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트럭하이재커스 인터뷰
피치트럭하이재커스(Peach Truck Hijackers)
‘밴드 붐은 온다’나 ‘나락도 락이다’와 같은 유행 문구는 일종의 양적 팽창 선언이었다.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공연장은 활기를 머금었고 기타를 메고 대중교통에 오르는 학생들도 전보다 자주 목격되었다. 이제 필요한 건 볼륨보다 다채롭고 신선한 빛깔임을 모두가 느끼던 요즈음. 셀프 타이틀 < Peach Truck Hijackers > 한 장을 툭 발매한 신인은 당돌하게 복숭앗빛을 선점하고 탈취했다. 스스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 위해 굿즈나 웹사이트부터 자체 제작한 DIY 밴드가 무대에서 수백 명에게 감동을 선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반년 남짓이었다.
피치, 트럭, 하이재커스. 이름에 모든 게 담겨 있다. B급 코미디 영화 제목이 연상되는 밴드명처럼 동문 친구 사이의 즉흥 대화는 재빠르고 익숙한 유희와 애정 어린 농담으로 가득 찼고, 픽업 트럭을 타듯 내달리는 음악적 기반을 말로 풀어낼 때는 사뭇 진지하고 확고했다. 형식적인 질문 하나에도 유쾌한 일화와 팀을 향한 열정을 막힘없이 뽐내던 평일 오후 10시, 신인 밴드가 늦은 밤 행한 이즘 사무실 점령은 그들의 음악만큼 즐거웠다. 애써 꾸미지 않아 귀중한 이들의 꾸밈 없는 대화를 최대한 첨삭 없이 전한다.

왼쪽부터 김규리(베이스), 이청경(보컬, 기타), 이세정(드럼), 이정효(기타)
2025년 11월 정규 1집 < Peach Truck Hijackers > 발매 이후 EBS < 헬로루키 >나 KT&G 상상마당의 < 밴드 디스커버리 > 등 신인 밴드로서 얻을 수 있는 영예는 모두 쟁취해 가고 있다. 삶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
이청경: 전산 오류가 아니었을까에 대해 의심할 만큼 이만한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고 발표 전까지 모두 긴장을 놓지 못했다. 모든 게 꿈만 같지만 우선 가장 크게 다가온 마음의 변화는 2집에 대한 걱정이다. 큰 고민 없이 발매한 데뷔작보다 많은 분들께서 듣게 될 테니 진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생겼다.
김규리: 공연에서 에너지를 많이 느낀다. 피치트럭하이재커스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노래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관객분들도 그런 에너지를 잘 느끼는 것 같다. 라이브로 처음 보고 좋았다고도 말씀해 주시고, 기타 리프를 따라 부르고, 손 모양도 해주셔서 우리도 덩달아 신나고 있다.
같은 대학교에서 밴드 활동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진지하게 음악의 길로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규리: 이미 같은 학교 같은 과 동아리로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당시에는 음악의 길을 진지하게 걷고자 큰 결심을 다진 상태는 아니었다. 지금 그 경계에 있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있지만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하자는 큰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무대에서의 모습이나 작업물은 꽤 진지해 보이는데) 사실 연주에 있어서는 실용음악과를 전공한 동료들에 비해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인가, 진지함을 내려놓고 오히려 편하고 즐겁게 할 수는 있는 것 같다.
영화처럼 낭만적인 방식으로 순수한 형태의 록 밴드를 꾸린 것 같다. 그렇다면 멤버 각자가 생각하는 ‘록’은 무엇인지.
이청경: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Rock & roll’을 참 좋아한다. 가사가 참 재밌는데 5살 여자아이 제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함께라면 언제든 즐거워질 수 있다’라고 고백하는 곡이다. 이처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언제 어디서든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이 록이라고 생각한다.
이정효: 기타와 베이스, 드럼의 구성만 봐도 나는 항상 가슴이 뛴다. 정말 좋은 록 음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세정: 아무래도 드럼 포지션인 만큼 목에 담을 달고 사는 음악이다. 드러머로서 구현하고 싶은 이상적인 목표는 있다. 드림시어터의 마이크 포트노이, 러쉬의 닐 피어트처럼 ‘몬스터 키트’ 세팅 상태에서 연주하고 싶다. 360도로 드럼 키트를 수십 개 깔아두고 앞에서도 치고 뒤에서도 치고 하는 구성이다.
김규리: 우리가 신나면 곧 록 아닐까. 사실 우리 음악과 다르게 평소에 정적인 걸 많이 듣는 편인데 다른 장르에서도 좋은 베이스 라인이 들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이것도 ‘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는 하츠투하츠 같은 K팝도 잘 듣고 있다.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 취향이 다양하다. 매주 진행하는 플레이리스트 큐레이션도 이런 스펙트럼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 시작하게 된 건가.
이청경: 처음에는 멤버 각자 음악 취향이 다르다 보니 서로를 정확히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끼리만 음악을 나눠 듣기는 조금 아깝단 생각이 들어 공개 큐레이션을 만들었다. 돌아가면서 주 1회 에피소드를 진행 중인데 지금 꽤 밀려있어 아쉽다.
그럼 성장기에는 어떤 음악을 들었고 좋아했는가.
이정효: 어릴 적부터 리버틴즈를 많이 들었다. 박자도 안 맞고 줄이 하나쯤 빠져도 그냥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테크닉에 대한 강박을 버리게 된 것 같다. 아, 물론 너바나도 참 좋아했다.
이세정: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 MP3에는 힙합, 그중에서도 붐뱁만 담겨있었다. 분노를 표출하는 가사들이 내 정서에 맞았다. 이후 너바나부터 시작해 록을 듣게 되었고,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박자나 라인에서 나오는 그 쾌감을 사랑한다.
이청경: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집에 CD가 많았다. 그중 예쁜 앨범 커버를 골라 듣다 보니 오아시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다양한 아티스트를 접하게 되었다. < The Velvet Underground >를 지금도 가장 좋아하고 이후 비틀스나 스미스 등으로 넘어가며 본격적으로 록에 빠지게 되었다.
김규리: 학창 시절 힙합도 듣고 여러 음악을 들었지만, 록 음악에는 사실 큰 흥미가 없었다. 솔직히 조금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 합주를 시작하며 너바나, 마이 케미컬 로맨스, 뮤즈 등을 접하며 애정이 생겼고, ‘Hysteria’를 따라 치는 등 합주에 재미를 붙이니 어느 순간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더라. 그렇게 베이스를 다루며 로열 블러드 같은 밴드도 파기 시작하고 빠져들게 되었다.

이세정(드럼), 이정효(기타)
본격적으로 앨범과 관련된 질문이다. 전반부는 ‘Compressed annoyance’부터 ‘Rubbish’와 ‘Fuck you’ 등 강렬한 곡들이 이어진다. 앨범에서 하고 싶은 말은 어디서부터 나왔는가.
이청경: 일단 강한 곡들을 a 사이드로, 분위기가 다른 곡들은 b 사이드로 분류해 놓았다. 곡의 주제는 여행하면서 겪었던 인종차별과 같이 살면서 겪은 부조리한 상황을 다룬 경우가 많다. ‘Compressed annoyance’는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건가’란 생각이 들어 감정을 토하듯이 내뱉게 된 곡이다.
첫 곡 ‘Compressed annoyance’의 오프닝은 베이스 김규리가 맡았다. 처음 곡을 들었을 때 어땠는가.
김규리: 청경이 데모를 여러 개 보내줬는데 모두 느낌이 좋았다. 심지어 베이스 리프를 기타로 녹음해서 보내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대로 된 녹음도 아니고, 개인 방음실에서 노트북으로 녹음한 버전이더라. 그 투박한 느낌으로도 좋았다.
‘Fuck you’에서 이정효의 기타 톤은 그다지 화나 있는 것 같고 오히려 발랄한데, 이 비대칭은 의도한 바인지.
이정효: 화를 내는 부분은 처음에만 강조하면 될 것 같았고, 소위 ‘쨉쨉이’ 부분에서는 톤을 깔끔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이런 대비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연주했다. (기타리스트 중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조쉬 하미, 잭 화이트 등 퍼즈 기타 톤이 좋은 기타리스트들을 좋아한다.
피치트럭하이재커스 곡 제작 과정은 보통 어떤가.
이청경: 모든 곡은 데모로 내가 먼저 만들고, 멤버들에게 공유해서 의견을 구한다. 그리고 각자 가지고 온 걸로 합주하는데, 디테일은 멤버들이 몰래 고쳐 오기도 한다.
김규리: 청경이 대부분 잘 써오지만 기타에 붙는 라인을 드럼에 붙인다든지 이런 걸 취향대로 바꾸기도 한다.
송라이팅을 맡은 이청경은 어떤 계기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나.
이청경: 고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샀고, 코드를 연습하자마자 그때부터 바로 곡 쓰기 시작했다. 앨범에 수록된 ‘Rubbish’도 당시에 처음 쓴 곡이다. (코드를 배우자마자 곡을 쓰는 게 가능한가) ‘곰 세마리’를 배웠는데 코드가 한 개였고, 찾아보면 코드가 단순한 좋은 곡들도 많다. 어디선가 떠돌아 다니는 루 리드의 명언을 피치트럭하이재커스의 정체성으로 새기며 곡을 쓴다. 코드는 한 개면 좋고, 두 개면 과하고, 세 개부터는 재즈라는 말이다.
‘뒤틀린 입이라도’에서만 한국어가 두드러지고 영어 가사가 대부분이다. 언어를 이렇게 배치한 이유가 있을까.
이청경: 아버지를 따라 싱가폴에 거주할 때 영어를 배웠다. 평소 일기를 쓸 때도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사도 두 언어를 오가며 쓰게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영어 가사를 쓸 때 더 직설적이다. 아무래도 한국어는 반말이나 존댓말을 고려하고, 익숙한 언어다보니 솔직하게 쓰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주요 멜로디를 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청경: 녹음할 때 원하는 ‘맛’이 나지 않으면 재녹음하는 경우가 많다. 박자감이 있는 ‘Fuck you’는 차진 리듬이 느껴져야 하는데 긴장해서 연주가 딱딱하면 다시 녹음하길 반복했다. (후반부 감정이 담긴 샤우팅은 얼마나 녹음했나) 막상 이건 또 얼마 안걸렸다. 평소에 받은 분노를 그대로 녹음실에 발산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다 보니 목소리 부담 없이 재미있게 작업했다.
피치트럭하이재커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음악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청경: 평소의 생각들을 일기처럼 적어놓으면 그대로 가사로 치환된다. < Peach Truck Hijackers >도 특정한 메시지를 미리 계획해두고 작업했다기보다 그때그때 떠오른 것들을 음악으로 모아보니 앨범의 방향이 정해졌다. 사실 정적인 음악들도 솔로 작업을 위해 작업해둔 게 많지만 피치트럭하이재커스에서는 다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음악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고 있다.
이세정: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런 중간에 조용한 곡 몇 개 섞여 있어도 재밌을 것 같다.
앨범 작업에서는 소음발광의 강동수가 프로듀싱을, 세이수미의 김병규가 믹싱을 맡았다. 두 선배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이청경: 두 분이 감사하게도 요청에 응답해 먼저 찾아와주셨고 함께 녹음하며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녹음실 섭외부터 앨범 제작 전반에 대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언젠가 나중에 후배에게 음악을 알려줄 기회가 생긴다면 저렇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효: 녹음 자체가 낭만적이고 행복했다. 런던 밴드들 보면 다같이 시골 마을에 가서 앨범을 만들어오고 그러지 않나. 당시 청경의 할아버지 댁이 부산이어서 거기서 자고 녹음하고, 끝나면 다같이 바다로 놀러가고.. 하나의 좋은 추억이 되었다.

김규리(베이스), 이청경(보컬, 기타)
지금 대화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무대에서도 친밀함이 잘 느껴진다. 서로의 우정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은?
이정효: 평소에 많이 싸우는 편이지만 (웃음), 사이가 좋아야 좋은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청경: 작년 어떤 무대에서 얼마간 소통의 오류가 있었고 그 미묘한 상태로 공연에 올랐다가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무대가 이후 우정이 합주와 우리 밴드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피치트럭하이재커스는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김규리: 사실 우리도 가장 궁금하다.
이정효: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민이 많다. 앨범 소개글이나 가사에는 이런 저런 말을 썼지만 사실 기획 단계부터 정해진 건 아니었다. 청경의 생각을 곡으로 썼고 하나씩 잘 모으고 보니까 하나의 앨범으로 완성된 것에 가까웠다. 보통 우리의 행보가 그런 식이다. 정해진 계획대로 가기보다는 앨범 커버와 같은 중요한 것들을 정할 때면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정리가 된다. 지금은 이런 방식 자체가 우리의 정체성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본인을 음악으로 인도한 아티스트와 앨범 혹은 곡은.
이청경: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 The Velvet Underground >다. 에라스모 카를로스의 < Sonhos E Memorias >도 개인적으로 중요하다. 수능 직전 한 레코드 가게에서 CD를 구경하던 중 바다가 보고 싶어 충동적으로 인천으로 떠난 적이 있는데 그 때 들었던 앨범이다.
이정효: 리버틴즈의 모든 음반. 특히 기타를 공부할 때는 3집 < Anthems For Doomed Youth >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곡들을 커버하며 ‘난 이제 모든 곡을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고 때마침 이 친구들도 그당시에 만났다. 영국에서 리버틴즈의 공연을 봤던 축축하고 살벌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세정: 앞선 언급처럼 드림 시어터에 빠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그의 영웅 닐 피어트가 속한 러쉬를 파게 되었다. 물론 첫 록 음악은 아니지만, 어떤 계기로 나의 인생과 가치관을 바꿔준 러쉬의 ‘Jacob’s ladder’를 인생곡으로 꼽고 싶다.
김규리 : 한 달 정도 뉴욕 여행을 떠났을 때 블랙 키스의 < Turn Blue >를 많이 들었다. 당시 좋은 추억을 간직한 잊을 수 없는 음악이다. 물론 베이스가 없는 밴드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약간은 허탈했지만 말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