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타리스트 유병열ㅣ박수석의 겟 어 기타

유병열

by 박수석

2026.07.31

대중음악의 곁은 기타가 지켰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분신 삼아 많은 사람들이 연주 혼을 불살랐고 소수의 혁신가들이 일으킨 현의 진동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마저 뒤흔들었다. 이즘은 흘러간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빛낸 기타리스트의 전설들을 선정해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지판(指板)이라는 대지 위에 그들이 남긴 굵직한 발자국을 좇는다.



기타리스트 유병열에게 변화란 곧 창작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대중에게 가장 익숙하고 대표적인 작업은 팀의 시작부터 4집 < 한국 록 다시 부르기 >까지 함께한 윤도현밴드 시절이지만, 그가 그려온 연주 궤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다. 팝 선율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비갠후, 하드록으로 돌아간 바스켓노트, 그리고 YBY 컨템포러리 밴드와 솔로 활동까지.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중간해진 것 같다는 겸양의 자세와는 달리, 그가 지나온 길에는 소속을 불문하고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울림이 선명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발걸음을 옮긴다. 여러 소규모 공연에 더해 그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유병열 뮤직아카데미’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음악 인생의 2막을 바삐 열고 있다. 일찍이 많은 경력을 쌓았음에도 이제야 본인의 이름을 내걸 자격이 생긴 것 같다고 밝힌 그는 5년 전의 인터뷰에서보다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치열하게 싸웠던 지난 시간이 어느덧 담담한 여유로 바뀌기까지의 여정, 그곳에서는 진정한 달관에 이른 음악가의 철학이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음악 아카데미를 개원해 운영 중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예전 같으면 이름을 걸고 학원을 운영한다는 게 왠지 부끄러워서 못 했을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나이도, 경력도 어느 정도 쌓였고, 무엇보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재미있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과거에 레슨을 할 때는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 내야 된다는 생각에 많이 다그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음악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다독이는 쪽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나 얻은 것이 있다면?
행복을 얻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계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컸었다. 그런데 강의 사이 남는 시간에 기타를 안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니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일도 굉장히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결국 음악을 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서 연주 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겼는지.
많이 틀린다. (웃음)  옛날에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실수에 대한 강박이 심했다. 지금은 ‘사람이 하는 건데 틀릴 수도 있지’라며 스스로 웃어넘긴다. 젊을 때보다 손이 덜 굴러가는 것 같아도 나름 나이에 맞게 간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연주하고 있다.



처음 기타를 시작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교회에서 통기타 치는 형을 보고 저기에 내가 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타를 처음 잡게 됐다. 그리고 6개월간 악랄하게 연습해 그 자리를 뺏었다. (웃음) 그 뒤 메탈을 접하고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집을 나와 6년을 떠돌았다.

물론 힘은 들었겠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점들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당시 한국의 밴드 신은 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저변이 넓지 않아 다양한 음악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처럼 유튜브 같은 매체도 없어서 그저 많이 찾아 들으며 기타로 어떻게 쳐야 할지 열심히 연구했다. 나이트클럽 무대도 많이 오르곤 했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실력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장르를 커버해야 하다 보니 연주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무대 경험도 쌓이면서 실전 감각을 많이 키울 수 있었다.

우러러보던 기타 연주자는 누구인가.
어릴 때는 리치 블랙모어를 참 좋아했다. 지금 와서 봐도 파워, 정교함, 멜로디의 아름다움까지 모두 갖춘 괴물 기타리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괴팍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무대 위에서의 그 매서운 눈빛마저 로커로서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현시점에서 또 다른 연주자를 생각해 보면 제프 백을 꼽고 싶다.

그렇게 완성된 유병열 기타의 핵심은 무엇인가.
여러 스타일의 중간 선상에 걸쳐 있어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좋게 표현하자면 올라운더랄까. 완전히 하이 테크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테크닉은 갖추고 있고, 동시에 블루지한 표현도 선호하면서 팝적인 멜로디도 좋아한다. 욕심도 많고, 장르 별로 다양한 음악을 좋아해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답변대로 윤도현밴드, 비갠후, 이 퍼블릭, 바스켓 노트 등 많은 팀을 거치며 각양각색의 곡들을 썼다. 그중에 애착이 가는 곡을 꼽자면?
솔로 활동 첫 EP 수록곡인 ‘Who am I’.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곡이다.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나에게도 의미가 크다.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여러 기타를 거쳤을 텐데 가장 손에 잘 맞는 기타는 무엇인가.
길모어(Gilmour) 기타를 가장 선호한다. 브랜드의 첫 엔도서로 활동하며 쭉 연주해 왔으니 20년 넘게 사용 중인 셈이다. 넥의 두께도 손에 딱 맞고, 음색도 전천후로 활용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구체적인 스펙을 말하자면 여러 스타일을 아우르기 위해 3단 대신 5단 픽업 셀렉터를 고수하는 편이다. 



최근 규모가 커지고 있는 밴드 신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전체적으로 팀의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어 있다. 우리 때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우는 친구들도 많아서 고등학생부터도 어느 정도 수준은 다 갖추고 있다. 한때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가 연주 역량이 30년 정도 뒤진다고도 했었는데, 이젠 우리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아직 과도기를 더 거쳐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인기를 얻는 젊은 록 밴드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며 더 건강하고 탄탄한 신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주목하고 있는 젊은 기타리스트가 있는지.
밴드 카디(Kardi)와 ABTB에서 활약 중인 기타리스트 황린이 인상적이다. 세련된 요즘 스타일이면서도 하드록의 거친 질감을 겸비해 전형적이지 않고 신선하다. 마냥 예쁘장한 게 아니라 어디서 고생을 좀 해본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로커의 스피릿이 살아있어 눈길이 간다.



진행: 임진모, 박수석, 신동규, 임동엽
사진: 신동규
정리: 박수석
이미지 제작: 박시훈

박수석(pss1052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