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 오후 5시의 인천 펜타포트 서브 스테이지는 인터넷의 마법이 현실과 충돌하는 장이었다. 대다수 관객에게는 생소할 이름이지만 사이버 힙스터들에게는 혁명가와 다름없는 파란노을이 등장한 것이다. 순수한 열정에 감동받은 이들과 다듬어지지 않은 퍼포먼스에 당황하는 사람들이 교차하던 시간, < Sky Hundred >는 기습적인 예고와 함께 우리 앞에 불쑥 도착했다.
방 한 켠 원맨 밴드에서 시작한 파란노을은 해외 인터넷 커뮤니티 입소문으로 시작해 동료 음악가들과의 합작 공연, 앨범 등으로 꽤 가파른 상승가도를 겪었다. 이런 서사는 싱어송라이터에게 그 이후를 서술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기기 마련이다. < Sky Hundred >는 그가 맞닥뜨린 상황에 대해 대체로 함구한다. 라이너 노트에 성공 이후 찾아온 변화와 이로 인한 고뇌를 추상적으로나마 적었지만 음악 내에서 파란노을이 서술하는 어두운 감정의 직접적인 근원은 그의 신원만큼이나 특정할 수 없다.
노이즈라는 지각과 자기혐오의 맨틀 아래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의 핵에는 애틋한 그리움이 존재했다. 직접 겪어봤거나 혹은 그렇다고 착각하는 과거를 향한 향수. 모두 지금의 젊은 세대를 잠식한 시대정신이다. 그리고 그의 소탈한 문체는 < After The Magic >에서 연대를 이뤘다는 현실의 사건과 결합하며 위로의 성질을 얻었다. 신보의 문학적인 단어 선정은 언어적으로는 발전일지 몰라도 그가 일부러 생략한 맥락과 겹쳐 내면 깊은 곳으로의 진입을 차단한다.
스스로도 모습을 보여주기 두려워 뒤로 물러났던 목소리는 곧 그 자신과 키보드 뒤에 숨은 이들의 정서를 하나로 묶어 대변했지만, 보컬이 확실히 앞으로 나선 ‘암전고백’ 같은 트랙에서 목 놓아 외치는 우울감은 연신 그 이유를 묻게 한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괴로운 것일까?’ 13분을 그다지 새롭지 않은 패턴으로 채워 억지로 늘린 듯한 ‘Evoke me’는 그 정점이다. 동행자의 자리를 벗어난 순간 파란노을의 음악은 급격하게 피곤해진다.
행복을 인식하고 쟁취하려는 ‘고통없이’와 극복을 다짐하는 ‘환상’처럼 음반의 긍정적인 부분은 비관을 딛고 일어서려는 때에 있다. 그 과정 속에 파란노을의 캐릭터도 새롭고 단단하게 정립된다. 브레이크비트 위에 얹은 찬란한 건반으로 J록의 구성을 따라가는 ‘주마등’이 정체성의 한 조각이었던 일본 문화에 대한 애착을 부각하는 한편 디스토션 가득한 드럼이 이끄는 ‘황금빛 강’은 슈게이즈에 국한되지 않고 인더스트리얼의 성질까지 가져온다. 굳건하게 구축된 그의 세계는 이제 밖으로의 문 또한 열어놓았다.
‘우리’의 동의어로 시작한 아마추어 음악가는 어느덧 대형 무대 위에 올라 카메라에 잡히는 ‘그’가 되었다. 나란히 호흡하기에는 거리가 조금 멀어졌고, 당연히 파란노을이 토로하는 아픔도 이제는 무조건적인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과 이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에게 함부로 특정한 태도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지만, 이미 그에게는 인터넷 아이콘 못지 않게 현실 록스타의 지위까지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파란노을은 이제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 Sky Hundred >가 끄집어낸 복잡한 질문이다.
-수록곡-
1. 주마등 (A lot can happen) [추천]
2. 황금빛 강 (Gold river)
3. Maybe somewhere
4. 고통없이 (Painless) [추천]
5. 암전고백 (Lights off repentance)
6. Evoke me
7. No one talk about it anymore
8. 시계 (Backwards)
9. 후회하는 의미 (Meaning of regret)
10. 환상 [추천]