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음악] #5 소설가 안덕희

안덕희

by 박승민

2026.04.06

글에는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선율을 붙잡아 언어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은 언제나 고된 작업이다.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창작까지 동반된다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던 차에 단편소설집 한 권을 접했다. 제목은 < 무성음악 >, 그러니까 소리가 없는 음악이라고? 호기심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을 덮은 뒤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 중앙에는 단연 이 어려운 도전을 완수한 작가들을 향한 경탄이 있다. 이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차근차근 옮겨 보고자 한다. 다섯 번째 주자는 < 귀 파기 >를 쓴 안덕희 작가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안락한 삶을 누리는 현대인들에게도 불안은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고 보아야겠다. 그러한 심리의 근원은 제각기 다르겠으나 이를 받아들일지 밀어낼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다. 안덕희 작가는 분명 전자에 속한다. 문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활동의 중앙에는 인간 종이 직면한 작금의 기후 위기가 놓여 있다. 과연 우리는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실마리를 제시하는 것조차 지극히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 귀 파기 >를 통해 외면에서 벗어난다면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진전이리라.




< 무성음악 > 전부터 일곱 작가가 깊은 관계를 이어 왔다고 들었다. 함께 책을 내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하다.

본래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 아니었어서 모임의 중심이 소설 쪽으로 이동한 후에야 합류했다. 이번 책도 다른 작가들의 의견을 따라갔는데, 발간 후 독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음악의 역할이 정말 큰 모습을 보고 놀랐다. 출판의 입장에서도 두 영역의 융합이 재미있어 추후 다시 도전하고 싶다.


주로 대중음악을 소재로 삼은 다른 작가들과 달리 현대음악이자 미니멀리즘에 속하는 스티브 라이히의 ‘Clapping music’을 고른 것이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해당 곡을 접하게 된 계기와 선택의 이유를 간단히 소개해 줄 수 있나.

어릴 때 처음 좋아한 가수가 서태지였는데, 그가 작사와 작곡을 다 했기 때문에 음악을 분석적으로 듣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그 후에도 음악을 흘려듣지 못하고 공부하듯 들여다보곤 했다. 스티브 라이히도 그렇게 만난 아티스트다. ‘Clapping music’을 처음 들었을 때 단순한 박수 소리 사이에서 현대적 불안과 소외의 감각을 느끼고 이 사람은 나와 통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자료를 읽어보니 그가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감각이 그대로 내게 전달된 것이었다. 말 없는 음악을 통해 작가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경험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 귀 파기 >의 독자 중에서도 내 세계관과 감각을 함께 느끼신 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글과 음악을 맞닿게 했을까?

최근 문학계에서는 기후 위기 등의 문제로 자연 속 인간의 위치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나는 기후 위기 등의 문제에 접근할 때 정치 사회적 운동보다는 새로운 인간관을 탐구하는 편에 끌린다. 인간의 관념과 생각을 떠나 동물적인 감각에 집중하고 눈앞의 단순한 일들에 단순하게 반응하려는 시도에 매혹되곤 한다. 'Clapping music'도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신체의 리듬과 감각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내 소설 < 귀 파기 >의 주인공 역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박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작품 속 ‘귀 파기’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행동이 있는가.

현재 '달걀머리' 홈페이지 운영, 소설 집필과 출판을 하고 있다. 이 세 가지가 각각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이 시대라는 폭우 속에 서서 귀를 파는 나만의 방법이랄까. (웃음)


최근 전개하는 작업 중 앞선 설명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인공지능과 노동 등 작금의 가장 예민한 화두를 새로운 형식의 글로 풀어내고자 한다. 여러 작가와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으며 해당 주제로 무크지가, 디아스포라와 기후를 주제로는 앤솔로지가 나올 예정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과 번역의 영역에도 인공지능이 점차 그 손을 뻗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공지능(AI)을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과 다른 잣대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인간중심주의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지구에 최초로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지구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 입장에서는 인간과 AI가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소설을 쓰는 위치에서 나는 AI에 대해 걱정하거나 윤리적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우리 인간이 AI와 그로 인해 변할 세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호칭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관념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에 더 관심이 있다.


함께 참여한 다른 작가들처럼 본래 다른 일을 하다 소설 창작을 시작해 등단까지 성공했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처음 꿈을 갖고 이를 실행하기까지의 일화들이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기후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기후 우울증에 있어서는 선구자일지도 모른다. (웃음) 세계에 대한 나만의 다른 감각을 해소할 길이 없어 소설을 쓰고 싶었다. 지금은 모두가 환경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오히려 덜 외롭다. 진작에 현호정의 < 달빛 > 같은 소설이 나왔다면 읽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문학계와 달리 대중음악계에서는 환경 문제가 비교적 덜 다루어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대중음악에서 환경이라는 주제를 많이 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음악과 문학을 통해 기후 위기의 감각을 함께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해보는 건 어떨까. 산업화된 음반사들의 주도를 기다리지 않고, 또 상품화될 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을 내놓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개개인이 모여 감각을 표현하는 순간 자체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쪽도 좋겠다. 이 또한 기후위기의 원인 중 하나인 자본주의화에 저항하는 길이 될 수 있겠다.


평소 즐겨 듣는 것과는 별개로, 소설을 집필할 때 특히 찾게 되는 음악이 있는가?

소리에 예민한 편이라 고요함을 찾게 된다. 예전에 수도원 피정에 가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 수준의 고요함에는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이 있다. 그것도 음악적 경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 현실에서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우니 잡음을 막기 위해 클래식을 듣는다.


2025년 림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핵심이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가.

나는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고, 그 불안이 우리 시대의 도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와 타인들이 그 도전에 대응하는 방법과 과정을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이 나 자신에 도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라고 할까.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을 소개해 줄 수 있는지.

가장 최근에는 현호정 작가의 < 달빛 >에 반했다.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드는 존재들이 등장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다. 작가가 조성진의 ‘달빛’ 연주를 틀어놓고 읽기를 추천했는데 음악과 소설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윌리엄 포크너의 < 헛간, 불태우다 >도 좋아한다.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적인 본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의 비극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소년의 무기력함이 생생하다.


< 브루노 슐츠 단편집 >도 늘 다시 읽는다. 오감이 아니라 ‘24감’이 있는 사람에게 세상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대리 체험하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빼놓을 수 없다. 불에 데이는 것 같은 문장이란 그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벌거벗은 영혼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들이다. 언젠가는 그와 같은 경지에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음악을 말해 달라.

음악을 잘 듣지 않아서 인생 음악이라고 부를 정도의 곡을 뽑기는 부끄럽다. 성가대와 중창단에서 내 몸을 통해 공기를 음으로 만들고 화음을 쌓으며 희열을 느끼던 순간이 내 인생에서 음악을 가장 깊이 느낀 경험이다.




진행: 임동엽, 손민현, 박승민, 박시훈
정리: 박승민
사진 및 이미지 제작: 박시훈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