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야 인터뷰

김심야(Kim Ximya)

by 박승민

2026.09.30

이즘과 처음 마주했던 8년 전의 김심야는 매섭고 날카로웠다. 해외에서 먼저 열광한 엑스엑스엑스로 화려하게 등장한 다음 손대현과의 합작 < Moonshine >으로 연타석 홈런을 터뜨려 금세 유일무이한 위치에 오른 슈퍼 루키. 당시 인터뷰에서 예고했던 < Language > 또한 공개되자마자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으며 후속작 < Second Language >와 솔로 활동까지 매년 훌륭한 작업물이 뒤따랐다. 그야말로 홀연히 나타나 힙합 신의 맹점을 찌른 젊은 MC에게 더 거칠 것은 없는 듯했다. 


그리고 < Dog >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김심야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부터 바깥의 시선을 비롯해 많은 변화가 이어졌으며 그동안 그를 향한 기대는 커져만 갔다. 불교 경전을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던 그가 찾은 해답은 첫 정규 앨범의 제목 뒤 덧붙인 ‘마’. 그렇게 내놓은 < 도그마 >를 통해 변모의 까닭을 능히 짐작하고 또 이해할 수 있었다. 발매를 맞아 다시 이즘을 만난 그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한편, 음악가로서 곧은 심지는 여전함을 여실히 느꼈다.



이즘과 8년 만의 만남이다. 그동안 솔로 활동과 복무부터 결혼 등 여러 일을 겪었는데, 음악관 혹은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는가.
아무래도 아내의 존재가 제일 크다. 과거 나를 괴롭히던 강박이나 분노로부터 아직 완벽하게 도망치지는 못했지만 아내 덕에 그런 감정을 무시하며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음악을 만들 때도 이전처럼 시니컬한 태도로 문제점을 꼬집는 게 아니라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 느끼는 것들에서 작업을 시작하곤 한다.

이례적으로 유튜브 피식대학의 < 피식쇼 >를 비롯한 여러 창구를 통해 앨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 또한 변화의 일부일까?
회사의 출연 제의를 듣고 고민을 했었는데, 평소와는 다른 방향성임에도 받아들이게 된 까닭은 결국 새롭게 생긴 가족에게 있다. 정규가 없던 6년간 아내에게 너무 백수처럼 비추어졌을 것 같고 (웃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니까. 다행히 다들 되게 즐거워하셨다. 반농담으로 어머니께서 최초로 유의미한 기쁨을 느끼셨다고 할 정도다.

본격적으로 신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작년 이태원 케이크샵에서 열린 무어 마더(Moor Mother) 내한 게스트로 앨범 참여진들과 공연하며 신곡을 선보였던 게 기억난다. < 도그마 >의 총 작업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공백기 6년 중 앞의 4년은 내용과 주제를 구상했고 뒤의 2년 동안 실제 작업을 진행했다. 실질적인 < 도그마 >의 시작점은 유럽 송캠프고, 이번에 그 과정이 유튜브 BANATV에 ‘도그마 세션’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블라완(Blawan)과 시모 셀(Simo Cell) 등 서구권의 유명 전자음악 프로듀서들과 교류하며 어떤 점이 제일 좋았고 기억에 남았는가.
먼저 회사에 함께하고 싶은 아티스트 명단을 전달했고 이를 토대로 세션을 잡아 주셔서 굉장히 풍요로웠다. 평소에 즐겨 듣는 친구들과 같이 작업하며 그들이 만든 좋은 트랙 위에 랩을 얹는 경험 자체가 즐거웠다.

대단한 라인업이다. 다만 최종 스트리밍 버전에는 결국 이들과 만든 곡이 빠졌는데 아쉽지는 않았나?
당연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유럽 세션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기도 했기에 음반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맞지 않는 곡들을 과감히 제외했다.


예고했던 대로 레이블 사운드서플라이서비스의 씨씨알(ccr), 씨제이비구오(cjb95)와 마운트 엑스엘알(Mount XLR)이 앨범 전반을 같이 제작했다. < Bundle1 >과 < Dog >, < w18c > 등 2020년대의 솔로 작업물들에는 항상 이들의 이름이 존재했는데, 변화 대신 이번에도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친구들은 내게 축복 같은 존재다. 마운트 엑스엘알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고등학교 시절 섹터라는 크루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들의 작품과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내가 하려는 음악과 결이 맞닿아 있었기에 굳이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해외 프로듀서들과 작업을 하더라도 매번 마지막 터치나 편곡은 그 친구들에게 부탁하게 된다.

영국 전자음악의 영향을 깊게 받은 마운트 엑스엘알의 비중이 늘어나서인지 런던 신 특유의 서늘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예의 조합으로 참여한 크러쉬의 < Wonderego > 속 ‘Nothing else’도 떠오른다. 순식간에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 순간이었는데.
그 트랙은 공익근무를 할 때 광재(마운트 엑스엘알)와 친해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광재는 내게 랩을 배웠고, 반대로 나는 광재에게 전자음악을 배우고는 했다. 복무를 마친 후 연락이 와 크러쉬 님의 앨범에 랩 메이킹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의 개인 작업이었다면 절대로 쓰지 않을 느낌의 가사와 목소리로 데모를 보내 드렸는데, 크러쉬 님이 그 녹음을 그대로 사용하시겠다고 해서 놀랐다.

한편 마지막 트랙 ‘Keep counting’은 주제의식을 갈무리하는 가사에서나, DJ 다히(Dahi)가 보탠 웅장한 프로덕션에서나 여러모로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다히의 색깔만이 두드러지기보다는 김심야가 창조한 세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느낌이었는데, 작업 과정에 대해 귀띔해 줄 수 있나.
다히의 샘플 팩을 손에 넣은 다음 그중 하나에 씨씨알이 드럼을 올려 완성한 곡이다. 수록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회사에서 의견을 주어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 앨범을 만들며 주변의 피드백이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려고 많이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크레딧에 오른 이들을 제외하고 조언을 구한 주변인이 있을까?
아내밖에 없다. 스스로의 기준이 되게 또렷하고 멋과 대중성 양쪽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내가 < 도그마 >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은 무엇인가) ‘It’s that’이다.

피지컬과 스트리밍의 트랙을 다르게 두는 방식을 두고 왈가왈부가 많을 것 같다. 두 버전의 구체적인 차이를 캐묻기보다는 그러한 선택의 근원적인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사실 리스너 입장에서는 혼동되거나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은가.
피지컬 버전은 일종의 디렉터스 컷 같은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명상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곡을 스킵하지 못하는 소형 플레이어의 특징이 움직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명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트랙마다 처음 몇 초만 듣다 그대로 넘겨 버려도 되는 요즘 시대에 26분을 강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내해야 한다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생겨나지 않을까.

발매를 앞두고 공개한 뮤직비디오도 인상 깊었다. 피지컬 버전과 동일한 음원을 담고 있는 만큼 비슷한 지점을 신경 썼는지.
뮤직비디오는 박찬경 감독님이 초안을 보내주셨을 때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대단히 만족스러웠기에 피드백을 드린 부분이 거의 없다. 소형 플레이어와 뮤직비디오 모두 음악이 지워지고 명상 혹은 영상만 남는 경험을 청취자분들께 드리고자 했다.

< 도그마 >와 관련해 추가적인 계획이 궁금하다. 김심야라는 이름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고 싶은 욕심은 없나.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다만 마이크 하나만 들고 하는 방향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는 중이라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공백기 중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보여준 달관적인 태도와 힙합 신에 대한 발언들이 주목받기도 했다. 작업물 없이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활동에도 특별한 의도나 의미가 있었는가?
특별한 의미는 확실히 없다. 어릴 적부터 가졌던 안 좋은 습관이다. 과거 음악에 계속해서 화(火)를 재활용해 결국 해소하지 못했던 까닭을 돌이켜 보면, 결국 내 작품에 대한 동의할 수 없는 반응을 직접 찾아봤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걸 도전하고 싶어도 결국 분노나 억지 증명으로 귀결되었달까. 그러한 태도를 차츰차츰 줄여나가고자 했지만 여전히 잔여물이 남은 듯하다.

힙합 신의 자질구레한 비프나 신경전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 역시 밝힌 바 있다. 이 또한 같은 이유에서일까.
개인적으로 디스를 자기 PR이나 엔터테인먼트라 생각하지 않고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광대가 된 느낌이라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실 창작과도 굉장히 먼 일 아닌가. 오히려 ‘나는 엄청 세, 도망치지 않아, 쫄지 않아’ 같은 강한 태도를 증명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 행위를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스스로 30대에 접어들고 결혼을 하며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 도그마 >뿐만 아니라 근래의 작업과 관심사 전반에는 불교가 스며들어 있다. 불교 경전에서 특별히 와닿는 부분이 있는가.
불교의 초기 경전이라고 불리는 구전에 가까운 내용들을 좋아한다. 종교의 형태로 자리잡히기 전 석가가 상담해 주던 시절의 내용들인데, 조금 더 현실적인 동시에 모순적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커리어와 성향을 가진 내게 그런 애매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마음을 더 열 수 있었다.

불교의 12연기 개념에 비추어보았을 때, 래퍼 김심야와 인간 김동현의 자아는 어떻게 나누어질까?
과거에는 완전히 일치되어 있다고 여겼다. ‘내가 곧 김심야다, 내가 곧 힙합이다’ 같은. (웃음)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완전히 별개의 인간이었다. 오히려 요즘 두 자아가 분리된 듯하면서도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져 신기하다. (‘Move my feet’의 가사도 떠오른다) 에고는 나 자신을 유혹해 부정적인 길로 빠뜨리는 강력한 존재다. 불경에 등장하는 악마 마라가 에고를 상징한다고도 생각한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 본질적인 욕구의 형태로 존재하는 에고를 어떻게 지우느냐가 중요하다.

< 도그마 >를 반복 재생하고 있을 팬들에게 화두 하나를 부탁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매번 음악의 방향성을 잡아 주는 카니예 웨스트의 < Yeezus >, 프로듀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교과서가 되어 준 톰 요크의 < Tomorrow’s Modern Boxes > 그리고 인생의 사운드트랙인 베리얼의 < Burial >.

톰 요크, 베리얼 둘과 한꺼번에 협업하게 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외적으로도 대단히 뛰어나지 않나. 톰 요크는 정말 근사하게 나이 들었고 베리얼처럼 투명 인간이라서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 역시 비주얼의 하나니까. 멋있는 뮤지션의 조건이 외모라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행: 박승민, 이재훈, 안준용, 유성아
정리: 박승민
사진: 유성아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