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마이클 >, 입체적 위상과 평면적 초상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y 신동규

2026.05.16

‘킹 오브 팝’이란 익숙한 수식을 넘어 대중음악사 불멸의 아이콘이자 이제는 하나의 교양이 되어버린 마이클 잭슨. 인도주의적 선의의 대명사이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뜬소문에 서서히 잠식되어 간 그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 < 마이클 >이 지난 수요일 개봉했다. 작품은 잭슨 파이브의 막내이자 리드 보컬로 출발해 모타운이라는 둥지를 지나 퀸시 존스와의 호흡 속에서 태어난 < Off The Wall >은 물론 팝의 문법을 모조리 갈아엎은 < Thriller >와 < Bad >에 닿기까지 전성기에 해당하는 생애를 더듬는다. 


한편 평가는 엇갈리는 추세다. 군중 속에 나를 던져 그의 명곡과 무대를 다시금 누릴 세계적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는 점만으로 의미가 남다른 것도 사실이다. 다만 팬서비스 영화라는 철저한 틀 속에서 누구보다 화려했던 인생을 과도하게 평면적으로 다뤘다는 지적과 그 자체로 소임을 다했다는 감상이 대치하고 있다. 둘 사이를 오가며 몇 가지 쟁점을 훑어보려 한다. 



기대와 우려, 타임라인의 압박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라는데, 기대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어느 음악가의 전기 영화보다 유독 평가가 박할 수도 있겠으나 흥행의 측면은 이미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관람에 앞서 두 가지 논점이 떠올랐다. 하나는 음악인을 영화화할 때의 선택 폭과 그 시점이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밥 딜런과 같은 로큰롤의 본격 태동기를 넘어 어느덧 1980년대까지 도달했다는 점이다. 물론 마이클의 경우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그 이후 시대의 예술가를 다룬 작품도 있으나 에이미 와인하우스처럼 일찍이 요절한 경우이거나 그마저도 완전한 상업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 과연 마이클 역이 누구냐는 것이다. 브루노 마스와 같은 현역 팝 스타부터 브로드웨이의 실력파 배우까지 여럿이 입방아에 올랐으나 감독은 집안에서 답을 찾았다. 어쩌면 가장 확실한 방법, 그렇게 자파르 잭슨이 낙점되었다. 그는 마이클이 잭슨 파이브에 합류하기 이전까지 팀의 보컬리스트로 두각을 보였던 형 저메인의 아들이다. 그룹의 성공 이후 모타운의 품을 떠나 각자의 길로 나아간 다른 형제들과 달리 원회사에 남아 못다 한 음악을 소망했던 저메인의 행보를 떠올려본다면 마이클이 성인의 나이로 접어드는 문턱에서 조금은 어색한 사이로 남았던 둘이기도 하다. 구태여 말하지 않을 집안의 연애사까지 생각한다면 그런 형의 자식이 일찍이 세상을 떠난 작은아버지를 분한다는 건 그 자체로 기묘하고도 흥미롭다.

전기 영화의 흐름이나 캐스팅 비화가 어쨌든 작품은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유족 재단의 지원 속 시작은 순조로웠다. 음악 사용을 포함한 마이클의 권리 사용에 대해서도 무던했다. 끝이 보이던 순간, 판도가 뒤집혔다. 본래 아동 성 추문 사건을 포함하여 그야말로 인생 전반을 다룰 예정이었으나 1993년 있었던 조던 챈들러 사건의 합의 사항에서 추후 해당 사건을 어떠한 콘텐츠로도 다루지 말 것에 관한 내용이 뒤늦게 발견된 일이었다. 마이클에게는 누명이었지만, 명시된 합의의 결과이기에 어쩔 수 없이 촬영분을 걷어내고 약 200억을 더 들여 새로이 제작에 돌입했다. 작년 중 개봉 예정이던 작품이 현시점에 나온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다. 속편을 향한 설이 아직 공식화되고 있진 않지만, 완성도 자체에 의구심을 갖는 의견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 점은 사실이다.


무난과 무미(無味) 사이
작품은 2018년 국내 개봉해 십만이 안되는 격차로 천만 관객 명단에 오르지 못했던 < 보헤미안 랩소디 > 제작진의 힘을 빌렸다. 감독인 안톤 후쿠아가 < 이퀄라이저 > 시리즈와 같은 액션 장르를 주로 다뤄왔다는 점에서 관객이 가진 퀸의 강렬한 기억을 집중적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 보헤미안 랩소디 >와 < 마이클 >은 다르다. 로큰롤 스타와 인간 프레디 머큐리 사이에서 정체성을 필두로 한 개인의 굴곡, 그것이 초래한 밴드의 흥망성쇠가 설득력을 가진 까닭은 1985년 라이브 에이드라는 수십 분의 무대가 명확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로부터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으니 선택의 부담 또한 덜했다.

앞선 합의 조건으로 인해 1988년 < Bad > 투어 이상의 진도를 나가지 못할 것이라면 마이클의 서사 속 극적 절정은 저마다의 부족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광고 촬영 중 일어난 화상 사고나 모타운 설립 25주년 행사에서 처음 선보인 문워크 댄스, 운명의 파트너 퀸시 존스와의 만남을 프레디 머큐리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과 같은 선상으로 두긴 단편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편리한 선택은 널리 퍼진 아버지와의 갈등 서사를 전면에 두는 것. 영화는 끝날 때까지 아버지 조 잭슨을 철저히 빌런으로 설정하여 손을 턴다. 생전 마이클이 부친에 대해 매 암울했던 과거만을 언급하진 않았음을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그 비율과 다루지 못한 음악적 성과를 놓고 본다면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특정 지점이 부재하다. 

조각의 파편화
평면적으로 비칠 여지가 높아진 연출은 큰 줄기로 흐르는 이야기의 체급보다 일개의 에피소드를 엮은 모음집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스트립 바 무대에 오르는 일, 벨트라는 소재로 기억되는 아버지의 폭력, 재연을 위한 재현에 가까운 ‘Beat it’과 ‘Thriller’의 뮤직비디오 현장, 실제로 전화를 끊자마자 흘러나왔다는 CBS를 이용한 MTV 간의 관계 정리, 코카콜라를 처음으로 추월한 펩시의 광고와 사고 장면 등 다뤄줘야 할 단편에 치중한 결과, 정작 음악가 마이클 자체의 고심을 엿볼 장면은 의외로 적다. 애완 라마와 기린의 비율이 너무 큰 건 아닌가 괜한 혀를 차게 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We are the world’처럼 현실적으로 연출이 어려운 장면은 생략하더라도 후일담 위주로 꾸린 성장 드라마 내 정작 음악과 무대가 빛날 지점을 약소하게 표현하여 생긴 일이다.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삽입곡은 틀림없이 감동을 주지만, 단순히 들리는 소리를 넘어선 보이는 무언가가 마이클의 음악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춰본다면 전기 영화 특유의 다큐멘터리 문법의 적은 비중이 아쉬운 지점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곡의 잔상을 길게 끌어가지 못하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으니 유감은 배가 된다.


그래도 음악? 그럼에도 음악!
음악만을 놓고 본다면 박수를 보내 마땅하다. 잭슨 파이브의 결성부터 < Bad >까지라는 명확한 연표 안에서 선보일 노래는 모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처 원상태로 싣지 못한 경우, 허밍과 연주로 대체하는 모습까지 명실상부한 대표곡 메들리는 어쩌면 너무 익숙하여 잊고 있던 명곡의 힘을 새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Smooth criminal’과 같은 곡의 부재가 연신 떠오르긴 했으나 모두 들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뛰어난 점은 음악사적 포인트로 시대를 읽어주려 노력한 흔적이다. 잭슨 파이브의 1970년 곡 ‘ABC’가 비틀스의 ‘Let it be’를 제치고 통산 두 번째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는 점을 빌보드의 주간 순위표를 통해 보여주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일러둔다거나 앞선 무대의 가수가 자기 다음의 순서를 소개하던 방식을 빌려 글래디스 나이트가 그의 밴드 핍스와 함께할 당시 커버했던 컨트리 싱어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원곡의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의 부각, 어린 마이클이 특유의 발 박자에 큰 영감을 받은 영화 < 사랑은 비를 타고 >를 친절히 보여주는 등 갖가지 요소가 달갑다. 각 레코드 사 벽에 걸린 인증 액자 속 앨범 재킷과 곡명은 물론 밥 딜런, 브라이언 윌슨, 신디 로퍼,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호명만으로 반가움을 자아내는 세부적 대사까지 극본에 힘을 실으니 더욱이 장단점은 확실하다.

불과 한 달 전에 비해 현재 마이클 잭슨 곡의 스트리밍 수는 세 배로 껑충 뛰었다. 또한 < Thriller >는 1984년 이후 처음으로 앨범 차트 5위권 내에 안착했으며 영미권을 떠나 전 세계 라디오가 가뜩이나 끊이지 않았던 그의 음악을 더 노골적으로 찾고 있다. 당시의 파급을 가늠하기 어려운 오늘의 십 대가 생전의 무대를 보며 하나하나 리액션하는 영상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말 다한 것이다. 누가 아직까지도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를 추모하는 일련의 모습과 두고 간 명작을 영화관의 좋은 소리로 다시 들을 수 있음에 그저 만족스러울 따름이라는 반응 앞에서 앞선 아쉬움은 하나의 투정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다시는 보기 어려울지 모를 슈퍼스타의 인생을, 더구나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가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루는 일이 얼마나 험난한지, 또 대중의 기댓값이 얼마나 높은지를 우리는 보고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영화의 또렷한 허실을 달래줄 그의 음악만으로 위로는 일찍이 충분하다. 
신동규(momdk778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