될 거예요 그런 말 이젠 지겨워’가 곡의 첫 가사다. 그런데 한 광고에서 ‘그런 말 이젠 지겨워’를 빼고 앞부분만 잘라 따스하게 사용하더라. 그때 느꼈다. 대중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이거구나. 이렇게 기억해 주시는 것도 참 감사하다. 더 온기를 드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가 나의 이야기로 청춘을 대변하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청춘을 진정 위로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
세진: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점은 여전히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가사를 쓰진 않는다는 것이다. 다를 것 없이 나 자신이 가지고 싶은 막연한 희망과 스스로에게 말하고픈 메시지를 쓴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윤주: 세진의 말에 동감한다. 결국 본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나의 경우, 요즘 다시 사춘기가 온 건지 어두운 면이 생겼다. 과거에는 ‘그럼에도 밝아야 한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압박되기도 했다. 모든 상황에 있어 하나같이 좋은 결말을 짓지 않더라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마음.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40대의 삶 속에서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반면 세진은 언제든 ‘웬만하면 긍정적으로’를 외친다. 서로에게 고마운 균형이 잘 맞춰져 있다.

윤주는 인천에서 태어나 부평, 부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음악가로서 영향을 받았던 기억이 있을까.
윤주: 인천에서 태어나 오래 살진 않았고,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부천에 오래 있었다. 한편 할아버지 댁이 인천 주안이었다. 어릴 적부터 꽤 오래 오갔던 기억이 난다. 한 번씩 예전 살던 곳을 들러볼 때가 있다. 몇 년 전 찾아보니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왔더라.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다녔던 교회, 자주 가던 가게 등 하나씩 없어져 가는 풍경들이 내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인천에는 좋은 기억이 많다.
윤주는 평소 윤상의 팬임을 자주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옥상달빛의 음악을 들으면 유사한 질감 혹은 하나음악이나 동아기획 시절의 향수를 담으려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윤주: 영향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평소 노래 곡보다 연주곡을 좋아하는 편이다. 연주곡으로 음악을 시작하기도 했고. 언젠가 개인 앨범을 내면 연주 앨범으로 꾸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릴 적 정원영 교수님과 윤상 선배님, 해외에서는 팻 매스니까지 아무래도 영감을 많이 받았던 훌륭한 음악가의 흔적이 남지 않았나 싶다.
인천과 부천을 오가며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고 말했다. 과거 옥상달빛은 CCM 아티스트와 교류했던 적도 있지 않았나.
윤주: 김도현 선생님과 ‘사랑이란’이라는 곡을 작업한 바 있다. 와우산 레코드가 짚어야 할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년부터는 관련된 작업을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CCM 작업을 말하는 걸까) 아예 가스펠 음반을 내고 싶다. 중요한 방향은 교회 다니는 사람만 듣는 음악이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주위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중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이 참 많은데 소리를 낼 기회는 많지 않은 듯하다. 어디서든 들을 수 있고, 그들의 색깔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가스펠을 내보고 싶다.
데뷔 앨범 < 옥탑라됴 >, 동명의 연계되는 곡 등 지금껏 각종 라디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옥상달빛에게 라디오란 무엇인가. 세진: 옛날만큼 파급력이 강하지는 않더라도 라디오를 사랑하는 마니아층은 꼭 있다. 라디오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이다. (웃음) 5년 정도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니 더 많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순수한 사람들. 또 저희가 라디오를 많이 듣고 자란 세대여서 그런지 더 애틋한 감정이 있기도 하다.

옥상달빛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와 음악적 성취, 대중이 바라보는 인식 등 조화롭게 만족스러운 작품을 골라본다면.
세진: 아무래도 ‘수고했어, 오늘도’가 아닐까. 이제는 명함이 되어버린 고마운 음악이다.
윤주: 애정하는 곡이 참 많지만, 언제나 옥상달빛의 빛깔을 만드는 건 신곡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에 걸맞은 작품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지금의 내가 하는 이야기가 가장 만족스럽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알아줬으면 하고 품고 있던 곡이 있다면.
윤주: ‘잘 지내, 어디서든’. 세진이 쓴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고, 장들레의 편곡까지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음원의 그 풍부함을 구현하기 어려워 라이브에서 많이 하지 못하는 곡이라 아쉬움도 크다.
세진: ‘누구도 괜찮지 않은 밤’을 고르고 싶다. 피아노 한 대와 윤주의 목소리뿐이었는데도 이미 충분했다. 바로 옆에서 들려주는 것 같다고 할까. 팬분들에게서 더 나아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마지막 공식 질문이다. 자신을 음악의 길로 인도해 준 작품을 골라본다면.
윤주: 바로 떠오르는 곡이 있다. 정원영 교수님 4집에 실린 ‘귀향’. 9분이 넘는 연주곡으로, 우울감에 빠져있거나 혹은 과하게 기분이 좋을 때 들으면 정말이지 그 수치를 0으로 만드는 음악이다. 평정심을 갖게 해준다. 고요가 필요할 때 꺼내먹는 약과 같다.
세진: 음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끔 해준 엔니오 모리꼬네가 생각난다. 하나를 고르자면 영화 < 러브 어페어 >에 삽입된 ‘Piano solo’. 작사에 영향을 준 노래로는 조동익이 쓰고, 조동진이 불렀던 ‘제비꽃’. 어느 날 택시에서 흘러나왔고,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한 곡에 담을 수 있는 그런 가사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염동교, 한성현, 정기엽, 신동규, 정하림
정리: 신동규
사진: 정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