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일은 음악 정체성 강화와 매너리즘 둘 중 하나로 이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싱어송라이터 레이베이의 3집 < A Matter Of Time >은 분명한 전자다. 고전 재즈와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 Everything I Know About Love >(2022)를 통해 그는 팝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고 < Bewitched >(2023)로 그래미 최우수 전통 팝 보컬 앨범상을 받으며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고풍스러운 기조 속에서 이번 앨범의 차이는 풍성한 밀도와 빈틈없는 조직력에 있다.
방대해진 사운드의 부피부터 다르다. 보사노바의 산뜻함을 한껏 머금은 ‘Lover girl’과 내면의 연약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낸 ‘Silver lining’은 각각 전작 ‘From the start’와 ‘Promise’로 이어진 히트 공식을 따르면서 곳곳에 배치된 오케스트라 세션이 감정선을 고조시킨다. 오랜 합을 맞춰온 프로듀서 스펜서 스튜어트와 함께 현악기의 떨림이 음반 전체를 감싸도록 제작했다. 세상이 원하는 여성상에 대한 회의감을 포크의 서정성에 투영한 ‘Snow White’와 관계의 균열을 극적으로 전개하는 ‘Tough luck’까지 선공개 싱글들의 완성도는 정교한 내진 설계의 결과다.
앨범을 예고하는 트랙들은 본래 음악 스타일을 새로운 요소들로 빚었지만 음반의 구성은 좀 더 고전적인 질감을 활용했다. 시곗바늘의 움직임을 멜로디로 구현한 머릿곡 ‘Clockwork’에는 빌리 홀리데이와 엘라 핏제랄드식 1950년대 재즈가 있고 한 편의 클래식 뮤지컬을 연출하는 ‘Cuckoo ballet - interlude’와 ‘Forget-me-not’이 동일한 궤적 안에서 방향감을 맞춘다. 옛것에서 얻은 영감을 현대의 문법으로 정돈한 이전과 달리 원류에 가까운 사운드 위에서 고혹적인 음색이 중심을 잡았다.
고유성을 입증하는 것은 과거의 음악을 재해석하는 2020년대 팝 뮤지션들의 과제 중 하나다. 그는 재즈와 클래식으로 채워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친절히 소개한 뒤 본연의 매력을 과감히 드러내며 모범안을 제시한다. 깊어진 내면 묘사와 사운드로 주조된 < A Matter Of Time >은 고전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현재 젊은 세대들을 포섭했고 정체성은 공고히 구축했다. 빌보드 앨범차트 4위로 데뷔한 성적이 증명하듯 레이베이의 상승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록곡-
1. Clockwork [추천]
2. Lover girl [추천]
3. Snow White
4. Castle in Hollywood
5. Carousel
6. Silver lining [추천]
7. Too little, too late
8. Cuckoo ballet - interlude
9. Forget-me-not [추천]
10. Tough luck
11. A cautionary tale
12. Mr. Eclectic
13. Clean air
14. Sabo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