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코이버니 인터뷰

베리코이버니(verycoybunny)

by 신동규

2026.06.18

펑크의 무차별성과 소음을 끌어안은 슈게이즈의 우울 정서가 놀랍게도 인디 신의 주류로 자리 잡은 오늘날, 그만큼 빠르게 양산된 음악이 넓지 않은 바닥을 채우는 실정 속 음반 미학과 성찰의 노랫말로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음악가는 빛나기 마련이다. 두 번째 정규 앨범 < Bunny Tale >로 돌아온 베리코이버니가 그렇다. 본디 언더그라운드를 향한 박수의 기저에는 응원이 함축되어 있는 법. 사랑, 용기, 자유로 삼등분하여 동화의 언어로 풀어낸 자전적 콘셉트 음반에는 듣는 이에게 무얼 남길 수 있을지에 관한 본질로서의 고민과 이와 발맞춰 성장하는 예술가의 자아가 녹아있다. 인디 시장과 주류의 그것이 거리를 좁히는 와중 여전히 DIY 정신을 되새기며 본인만의 울타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그에게 궁금증이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순서. 이즘이 직접 물었다.



약 4년 만의 정규 앨범 < Bunny Tale >을 선보인 지 3개월 정도 지났다. 후련한 마음이 드나.

이제는 후련함을 넘어선 듯하다. 이미 세상에 던져진 작품에 남은 감정은 외려 적다. 발매 기념 공연도 성공리에 마쳤으니, 지금은 ‘또 다른 챕터로 나아가야지’와 같은 마음과 함께하고 있다.


< Bunny Tale >은 동화적 구성이 인상적인 콘셉트 앨범이었다. 직접 소개해 준다면.

나를 이루고 있는 가장 큰 감정 세 가지를 페르소나 삼아 독창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시각으로 일전에 써둔 곡들을 다시 펼쳐 보니 모든 것이 그 위에 존재했고, 자연스럽게 테마별로 묶을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세 정서와 이를 다룬 세 개의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하는 음악 자체는 대중적인 편이 아니라는 생각은 원래 가지고 있었다. 주류와는 확실히 다른 마이너 계열 아닌가. 따라서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동화였다. 누구나 어릴 적 한 번쯤은 읽었을 동화가 난도를 낮추기에 제격이라는 뜻이었다.


동화를 본뜬 의도가 앨범명에서부터 선명하다. 그래서인지 그간의 음악보다 밝아진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밝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동화를 의도했으니 밝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들진 않았다. 동화 콘셉트를 입힌 건 오히려 음악 작업이 거의 끝났을 때였다. 구성 때문에 환해지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사랑을 주제로 한 구간이 존재하다 보니 그렇게 느끼신 게 아닐까 싶다. 반대로 용기의 영역에선 그 대척의 거침없는 매력이 존재한다.


퍼포먼스를 비롯한 비주얼 콘텐츠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열심히 준비했다. 가능하면 모든 수록곡에 비주얼라이저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실행했을 것이다. 그만큼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고, 전곡은 어렵더라도 대표 트랙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색창을 힘껏 활용한 ‘Dream hacker’의 뮤직비디오가 떠오른다) 작품을 발매하고 그것을 알릴 외부적 요소를 어필할 시기가 되면 언제나 지갑 사정이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아쉽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가진 능력과 현재의 수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AI로 뒤덮인 오늘날과 영화 < Her >를 떠올렸다. 애초 뮤직비디오이면서 동시에 가사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도 만족스럽고 팬들도 좋아해 줘서 뿌듯함이 크다.



앨범 단위의 작업물을 포함해 싱글 발매까지 그간 쉼없이 달려 온 인상이 강하다.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음악이 업이 되고 나서부터 서서히 바뀐 것 같다. (더구나 계속 혼자 활동 중이지 않나) 그렇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처럼 자유도가 높은 환경이 맞는 것 같다. 주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이 정확히 안다. 다만 책임도 내가 다 져야 하는 만큼 부단히 움직일 뿐이다.

베리코이버니를 떠올려 보면 음악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과 수수한 일상 간의 대비가 선명한 느낌이다. 환경에 따라 자신을 전환하는 나름의 스위치를 두고 사는 편일까.
그렇진 않다.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모드를 변경한다는 생각은 크게 해본 적 없다. 우울하든 행복하든 결국 모두 ‘나’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변화라고 생각한다.

작업에 가장 난항을 겪었던 곡이 궁금하다.
가운데 삽입된 ‘Fluttering bridge’나 ‘The wind ferry’와 같은 인터루드 트랙이 어려웠다. 노랫말 없이 소리로만 메시지를 표현해야 한다는 일에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다른 곡은 비슷했다. (가장 아끼는 곡도 궁금하다) 타이틀 곡 후보로 끝까지 고민했던 ‘Dream hacker’나 ‘Help!’도 정말 아끼는 곡이지만, 지금은 ‘Kairos’가 떠오른다. 나 자신에게 직접 위로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작업이었다. 완성해 가면서 실제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 Bunny Tale >을 만들며 자주 들었던 음악이 있다면.
울프 앨리스를 평소 좋아하는 편이라 작업 유무를 떠나 계속 들었고, 근래라면 채플 론도 빠질 수 없다. 파라모어를 고등학교 다닐 적부터 좋아했는데, 밴드의 보컬인 헤일리 윌리엄스의 작년 음반 < Ego Death At A Bachelorette Party >가 떠오른다. 사실 음악을 편식하는 편이 아니라 이것저것 참 많이 듣는다. 편곡이나 사운드 메이킹 면에서는 라이드나 예 예 예스도 생각이 났고, 수프얀 스티븐스나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을 들으며 폭을 넓히기도 했다.

마지막은 공식 질문이다. 지금의 베리코이버니를 만든 인생 음악은 무엇인가.
앨라니스 모리셋의 ‘Ironic’. 선생님의 권유로 알게 된 고등학생 시절 첫 만남은 나와 다른 이야기 같았고, 이해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소리 자체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거칠면서도 순수한 보컬도 참 좋았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바쁘게 살아가다 언젠가 다시 들어보니 이젠 가사마저 공감이 되더라. 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여전히 놀랍다.

하나 더 고르자면,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를 뽑고 싶다. 영화 < 그을린 사랑 >에 삽입된 곡이다. 나는 영화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몇 번씩 보진 않는다.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을 쭉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다. 뭔가 좋은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끝까지 다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봤다. 어느 순간 소름이 돋기 시작하더니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가장 좋았다. 언제든 나를 생각과 심연의 늪으로 끌고 가는 곡이다. 

* 본 콘텐츠는 이즘 뮤직 클라우드의 180번째 에피소드와 추가 질문, 응답을 바탕으로 이뤄진 인터뷰를 엮었습니다. 본문에 실리지 않은 더 깊은 이야기는 아래 팟캐스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진행: 한성현, 남강민, 신동규
정리: 신동규
사진: 남강민
신동규(momdk778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