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음악] #4 소설가 박이강

박이강

by 박승민

2026.03.30

글에는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선율을 붙잡아 언어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은 언제나 고된 작업이다.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창작까지 동반된다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던 차에 단편소설집 한 권을 접했다. 제목은 < 무성음악 >, 그러니까 소리가 없는 음악이라고? 호기심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을 덮은 뒤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 중앙에는 단연 이 어려운 도전을 완수한 작가들을 향한 경탄이 있다. 이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차근차근 옮겨 보고자 한다. 네 번째 주자는 < 하필이면 다행히도 >를 쓴 박이강 작가다.


박이강 작가의 소설과 이랑의 음악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스러울지라도 결국 직시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꺼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유의 날카로운 문장으로 풀어헤치는 감정들을 보노라면 일상이라는 미명 하에 억지로 감춰 두었던 욕망 혹은 관계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분명 '가족을 찾아서'가 작품 내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는 내내 어딘가에서 노래가 들려오는 듯한 환청에 빠졌다. 문학을 넘어 모든 예술이 인간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을 다시금 체감한 시간이었다.




< 무성음악 > 전부터 일곱 작가가 깊은 관계를 이어 왔다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줄 수 있나.

몇 년 동안 함께 라이브 클럽 데이를 보러 다닌 게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십센치, 잔나비, 쏜애플, 바이 바이 배드맨,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등 당시 처음으로 라이브를 본 좋은 뮤지션들이 많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끈끈해진 관계가 ‘인디소회’라는 이름의 소모임과 이번 < 무성음악 >으로 이어진 것이다.


< 무성음악 >을 구상하면서의 이야기를 말해 달라.

첫 가제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 악담 >이었다. 이후 < 그룹 사운드 1집 >을 거쳐 현재의 제목이 되었다. 그 안에 어떠한 멜로디와 주제, 구성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들릴 소리가 없는 음악이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작가들 역시 동의했다. 평소 음악을 통해 영감을 많이 받기에 내겐 크게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다.


함께 참여한 다른 작가들처럼, 본래 다른 일을 하다 소설 창작을 시작해 등단까지 성공했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처음 꿈을 갖고 이를 실행하기까지의 일화들이 궁금하다.

성인이 된 후 출퇴근을 반복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남들이 바라보는 내 삶과 나만이 아는 내 삶 사이의 격차에 혼란을 느끼는 지점에 도달해 인생과 세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소설 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점점 더 사로잡혔다. 처음에는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극단의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 세계와 달리 소설은 효용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무용하기에 이중생활이 굉장히 힘들었다.


등단 당시 감흥이 각별했을 것 같다.

대산문화재단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익명의 제삼자가 나를 ‘박이강’이라는 필명으로 불러준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는 순간의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스스로 자신 소설의 핵심을 무엇이라 정의하는가?

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쉬이 위안하기보다는 엄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쪽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영향받거나 사랑하는 작가를 꼽아 본다면.

동시대의 미국 작가인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가 먼저 떠오른다. 또 엘레나 페란테같은 장편을 쓰고 싶다는 소원이 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는 김연수, 권여선 작가를 언급하고 싶다. 작년부터 체호프를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재미있고 쉬운 글 속에 인생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아내는 데 새삼 감탄했다.


소설을 집필할 때 특히 찾게 되는 음악이 무엇인가.

방해가 될 수 있어 가사가 없는 음악 위주로 듣는 편이다. 요즘은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나 클래식 독주를 주로 찾는다.


감상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음악에 도전해 본 경험이 있는가.

성인이 된 후 바이올린을 처음 배웠다. 한데 음정이 정확히 정해진 다른 악기들과 달리 바이올린은 운지 위치와 활을 쓰는 방법에 따라 소리가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다 보니 절대로 능숙해지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1년 반 만에 포기했었다. 그러다 작년 우연한 계기에 다시 시작하면서는 그저 즐기는 것을 목표로 삼자고 마음을 바꿨다. 가끔 녹음을 들어볼 때마다 정말 끔찍하지만 (웃음) 악기 연주는 글쓰기, 특히 문장 연습과도 비슷한 것 같다. 문장 역시 앞뒤 문맥이 무엇인지, 어떤 조사가 붙는지, 어떤 단어를 선택해 어느 위치에 놓는지 또는 생략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표현의 질감과 리듬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하필이면 다행히도 >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모순적인 어감이 인상적이었다.

“왜 나는 나로 태어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자 했다. 그 뿌리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지만 둘 중 누굴 찾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근원적인 관계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를 탐구하는 이야기다. 이를 전하기 위해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장르인 모녀 서사는 피하고자 했다.


작품이 지닌 정서는 단순한 그리움이라기보다 어딘가 어긋난 관계에 대한 감각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개념은 무엇인지, 그리고 소설에서 이를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브라질 영화 < 만인의 아이 >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고통을 감싸안고 사랑한다면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이야기하는 ‘천륜’보다는 근래의 대안 가족 개념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집필 과정은 다른 소설과는 어떻게 달랐는가?

계속해서 원점으로 돌아가며 제일 많이 고쳐 썼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거나 자랑스러워하는 작품은 아니다. (웃음) 아빠와의 관계를 어떻게 끝맺고, 관계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크게 고민하며 여러 버전을 쓴 끝에 현재의 결말에 도달했다. (선택의 이유를 설명한다면?) 인생은 우연성에 기초해야만 흥미진진하기에, 지금의 결론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느꼈다.


이랑의 ‘가족을 찾아서’를 고르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을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방황하고 매달리는 주제가 가사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함께 수록된 단편들과는 달리 소재가 된 곡이나 다른 음악이 작품 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를 말해 달라.

처음에는 가사도 인용했지만 완성된 글을 보니 조금 불필요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또 가사에 작품의 주제가 그대로 투사되어 있기에, 노골적인 전달을 피하기 위해 결국 빼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가족을 찾아서’ 가사 속의 내밀한 고백들을 소설의 형태로 바꾸는 과정에서의 변화가 참신하게 다가왔다. 이랑은 < 늑대가 나타났다 >에서 사회로 시선을 옮기기도 했는데, 그의 다른 곡 중 소재로 삼고 싶은 것이 있는가?

< 욘욘슨 >과 < 신의 놀이 >가 발매되었을 당시 정말 많이 들었다. 대중가요와는 상당히 다른 정서를 지닌, 스스로 지닌 호기심과 의문을 찾아 나가는 특유의 가사를 좋아한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기에, 이를 작품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소설과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에서 “음악을 들으나 듣지 않으나, 소설을 쓰나 안 쓰나, 삶은 흘러간다.”로 시작하는 마지막 단락의 문장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어서라고 밝히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두 일에 몰두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을까?

데이비드 실즈의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가 기억난다. 나 자신부터 글을 쓰며 굉장히 많이 변했고 인생의 한 시절을 견디며 소설이 지닌 힘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용하고 비효율적인 것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제일 큰 사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일본의 설산에서 토토의 ‘Lea’를 들으며 여행지와 내가 하나가 되는 감각에 잠겼다. 그 후로 여행할 때마다 나만의 주제곡으로 꼭 챙겨 듣고는 한다. 그러다 보니 지난 여행의 이미지들이 노래 안에 중첩되는 인상을 받기에, 여러 기억이 한데 포개어진 특별한 노래가 되었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한성현, 박승민, 박수석, 박시훈

정리: 박승민

사진 및 이미지 제작: 박시훈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