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기타리스트 김목경ㅣ박수석의 겟 어 기타
김목경
대중음악의 곁은 기타가 지켰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분신 삼아 많은 사람들이 연주 혼을 불살랐고 소수의 혁신가들이 일으킨 현의 진동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마저 뒤흔들었다. 이즘은 흘러간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빛낸 기타리스트의 전설들을 선정해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지판(指板)이라는 대지 위에 그들이 남긴 굵직한 발자국을 좇는다.

김목경의 선율은 많이, 또 꾸준히 흘렀다. 김광석과 수많은 가수들을 거치며 국민가요에 오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부르지마’ 같은 히트곡도 우리에겐 익숙하다. 이처럼 일상의 정서를 포착해 한국화(化)한 노래는 사람들의 대중음악 정서를 오랜 시간 동안 아련하게 어루만졌다. 이 정도의 성취도 대단하지만 시야를 좁혀 기타리스트의 영역으로 파고들면 그의 존재감은 또 한 차원 다른 무게를 가진다. 김목경 음악의 발원지로 거슬러 올라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연주만을 삶의 낙으로 삼은 한 블루스맨의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경한 블루스임에도 <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 > 출연, 펜더 사의 기타 헌정 등 바다 건너 해외에서의 사뭇 다른 대우가 그 위상을 증명한다. ‘Mr. Clapton’, ‘Play the blues’를 비롯해 라이브에서 흘러나오는 본토의 언어는 1984년 영국으로 건너가 무작정 부딪히며 온몸으로, 손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깨달은 소리다. 그 시절의 마음가짐을 마치 과거의 일처럼 회고한 그였지만, 대화 내내 잔불처럼 타오르는 음악에의 신념은 분명 현재진행형이었다.

우선 대표곡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김광석에서 임영웅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데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사실 나의 정체성은 블루스 뮤지션이고 지금도 우리 밴드와 함께 여기저기서 클럽 공연을 하며 연주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우리는 연주를 안 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이 일은 정말 돈을 떠나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으로 내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블루스 음악을 계속 영위할 수 있게끔 도와준, 효자 같은 곡이다.
한편으론 평생 투신한 장르인 블루스와는 약간의 간극이 있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한창 라디오를 들을 때 팝송 프로그램이 참 많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 ‘팝’이라는 게 대부분 컨트리였다. 닐 영이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같은 음악가들을 좋아하기도 했으니, 청소년 시절 듣고 자랐던 음악들이 몸에 배면서 포크와 컨트리의 영향이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외에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곡이 있다면?
내 입으로 얘기하기 부끄럽지만 ‘Mr. Clapton’이 만족스럽다. 영국 런던에서 녹음했는데 바로 옆 방에 살던 스코틀랜드 출신 음악가 친구가 크래커(Cracker, 기막히게 좋은 것이라는 의미)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기타를 들게 된 것은 언제인가.
첫 시작은 중학교 2학년쯤부터다. 김세환, 송창식, 어니언스 등 통기타를 주로 치다가 고등학교 때 팝송을 들으면서 일렉트릭 기타로 넘어갔다. 그때는 청계천에서 낙원상가보다 더 저렴하게 기타를 팔았었는데, 거기에서 어느 이름 모를 국산 기타를 구매했다.
그중에서도 블루스로 나아가게 된 계기는?
당시 라디오에서 블루스 뮤지션들의 음악은 나오지 않았고, 레코드도 롤링 스톤스나 레드 제플린 같은 팀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음악을 카피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치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그러다가 지난 인터뷰 때도 말한 블루스 모음집을 사서 들었는데 이때 펜타토닉 음계(Scale)와 블루 노트를 접하며 그 어려운 음악들이 전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기타의 비밀은 전부 이곳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에 대한 재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는지.
군 복무 시절이다. 근데 군악대에 기타로 뽑혀 갔는데 기타는 안 주고 클라리넷을 주더라. (웃음) 그래도 눈에 불을 켜고 연습해서 실력을 키워 나중에는 계급이 낮음에도 훨씬 고참처럼 활약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당시 악대장이 클래식을 전공하신 분이라 이론이나 정확도, 음정에 대한 민감함 등 음악적으로도 배운 것들이 많다.
영국까지 가서 기타 수련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의 경험은 어땠는가.
원래는 학교 복학 전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7년 가까이 머물게 됐다. 낮에는 페인트칠, 접시 닦기 등 일을 하고 저녁에는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당시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그저 즐거웠다. 지금도 그때 그 정신으로 살아야겠다고 종종 생각한다. (웃음)
동경했던 기타 히어로나 나를 이만큼 발전시킨 연주자가 있다면?
비비 킹.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비브라토와 표현력에 감탄을 많이 했다. 한 가지 음만 친다고 해서 별명도 ‘원 노트 맨(One Note Man)’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거기에 모든 자기 감정을 다 실어서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또 스승 같은 연주자를 꼽자면 알버트 킹이 있다. 수많은 백인이 흉내 내려고 해도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그대로 뒤집어서 치는 특유의 뉘앙스는 따라가지 못한다. 최근에도 ‘Crosscut saw’ 같은 곡을 계속 연주하며 그 느낌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목경 연주의 핵심 개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솔로를 하게 된다고 하면 그 안에 나의 스토리, 즉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음계에서 음정을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그건 손가락 연습에 불과하다. 그것보다는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하면서 똑같은 12마디를 치더라도 좀 더 아름다운 멜로디와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최근 라이브에서는 어떤 장비 조합을 사용하는지.
펜더 기타와 펜더 앰프를 사용하고 있다. 이펙터는 1970년대 RAT 디스토션에 코너스톤 오버드라이브 정도만 쓰고 있다. 깁슨 기타도 소리는 좋지만 볼륨, 톤 노브 위치가 불편해서 손이 잘 가지 않더라. 펜더 중에서도 1967년과 1968년 빈티지를 가장 선호한다.
좋은 톤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한 가지 음을 치더라도 다른 누구보다 첫 번째로 나 자신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제일 먼저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연주하는 ‘나’ 아닌가. 일단 내가 들었을 때 좋아야 관객이든 어떤 사람이든 울림을 느낄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중하고 뚱뚱한 톤을 좋아하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후배 연주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이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많은 음악을 접한 사람의 연주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연주는 딱 보면 티가 난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국악을 부르면 우리가 바로 알아채듯 한국인이 미국 가서 기타를 치면 미국 사람들도 똑같이 알아보지 않겠는가. 음악을 많이 들으며 정수를 추출해 그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진행: 임진모, 박수석, 신동규, 임동엽
사진: 신동규
정리: 박수석
이미지 제작: 박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