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이즘] 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by 한성현

2026.06.16

글쓰기란 참 어렵습니다. 굉장히 일상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금세 머리를 싸매게 되죠. 어쩌면 글쓰기는 그 자체로 싸움이자 전쟁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를 직업 삼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기자입니다. 문화 현장을 취재하고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뛰는 이들을 이즘이 만나 글의 세계를 함께 논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유행도 ‘텍스트힙’ 아니겠나요. 어떤 형태로든 음악과 콘텐츠 글쓰기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다섯 번째 인터뷰는 연합뉴스의 이태수 기자입니다.



문화부 기자의 길은 어떻게 걷게 된 것인가.
2011년 11월 연합뉴스에 입사해서 수습 기간을 거치고 이듬해 초에 2지망으로 쓴 문화부에 발령받았다. 그때만 해도 신입이 문화부를 지원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가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 마음에 맞았다. 당시 부장도 그게 보였는지 “연예인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이니 가요와 방송을 담당하라”고 지정해 줬다. (웃음) 2013년 겨울에 다른 쪽으로 파견을 간 후 2021년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왔다.

8년의 시간 동안 체감되는 변화가 꽤 클 텐데.
옛날에는 문화부가 기피되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K팝이 주요 일간지 1면에 나오고 대통령도 순방 시에 가수를 데려가는 시대 아닌가. 2013년 6월에 “힙합 아이돌 데뷔”라고 작게 소개한 방탄소년단이 이렇게 대형 그룹이 된 것을 보며 내 안목을 후회하기도 했다. (웃음)

다른 부서에도 있었으니 기사에 대한 접근법이 남다를 것 같다.
지금처럼 K팝의 산업적 측면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산업부 기자로 활동한 경험이 꽤 도움이 된다. 매일 기업의 매출을 살펴보고 재무제표를 확인하던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K팝의 수출 데이터 등을 잘 챙기는 중이다. 빌보드에 스트리밍 수치 등의 자료를 제공하는 루미네이트 데이터 뉴스레터도 구독하면서 최대한 정보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뉴스 통신사 소속인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기자로서 신속성이 두드러진다.
엠바고가 없는 한 무조건 바로 글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다. 일례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톱 텐은 한국 시각 화요일 새벽 1시부터 4시 사이에 무작위로 발행되는데, 그에 맞춰서 12시 반 정도에 알람을 맞추고 계속 새로고침을 누른다. K팝 가수가 순위에 들 것 같다 싶으면 미리 평론가들에게 연락을 돌리기도 하고, 이후 라디오나 스트리밍 수치 등이 빌보드 자체 기사로 올라오면 이를 발췌해 미리 써놓은 문장에 빈칸을 채워 글을 내보내는 식이다. 이런 종류의 기사는 정말 사실 중심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모두가 같은 무대를 보고 글을 내보내는 공연 리뷰에 더 애를 먹고는 한다.

확실히 공연 후기는 문장력에 더 힘을 실어야 하는 유형이다.
그렇다. 일종의 오픈북 시험이다. (주로 어느 지점에 집중하는지) 제목과 형용사다. 단순히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적확한 표현을 열심히 찾아야 하고, 청각 콘텐츠에 주관을 더해 나만의 텍스트로 치환을 시키는 과정에서 그 핵심은 주로 형용사라 생각한다. 써야 할 기사가 많을 때는 종종 쉽고 관용적인 말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받지만 스스로 음악적 지식이 남들보다 앞서지 못한다고 느끼는 입장에서 저런 부분이라도 더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자꾸 더 유려한 글이 나오지 못해서 후회가 든다.

여태 이태수 기자가 쓴 문장 중에 예시를 좀 들어달라.
조용필 콘서트 기사에 “특유의 쫀쫀하고 쩌렁한 보컬”이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딱 조용필만의 분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라고 생각했다. 윤복희의 경우는 굉장히 오래 활동하신 분이니 “옹골찬 심지에 알이 콱 박혀 있는 듯했다”라고 작성했던 것 같다. 눈에 잘 들어오면서도 품위 있는 문장을 한정된 글자 수에 맞춰 쓰는 것이 참 어렵다. 내 답은 그저 공연 전날 하루 종일 해당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인터뷰로 만난 아티스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가 있나.
해외는 올리비아 딘. ‘Man I need’로 화제의 뮤지션이 되기 전인 2024년 8월 소수의 기자와 라운드 인터뷰를 했는데 그래미 신인상을 타고 난 지금 보면 그래도 내가 앞서갔구나 싶다. (웃음) 현장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처럼 시대를 초월한(timeless)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말을 전했는데 굉장한 성의가 느껴져서 인상 깊었다.

국내 뮤지션 중에서는 전인권이다. 작년에 들국화 40주년 기념으로 만났는데 냉면으로 함께 식사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고. 특유의 화법이 워낙 독특하신 분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40주년 소감을 여쭤보니 “음악에는 서리가 앉지 않았다”라고 답하셨는데 참 그분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음악 취향도 궁금하다.
악뮤 음악이 좋다. 이번 ‘소문의 낙원’ 첫 시작 가사도 보고 어떻게 젊은 나이에 저런 음악을 쓸 수 있을까 하며 엄청난 감동과 부러움을 느꼈다. 알프스 산맥에서 소녀 하이디가 정말 인간의 소박한 것부터 채워주는 그런 기분이었다. 곡을 만드는 이찬혁만이 아니라 동생 이수현의 노래 실력도 엄청나고. 21세기 한국 가요계 최고로 악뮤를 뽑고 싶을 정도다.

마지막은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이태수 기자의 인생 음악은 무엇인가.
어릴 때 심신의 무대를 TV에서 볼 때마다 엄청 좋아했다고 부모님에게 많이 얘기를 듣기도 했고, 가정용 캠코더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엉성하게 따라 부르는 영상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분기점이 된 아티스트는 보아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TV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가 격렬하게 춤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일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오리콘 차트 1위도 실시간으로 챙겨 봤을 정도다. 당시 친척이 방송국 PD인 덕분에 ‘대학에 합격하세요’라고 적힌 음반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몇 년 후 사인 CD 증정 이벤트에 저렇게 사연을 보냈더니 운 좋게 당첨되어서 엄청 기뻤던 기억도 난다. 아직도 집 어딘가에 잘 보관하고 있다.



진행: 임진모, 한성현, 임동엽, 박시훈
정리: 한성현
사진: 박시훈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