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에디터들의 첫 레코드

터치 한 번이면 모든 음악과 닿을 수 있는 스트리밍의 시대. 더 이상 감상의 영역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음반을 소장한다는 것은 단순한 청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가수와 나를 잇는 사적인 연결 고리, 가장 간단한 아카이브, 취향을 드러내는 각별한 오브제. 지금도 누군가는 묵묵히 판을 모으고, 자신만의 역사를 담는다. 이즘 역시 수집가로 둘째가라면 아쉬울 이들이 모였으니 각자 간직한 음반들에 얽힌 이야기도 다양하지 않을까. 어느새 빼곡해진 책장 앞, 필자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들을 하나둘 꺼내 든다. 깊숙한 곳에 넣어둔 첫 레코드 위의 먼지를 털어내며. (남강민)

레드벨벳(Red Velvet) < Ice Cream Cake > (2015)
한창 아이돌에 눈뜰 시기인 2014년, 사촌 언니가 보여준 레드벨벳의 ‘행복’ 뮤직비디오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가사는 물론이거니와 비주얼 연출, 원색으로 맞춘 멤버들의 머리색까지 파격적인 요소 하나하나가 눈을 빙글빙글 돌게 했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서울이었던 잠실 핫트랙스로 달려가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음반이 바로 이들의 후속작 < Ice Cream Cake >다. ‘Somethin kinda crazy', ‘Stupid cupid'와 같은 수록곡의 달콤함에 기묘한 서늘함을 더한 더블 타이틀곡 ‘Ice cream cake', ’Automatic’을 통해 K팝이 얼마나 입체적인 긴장감과 장르적 서사를 품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레드벨벳은 센세이셔널했던 신인 시절을 지나 정상을 찍은 베테랑이 되었고, 당시 이 앨범과 같은 곡을 만들어서 그룹에게 주겠노라 다짐하던 나는 음표 대신 글로 음악을 매만지는 상상도 못한 자리에 앉아있다. (김지현)

지드래곤(G-Dragon) < Heartbreaker > (2009)
십 대 시절 나는 반에서 제일가는 “권지용 마누라”였다. 딸의 성향을 잘 파악했던 엄마는 전교 일등 시 지드래곤 첫 솔로 앨범을 사주겠단 조건을 내걸었고 초인적 힘을 발휘해 < Heartbreaker >를 방구석 명당에 모셔둘 수 있었다. 그 뒤로 수록곡을 닳고 닳도록 들었다. 성인 되기 직전까지 컬러링이었던 ‘소년이여’와 삼년간 모닝콜을 책임진 ‘1년 정거장’은 지금도 가사가 툭 치면 흘러나온다. 결정타는 산다라박이 피처링한 'Hello'. 등굣길에 흥얼거리며 듣다가 영어 쪽지 시험에 내 이름 Hanseul 대신 Hello를 적어 빵점 처리 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의 얼굴이 양각으로 새겨진 앨범 표지와 오른쪽 속눈썹을 타고 흐르는 검은 눈물을 보면, 처음이라 과했고 그래서 더욱 진심이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김한슬)

빅뱅(BigBang) < Still Alive > (2012)
물려받은 팬심이 시작점이다.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K팝 DNA가 반응한 곳은 또래보다 언니들이 선망하던 빅뱅이었다. 어린 나이 탓에 팬의 내공은 수집에서 나오는 줄만 알았다. ‘Fantastic baby’로 ‘입덕’을 인정한 후 중고 거래와 팬카페를 오가며 지난 굿즈와 음반을 모으던 내게 새로운 앨범의 등장은 완벽히 치르고픈 신고식과 같았다. 발매일을 달력에 적어 기다리고, 기대 평을 쓰고, 직접 음반 가게에서 구매했던 < Still Alive >는 수집에 급급했던 다른 전리품과 달랐다. CD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른 후 알록달록한 가사집을 펼쳐 음악과 함께 읽어내리는 의식은 지금까지도 새 음반을 구매할 때의 루틴이 되었을 정도니 당시의 전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게 미친 소녀들은 똑똑’하다는 가사에 순순히 광인을 자처했던 열두 살의 열정. 13년이 지난 올해, 여전한 아우라로 돌아온 추억의 우상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불을 붙여본다. (남강민)

은지원 < Platonic > (2009)
나와 비슷한 시대에 유년기를 통과한 이라면 대형 마트마다 있었던 음악 코너를 기억할 것이다. 먼지 쌓인 과거의 테이프부터 최신 아이돌, 조악한 커버의 가요 컴필레이션이 한데 진열된 공간. 부모님이 면도날 혹은 과일을 고르실 때 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뻗은 CD는 다름 아닌 은지원의 정규 5집이었다. 이유야 간단하다. < 1박2일 >을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를 자주 접해 친숙했던데다가 중독적인 도입부의 ‘싸이렌’이 당시 제법 인기를 끌었으니까. 웬일로 장난감이 아닌 물건을 사달라 조르는 걸 보신 어머니는 흔쾌히 쇼핑 카트에 음반을 넣어 주셨고 플레이어에서는 며칠간 영어 회화 대신 ‘Out of control’과 ‘160’이 흘러나왔다. 이후 학창 시절 내내 용돈을 모아 꾸준히 여러 앨범을 샀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바이닐 수집에 깊게 빠졌지만, 여전히 본가 책장 한편 최고(最古) 애장품들의 자리엔 < Platonic >이 자리한다. (박승민)

빈지노(Beenzino) < 2 4 : 2 6 > (2012)
때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우리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사촌 형은 나에게 질문을 건네 왔다. “힙합 좋아해?” 그 당시 힙합은 물론이고 음악에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오직 축구 게임에만 온 신경을 쏟던 나이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집요했던 권유를 더는 뿌리치지 못하고 진열대에 놓인 CD 한 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이상하게 생긴 낙타 그려져 있는 거, 좋아?”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집에 가서 들어보라며 레코드를 건넸고, 사람 성의를 봐서 한번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 2 4 : 2 6 >을 접했다. 돌아보면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하굣길마다 흥얼거린 ‘Aqua man’, 대학 친구들과 거나하게 취한 채로 삶을 논할 때면 어김없이 재생한 ‘If I die tomorrow’, 이후로도 줄곧 빈지노의 음악이 내 삶에 스며든 순간 모두. 아직도 한 곡 한 곡씩 들을 때마다 지난 날의 공기가 느껴진다. (박시훈)

< Flashdance (Original Soundtrack) > (1983)
난생 처음으로 내 돈으로 산 카세트테이프다. 아이린 카라의 주제곡 ‘Flashdance... what a feeling’을 좋아했지만 영화의 주연을 맡은 제니퍼 빌즈를 더 사랑했던 나는 이 테이프를 가져야만 했다. 표지에 있는 제니퍼 빌즈를 곁에 두고 싶어서였다. 내가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연소자 관람불가’ 딱지는 제니퍼 빌즈와 내 사이를 가로막는 바리케이드였고 이것이 억울했던 나는 카세트테이프 구입으로 분풀이를 했다. 그때는 도나 서머의 ‘Romeo’가 라디오에 흘러나오기 전이었고 마이클 셈벨로의 ‘Maniac’과 조 에스포지토의 ‘Lady lady lady’가 싱글로 커트되기 전이었으니까 나의 설렘 혹은 분노 게이지는 꽤 높았던 것 같다. 이 음반에서 히트하지 못한 카렌 카몬의 ‘Manhunt’와 사이클 파이브의 ‘Seduce me tonight’을 더 좋아했으니 나의 삐딱한 성정(性情)은 타고났다보다. (소승근)

소울컴퍼니 < The Bangerz > (2004)
허세 묻은 돈을 지불했더니 돌아온 건 삶에서도 리듬을 타는 방법이었다. MP3 첫 폴더 자리를 꾸준히 지킨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 소울컴퍼니의 첫 모음집 < The Bangerz >는 사춘기 조언이 필요할 때마다 14천원 값어치 이상의 문장을 8마디씩 떨궜다. 까다로운 비트 엮은이 역할을 자처한 더 콰이엇, 박자에서는 늘 임전무퇴 자세로 임한 한국어 랩 듀오 최적화, 카리스마와 서정성을 겸비한 키비, 운명적 구절을 소년의 가슴에 새기고 얼마 전 세상을 뜬 시인 제리케이까지. 마음의 무게가 커질수록 새롭게 들리는 이 강의를 학습할 때마다 머리와 마음이 수차례 가격당했다. 그야말로 철저한 힙합 조기 교육의 현장이다. ‘아에이오우 어!?’로 라임 개론을 익히고, ‘그의 선택’으로 밤새 랩 어문학을 고민, ‘Next big thingz’의 들숨과 날숨을 수줍게 체험하다 래퍼의 꿈을 접은 지 20여 년. 태초의 레코드부터 비롯된 예비 청년의 랩 인간형 내재화는 막을 수 없었다. 그는 가차 없이 인생관을 낭만과 고뇌로 수정해버렸고 진로를 숫자 대신 언어로 틀어버렸다.(손민현)

더 콜링(The Calling) < Two > (2004)
“시험도 끝났는데, 이번 주만 놀면 안 돼요?” 친구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반장이 총대를 멨다. 그러자 선생님은 게임을 제안했다. “영어 공부도 할 겸 팝송 열 곡 틀어줄 테니 절반 이상 맞추면 쉬자” 초등학교 5학년의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매주 금요일 < 뮤직뱅크 >가 끝나면 흰색 아이리버 MP3에 당일 순위로 갱신된 목록을 담아 달달 외면서도 주말이면 보이즈 투 멘과 메탈리카의 시디를 찾으며 일찌감치 애늙은이 소리를 듣던 별종이기 때문이었다. ‘Billie Jean’, ‘Lose yourself’, ‘My love’, ‘Because of you’… 목표 달성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새파란 자존심을 건든 건 어차피 맞히지 못할 것이라며 들려준 선생님의 애정 곡. 우리에게는 ‘Whenever you will go’로 익숙한 더 콜링의 소포모어 앨범 속 ‘Our lives’였다. 상업 성과도, 평단의 호응도 받지 못했던 이 곡은 괜한 오기를 부추겨 < Two >에 젖게 만들었고, 보컬의 미모에 굴복해 끝내 음반을 주문하기에 이르렀으니 당신이 무심코 들려준 노래가 어느덧 세 자릿수를 넘긴 제자의 컬렉션, 그 시작이었음을 그대는 알고 계시려나. (신동규)

딘(DEAN) - < 130 Mood : TRBL > (2016)
딱 십 년을 맞은 딘의 등장이 아직도 또렷하다. 세련된 음악, 발군의 음색, 수려한 외모를 고루 갖춘 이 국내 알앤비 왕자의 데뷔작에 팬덤과 대중 모두가 앞다퉈 헹가래를 쳤다. 고등학생이었던 나 역시 그의 이름이 피쳐링에라도 올랐다 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음악을 탐닉하고 찬양하기 바빴다. 생일을 기념해 학급 전체에게 받았던 롤링 페이퍼마저 ‘딘과 꼭 만날 수 있기를’이 기록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그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날 같은 반 여학우가 하굣길에 선물로 내밀었던 보라색 커버. < 130 Mood : TRBL >은 그렇게 인생 첫 음반 자리까지 파고들었다. 원체 수집 욕구가 없는 나의 몇 안 되는 소장품이지만 강산이 변하자 애써 찾지 않게 되었다. 당시 홀로 품었던 연정이야 돌아보니 찰나의 추억으로 웃어넘길 수 있어도, 몇 개월 전 그 아이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은 탓이다. (안준용)

엑소(EXO) < XOXO (Kiss & Hug) > (2013)
2001년 김건모 정규 7집 이후 12년 만에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는 뉴스가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엑소가 데뷔하기 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샤이니 이후 새로운 남자 아이돌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보다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게 더 중요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다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무대 위에서 칼각으로 춤추는 모습을 봤고, 시선을 빼앗겼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 묘한 친근감을 줬는지, 잘나가는 선배를 보는 듯한 설렘인지, 아니면 그들이 짜놓은 세계관의 매력 때문인지. 어쩌면 세 개 다일 수도 있겠다. 확실한 건 앨범을 듣고 나서 그 마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으르렁 (Growl)'의 중독적인 후렴과 ‘Baby, don’t cry (인어의 눈물)‘의 인상깊은 피아노 선율, '나비소녀 (Don’t go)'와 '피터팬 (Peter Pan)'의 풋풋함까지 곱씹을수록 좋았다. 그렇게 용돈을 모아 산 첫 레코드는 당시 나를 아이돌 세계로 눈 돌리게 만든 < XOXO (Kiss & Hug) >다. (유성아)

마룬 파이브(Maroon 5) < Red Pill Blues > (2017)
작품성을 인정받은 < Songs About Jane >도 아니고 히트곡이 즐비한 < Overexposed >도 아니고 상업성마저 하락세였던 < Red Pill Blues >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의아했지만 차근차근 돌이켜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Beautiful goodbye’를 반복 재생하고 알림으로 설정해서인지 ‘Sugar’의 인트로만 들어도 흠칫 놀라던 2015년, 함께 하교하던 친구가 끝나자마자 마룬 5의 공연을 보러 간다고 말해주었다. 다음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한 후 2년이 지나 나온 앨범이 < Red Pill Blues >다. 당시 CD를 구매하면 커버 아트가 그려진 99조각짜리 퍼즐을 증정한다는 이벤트를 보고 바로 구매했다. 선공개 곡 ‘Cold’를 들었을 때의 아쉬움은 일련의 과정으로 이미 생겨버린 애정을 이길 수 없었다. 첫 콘서트에 대한 기억도 ‘Girls like you’와 알파빌의 ‘Forever young’ 매시업에 이어 ‘Lost stars’가 나왔던 순간과 4년 전의 대화를 잊지 않은 친구와 무반주 ‘Don’t wanna know’ 떼창에 동참하던 모습이니 여러모로 개인적인 의미를 많이 가지고 있는 앨범이다. 아, 참고로 퍼즐은 아직 포장조차 뜯지 않았다. (이재훈)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 Wasting Light > (2011)
첫 구매가 첫 레코드는 아니다.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각종 유통사부터 SBS에 먹힌 MTV까지 관련 회사들이 이벤트로 앨범을 나눴다. 어느 날 택배로 날아온 퀸의 < Greatest Hits > 시리즈가 시작이었고 원하는 것을 고를 순 없어도 열심히만 하면 다양하게 구할 수 있었다. 차근차근 록과 팝에 대한 애정을 쌓으며 무전취청하던 중 발견한 푸 파이터스를 듣고 몸과 마음과 지갑이 동시에 열렸다. 적당히 대중적이고, 적당히 거친 것이 딱 취향을 저격했다. 음악에 대한 애정에는 의심이 없었지만 음반 안에 들어있던 작은 필름 한 조각에서 의문이 생겼다.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탈디지털을 하고자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을 했고, 그 마스터 릴 테이프 원본을 잘라 팬들에게 돌린 것이었다. 낭만 넘치지 않는가. 어찌 보면 음향을 전공한 나에게 운명 같은 앨범이 아닐 수가 없다. (임동엽)

비틀스(The Beatles) < The Beatles > (1968)
음반산업은 청소년 용돈문화의 산물이란 속설 그대로 나의 첫 음반구매는 1975년 고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준 용돈에 의해서였다. 서울 공덕동 로터리 소재 ‘최대포집’ 옆의 레코드점 주인은 인자했고 빽판 LP 수백 장을 일일이 꺼내보고 집어넣으며 음반 ‘구경’에 몰두한 나를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으며 지켜봤다. “음반 모아요?” “네 그러려구요. 처음 사는 거에요.” “비틀스 화이트 앨범이네. 시작은 비틀스여야지.” 당시 백판 한 장 가격은 280원. 더블 앨범이라 560원을 지불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는데 라디오로 들은 ‘Hapiness is a warm gun’, ‘Martha my dear’와는 이상하게 느낌이 달랐다. 이후 앨범에 막대한 감정적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정신없는 과잉 상태가 지속됐다. 입시가 아닌 ‘음악으로!!’ 가야 했다. 어느덧 비틀스와 빽판은 음악 훈육의 천사가 되어있었다. (임진모)

넬(Nell) < Moments In Between > (2021)
사실 CD를 직접 사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좋아하는 걸 모으는 친구들과 다르게 극도로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했던 나는 소장용으로 전시할 물건을 사느니 음원을 한 번 더 듣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 완고한 가치관에 균열을 낸 건 코로나 시기 보러 갔던 넬의 9집 발매 기념 공연이었다. 작업을 포함해 뭘 해도 즐겁지 않았다던 밴드의 고백은 전례 없는 적막에 잠식된 마음을 두드렸다. 유난히 맴돌았던 멘트와 생각을 보통의 과거로 남기길 거부하며 새벽까지 일기를 썼는데, 그럼에도 어딘가 헛헛해 난데없이 < Moments In Between >을 주문했다. ODD 플레이어까지 함께 구매해 처음으로 오디오 리핑까지 시도했으니 이쯤 되면 역사에 반하는 첫 경험을 의미 있게 만들고자 했던 나름의 정당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뒤론 좋았던 콘서트를 보고 나오는 길에 작은 응원의 마음을 보태 꼭 그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곤 한다.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남겼던 징표가 새로운 습관을 만들게 될 줄이야. 때론 별거 아닌 것 같은 순간에서 전환이 일어난다. (정하림)

아델(Adele) < 21 > (2011)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 Back To Black > (2006)
왜 혼자 치사하게 두 장이냐고? 오해 말라, 정말로 동시에 산 기억이 생생하니까. 배송비 절약을 위해 묶음 주문하긴 했지만 실제 대학 선후배이자 21세기 영국 백인 여성 소울 가수의 대표인 둘이니 개연성이야 넘친다. 먼저 안 건 아델이다. 2011년 < 슈퍼스타K3 >에서 참가자 신지수가 부른 ‘Rolling in the deep’을 듣고 가수를 찾아보면서 자연스레 그가 존경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접하게 되었고, 풍성한 성량을 자랑하는 후배와 이미 세상을 떠난 선배의 처절한 목소리가 이루는 대조에 빠져들었다. 그 나이에 이해할 감수성은 아니었지만 일부 허세라 한들 당시 느낀 충격과 감동은 진짜였다. 음악과 함께하는 삶으로 나를 밀어 넣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 둘은 수집품이 늘어나고 취향이 바뀌는 와중에도 내 CD 수납장 맨 아랫줄 왼쪽 VIP석을 지키고 있다. (한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