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인터뷰

박상철

by 임동엽

2025.09.23

2025년, 삼척시 ‘항구의 남자’가 당선의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2025년 < 오륙도 신춘문예 > 시 부문에 입선하면서 정초부터 이름을 알린 박상철은 최근 8대 대한가수협회장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며 취임식을 거행했다. 시인과 협회장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일궜지만 가수로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을 대변하듯 올여름 신곡 ‘시작이 반’으로 열창을 이어가고 있다.


코요태가 2자 그룹이라면 박상철은 3자 가수다. 트리플 크라운인 ‘무조건’, ‘황진이’, ‘자옥아’를 비롯해 ‘노래방’, ‘뿐이고’가 대표적이며 심지어 ‘부메랑’이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그는 언제나 대중을 위로했지만 애절한 곡조가 아닌 리듬감 넘치고 역동적인 음악으로 우리를 힐링했다. 이는 인간 박상철이 회의, 부정보다 행복, 긍정의 정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9월 어느 날 여의도 대한가수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가수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얘기든 귀담아들을 자세로 에디터들을 맞이했다. 협회장의 다짐부터 트로트의 현재와 미래, 가수 박상철까지 알찬 대화를 나눴다. 어떤 일에는 조건이 따르지만 박상철 인터뷰를 읽는 데에는 조건이 없다. 무조건이다.




우선 협회장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쉽지 않았는데 어떤 이유로 당선되었다고 생각하나?

부족한 부분은 많았지만 회원들에게 가슴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직접 만나서 필요한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설명을 드리면서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열렸던 것 같다.


이번 선거의 슬로건은 무엇이었나.

신인, 무명 시절의 힘든 생활을 떠올리면서 결국은 회원이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섬긴다는 마음으로 협회는 회원 중심이 돼야 한다.


회원이라 한다면 대한가수협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장르를 아울러야 하는데 아직도 ‘트로트’ 가수협회라는 이미지가 있다. 지난 회장들도 그렇고 박상철도 트로트 가수다.

대한가수협회는 절대 트로트 가수협회가 아니다. 초대 회장이신 남진 선배도 사실은 댄스 가수다. 예를 들어 이미숙이나, 전영록 선배도 트로트 가수가 아니듯이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 협회 일을 할 때가 되면 중년 정도가 돼서 트로트 가수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지금이야 꽤 길어졌지만 아이돌들은 평균 활동 기간이 짧기도 하고 또 회사의 관리를 받고 있으니 구조적으로 쉽지가 않다. 그래도 지명직에 있어서는 K팝, 아이돌 가수를 이사로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재정 문제일 것 같다.

비영리 사단 법인이다 보니까 안정적 재정 확보가 제일 중요하다. 자립 부분에 대해서 오늘도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공적 기관이나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기부금으로 운영돼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앞으로도 독립적 기관으로서 이미지를 갖고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이 완성될 것이다. 


그럼 가장 급한 현안은 어떤 게 있나.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거지만 재정 자립도가 가장 급하다. 체계나, 시스템, 운영 같은 문제도 이게 완성돼야 원활하게 돌아간다. 협회 사무처 직원들과도 얘기를 나눴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원 중심으로 회원을 잘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간단하게는 사무실 문부터 항상 열어놓고 도배라도 깔끔하게 해서 실질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부터 바꾸려고 계획하는 중이다. 은밀함 없는 투명한 행정이 모두에게 전해져야 한다.




공약 중에는 ‘가수의 날’을 부활시키겠다고 했는데.

회원들이 가수의 위상을 올려달라고 많이 말씀하는데 협회의 위상이 올라가야 가수의 위상이 같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대한가수의 날을 제정하고 이를 기념하는 콘서트나 방송도 하고 시상도 하면서 연례행사를 만들고 싶다. 잘하는 분들에게는 공로와 표창도 하고, 다 함께 모이는 자리가 필요하다. 장르와 세대를 아우르는 가수들을 초청해 자축하면서 모두가 인정하는 행사를 꼭 만들겠다. 대중도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정말 훌륭하고 멋진 가수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축하할 일이 또 있다. 올해 초 < 오륙도 신춘문예 >에 당선되었는데 시는 언제부터 관심을 두게 되었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나 시련 같은 게 있을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어디 얘기도 못 하고 얘기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참다 보니 한 단계 성숙하는 기분이 들더라. 작사·작곡은 원래 하고 있었지만 평소에 글을 쓰다가 갑자기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딱 들었다. 연말이 되면 5편씩 써서 신청하고는 했는데 올해 운이 좋게도 당선이 됐다. 시련이 없었다면 이렇게 글도 못 썼을 거다. 인생은 결국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


협회장이기 이전에 21세기 ‘트로트의 황제’ 아닌가. 트로트 선배이자, 가수의 입장에서 요 근래 주목받은 < 미스트롯 >, < 미스터트롯 > 같은 경연 대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원곡자의 권리 찾기가 가장 중요하다. 노래방의 경우에도 원곡자 노래는 어디 가고 전부 리메이크만 보인다. 또 장르가 다양해져야 한다. 오디션으로만 가다 보니 단순히 듣기 좋은 노래만 나오고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소리가 습관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 트로트만 해도 완전 옛 스타일부터 세미트로트, 댄스 트로트처럼 여러 장르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디션, 경연 이런 포맷에 갇혀서 히트곡이 나오기 힘들어지고 있다. 당연히 순기능도 있다. 문화가 발전하려면 새로운 스타가 자꾸 나와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장점으로 본다. 이런 흐름이 길어져서 문제다. 


박상철 하면 < 전국노래자랑 >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는 1980년대에 가수를 하다가 망해서 이제는 음반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렇게 돈을 벌자 하고 고민하다가 건축과를 다녔는데 공과 계열이라서 여자가 몇 없었다. 이걸 보고 반대로 남자로서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뭐 없나 생각하다가 미용을 배웠다. 동시에 작곡과 노래 연습을 하면서 계속 가수 준비를 했다. 폭삭 망하고 사기도 당하고 해서 떠올린 게 유명한 음악가를 만나는 거였다. 당시 유명한 작곡가는 거기에 다 나왔다. 거기서 만난 게 ‘무조건’을 써주신 박현진 작곡가다. < 전국노래자랑 >이 나를 키웠다는 말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이곳 출신이라서 혜택도 좀 받았던 것 같다.




본인 곡 중 가장 자랑스러운 노래는?

무조건 ‘무조건’이다. 


‘무조건’을 처음 받았을 때 어땠나. 감이 바로 왔나?

처음 제목은 아마 ‘특급 사랑’이었던 것 같은데 ‘자옥아’가 터지고 나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면서 박현진 작곡가에게 전화가 왔다. 딱 들어보니까 멜로디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노래가 젊은 층에 먹힐 것 같아서 제목, 가사, 편곡까지 맞춰서 과감하게 바꿨다. 원래는 한두 번이면 끝날 거를 진짜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편곡만 8번을 했다. 곡을 녹음하던 당시는 이제 막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나던 시점이어서 그런 느낌도 살리고 베토벤의 < 운명 교향곡 > ‘1악장’을 참조해서 만들었다. 


작업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보니 박현진 선생과도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음악 유행이 미디 쪽으로 바뀌던 때에 전주부터 ‘빠빠빠빠 빠바바’하고 터뜨리는 그런 사운드를 가져갔더니 바로 인정해 주었다. 이후에 대박이 터지니까 사이가 더 좋아졌다. (웃음) 평생의 스승 같은 참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Top 3인 ‘무조건’, ‘황진이’, ‘자옥아’ 말고 또 추천하고 싶은 곡은 없나?

‘바보 같지만’. 2010년 직접 쓴 곡이다. 사실 홍보도 잘 안 했는데 임영웅, 박서진, 은가은 같은 후배들이 열심히 불러줘서 유튜브 조회수도 잘 나오고 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가사도 ‘햇살처럼 너의 기억을 등에 지고 난 살아 갈 테야’처럼 따뜻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이가 좋았던 나빴던 그 따스했던 기억들만 가지고 가면 세상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들을 은연중에 많이 떠올린다.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박상철을 만든 가수는?

학창 시절에는 트로트 쪽이 아니었지만 이후 결정적인 인물은 태진아 선배다. 어떻게 보면 멘토다. 다른 가수들이 꺾어서 노래 부를 때 샤우팅 창법을 구사했는데 그런 약간의 록 감성이 개인적으로 잘 맞았다. 부드럽게 부르다가 딱 지를 때 가슴을 울리는 게 너무 좋았다. ‘옥경이’, ‘미안 미안해’, ‘사모곡’은 물론이고 ‘거울도 안보는 여자’, ‘노란 손수건’ 가릴 것 없이 들었다. 그 당시에 히트 퍼레이드였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한성현, 신동규

사진: 신동규

정리: 임동엽

임동엽(sidyiii33@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