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lash of the Year 2025

Splash of the Year: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조용하게 흘러가는 한 해도 있는 법이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확실한 강자가 없었다는 사실은 2025년 올해의 국내 싱글 첫머리에서도 언급했다. 그만큼 여러 곳에 눈길을 둘 수 있었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의 장이 열렸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지점까지 되짚으며 2025년을 돌아본다.

바깥에서 바라본 한국, 케이팝 데몬 헌터스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는 유일하게 한 해를 정의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작품이다. 넷플릭스 역대 통합 조회수 1위, 애니메이션 OST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 등 수많은 기록도 대단하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깊은 문화 연구에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전통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비주얼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나라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중심 소재이자 제일 어려웠을 음악에서도 진심 어린 탐구가 반영되었다. 한국 걸그룹의 시초인 1950년대의 김시스터즈를 헌트릭스로 오마주하고 에이치오티를 존경했던 감독의 경험을 사자보이즈에 대입하며 오랜 역사가 스며들었다. 멜로망스와 트와이스를 비롯한 K팝의 현주소를 그대로 투영함으로써 친숙함을 더해 많은 세대를 아울렀다. 바깥에서 바라본 한국이 더욱 한국다웠던 기반에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밀한 부분까지 충실하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복귀한 대형 그룹, 도약하는 차기 주자, 출정하는 신인
별들이 연달아 돌아왔다. 지드래곤의 컴백으로 빅뱅 멤버들이 모이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방탄소년단은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며 스트레이 키즈는 빌보드 200에 진입한 첫 8개의 앨범을 연속으로 1위에 올리며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블랙핑크도 빼놓을 수 없다. 완전체 활동도 있었지만 솔로 아티스트로서 빛났다. 2024년 로제를 시작으로 펼쳐진 각개전투는 2025년까지 계속되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복귀에만 그치지 않고 투어로 연장되었다. 범지구적인 K팝의 인기를 바탕으로 전 세계를 순회하며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집중했다.
베테랑 그룹들이 글로벌로 활동 무대를 옮긴 사이, 차세대 주자들은 K팝의 본토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선 엔믹스가 눈에 띄는 도약에 성공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 Fe3O4: Forward >와 첫 정규 앨범 < Blue Valentine >으로 데뷔 이래 가장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결정적인 변화는 음악적 고집과 대중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다가갔다는 것이다. 믹스팝 요소들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다듬어 이전보다 넓은 수용력을 갖추면서도 고유성을 유지했다.
새로운 얼굴은 매년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유독 대형 기획사의 신인이 많았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지향점을 가지고 K팝의 모양을 한결 다양하게 만들었다. 소속사의 유서 깊은 유전자를 한데 모은 하츠투하츠와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키키, 한 명 한 명의 인지도로 승부하는 올데이 프로젝트, 모든 멤버에게 창작자의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코르티스 등 기존 K팝의 전략을 치밀하게 정제해 성공적인 출발을 이뤄냈다.

자극적인 사운드와 2000년대, 2010년대 노스탤지어의 융합
‘Please don’t let it be over’. 올해 찰리 XCX가 한국을 마지막으로 < Brat > 투어를 종료하며 남겼던 메시지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음악이 문구의 의지를 이어갔다.
가장 먼저 언급할 사람은 단연 에피다. 투홀리스의 작업 파트너 킴제이의 프로듀싱은 높은 하이퍼팝 이해도를 반영했고 같은 세대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2000년대, 2010년대 음악을 재해석해 확고한 개성까지 갖춘 음악가로 발돋움했다. KC가 2025년을 뒤흔든 방식도 동일한 지점에 있다. 강렬한 레이지 사운드에 한국 음악 샘플링을 감각적으로 녹여낸 < K-Flip + >는 힙합 신에서 최고의 성취를 만들었다. 이후 < APGU >를 통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나우아임영이 합류해 레이블 활동에 추진력을 더했다.
이케이와 시온 역시 전자음악 영역을 공유하며 훌륭한 결과물을 제시했다. 연장선에 존재하는 언더그라운드의 움직임 중 시스템 서울은 게임이나 드라마 OST로 샘플링의 범위를 확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을 선택하며 사운드클라우드 아티스트가 주류로 올라오던 시절의 모습을 한국에서 재현했다. 이들 모두 더 이상 해외에서 영향받은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각자만의 방식으로 현지화를 마치고 뚜렷한 세대를 겨냥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정반대의 선택지, 포크
유난히 많았던 자극적인 소리에 지친 사람들은 반작용으로 정반대를 향했고 그 도착지는 바로 포크다. 2025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을 차지한 산만한시선이 첫 정규작 < 산만한시선 2 >을 발매하며 상승 곡선을 그려냈고 올해 뛰어난 음반을 3장이나 쏟아낸 우희준과 < 아마추어의 집 >으로 데뷔한 안지원은 주목해야 하는 신인 반열에 곧바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실물 악기가 가진 따뜻함을 선사하면서도 뚜렷하게 간직하고 있던 말들을 조곤조곤 써 내려갔다.
싱어송라이터들도 잔잔한 결로 돌아오며 흐름에 힘을 실었다. < 철의 삶 >에서 정우는 전작보다 채도를 낮추며 선명한 목소리를 강조했고 윤지영은 반대로 < 시지프 신화 >에서 색조를 넣어 부드러운 리듬을 들려주었다. 신지훈의 두 번째 앨범 < 평화 >와 6년 만에 돌아온 권나무의 < 삶의 향기 >도 이러한 카테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우연으로 여기기에는 분명 의미를 가지는 움직임이자 주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숨겨진 주제였다.

플랫폼 갈라파고스화의 종말? 과도기에 놓인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2년 전 온스테이지 종료 소식이 복선이었을까. 최근 네이버의 음원 서비스인 바이브가 사업을 축소한다는 뉴스가 들렸다. 동시에 네이버는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스포티파이와 손을 잡았다. 광고를 보면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요금제까지 도입하며 올해 공격적인 확장을 시도하는 스포티파이는 이용자 수가 2025년 초반에 비해 2배 가까이 급증하며 지니뮤직을 제치고 점유율 3위로 올라섰다.
비슷한 현상은 유튜브 뮤직에도 있었다. 유튜브 프리미엄의 전신 시절부터 여타 주요 국가에는 가족 요금제가 존재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끼워팔기 전략으로 인한 독점을 막기 위해 제재를 하겠다고 선포하자 법정 공방 대신 뒤늦게 라이트 요금제 옵션을 제공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점유율 부동의 1위였던 유튜브 뮤직이 타격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은 글로벌 플랫폼의 공세와 압박, 그리고 이에 대응하거나 타협하려는 자국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뒤섞인 복잡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해외 플랫폼은 점유율과 규제 이슈에 따라 방안을 내놓는 중이고, 국내 플랫폼은 기존 울타리 안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모양새다.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온전히 보장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풍성한 내한과 여전한 암표 문제
팬데믹이 끝난 지도 어느덧 3년 차, 풍성한 내한 라인업을 언급하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특히 올해는 테마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브릿팝의 거장 오아시스, 펄프, 스웨이드가, 외국 힙합에서는 카니예 웨스트, 트래비스 스캇,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까지 초대형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페스티벌과 공연이 2025년을 채우며 지루할 틈 없는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괜히 비싸 보이는 티켓 가격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좋은 자리와 추가 혜택을 위해 VIP를 선택하면 20만원은 가볍게 넘어 버린다.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입지가 탄탄한 페스티벌은 얼리버드와 각종 할인을 동원해야 마음이 놓인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꺼이 돈을 내고 가려고 해도 순식간에 매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중 간절한 소비자는 암표로 눈을 돌린다. 이에 2024년 3월부터 공연법이 시행되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과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국내에서는 장범준의 소극장 공연이 암표상에 의해 매진되자 예매 자체를 무효화하고 현대카드와 NFT 티켓을 도입했다. 이처럼 암표는 여러 방법으로 충분히 방지 가능한 영역에 있다. 다가오는 2026년의 공연장은 깨끗한 객석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관객들의 환호성만이 가득한 무대이기를 희망해 본다.
이미지 편집: 정하림, 남강민, 박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