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바노프 인터뷰

지바노프(jeebanoff)

by 박승민

2026.02.27

대한민국의 알앤비는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양과 질 모두 크게 발전했다. 제각기 다양한 색채를 자랑하며 토양을 키운 아티스트 중 단연 지바노프를 빼놓을 수 없다. 데뷔 직후 ‘삼선동 사거리’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며, 명곡 ‘추억속의 그대’의 재해석으로 이름을 알리고, 여러 정규작과 EP로 작가주의적 면모를 내비치기까지. 공백기를 거의 갖지 않으며 발매한 작업물들이 지난 10년간 걸어온 길에 촘촘히 수놓아져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한 후 < About Time >과 < We Will Meet Again >을 거쳐 작년 발매한 < Misery >는 그야말로 '지바노프답지 않은' 작품이었다. 또한 이 표현은 그가 뚜렷한 스타일을 지녔음을 전제하는 것이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님을 미리 일러두고 싶다. 포크와 발라드 등 타 장르를 향한 탐구를 주무대 알앤비에 적용한다는 시도는 기존의 세련미를 유지하면서도 편안함을 극대화하는 긍정적인 결과물로 발현되었다. 2025 올해의 국내 앨범 결산 글을 쓰던 도중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무엇이 그를 또 다른 길로 이끈 걸까?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확인하시라.




어느덧 데뷔 10주년에 접어든 입장으로서 스스로 지바노프라는 아티스트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알앤비 하는 사람이다. (웃음)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타 장르를 아예 접하지 않을 정도로 알앤비를 깊게 파고들어 마니악하면서도 다소 불친절하게 본질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이제 장르의 범위가 많이 넓어지지 않았나. 내 디스코그래피 또한 마찬가지라 다양한 색채를 알앤비라는 이름으로 묶어내 친절히 다가가고자 한다. 보컬이라는 장점을 통해 많은 사운드를 편하게 접하게끔 만들려는 욕심이 있다.


그렇다면 활동 초기의 고집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음악이 있는가?

여느 때처럼 집에서 쉬며 음악을 듣던 중 문득 알앤비 특유의 사운드가 피곤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누군가 추천해 스트리밍 보관함에 저장해 두었던 홈셰이크(HOMESHAKE)의 앨범을 틀고 집안일을 하자 처음으로 음악이 슬며시 나의 상황에 침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공부하는 태도로 접근했었기에 그전까지는 겪지 못했던 자연스러움이었다.


< Misery > 역시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에서 파생된 곡들로 구성된, 그러한 친절함과 자연스러움이 잘 드러난 앨범이었다. 

기간을 정해 곡을 쓴 후 모두를 묶는 대주제로 ‘Misery’를 골랐다. 이 과정에서 테두리 밖의 노래들도 다듬어 틀에 넣기 위해 노력했다. 작업 과정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배제했고 신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없었기에, 그간의 기록을 모아놓고 보니 사랑으로 가득한 작품이 완성되었다.


특히 ‘기상예보: 너’를 비롯한 스킷과 트랜지션의 탁월한 활용이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콘셉트를 정하지 않아 여러 곡을 아우르는 개연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 운전하며 굳이 트랙을 넘기지 않고 쭉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청자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곡 간의 이음매를 면밀히 신경 썼다. 그 과정에서 스킷과 트랜지션이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 생겨난 것이다.


작업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곡과 만족스러웠던 곡을 하나씩 골라 달라.

‘낯선 사람’을 만들 때 정말 힘들었다. 프로듀서 스윔굿(swimgood)에게 비트를 받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써내려 완성해 보니 너무 조화롭지 않아 빼자는 판단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미련이 남더라. 내가 좋아하는 보이즈 투 멘의 ‘Relax your mind’와 같은 코드 진행이라 더 그랬다. 결국 코드만 남겨둔 채 나머지를 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작업을 통해 지금의 미니멀한 곡이 나오게 되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노래는 타이틀 ‘Misery’다. 관능적인 무드가 가득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재미있고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라 대중적인 면모와 나만의 색깔을 함께 잡고 싶다는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부드럽고 편안한 음악을 원하는 시대 상황에 알맞게 다가간 덕분이 아닐까.


그러한 분위기가 자신의 현재 상황과도 관련되어 있을까?

일단 나이를 많이 먹었다. (웃음) < Good Thing. > 때는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첫 정규작이라 날이 잔뜩 서 있었다. 또 < Void. >는 입대를 앞두고 냈던 만큼 나의 욕심을 최대한 반영한 다음 과한 부분을 깎아내는 식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음반이다. 반면 < Misery >는 굉장히 평온한 마음으로 작업했기에 나의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청자들이 < Misery >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길 바라는가?

나의 지향점대로 운전하며 듣거나, 우연히 재생되더라도 굳이 멈출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면 좋겠다.




혹시 차기작을 준비 중인지.

3년 전부터 플랜에잇(plan8) 형과 < Talking Book >의 후속작을 제작 중이다. 이전의 주제를 이어가면 되겠다는 생각에 < Misery >와는 별개의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원래 바로 발매하려다 간격이 조금 짧은 것 같아 유보해 지금은 녹음만을 앞뒀다. 총 10곡이 수록될 예정이다.


디스코그래피에 여러 작품이 추가된 만큼 무대 욕심도 생길 것 같다.

2년 전 페스티벌 출연을 제외하고는 팬데믹 이전이 마지막 공연이었다. 유쾌하게 무대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수많은 관객 앞에서 긴장한 채 노래를 부르고 돈을 받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어 데뷔 초 많이 힘들었다. 이후 코로나19를 겪으며 경험 자체가 줄어들자 서서히 공연이 어려워져 버렸다. 언젠가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다.


커리어를 돌아보며 그간의 작업물 중 가장 소중한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2018년 발매한 EP < 주마등 : 走馬燈 >을 고르겠다. 아버지의 동창이시기도 한 고모부께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단원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셨는데, 구조 후 괴로움을 견디시지 못하시다 세상을 떠나셨다. 한참 전부터 그 일을 둘러싼 생각들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학생들의 들뜬 기분부터 내가 감히 짐작해 보는 고모부의 마음을 비롯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여전히 내게 정말 중요한 앨범이다.


곡으로는 < Void. >에 수록된 ‘Hello’가 있다. 마찬가지로 고모부를 주제로 한 트랙인데,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내 안에 남았던 응어리를 가사를 쓰며 많이 털어냈다.


보컬의 특색이 뚜렷한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자신의 제일 큰 강점을 뽑는다면.

강점이라고 할 만한 건 정확히 모르겠으나, 뭐든 여러 번 등장할수록 뻔해지는 만큼 자극적인 장치는 최소화하자는 지론을 고수한다. 예를 들어 특이한 바이브레이션이나 소위 ‘꺾기’ 같은 기술은 한 곡에서 두 번 이상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지바노프가 등장한 2010년대 중반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한국의 알앤비 신이 크게 발전했다. 음악적으로 좋아하는 동료는 누구인지.

쏠과 따마는 내 기준에서 아예 단점이 없는 보컬이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완벽한 선에 멈춰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해외 아티스트 중에서도 말해줄 수 있나.) 존 레전드와 비욘세의 음악이 내 보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 4 > 이전까지의 비욘세에게서 감동을 많이 받고는 했다. 나 역시 힙합을 좋아하지만 최근 앨범들은 그전만큼 와닿지 않는다. (웃음)


근래 여러 흑인음악 아티스트들이 K팝 프로듀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은 없는가.

아직 간절한 열망을 가지지는 않았다. 불러 주시면 최선을 다하지만 (웃음) 아직은 내 음악에 더 집중하자는 마음이다. 정말 멋진 곡이 나와도 타인에게 주기보다는 지바노프의 이름으로 발매하고 싶다.


한국 흑인음악 신의 전성기를 가로지르며 활동한 이로서, 훗날 지바노프란 아티스트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앨범을 꾸준히 만드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한다. ‘이 사람 앨범 하나는 기가 막히게 냈지!’ 하며 추억해 주신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고민 없이 스티비 원더와 그의 ‘For once in my life’ 그리고 < Talking Book >을 꼽겠다. 내게는 다른 아티스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원 앤 온리’다. 특히 < Talking Book >은 ‘Tuesday heartbreak’ 같은 스티비 원더다운 넘버들 사이 배치된 ‘Superstition’이나 ‘You and I (We can conquer the world)’를 듣고 트랙리스트의 개연성을 생각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정말 인상 깊었다. 그에게 앨범을 만드는 전체적인 틀에 대해 배웠다.


많은 영향을 받았던 존 레전드의 ‘Ordinary people’도 떠오른다. 심지어 원곡이 아닌 친구의 연습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이게 사람이 쓸 수 있는 곡인가’하는 생각에 당장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 제목을 물어봤다. 여전히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손민현, 신동규, 박승민

정리: 박승민

사진: 신동규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