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 인터뷰

해파

by 한성현

2026.08.21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정상성을 소망한다. 평균이라는 안전 범위, 혹은 좁은 틀 안에 몸을 맞추는 것이 올바른 가치라고 믿는다. 싱어송라이터 해파의 두 번째 정규작 < 건강한 사회의 일원 >은 그래서 씁쓸하면서도 통쾌하다. 빙긋 웃으며 거대한 물살에 순응하려 발버둥 치다가도, 시니컬한 표정으로 규범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과 주변을 보듬어주는 손길을 내밀고 있으니까. 불합리한 인생, 그래도 삶을 부정하지 않으며 버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보기로 했다. 전문은 하단 팟캐스트 '이즘 뮤직 클라우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앨범 제목이었다. 마침 첫 트랙의 곡명도 동일한데 제목과 음악 중 무엇이 먼저였는지 궁금하다.
동시 진행이다. 정신과에 다니던 중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여기에 코드와 멜로디를 붙이면서 시작이 되었고, 노래가 채 완성되기 전에 그런 제목의 앨범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 트랙에 살을 붙이고 다른 노래들도 묶으면서 앨범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만든 곡은 '건강한 사회의 일원'인 것인가?
그건 아니고, 첫 앨범 < 죽은 척하기 >에 수록하려다 말았던 트랙이 있다. '씨앗'이라는 곡이다. 1집 제작 당시에는 비슷한 무드라 빼게 되었지만 워낙 애정이 가서 다시 살리게 되었다. (반대로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곡은 무엇인지) 프로듀서 조월과 공동으로 작곡한 '코미디 탐험대'다. 앨범 작업과 녹음 사이에 시간이 조금 떴는데, 마침 같이 만든 노래가 하나 들어가면 좋겠다는 제안을 줬다. 작곡한 음악을 받아 내가 가사를 붙여서 곡이 나왔다.

앨범 내에서는 바로 이어지는 2번 트랙 '자백'으로의 낙차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곡 배치는 어떻게 구성했나.
계산보다는 느낌으로 정하는 편이다. 노래마다 끝과 시작을 이리저리 연결하는 성격으로, '자백'의 도입부 드럼 연주가 어디에 붙여도 참 잘 어울리는 요소라서 고민을 좀 했다. 어쩌다 보니 오프닝 트랙 바로 뒤에 넣게 된 그 흐름이 나도 만족스럽다.

반면 지난 7월 < 스페이스 공감 > 공연 당시에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을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불렀다. 현장 합창 지도 때문이기도 한 것 같은데.
다른 공연에서도 보통 끝에 배치하는데, 이유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처음부터 이 노래를 부르면 목이 너무 아파서 다음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웃음) 특히 마지막 후렴은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는 편이라, 앞에서는 에너지를 좀 모으다가 마지막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 쓰는 식이다.

최근 공연이 많았다. < 영희페스티벌 >과 < DMZ 피스트레인 > 라인업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두 공연 일정이 딱 겹쳐서 고생한 기억이 난다. 6월 13일 마포구에서 < 영희페스티벌 > 공연을 하고, 마치자마자 철원으로 가서 하루 숙박해서 다음날 아침 9시부터 리허설을 진행한 후 < DMZ 피스트레인 > 공연을 마쳤다. 곧바로 오후에 마포구로 다시 복귀해서 < 영희페스티벌 > 토크 세션에 투입이 되는 스케줄이었다. DMZ 공연을 남아서 관람하지 못했다는 것이 살짝 아쉽긴 한데, 그래도 < 영희페스티벌 >에서 나눈 얘기가 정말 좋아서 보람은 충분했다.

관객 반응은 어땠는지.
보통 내 공연에는 내향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 오는 편인데 < 영희페스티벌 >은 반대로 호응을 잘 해주려고 준비해온 듯한 관객들이 많았다. 내가 재밌는 멘트를 치면 적극적으로 웃어주고, 또 같이 불러달라 하면 성실히 불러주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이 넘치고 편안한 무대였다. < DMZ 피스트레인 >은 모허라는 팀과 함께 페스티벌 메인 부지가 아니라 다른 별도의 공간에서 공연했는데, 심지어 관객들이 따로 예약을 해야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야외 공연이었는데도 6월이라 날씨가 좋았고 다들 정성스레 내 노래를 들어줘서 분위기가 좋았다.



다시 앨범 얘기로 돌아와서, 록적인 느낌이 강했던 지난 앨범에 비해 < 건강한 사회의 일원 >은 조금 더 재즈적인 터치가 가미되어 있다. 사운드 변화의 의도가 궁금하다.
재즈의 색채는 아무래도 관악기 소리 때문인 것 같다. 브라스 사용은 조월 프로듀서가 제안한 내용으로, 직접 수소문해서 연주자를 구하고 편곡도 도와줘서 지금의 분위기가 탄생했다. (같이 작업한 후기도 궁금하다) 그저 '이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앨범을 꼭 내야겠다'는 기분이었다. 2024년부터 계속 음반을 낼 거라는 말만 하고 실행력은 없던 상태였는데, 우연히 프로듀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개입을 받게 되니 진짜 일이 진행되더라. < 스페이스 공감 > 공연에서 풀 밴드 세션으로 하게 된 것도 조월 프로듀서가 나서서 섭외를 많이 도와준 덕분이었다. 여러모로 좋은 감독자 같은 인물이다.

전작 < 죽은 척하기 >가 받은 호평에 대한 부담감도 있던 것일까?
그보다는 그저 앨범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막막함이 컸다. 사실 전작은 정규 앨범을 처음 내는 것이다 보니 '평가가 좋았다'는 자각이 아예 없었다. 상업적으로 내가 벼락스타가 된 것도 아니었고. (웃음) 그런데 이번 앨범부터는 조금 그런 반응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 건강한 사회의 일원 >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묻고 싶다.
'크고 거슬리는'이다. 스스로에게 '참 짠하다. 그래, 너 소리 지르고 싶었구나' 하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있다. 예전의 나를 돌아보면서 쓰다듬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마지막은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해파를 뮤지션의 삶으로 인도한 인생 음악을 골라달라.
어쩔 수 없이 중고등학생 시절 들었던 음악이 '인생 음악'이 되는 것 같다. 성장기에 많이 들은 음반을 골라 왔는데 첫 번째는 라디오헤드의 < The Bends >다. 머리로는 이 다음 앨범인 < OK Computer >가 더 잘 만들어졌다고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결국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은 밴드 사운드에 압도되는 이 작품이다.

두 번째 앨범은 <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사운드트랙으로 발매된 < 호흡 >이다. 살류라는 아티스트가 작품 속 릴리 슈슈라는 뮤지션으로 분해 만든 음반으로, 영화는 사실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노래는 정말 좋았다. 특히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나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은 예예예스의 < Show Your Bones >. 보컬 카렌 오가 한국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롤모델로 삼게 되었다. '나도 나중에 커서 이 사람처럼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개성 있는 언니가 되고 싶다' 하는 꿈을 품었다. 이 앨범을 처음 접하고 얼마 후에 제1회 <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이 개최되었는데 라인업에 딱 오른 게 아닌가. 설레는 마음에 나의 처음 페스티벌로 파란 장화 신고 찾아가서 관람한 기억이 난다.

* 본 콘텐츠는 이즘 뮤직 클라우드의 188번째 에피소드와 추가 질문, 응답을 바탕으로 이뤄진 인터뷰를 엮었습니다. 본문에 실리지 않은 더 깊은 이야기는 아래 팟캐스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진행: 한성현, 남강민
정리: 한성현
사진: 남강민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